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이 양반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양반이네
박인섭.
공태수와 비교하면 그나마 경찰다운 경찰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몰카? 도청?
죽일 순 없어서 옷을 벗겼더니 아주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고 있다.
“그럼 지금 보고 있다는 거네?”
나는 거실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렌즈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 첨단기술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네, 보고 있을 겁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육손이라는 놈은 무릎 꿇고 손을 든 채 내 물음에 답했다.
“미행도 했나?”
“아니요. 미행에는 다들 재주가 없어서요.”
“다들? 박인섭 옆에 또 누가 있지?”
놈은 자신을 포함해 육해공이라 칭하며 이런저런 장기를 떠벌렸다.
“육해공? 웃기고 있네.”
“……”
“근데 왜 박인섭을 돕는 거지? 그 인간, 이제 경찰도 아니잖아.”
“예전에 목숨빚을 좀 졌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쪽 일에 손 털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제대로 된 삶? 남의 집에 몰카 설치하러 들어온 주제에.”
나는 코웃음치며 육손이가 가르쳐준 카메라 방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박인섭 ‘씨’, 제 말 듣고 있죠? 이놈 데리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공돌이, 해달이. 다 같이 거기 있으세요.”
그때 지이잉 거리며 핸드폰이 울렸다.
“뭘 또 전화를 주고 그러십니까. 얼굴 보고 얘기하면 될 것을.”
-육손이는 풀어줘.
“주거침입한 범죄자를 풀어주라고요? 독립운동가가 변절하면 친일파보다 더 악랄해진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범죄자들을 모아서 불법을 저지르지를 않나, 힘들게 잡은 범죄자를 풀어주라지 않나.”
-……
“만나서 얘기합시다. 도망가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요. 도망가면 육손이가 피눈물을 많이 흘릴 겁니다.”
통화 너머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감정이 격해지는 모양이었다.
-알았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육손이를 일으켜 세웠다.
“안내해.”
“알겠습니다.”
아까도 그랬지만 순순히 대답을 잘 한다.
박인섭의 은혜 운운한 것과 달리 의리가 없는 놈인가?
아니면 그냥 고통을 못 참을 정도로 의지가 약한가?
***
박인섭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계장님, 차라리 잘 됐습니다.”
해달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잘 됐다니, 뭐가?”
“이쪽으로 온다니까 그놈 잡읍시다.”
“뭐?”
“그놈이 쓰는 대포폰. 그것만 확보해서 포렌식 해보면 뭐가 나와도 나올 거예요. 명의로 된 폰은 거의 손도 대지 않고 그런 걸 주로 쓰는 거면 얼마나 구린 게 많겠어요?”
“우리 셋이서 그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육손이도 인질로 데리고 있는데?”
“우리 계장님, 많이 당황하셨나보네.”
그는 손가락으로 공돌이를 가리켰다.
“공돌이가 몰카나 도청장치만 만들 줄 아는 거 아니잖아요. 괜히 공돌이겠어요?”
“……!”
“야, 쓸 만한 거 뭐 있냐? 다 꺼내봐.”
그 말에 공돌이는 가게 구석으로 가더니 종이상자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쏟았다.
박인섭은 그 물건들을 보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너 이씨, 이런 거 만들지 말랬지?!”
“취, 취미로 만든 거예요. 재미삼아.”
해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물건들이면 그놈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대부분 비살상용 포획장치지만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빨리 설치해.”
“넵!”
“공돌이 넌 이런 거 다시는 만들지 마. 알았어?”
“알았어요.”
“대답은 따박따박 잘 하지. 어?”
두 사람이 물건들을 들고 후다닥 나가는 그때였다.
안주머니의 핸드폰에서 문자음이 들렸다.
발신자는 아내였다.
-당신 어디에요?
퇴직까지 한 남편이 며칠 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으니 이제쯤 연락이 오겠다 싶었다.
-오늘도 바빠서 못 들어갈 거 같아.
답변을 하고 핸드폰을 다시 안주머니로 넣었다.
평소 자신들 부부의 문자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했으니.
-당신 속옷이랑 먹을 거 좀 싸서 갈게요. 속옷은 갈아입어야지.
그 문자를 읽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었다.
‘속옷’이라는 단어는 신변에 문제가 생겼음을 뜻하는 부부간의 암호였다.
-괜찮다니까, 새 거 사 입으면 돼.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딸이나 잘 챙겨.
민영이라는 딸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딸’이란 명칭을 썼다.
부부의 최우선순위인 딸은 괜찮냐는 뜻이었다.
-그럼 어딘지만 알려줘요. 마누라가 남편이 어딨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딸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민영이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한 마디로 아내와 딸이 함께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
게다가 뒤에 나온 ‘마누라’라는 암호.
범인이 한 사람이 아닌 둘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어떤 X새끼들이······”
박인섭은 일단 경찰에 신고하려다 멈칫했다.
‘잠깐만.’
아내의 문자를 잘 보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의도를 연이어 내비쳤다.
어쩌면 놈들이 자신을 찾아오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야.’
집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를 잘 생각해보니 알 수 있었다.
대놓고 협박하며 부른다면 자신이 경찰을 움직일 수도 있고, 아내를 이용해 집으로 오게끔 만드는 것도 인위적인 낌새를 흘릴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아내를 이용해 어딨는지 확인만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에 있어. 공돌이 PC라고 아는 친구 가게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리 자.
일단 위치를 알려주었다.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한두 놈 잡아서 인질교환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함정을 눈깔에게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우선이었다.
박인섭은 곧바로 1팀장 민정학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학아, 난데.”
-네, 계장님.
“부탁 좀 하자.”
-말씀하세요.
“용산 전자상가 쪽으로 1팀 애들 좀 보내줘라.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대대적으로 움직이면 티가 날 수 있으니까 은밀하게 움직여.”
-네? 왜요?
박인섭은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놈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런 X 같은 새끼들이! 알았어요!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시간 끌어요! 바로 출발할 테니까.”
***
용산 전자상가.
저녁 11시가 다 되었기에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몇몇 가게들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전부 간판 불만 켜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이죠? 전부 빈 가게인 거? 소리쳐도 소용없을 거라는 거예요.”
“……”
“조용히 가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그의 말에 모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킬러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릴 테니 전부 흩어져서 공돌이 PC를 찾으세요.”
워낙에 작은 업체가 많기 때문인지 안내도에도 공돌이 PC라는 상호명은 나와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내부는 여러 갈래로 복도가 나 있는데다 한 눈에 보기 힘들 정도로 넓었기에 흩어져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인이어로 킬러들이 통신을 해왔다.
-이쪽은 없습니다.
-여기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없습니다.
-1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는 2층의 수색을 지시했다.
중앙계단 외에도 곳곳에 계단이 있었기에 모이지 않고 계속해서 각자 움직였다.
“1층에는 없다네요. 갑시다.”
오와 이는 모녀를 데리고 중앙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
서쪽 계단.
두 명의 킬러가 복도 끝에서 만났고, 그들은 함께 2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선두로 나선 킬러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그래?”
“발이 안 떨어져.”
“뭐?”
“뭔가 접착제 같은 게 쏟아진 모양인데.”
“천천히 떼 봐.”
“……안 돼. 딱 달라붙었어. 뭐지 이게?”
한참을 낑낑 대던 그는 결국 신발을 벗고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다시 발바닥이 계단에 달라붙었고, 난간을 붙잡고 떼려고 했지만 이번엔 손바닥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계단 전체에 투명한 뭔가가 발라져있었다.
“이거······ 일부러 발라놓은 거잖아. 설마!”
그때 천장에서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쇠그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물은 뒤편에 서있던 킬러를 덮쳤고, 안에 갇힌 그는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함정이야!”
***
동쪽 계단.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 달린 몰카가 그런 그들을 찍는 중이었다.
“공돌아, 타이밍 잘 맞춰라. 방금 전에 그물 맞은 놈 봤지? 꽤 날래, 저놈들.”
박인섭은 화면을 보며 말했다.
“넵, 걱정마세요.”
공돌이는 리모컨으로 보이는 물건을 손에 쥐었다.
장치의 가운데에는 두 개의 빨갛고, 노란 커다란 버튼이 있었다.
화면에는 세 명의 킬러가 계단 중간정도까지 올라가는 중이었다.
“지금!”
공돌이는 엄지로 빨간 버튼을 꾹 눌렀고, 화면에는 계단 위 아래로 셔터가 촤르륵 내려갔다.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계단을 오르던 놈들 중 뒤쪽에 있던 한 명이 가까스로 셔터 밖으로 빠져 나갔다.
“에이, 씨! 타이밍 잘 맞추라고 했잖아!”
“쟤가 너무 빨라서 그렇잖아요. 그래도 두 명 잡았어요.”
“젠장, 빨리 가스 뿌려.”
공돌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노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설치해둔 수면가스가 계단 위를 하얗게 뒤덮었다.
***
오는 수면가스에 당하지 않은 한 명, 루피나스에게 보고를 받고 피식 웃었다.
이제 보니 박인섭이 자신들을 기다린 것이었다.
“와아, 사모님 대단하시네요? 그 상황에서 우릴 속이다니.”
그 물음에 박인섭의 아내는 딸을 부둥켜안았다.
“무, 무슨 말이에요. 난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무서운 부부네. 연기도 잘 하고. 평소에 대비를 했나 봐요?”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하하, 재밌네.”
오는 그녀의 핸드폰을 꺼내 박인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섭 계장님.”
-너 같으면 안녕하게 생겼냐? 우리 가족 건드리기만 해라. 곱게 죽진 못할 테니까.
“와아, 협박까지? 인질이 아직 제 손에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인질? 내 손에도 있는데 어떻게 교환할 생각은 있나?
“아, 그 멍청한 놈들은 죽이세요. 그런 장난질에 당해서야 어디 킬러로 밥 먹고 살겠습니까.”
-장난질 같으면 네가 직접 와보지 그래? 비겁하게 협박 따위 하지 말고.
“도발입니까?”
-자신 없으면 우리 안사람이랑 딸내미 앞세워서 오든지.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져버렸다.
상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받으세요.”
오는 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
“그냥 인질 한 명 본보기로 죽이고 박인섭에게 내려오라고 하는 게 어때요?”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요.”
“오, 이건······”
“압니다. 근데 이거 자존심 문제거든요. 네 명이 당했답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저 부부에게 속아서 여기까지 멍청하게 왔고.”
“……”
“금방 끝날 겁니다.”
이가 총을 받아들자 오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루피나스, 따라오세요.”
그들은 조심스럽게 3층 중앙계단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던 2층과 달리 이곳에는 접착제가 있었고, 오는 그걸 전부 간파하고 3층에 올라섰다.
-퓽, 퓽.
그때 전면에서 어둠을 뚫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꼬리깃털이 달린 마취용 주사기였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비틀어 가볍게 피했다.
이어 천장에 장치된 쇠그물이 펼쳐지려는 그때 오가 총구를 그쪽으로 향해 몇 방을 갈겼다.
-퓨퓨퓽.
사전에 트랩을 부수고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루피나스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블룸의 브로커들.
그 중 한 명은 사무적인 커뮤니케이션업무를, 그리고 한 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킬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력이 뛰어난 자들로 구성된다.
오는 케이처럼 후자였고, 브로커들 중에서는 케이 다음으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허허, 이 양반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양반이네.”
오의 눈앞에는 온몸을 철갑으로 뒤집어 쓴 괴인이 나타나 고무탄이 장전된 개틀링 머신을 겨누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