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언제부터 이렇게 잔소리가 늘었지?
남지웅에 관한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그의 성장배경부터 시작해 의학계에서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 왜 장기밀매에 손을 댄 것인지, 청부조직 블룸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등 인터넷과 공중파 뉴스에서는 어그로 끄는 기사들을 쉴 새 없이 뽑아내었다.
그럴만한 인물이었다.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놈이었고, 감춰진 비밀도 많으니 가십거리로 삼기에 얼마나 좋은가.
사실 그런 부분을 알기에 눈에 띄도록 화형을 시키고 블룸이라는 글자를 남긴 것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면 경찰의 수사력은 그쪽으로 집중되기 마련.
그걸 이용해 눈깔에 대한 관심을 남지웅과 블룸 쪽으로 분산시키려 한 것이다.
또한 한 가지 더 의도가 있었다.
남지웅의 죽음으로 인해 최미연은 안전해진 것인지에 대한 확인 말이다.
블룸.
그놈들이 의뢰인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의뢰를 받았으니 수행해야 한다는 식의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과연 움직일까, 아니면 더 꽁꽁 숨어버릴까.’
타 조직의 습격을 받고 잠적한 놈들이니 굴속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놈들과 관련이 깊은 남지웅을 그렇게 대놓고 죽였으니 자극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극을 제대로 받았다면 움직일 것이고.
-지이이잉.
곧바로 전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룸과 관련해 내 의도를 알려주고 대비를 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였다.
-석훈이 너, 뭐 한다고 이제 연락해?
“바빴으니까 그랬죠.”
-어휴, 바쁘긴 바쁘셨겠지. 그 난리를 피웠으니.
“……”
-지검 앞으로 와, 그때 그 커피숍으로.
“지금요?”
-그래, 당장.
“네, 바로 갈게요.”
***
남부지검 인근 골목.
공돌이는 벤 안에서 헤드폰을 끼고 있다가 벗고는 전화를 걸었다.
-그래, 공돌아. 뭐 좀 나왔니?
“계장님, 방금 전검사 도청했는데 눈깔 만나러 갈 모양이에요.”
-그래? 뭐 다른 말은 한 거 없어?
“별다른 말은 안 했는데 전검사가 ‘바쁘긴 바쁘셨겠지, 그 난리를 피웠으니’라고 하던데요. 좀 의미심장하죠?”
난리라는 단어와 관련된 뉴스.
공돌이는 남지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박인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의미심장한 정도가 아니라 의심이 드네. 지금 명도종합병원 살인사건이랑 남지웅 박사 화형살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 그것도 그 새끼가 한 건가······ 후우.
“어떡해요? 저도 커피숍에 가서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볼까요?”
-그 새끼는 네 얼굴 몰라도 전검사는 알잖아. 안 돼, 위험하니까 가지마.
“그럼 복귀해요?”
-거기 있어, 너 좋아하는 짜장면이나 시켜 먹고.
“곱배기로 먹어도 돼요?”
-알아서 처먹어, 인마.
***
전민성은 늘 그렇듯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 후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친 덴 없어? 병원 현장 보니까 전쟁터나 다름없던데.”
“전혀요.”
“안 다쳤다니 다행이네. 근데 거긴 왜 그렇게 난장판이 된 거야? 수술대 날아가고 콘크리트 벽에 구멍 나고 장난 아니던데, 폭탄이라도 터트렸어?”
“뭐 비슷해요.”
“비밀이다 이거지, 새끼.”
그는 피식 웃더니 남지웅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결국 죽였더라?”
“죽을 짓을 너무 많이 해서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깝네. 불법으로 이식받은 놈들도 싹 다 잡아넣어야 하는데.”
“그건 경찰이 할 일이고요.”
“……”
“그리고 그놈을 그렇게 처리해야 미연이 누나 안전에 대한 확인이 될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어요.”
그렇게 블룸과 관련한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자극한 거다? 흐음.”
“언제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형네 집에 있을 순 없잖아요.”
“뭐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네?”
“아, 아니. 아니야. 그래서? 그놈들이 나타나면 너한테 연락해달라는 거지?”
“네. 형이 있으니까 안 올 가능성이 높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걱정마라, 내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살펴볼 테니까.”
나는 작은 종이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이건 뭐야?”
“총이요.”
블룸 놈들에게서 빼앗았던 5정의 권총 중 총기난사에서 사용했던 4정을 제외한 마지막 1정이다.
“야, 필요 없어.”
“성형외과 화장실에서 그놈 기억 안 나요?”
“……”
전민성은 케이를 떠올렸는지 슬그머니 쇼핑백을 챙겼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놈들에게 잡혀서 목숨을 위협받으면 절 팔아요.”
“……?”
“괜히 입 다물다가 다치지 말고 저에 대해 다 말해주고 만날 수 있도록 장소를 정해요,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그럼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알았어.”
그렇게 놈들에 관한 용건이 끝나고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나온 시체 있잖아요.”
“어.”
“남지웅 그놈에게 물어보니 서병국이라는 사람이래요.”
“서병국?”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생명공학 쪽으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뜨더라고요. 그 사람도 남지웅처럼 그 약의 개발과 관련해서 일을 한 거 같아요.”
“흐음······”
“아마 유족을 찾긴 어려울 거예요.”
“왜?”
“일가족이 전부 실종된 걸로 기사가 있더라고요. 아내와 아들이 있던데 아마 변을 당했겠죠, 서병국 박사처럼.”
전민성은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거의 이십 년 전에 유명했던 사람이니 간단하게나마 찾아보는 것이었다.
“흐음, 대단한 사람이네. 아이큐 200에 최연소로 서울대를 나와서 하버드, NASA에도 잠깐 있었고. 아내는 심은희, 다섯 살 난 아들은 서훈······ 아직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네.”
“일가친척이 없는 것 같던데 형이 한 번 찾아봐요. 안 되면 학계 쪽으로라도 관련된 지인들이 있겠죠.”
“알았어.”
“그리고 이혜선 씨 있잖아요.”
“이혜선? 어, 어.”
뭐야 저 반응은.
“왜 그렇게 놀라요?”
“내가? 아닌데, 안 놀랐는데.”
“뭐 어쨌든 남지웅 그놈 통해서 그때 그 여자가 한 말과 비교해봤는데 거짓말을 하진 않았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설아누나와 관련해서는 전부 사실이었어요.”
“아······ 그래?”
“앞으로 그 여자와 더 얽힐 일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형한테 알려주려고요.”
나는 떨떠름해하는 전민성이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시 화제를 돌렸다.
“참, 그리고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그쪽이라니?”
“강남서요. 박인섭 계장 경질된 이후로.”
“거기? 가관이지. 개판 오분 전이야.”
“……?”
“그래도 너한테는 다행이려나. 대부분의 사건이 강남에서 일어났는데 그런 병X이 형사계장을 맡았으니까.”
전민성은 강남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공태수라고 강남서 서장 집안사람인데 전형적인 승진 위주의 줄타기만 하는 인간이거든. 그 인간이 박계장이 종결짓지 않은 사건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아냐?”
“……”
“차팀장한테 들었는데, 일단 설아누나 사건은 캐비넷에 넣어버렸대.”
“캐비넷?”
“그쪽 말로는 묵힌다고 하거든. 한 몇 년 캐비넷 속에 넣어뒀다가 미제사건 팀에 넘겨버리는 거야.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오거든.”
박인섭이라는 똥을 치웠더니 더한 X새끼가 왔네.
이래서 견찰, 견찰 하는 모양이다.
“최종운 퀸 성형외과 병원장이랑 한성글로벌 김영식 투신자살 건도 박계장이 종결짓지 않고 수사 중에 있었는데, 공태수가 지들이 제 발로 뛰었는데 그걸 왜 쥐고 있냐고 종결시켜버렸고.”
“……”
“무성도예 건도 캐비넷에 넣었고, 또······ 그래, 흑룡파. 총기난사는 손정만의 단독범행으로 그렇게 덮었고, 김천수 사건은 구로서 쪽으로 넘겼어.”
“전에 흑룡파 건은 사건발생지와 상관없이 강남서가 다 맡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근데 김천수는 눈깔에게 당했잖아. 강남서 서장이 창동민자역사 사건 관할지인 도봉서 서장이랑 같이 구로서로 떠넘겨버렸어. 아무래도 가리봉동 사건이 제일 크니까.”
김천수 얘기가 나오니 제일 걸리는 부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노예문신 그거는 어떻게 얘기가 돌고 있어요?”
“아무 얘기 없어. 이유는 모르지만 박계장이 혼자만 알고 덮은 것 같더라.”
양심에 찔렸나? 아니면 식겁해서?
어느 쪽이든 다행이지만.
“눈깔 건은 어떻게 될 거 같아요?”
“글쎄, 구로서에서도 골치 아픈 모양이더라고 워낙에 증거가 없어서. 보통은 그럴때······”
전민성은 멋쩍은지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청부업자들끼리 싸우다 공멸한 걸로 하니까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지 않을까 싶네.”
“……”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긴 한데.
뭘까, 이 더러운 기분은.
“그리고 명도종합병원 사건도 대충 가닥이 나왔는데······”
“왜 뜸을 들여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두 놈 살려뒀다며?”
“네.”
“공태수가 그놈들을 범인으로 낙점하고 종결할 거 같대. 그놈들이 후드 쓴 놈, 그러니까 네 얘기를 했다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더라고.”
“박인섭이라면 의심이라도 했을 텐데, 그 사람은 그런 것도 없나보네요.”
“뭐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사진 있어요?”
그렇게 묻자 전민성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눈을 왜 그렇게 하고 봐요?”
“네 표정이 꼭 죽일 거 같아서.”
“그냥 얼굴 확인만 해두는 거예요. 박인섭에게 워낙 크게 데여서.”
그놈의 존재자체가 나에게 이득이긴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 캐비넷에 사건을 묵혀?
내가 이런 놈을 위해 눈깔 뽑는 걸 자제하고 그런 줄 알아?
“뭐, 그런 거면······ 여기.”
키가 크고 얼굴이 길쭉하다.
뭔가 야비해 보이는 면모도 보이고.
“야, 너 지금 표정 되게 쎄한 거 모르지?”
“그래요?”
“죽이지 마라. 쓰레기 같은 놈이지만 형사계장이야. 다른 놈들 죽이는 거랑은 얘기가 달라.”
“알았어요.”
“약속했다. 알았지?”
“알았다구요.”
언제부터 이렇게 잔소리가 늘었지?
***
십삼 년 전.
공립보육원, 사랑원의 원장은 미소고아원의 원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정성껏 아이들을 돌보았고, 염병한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 중 하나가 개명이었다.
아무래도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았으니.
“병한아, 새로 지을 이름은 어떤 게 좋겠니?”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무표정한 대답에도 원장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병한이는 아무거나가 아닌데 어떻게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을 수 있어. 잘 생각해보려므나.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불리게 될 건데 얼마나 중요하겠니?”
“원장님이 그냥 지어주세요.”
“안 돼.”
“……”
“이름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 원장님은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지었으면 좋겠구나.”
원장은 개명허가신청서류에 바꿀 이름 란만 비워놓고 염병한에게 펜을 쥐어주었다.
“……”
하지만 아이는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몰라 좀처럼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나는 이름 없니?”
“……”
“그냥 갑자기 문득 떠오르는 이름 같은 거 말이다. 깊게 고민하지 말고 즉흥적으로라도 좋으니까 떠올려보렴.”
“……”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으면 아무거나 상관없단다.”
뭐든 염병이 먼저 떠오르는 지금의 이름보다야 좋지 않을까.
원장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차분히 아이의 결정을 기다려주었다.
“서······훈.”
“응?”
“서훈으로 할게요.”
“염서훈, 염서훈이라······”
어감이 조금 이상했다.
더구나 서훈이라는 이름도 왠지 ‘서운하네’라는 말이 떠오르며 또 놀림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병한아, 서훈도 괜찮은데 석훈은 어떻겠니? 염석훈. 원장님이 보기엔 받침을 넣는 게 더 부르기 좋은 거 같은데.”
아이는 이번에도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상관없어요.”
“그래, 그럼 석훈이가 직접 적어서 내자꾸나.”
“네.”
아이는 펜을 쥐고 천천히 이름 석 자를 써내려갔다.
-염서훈.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마지막에야 기역 받침을 써넣었다.
쓰는 순서를 왜 그렇게 했는지 본인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고, 원장은 그저 미소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 석훈이 뭐 먹고 싶니? 원장님이 새 이름이 생긴 기념으로 오늘 맛있는 거 사주마.”
“아무거나요.”
“그럼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갈까?”
“네.”
원장의 손을 붙잡은 채 머릿속으로는 새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염석훈, 염석훈······’
아이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