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이거면 충분하니까 그렇죠
강남서 신임 형사계장 공태수.
지난 며칠 간 뒤를 밟아보았다.
살인을 위한 미행이라기보다 그자에 대해 내 나름대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전민성에게서 한설아 사건을 캐비넷에 처박은 위인이라 듣긴 했지만 그 놈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늘 그랬듯이 카더라 통신이 아닌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해서 결행에 옮겨야 실수가 생기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놈의 경우엔 소문이 더 순화된 면이 있었다.
‘듣던 것보다 더 쓰레기잖아.’
일단 입에서 나오는 말의 태반이 욕이나 폭언이다.
뒤에서 듣고 있으면 귀가 썩을 정도로 개와 쌍시옷이 포함된 말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점심시간에 서에서 나와 밥을 먹으면 가장 높은 직급임에도 지갑을 꺼낸 적이 없었다.
항상 밑의 팀장이나 형사들에게 범인도 못 잡는데 밥이라도 사라, 동료들에게 민폐 끼치면 밥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말로 계산하게끔 강요했다.
그렇다고 저놈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수금을 하러 다니면서 말이야.’
저녁이 되면 출근하듯 유흥가로 향했다.
하루에 서너 군데 술집을 들렀고, 그럴 때마다 마이 안주머니가 볼록해져서 나왔었다.
염력으로 확인해보니 돈 봉투였다.
‘오늘은 제대로 확인이 될 테니까, 이제 결정을 내리자.’
미리 떡밥은 뿌려두었다.
그게 회수가 되면 고기를 낚을지 아니면 풀어줄지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공태수가 퇴근 후 언제나처럼 유흥가로 향하자 염력을 걸어 위치파악을 해놓고 익숙한 장소로 향했다.
골드바.
놈이 근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곳에 뿌려둔 떡밥을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어머, 염프로님.”
은실이라는 이름의 새끼마담이 다가오며 내 팔짱을 꼈다.
“안녕하세요.”
“요즘 자주 오시네요? 김프로님은 투어 때문에 뜸하던데.”
“전 랭킹이 낮아서 창현이 형이 나가는 대회는 참가자격이 안 되거든요. 하하.”
“그래요? 열심히 해야겠네요, 호호.”
그러면서 웃기는 왜 웃는지.
“어디 열심히만 한다고 되나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훈련도 훈련이지만 잘 쉬고 잘 놀아야 한다고.”
“김프로님이?”
“네.”
“호호, 하긴 김프로님이 우리 가게 오면서부터 랭킹이 올랐잖아요.”
“그래요? 그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10번 룸을 지정해주며 말했다.
“왜 타이거우즈도 그거 못하고부터 부진했었다고 하던데?”
그거야 스캔들 터지고 멘탈이 나가서 그렇지 그거 못했다고 부진했을까.
“그런가요? 하하.”
“그런 의미로 오늘 에이스로 꽉 채워서 넣어 드릴게요. 호호.”
“아니요, 그 며칠 전에 들어왔던 분으로 부탁할게요.”
“애리?”
“네.”
“며칠 전에도 애리 아니었나? 염프로님 샤프한 외모하고는 달리 순정남이네?”
“제가 좀 집착하는 면이 있거든요.”
“호호, 알았어요. 애리가 경험이 많아서 리드를 또 잘 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나는 룸에 들어가서 콜라캔 하나를 따서 마셨다.
그리고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애리라는 업소녀가 룸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어제 그 사람 여기 왔다 갔잖아요.”
“호호, 매일 쫓아다니나봐요?”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그건 어떻게 됐어요?”
“돈부터요.”
애리는 눈웃음을 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여기요. 이건 애리 씨 몫, 그리고 이건 룸에 들어갔던 분 꺼.”
나는 두 개의 돈 봉투를 그녀의 손에 각각 올려놓았다.
“어머나 이렇게 많이?”
“비밀유지에 대한 부분도 포함한 거예요.”
손으로 지퍼를 잠그듯 입술을 따라 움직였다.
“어유, 그건 기본이죠.”
그녀는 가슴 속에 소형녹음기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재생버튼을 누른 후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정마담, 이거 왜 이래? 내가 누군지 몰라? 나 강남서 형사계장이야, 형사계장. 내 뒤에 서장님도 있고. 서장님이 우리 집안사람인 거 내가 얘기 안 했나? 서장님 아버지, 형님의 할아버지의 9촌 동생의 손자가 바로 나라니까.
-했죠. 근데 상납금이 너무 심하잖아요.
-뭐가 심해? 흑룡파 같은 깡패새끼들도 막아주고, 단속 뜨기 전에 알려준다니까?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강남서 서장이랑 형사계장을 백으로 두는 건데 그 정도면 싼 거 아냐?
-뭐가 싸요? 흑룡파에 내던 상납금의 두 배 수준인데.
-하, 나 이 X발······ 좋게, 좋게 하려고 해도 도와주질 않네. 야이, X발년아. 이거 김천수 그 깡패새끼 명의였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걸 X집이랍시고 니가 꿀꺽한 거 아냐, 이년아.”
-꾸, 꿀꺽하긴 누가 꿀꺽했다고 그래요?!
-왜? 한 번 뒤집어 까봐?
-……
-십 원짜리 하나 빼먹지 말고 제때, 제때, 따, 박, 따, 박 보내세요, 정마담님. 가랑이 찢어지고 싶지 않으면.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 어떻게 깡패들보다 경찰이라는 새끼가 더 하냐.
-언니, 천천히 드세요.
-놔, 이년아. 지금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천천히는 무슨 천천히야.
그 순간 삑 하고 재생이 끝났다.
“이거 말고 또 있어요?”
“있죠. 공계장이란 사람, 사무실로 또 가서는 자기 멋대로 회계장부 꺼내보고 협박에 욕설에, 생난리를 피웠어요. 그것도 다 녹음했고.”
“……”
“그리고 그날도 벌금이랍시고 이천만 원 뜯어가고, 여자애들 두 명 머리끄덩이 잡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녹음기를 챙겼다.
“수고했어요.”
“저기······ 근데 이걸로 마담언니가 피해보진 않겠죠?”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그리고는 잔에 먹다 남은 콜라를 따른 후 녹음기를 퐁당 빠트렸다.
“그걸 왜······”
“이거면 충분하니까 그렇죠.”
***
다음 날,
공태수는 술이 덜 깬 얼굴로 오전 늦게야 출근했다.
요 며칠 연이어 달렸더니 위에서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계장님, 서장님께서 찾으셨습니다.”
김형사의 말에 공태수는 하품을 쩍쩍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찾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이 수금해서 갖다 바치는 돈이 얼만데.
-똑, 똑.
두 번의 노크와 함께 공태수는 천천히 서장실 문을 열었다.
“백부님, 찾으셨다고요?”
“어, 왔냐? 거기 앉아.”
공서장은 모니터 속 전자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바쁘시면 나중에 올까요?”
“다 했어.”
“저 커피 한잔 마실게요.”
“술 먹고 빈 속에 커피마시면 속 버리니까 잠깐만 기다려. 나가서 같이 국밥 한 그릇 하려고 불렀으니까.”
그는 마우스를 딸깍딸깍 누르며 대충 결재승인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부산식으로 돼지국밥 잘 하는 집 있으니까. 거기서 속 풀어.”
“이야아, 붓산 대지국밥예? 지가 대지국밥 윽시로 좋아하는 거는 우째 알았십니꺼?”
“새끼, 넉살은.”
공서장은 손바닥을 내밀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공태수가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어제 한 바퀴 돌고 받은 찬조금입니다. 새끼들이 어떻게든 깎으려고 발악을 하는데 제가 누굽니까? 모가지 쥐어짜니까 또 나오더라고요.”
“적당히 해. 너무 쥐어짜면 그런 것들도 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걱정마세요, 백부님. 흑룡파가 그렇게 되고 공중에 뜬 돈이 얼마나 많은데요. 지금은 고삐를 죌 때지 풀 때가 아닙니다.”
그 모습에 공서장은 피식 웃었다.
흑룡파가 무너졌을 때는 그들에게서 받던 뒷돈이 끊긴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못해 울화가 치밀었었다.
그런데 이런 게 전화위복일까.
그 일로 눈엣가시 같던 박인섭을 쳐내고 집안사람인 공태수를 앉히자 뒷돈이 찬조금이 되어 지갑이 더 두둑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간 곳은 논현동에 위치한 돼지국밥집이었다.
인테리어도 평범하고, 프렌차이즈가 아니라 깔끔한 느낌은 없었지만 돼지국밥에 어울리는 정겨운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맛집인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예약하셨어요?”
공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말했다.
직원은 그들을 예약자 테이블로 안내하며 물었다.
“주문은 뭘로 하시겠어요?”
“나는 섞어국밥. 태수 넌 뭘로 할래?”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여기 수육도 한 접시 내오고.”
그들은 순대와 돼지고기가 섞인 국밥과 수육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참, 너 내가 전달하라는 자료는 잘 넘겼어?”
공태수는 물잔에 물을 따르며 답했다.
“네, 어제 룸에서 만나서 줬죠. 눈깔자료부터 전부 챙겨서 넘겼어요. 근데 어디서 요청한 거예요?”
“어디긴 어디야, 비공식루트로 요청할만한 곳이지.”
“……”
“넘겼으면 그걸로 됐으니까 신경 꺼.”
“본청이나 검찰은 아닐 거고, 어딘데요? 혹시 여의도? 아니면······ NIS?”
그의 물음에 공서장은 손과 얼굴, 목을 닦던 물수건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살짝 찌푸린 미간은 그가 심기가 상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신경 끄라고 했지?”
“백부님, 우리 한 배 탄 거 아니었습니까? 저도 출세라는 걸 좀 해보고 싶은데 도와주십시오.”
“하! 새끼, 뭘 그렇게 보채 보채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챙길까.”
“……”
“태수야, 출세가 하고 싶으면 말이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높은 자리는 줄을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니야, 위에서 끌어올려 주는 거지.”
“……”
공태수는 아랫입술을 말아 넣고 길게 콧김을 냈다.
불만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때 직원이 트롤리를 끌고 와 국밥과 수육을 테이블 위에 서빙해주었다.
-탁, 탁.
공서장은 숟가락으로 국밥이 담긴 뚝배기를 두드렸다.
“이거 보이냐?”
“네?”
“그릇 말이야.”
“……네.”
“사람마다 그릇이 다 달라. 뭘 담을 수 있는지는 오랜 시간 지켜보고 검증해봐야 알 수 있지. 근데 그런 과정도 없이 담지도 못할 걸 담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뚝배기 깨지는 거야. 와장창!하고.”
그때였다.
공태수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에 공서장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신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심지어 목이 조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야, 너 왜 그래? 내가 그렇게 좋게, 좋게 말했는데 그래도 기분이 나빠?”
그런 게 아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건 숨이 막혀서 그런 거지 열 받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새끼가, 오냐오냐 하니까 말이야.”
“……”
“야, 공계장. 대답 안 해?”
“……”
그 순간 공태수는 자신의 손이 탁자 위로 올라가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를 턱하고 잡는 것이 보였다.
‘끄어어억.’
죽을 것 같이 아팠다.
손이 익는 걸 넘어 타버리는 느낌이었다.
“야······ 너 뭐, 뭐하는 거야?”
공서장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뚝배기와 공태수를 번갈아보았다.
그 순간.
-촤아악!
“으아아아악!”
공태수의 손이 앞으로 나가고 국밥이 쏟아지며 공서장의 얼굴을 덮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태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공서장에게 달려들며 빈 뚝배기를 휘둘렀다.
-빠악! 우지직!
뚝배기가 박살이 나고 공서장의 머리에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꺄아아악!”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가게 밖으로 튀어나가고 그러는 사이 공태수는 테이블 위에 남은 뚝배기 하나까지 들어 공서장의 머리에 내리쳤다.
그러자 손을 파르르 떨던 공서장이 툭 하고 팔을 늘어뜨렸다.
“허억, 허억, 허억.”
그제야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공태수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멘탈이 나가버린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내, 내가 아니야. 내가 안 그랬다고.’
그 모습을 가게 밖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입꼬리를 슬그머니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