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2
82화. 그 새끼, 이사갔대요!
박인섭은 화면을 다시 보며 말했다.
“육손아.”
“네.”
“저놈 엄청 치밀한 놈이야. 너 흔적 안 남기고 나온 거 맞지?”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절도계의 스페셜리스트 아닙니까. 마음만 먹으면 그거 할 때도 들어갔다 나온 흔적이 안 남는 놈입니다, 제가.”
주먹을 말아 쥐고 손바닥으로 탁탁 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능글맞았다.
박인섭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옷 벗었다고 이제 내가 아주 만만하지?”
“아으, 거 농담도 못합니까? 우리 사이에?”
“가려가며 해, 새끼야. 너 방금 그 농담, 저놈 앞에서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눈깔 뽑힐 거다, 자식아.”
“앞에 없잖아요.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 욕도 하는데 지가 어떻게 안다고요. 뭐 우리가 보고 있는 걸 알기라도 하나?”
그때였다.
화면 속의 염석훈이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다닥.
그들은 화들짝 놀라 두 세 걸음 뒷걸음질을 치며 눈을 깜박거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놀랐고,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때 화면을 보던 염석훈이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몰카를 발견하고 본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체크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아 X발! 놀래라!”
박인섭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옆에 배를 움켜쥐고 있는 육손이 보였다.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가, 간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은 거 같아요.”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계장님도 놀라자빠질 뻔했으면서 뭐.”
“그럼 안 놀라냐, 그 타이밍에 여길 보는데. 근데 저놈 저거 두리번거리는 게 행동이 영 이상한데.”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들어가기 전에 보는 거겠죠.”
“아니, 그런 놈들 있잖아. 누가 자기 방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샤프심이나 머리카락 같은 걸로 장치를 해놓고 들어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는 놈들. 꼭 그런 놈들이 하는 행동 같아서.”
그 말에 육손은 양손을 들어 꼼지락 거리며 말했다.
“저 육손입니다, 육손이. 샤프심? 머리카락? 그게 뭐든 제가 못 잡아낼 거 같아요? 그런 거 없었어요.”
“확실해?”
“그런 것도 없고 적외선 감지기나 다른 방범장치도 없었어요. 홈캠이 하나 있긴 했는데 작동정지 시켜놓고 작업했으니까 절대, 저어어얼대 몰라요.”
숨겨놓은 몰카도 전부 0.5mm 이하의 초소형 렌즈.
어디 있는지 알고 보아도 찾기 힘들 정도로 작고 교묘한 공돌이 특제품이었다.
육손은 염석훈이 절대로 알 수 없다고 자신했다.
“어? 저놈 가방만 챙겨서 다시 나가는 모양인데요?”
해돌이가 화면을 보고 입을 열었다.
염석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곧바로 다시 현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밤이 늦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돌아.”
“네?”
“그 새끼 핸드폰 아직 해킹 안 됐어?”
“네.”
“너답지 않게 좀 느리다? 실력이 떨어진 거야, 아니면 요즘 핸드폰 방화벽 수준이 높아진 거야?”
“쟤 핸드폰 쓰는 방식이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딱 전화만 하더라고요. 데이터를 쓰지를 않아요.”
“……?”
“뭘 다운이라도 받고, 어플을 깔고, 하다못해 검색엔진이나 너튜브 등 뭐라도 좀 써야 타고 들어가서 해킹을 하죠. 우리 할아버지도 저놈 보다는 잘 쓰겠다. 2G폰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안 써요. 아니면……”
“아니면?”
“자기 명의로 된 건 내버려 두고 대포폰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죠.”
“후,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 어떻게 사람새끼가 저렇게 인간미 없이 철저한지 원.”
그들은 이틀 밤을 그렇게 모니터 앞에서 보냈다.
하지만 염석훈이 돌아오지 않자 결국 참다못한 육손이 밖으로 나가더니 몇 시간 후 돌아와 소리쳤다.
“그 새끼, 이사갔대요!”
***
남지웅의 은신처.
농막으로 쓰이는 컨테이너였고, 그곳에서 각성제가 든 약통 하나와 클로로포름 한 병, 그리고 치료제 세 개를 확보했다.
물론 남지웅의 몸에 하나하나 실험해서 약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놈을 모종의 방법으로 처리한 후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남지웅이라는, 한설아의 살해를 사주한 원흉을 처리하고 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것 마냥 정겨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하, 이건 또 뭐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가 집에 침입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내 집에는 가재도구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집집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청소기조차 없다.
왜? 필요가 없으니까.
먼지 따위 움직이는 게 일이겠는가.
나는 그 먼지들을 이용해 집안에 침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될 만한 곳에 방범장치로 사용한다.
나만이 알 수 있는 규칙과 배열로 미세하게 먼지를 뿌려놓는 것이다.
특히 현관은 집을 나갈 때마다 신경 써서 배열을 해둔다.
현관문만 딸 수 있다면 사람이 드나들기 가장 쉬운 루트니.
그리고 지금 현관 바닥의 그 배열이 흐트러져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건 건드린 게 없는 거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바뀐 게 없다.
먼지의 흐트러짐이 아니었다면 여길 들어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걸 믿을 정도로.
‘이렇게까지 흔적이 없는 걸 보면 그냥 절도범은 아닌 거야.’
들어왔다 나간 놈이 어딨는지도 모르니 잡으러 갈 순 없다.
하지만 이런 놈이라면 장소를 옮길 시 다시 또 올 것이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섰다.
평소 자주 이사를 한 덕분에 옷이든 이불이든 다 버리고 새로 장만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달리 소중한 물건이 없기도 하고.
“여보세요? 저 오피스텔 503호 세입잡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남은 계약기간의 월세를 일시금으로 지불하겠다는 말과 함께 집을 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부동산에 곧바로 집을 내놔달라는 요청을 했다.
쥐새끼들이 쫓아올 수 있도록 약간의 흔적을 남긴 것이었다.
***
청부조직 블룸의 총수, 이한성은 지난 몇 달간 일어난 강력범죄 뉴스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드러나는 사건들이 볼수록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 살인사건.
-창동민자역사 살인사건.
-청량리 4구역 다수의 신원미상인 감금 및 사망사건.
살해장소와 사망자들과의 연관성은 리 일가, 카람빗, 유령개와 이어졌다.
블룸을 공격하던 놈들이 갑자기 몰살을 당한 것이다.
청량리 사건을 제외한 두 건의 용의자는 ‘눈깔’.
눈알을 뽑는 악취미를 가진 살인마였다.
‘이 눈깔이란 놈은 또 북악산 우물 살인사건과도 연관이 있어.’
피해자는 흑룡파 간부 김천수.
당시 자신이 정보를 흘린 강신재의 소재를 확인하고 오현조가 성북동으로 보낸 놈이었다.
‘그러고 보면 산성 칼부림 사건도 이상하긴 했지. 강신재를 죽이러 간 놈들 중 일부가 김천수를 배신하고 돌아섰다? 말이 안 되거든.’
강신재는 가진 기반을 거의 다 잃은 상황이었다.
거기서 살아나더라도 상황을 뒤집긴 힘들 정도로.
그걸 부하들이 몰랐을까?
아니, 오현조는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놈들을 선별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천치일까?
오현조에게 있어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니 강신재를 배신한 김천수를 보낸 것이고, 충성심이 남다른 놈들만 골랐을 것이 분명했다.
‘뭔가가 있어.’
심지어 김천수가 저렇게 된 이후, 손정만이 돌연 BD빌딩에 나타나 총기를 난사하고 오현조를 죽였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흑룡파와 세 킬러조직이 일망타진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연?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백퍼센트 누군가에 의해 작업된 것이고, 의도된 결과였다.
‘게다가 남박사도 그래······’
평창동 살인사건.
남지웅의 집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는 보나마나 대역일 테지만 중요한 건 그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장기밀매 내역과 포르말린 용액에 보관된 시체조각들.
그게 공개된 이상 남지웅은 대외적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그에 그치지 않았다.
명도종합병원 살인사건.
분명 남지웅이 개입된 불법 장기이식 수술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또 다시 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목적은 역시 남지웅.
분명 평창동에서 놈을 놓쳤기에 병원까지 찾아가 확보한 것이었다.
‘왜 남지웅은 죽이지 않고 데려갔을까······’
유일하게 그자만 죽지 않았다.
모조리 다 죽었는데 말이다.
납치가 이유라면 대개는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라거나 몸값을 흥정하기 위해서다.
이번의 경우, 높은 확률로 전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남지웅 때문에 그 모든 일이 벌어진 건가?’
잘 생각해보면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에는 그가 있었다.
남지웅은 장기밀매와 관련해 흑룡파와 커넥션이 있고, 블룸을 통해 청부업계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게다가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블룸 역시 피해를 입었다.
케이, 제이, 데이지(박미향), 이씨(이경호), 매리골드 외 4명의 킬러.
그들은 근본 없는 놈들에게 당한 다섯 명의 킬러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흉수가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 및 실종자들이었다.
‘잠적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던 건가?’
눈깔.
만약 그놈이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면 목적이 무엇일까.
이한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남지웅이 목적이라서?
한 사람을 노렸다고 보기엔 결과가 너무 엄청났다.
국내 최대의 범죄조직 흑룡파가 괴멸되었고, 청부조직 세 개가 공중분해, 블룸도 전력의 절반을 잃고 잠적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눈깔이라고 지칭했지만 이건 도저히 한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한성은 상대가 드러나지 않은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수면 아래에 잠적한 이상 자신들을 잡아내는 건 그 어떤 정보기관이라도 불가능하니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상대의 정체를 모른다는 건 상당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잠적 기간을 더 길게 가져가는 게 좋겠어. 우리까지 잘못 된다면 신화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거의 다 왔다고 했다.
십칠 년 전, 서병국의 방해로 좌초 위기를 맞았던 프로젝트가 십년이 넘는 기간과 막대한 비용, 그리고 수많은 인체실험 끝에 결실을 맺기 직전까지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
특보로 보도되는 뉴스를 보는 이한성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저는 지금 경기도 수원의 살인사건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여기 보이는 쇠기둥에 묶어놓고 불에 태워 살해했습니다. 마치 중세시대 화형을 연상케 하는 잔인한 살해수법에 경찰에서도 혀를 내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범인은 대담하게도 현장에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화면에는 땅바닥에 피로 쓰여진 ‘BLOOM’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경찰이 극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블룸이라는 단어는 살인청부조직을 지칭하는 조직명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에서는 관련 사건을 블룸에서 저지른 짓이라 판단하고 관련 사건의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한성은 기가 막혔다.
저건 경찰에게는 블룸이 한 짓인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다음은 블룸 네 차례라는 경고 말이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방금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치과기록을 대조한 결과 피해자는 남지웅 박사로 지난 평창동 살인사건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평창동에서 발견된, 남지웅 박사의 얼굴을 한 시체는 누구일까요. 저는 지금 당장 국과수로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남지웅까지 죽었다.
블룸과의 연관성을 남긴 채.
이한성은 곧바로 알에게 전화를 걸었다.
“브로커들 다 모이라고 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