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사이코패스라는 거, 아시죠?
의외였다.
남지웅의 입에서 봇물 터지듯 튀어나온 이혜선의 정보.
그것은 전민성의 집에서 들었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이혜선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남지웅은 그 여자가 인공장기 연구센터를 미끼로 자신에게 접근했고, 장기밀매와 관련한 블룸과의 관계까지 알아버렸기에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몸을 숨겼고, 남지웅으로서는 어떻게든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설아를 택한 거였다.
“이혜선과 관계된 사람들은 전부 고위층 인사라 쉽게 손을 쓸 사람이 그 여자밖에 없었습니다.”
“행방을 못 찾았을 때 경고하는 의미로 죽이기에도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그치?”
“그, 그건······”
표정에 다 드러난다.
“한설아를 직접 죽인 세 놈은 어딨지?”
“죽었습니다.”
“셋 다?”
“네, 네. 둘은 제 집에서, 아마 이혜선이 보낸 놈들에게 죽은 것 같고. 하나는 김춘일 회장 아들에게 줄 장기 때문에 배를 갈랐습니다.”
“네 얼굴을 하고 있던 그놈하고 운전기사 말이로군. 그런 줄 알았으면 좀 더 고통스럽게 죽이는 거였는데. 쯧.”
“……그놈들도 당신이 죽인 거였습니까?”
어느 놈 할 것 없이 조금만 대화의 물꼬가 터도 곧잘 입을 놀린다.
주제넘게 말이다.
“난 질문하는 걸 좋아하지 받는 건 싫어해. 한 번 더 물어봐. 그럼 이 커다란 기계로 네 머리통을 씹어줄 테니까.”
“……”
“그러고 보니 그 집 지하실에서 더럽게 기분 나쁜 걸 봤었지, 참.”
“……!”
남지웅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기가 죽었던 눈에 힘이 돌아오는 걸 보니 열 받은 모양이었다.
“거기 있는 장기들, 그리고 사람뼈. 피해자가 한 명이라던데 누구지?”
전민성에게 신원확인을 부탁했었는데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었다.
지문도 없고, DNA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데다 치과기록도 없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신부위를 일일이 확인했고, DNA 대조를 해보니 한 사람이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 그게······”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옆에 놓인 일자 드라이버를 들고 금형에 쿵쿵 찍었다.
“힘껏 내려찍으면 이것도 찔리겠네. 어딜 찔러줄까?”
그렇게 묻자 놈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 서병국이라는 사람입니다.”
“왜 거기에 그런 식으로 시체를 보관했지? 원한이라도 있었나?”
“원한이 아니라 일종의 동경이었습니다. 나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천재라 불렸던 사람이라서······ 가지고 싶었습니다.”
“미X새끼, 동경을 그딴 식으로 표현해? 이거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오줌까지 질질 싼다.
퍼펙트 보더니 어쩌니 하더니 열등감과 찌질함으로 똘똘 뭉친 병X일 뿐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놈에게 물었다.
“블룸에서 나오는 약 말이야.”
“……네.”
“출처가 어디야? 박수영은 모르던데.”
“저도…… 모릅니다.”
“몰라? 정말 몰라?”
“그, 그때 김춘일 회장에게 제가 했던 말 못 들었습니까?”
“……”
“수술 중에 그 사람을 협박한 건 그 약의 제조처가 어딘지 확인하려고 그랬던 겁니다. 명도그룹 회장 정도의 위치라면 알 것 같아서요.”
듣긴 했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게 궁금했기에 김춘일 회장이 도망 못 가게 손발을 묶기도 했으니까.
“그놈들은 그 약으로 뭘 하려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도 약의 출처나 목적 같은 건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약의 개선을 위해 돕는 것만 허락할 뿐이었고요.”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어? 신기하잖아. 난 그런 효과를 내는 약은 SF소설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안 했겠습니까. 저도 아는 교수들을 통해 성분분석도 의뢰하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블룸의 킬러들이 방해했습니다. 세 번 정도 경고를 먹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허튼 짓을 할 수가 없었고요.”
나는 박수영을 통해 알아낸 약의 이름을 주욱 나열했다.
그리고 물었다, 가지고 있는 약이 있는지.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제 은신처에 놔뒀습니다.”
“가자.”
나는 금형틀에서 놈의 머리를 빼내주었다.
“수작부리는 거면 대갈통 박살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다.”
남지웅은 화상을 입은 얼굴 반쪽을 보이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징그러우니까 고개 돌려, 이 새끼야.”
-빠악!
***
이혜선은 뉴스특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명도종합병원 살인사건.
거기에 남지웅이 관련되어 있다는 걸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사망한 놈이 대담하게도 장기밀매를 계속한 것이었다.
-오늘 강남의 명도종합병원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불법체류자인 베트남인과 태국인 여섯 명으로, 경찰은 관련 사건을 불법 장기이식과 관련된 사건으로 보고 명도종합병원의 압수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강력범죄에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김나나 기자.
-네, 저는 지금 살인사건이 일어난 명도종합병원 수술실에 와있습니다. 범인들은 이곳 수술실과 수술참관실에서 난동을 부렸고, 그 과정에서 열세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중에는 명도그룹의 회장인 김춘일 회장과······
그녀는 곧바로 윤종호 실장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성형외과 쪽을 감시하는 건 어떻게 됐나요?”
윤종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인 중에 있지만 아직 남지웅이 나타났다는 연락은 없었습니다.”
“저기 뉴스 좀 보세요.”
그녀의 눈짓에 화면 아래 헤드라인을 보던 윤종호는 콧김을 훅 내뱉고는 말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욕구를 먼저 채우려고 움직였군요.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했습니다.”
“실장님 탓이 아니에요. 원래 그런 인간인데 나조차 그걸 간과하고 그런 지시를 내렸으니까요.”
“아닙니다, 제가 지부장님 보좌를 잘못 한 겁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저기 뉴스에 나온 현장 좀 보세요.”
그녀는 현장이 나온 뉴스화면을 정지시켰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그들이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긴 한 모양입니다.”
윤종호는 수술대의 한쪽 부위를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손자국이 나있습니다. 악력만으로 찌그러트린 건 물론 바닥에 고정된 수술대를 잡아 뜯은 겁니다. 거기다 이런 식으로 모양이 변할 정도로 강하게 집어던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BX-01으로는 그렇게까지 근력을 상승시킬 수 없어요.”
“네. 그리고 이 구멍. 구멍의 크기와 여기 튄 피를 감안하면 엄청난 괴력으로 머리를 갖다 박은 겁니다. 그런데 괴력도 괴력이지만 머리가 깨지긴커녕 콘크리트 벽에 구멍이 난 거고요.”
“……”
“저기도 흔적이 하나 있군요. 수술참관실 반대쪽 벽에 부서진 부분 보이시죠?”
“네.”
“저런 식으로 피가 묻었다는 건 물건이 아닌 사람을 던져서 저렇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높이와 각도로 봤을 때 수술참관실에서 반대쪽 벽까지 집어던진 게 분명합니다.”
이혜선은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윤종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지부장님, 이렇게 된 거 본사에 지원을 요청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직 때가 아니에요.”
“저런 능력을 내는 자들이 나왔다면 저희들만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본사가 움직이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쪽 움직임이 드러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본사에서 원하는 그걸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난 이미 십칠 년 전에 죽은 여자에요.”
“지부장님!”
“윤실장님, 실장님은 본사에서 저에게 붙여놓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제 안전보다 이엘바이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세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보였다.
반면 윤종호는 자신의 임무와 그녀 사이에서 갈등했다.
임무만을 생각하기엔 함께한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남지웅을 데려간 건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더욱 찾기가 어려워지니 어떻게 해서든 단서를 찾으세요.”
“알겠습니다, 경찰 쪽 인사를 통해서 현장자료를 입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나간 후 이혜선은 목걸이를 옷 밖으로 꺼냈다.
목걸이에는 펜던트나 보석 대신 투박한 모양의 금반지가 하나 걸려있었다.
그녀는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꼬리를 잡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그녀의 목표는 남지웅이 끝이 아니었다.
그와 연관된 청부조직 블룸, 그리고 그 뒤에 존재하는 자들이 그녀가 생각하는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걸 위해 십칠 년 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이후로 미국으로 밀입국해 십여 년을 다른 신분으로 살아오며 입지를 다졌다.
이엘바이오.
그녀가 복수를 위해 쌓은 배경이었고, 무기였다.
이 회사의 기술정도면 그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한국에서의 칠 년은 그들의 그림자를 알아내는데 그칠 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너무 힘겨웠다.
-찰그랑.
목걸이를 옷 속으로 다시 넣은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았다.
인터넷에서 캡쳐를 해놓은 이미지 몇 장이었다.
모든 사진에는 필드에 있는 염석훈의 모습이 있었다.
“이렇게······ 멋있게 자랐는데.”
평범하게, 남들처럼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었다.
비록 고아원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프로골퍼가 되었고 혼자서도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나가고 있는 걸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윤종호 실장의 말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살인을 했다는 걸 100프로 확신은 못하지만 가능성이 80프로라는 말.
현장을 확인하지 못했다 뿐이지 사람을 죽였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거지? 학대와 관련한 요인일까? 아니면 설아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된 걸까?’
처음 만났을 때 성격 자체가 차가워 보이긴 했었다.
게다가 자신이 한설아를 이용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니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시 윤종호가 살기를 언급하며 말하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윤종호가 꺼낸 ‘살인’이라는 말에서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의문의 근원에는 한 가지 불안감이 있었으니까.
학대, 한설아의 죽음이 아닌 보다 확실하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 말이다.
‘부작용일 리가 없어.’
전두엽의 기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건 예상했었다.
수백, 수천 번의 계산상으로 도출된 결론은 일시적인 언어장애 정도.
다행히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어린 시절, 잠깐 실어증에 걸렸었지만 지금은 말을 되찾았으니까.
예상대로 기능했다는 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아니야, 피하지 말고 확인해야해.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성향이 부작용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인지 확인할 책임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그래야 지난 과거와 그 사람의 희생이 의미가 있으니.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전민성이었다.
사실 한설아와는 오랜 인연을 가졌지만 그 아이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다.
자신이 염석훈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말하게 되면 한설아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해야 했을 테고, 말하지 않는다면 의심이 쌓였을 테니.
하지만 전민성은 아니었다.
그때의 일도 있으니 얼마든지 의심을 받지 않고 그 아이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이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전민성입니다.
“이혜선이에요.”
-어쩐 일이십니까?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까? 그때 다 하신 걸로 아는데······
“설아 씨가 아니라 석훈 씨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 뵙자고 하는 거예요.”
-……
“잠깐이면 돼요.”
-간단하게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무슨 용건인지 말입니다.
이혜선은 담담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음절을 끊으며 말했다.
“사이코패스라는 거, 아시죠?”
-네. 갑자기 그건 왜……
“아무래도 염석훈 씨가 사이코패스인 거 같아서요. 조금 위험한 상태인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