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누구도 알아선 안 돼. 그 누구도……
-부우웅.
양화로 위 검은색 벤.
그 속에는 운전대를 잡은 에스, 그리고 알과 다섯 명의 킬러가 총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알, 이래도 괜찮은 걸까요?”
에스가 운전 중에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가 말입니까?”
“엘이 총기 사용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걱정이 되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잖습니까.”
다른 곳과 달리 블룸은 타살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었다.
언제나 자살로 위장하거나 시체를 태워 실종처리가 되도록 만드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총을 사용하게 되면 증거가 남을 뿐만 아니라 블룸이라는 조직 자체가 검경의 최우선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에스도 어렴풋이 짐작하니까 그렇게 묻는 거 아닌가요?”
알은 글록의 조립을 끝내고 마이 안쪽의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그럼 역시 블룸은 이번 일을 끝으로 정리하는 겁니까?”
“엘의 말로는 윗선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을 했다고 합니다.”
의중을 묻는 방식이었지만 엘, 이한성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조사가 끝나는 대로 블룸을 없애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조용히 없애는 것보다 떠들썩하게 만든 후 관련자가 모두 죽어야 깔끔해지기에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엘의 시체가 될 대역도 준비가 끝났으니 전민성 검사를 죽인 후 오와 이, 그리고 그들이 관리하는 킬러 다섯만 없애면 블룸이란 조직은 사라지는 겁니다.”
알은 자신의 앞에 앉은 킬러들의 리더, 아니 블랙요원의 팀장인 최기석에게 말을 이었다.
“최팀장님.”
“네.”
“저쪽 팀, 고스트팀만으로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브로커 오, 그자가 껄끄럽긴 하지만 지원이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맡겨주십시오. 헌데……”
최기석은 팀원들을 힐끔 쳐다본 후 알에게 물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다니요?”
“저희 팀은 사망자로 처리된 상태라 복귀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혹시 얼굴을 고치고 새로운 신분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엘에게서 따로 지시받은 게 없습니다.”
최기석의 표정에서는 지울 수 없는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알은 그의 의중을 읽고 말을 이었다.
“설마 위에서 고스트팀을 버릴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
“최팀장님과 고스트팀의 노고와 충성심은 지난 십수 년 동안 증명해왔잖습니까.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말 몇 마디로 안심할 수 없었다.
윗선에서 인체실험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또 철저하게 관리하는지 봐왔으니까.
자신들은 그 일선에서 노숙자, 부랑자 등을 납치해 사람을 공급하는 일을 해왔으니 가장 더럽고, 껄끄러운 손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저희들의 거취에 대해 확인해주실 순 없겠습니까?”
최기석의 물음에 알은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받았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
“신화 쪽 물건공급을 끊은 건 블룸의 활동을 전면중단했기 때문이지 프로젝트가 완성되어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말입니까?”
“네, 약간의 성과를 본 건 사실이지만 추가실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도 고스트팀에 대해 아무런 언질을 안 줬는지도 모르죠.”
“……”
“이번 일로 여러분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잘 알았습니다. 모두 관리자인 저와 에스의 불찰이니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알은 그들의 표정이 여전히 어둡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러분께선 본인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
“여러분을 쳐낸다고 가정하면 또 이런 일이 있을 때 대체인력을 어디서 보충할 수 있겠습니까? 국정원? 특수부대? 어디든 예전처럼 수월하게 인선에 착수할 수 있을까요?”
“무슨 뜻입니까?”
“지금 세대는 여러분처럼 국가의 지시에 따라 인체실험에 손을 대거나, 일반인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세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찾아보면 없진 않겠지만 예전과는 많이 다르죠. 검증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인력난을 들먹이는 말에 굳었던 고스트팀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오죽하면 저희 손으로 살인마들을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갈 거니까.”
그때였다.
양화대교 위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균형을 잃더니 좌우로 흔들렸다.
-끼이이이이익!
“에스, 무슨 일입니까?”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헉!”
벤의 머리가 좌측으로 급격하게 틀리더니 결국 넘어져서 구르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
자정이 다 된 밤.
대낮보다는 시선을 끌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밤은 불빛이 꺼질 줄을 모른다.
그렇기에 하늘을 난다면 목격자 혹은 어딘가에서 찍힌 영상이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5분 안에 놈들을 잡으려면 날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전보다 비행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상태.
이 정도면 영상에 찍히더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테니 다소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초능력을 의심하더라도 내 정체는 절대 모를 테니까.
-쉬이익. 파라라락.
양화대교에 도착한 후 공중에서 천천히 아치형 구조 꼭대기에 내려섰다.
겨울이 왔는지 시린 칼바람이 사정없이 피부를 스쳤다.
나는 인이어를 통해 해달에게 물었다.
“양화대교에 도착했다. 그놈들 어딨어?”
-벌써 도착했습니까? 출발한지 3분도 안 됐는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위치나 말해.”
-양화로를 통해서 다리 위에 접어들긴 했는데 상세위치는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에 차가 많습니까?
“많지, 한두 대가 아니야. 어떻게 특정할 순 없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들 저렇게 잠이 없는지.
열두 시가 넘었는데 잠자리에 들어야 정상 아닌가.
-형님, 공돌입니다.
이 새끼까지 이젠 형님소리를 하네.
“내가 당신들보다 나이 어려.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그렇다고 동생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혹시 그래도…… 돼요?
“선 넘지 마라, 죽는다.”
-……넵.
“해달이 바꿔.”
-제, 제가 찾을 수 있어요! 특정할 수 있다고요.
“뭐? 어떻게?”
-인이어 짧게 세 번 터치해보세요. 특정주파수를 흘려서 저쪽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파를 탐지할 거예요.
그의 말대로 인이어를 터치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공돌이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있는 곳 바로 아래에요.
고개를 숙여 발밑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검은색 벤 한 대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30미터 가량의 아치구조물 끝에 도달하자.
-30미터 전방.
“찾았다. 수고했어.”
-형님, 제가 도움이······
“됐고. 육손이에게 전해, 내가 돌아가기 전에 원위치 안 하면 모가지 꺾어버릴 거라고.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녀석의 질문을 무시한 채 통신을 끊고, 대교 위를 달리는 검은색 벤에 염력을 연결했다.
‘좌.’
-끼이이익.
‘우.’
-끼이이이이익!
좌우로 흔들며 마치 빗길에서 미끌어진 듯이 연출했다.
결국 중심을 잃은 벤은 옆구르기를 시작했고, 거기에 염력의 힘을 더해 차가 다리 밖으로 튀어나가도록 조작을 해주었다.
-쾅, 쾅, 콰앙!
벤은 난간을 부수며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그 위치를 보며 나도 아치 위에서 뛰어내려 물위에 올라섰다.
-퍼엉.
물줄기가 솟구친 후 벤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안에 있던 놈들이 서둘러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그 중에 딱 두 놈.
브로커로 보이는 정장을 입은 놈들만 구속시켜 빼내고, 나머지 검은색 전술복을 입은 놈들은 차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염력으로 묶어두었다.
그저 떠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죽이는 건 충분했으니.
“크헉, 알! 끝까지 함께 간다고······ 끄르륵!”
무슨 소리지?
뭘 끝까지 함께 간다는 소린지 모르지만 일단 수장부터 시키고 보았다.
보나마나 저 다섯 놈은 킬러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물속에서 목만 내민 두 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늘 한강물 따뜻하냐?”
***
이혜선은 전민성과의 만남 이후 거처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때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그 아이의 상태에 대해 분석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검사는 그 아이의 살인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했어.’
검사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쉬쉬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 역시 미소고아원 출신.
두 사람의 친분을 생각한다면 덮어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검사가 뒤를 봐주고 있기에 지금까지 그 아이가 잡히지 않은 것이고.
‘다음은 성격적인 부분인데……’
요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타고난 기질.
그 아이는 자신을 닮아 신중하고 예민하며 자기 주장이 강했었다.
그런 부분이 외부자극과 어떤 계기로 인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질로 판단하기엔 자라면서 형성된 인격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에 주요원인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둘째는 자신이 투여한 약.
처음엔 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라 생각했었다.
전두엽에 미친 영향이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민성의 말에 따르면 그 약이 제대로 기능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확실한 증거는 실어증.
약에 의한 영향이라면 그런 식으로 갑자기 말을 되찾았을 리가 없으니까.
남편이 확실한 검증을 했다고 했지만 그 아이가 그 약의 첫 임상시험이었으니 지금으로선 실패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미소고아원의 학대.
당시 원장의 만행에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자신도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며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남긴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그 일이 지금의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약효와 학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도……’
투여 직후 그 아이의 상태는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 현상’이 더 이상 발현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약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했다면 없애려 했던 그것이 다시 되살아났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살핀 그 아이에게서는 그 현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전민성 역시 그 아이 주변에서 이상한 걸 보지 못했다고 했었다.
‘잠깐만, 설마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스로 제어를 해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질 때만해도 다섯 살.
그 힘을 제어할 줄도 몰랐고, 너무 어렸기에 컨트롤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약효가 듣지 않았고 그 힘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근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을까.’
그 어린 나이에 그런 힘을 아무도 모르게 숨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무엇보다 자제심이 부족한 나이니까.
이혜선은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방을 나와 거실에서 물 한 잔을 마신 후, 머리를 환기시킬 겸 TV를 켰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에서 발견된 남지웅 박사는……
뉴스에서는 남지웅의 죽음과 관련한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명도종합병원에서 사라진 후 블룸과 함께 잠적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남지웅의 평창동 저택에 들어갔던 일이 떠오르며 이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물잔을 떨어트렸다.
-챙그랑.
머릿속에 그간의 퍼즐이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한설아의 죽음.
흑룡파와 관련된 사건들, 그리고 남지웅까지.
전민성, 최미연과 함께 한설아의 죽음을 조사하던 그 아이를 떠올리자 왜 근래에 살인사건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는지 연결이 된 것이었다.
‘그 아이가 그랬구나!’
한설아의 죽음이 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관련자들을 죽이며 사건을 조사했고, 결국 남지웅까지 찾아서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심증만으로는 안 돼. 정말 능력을 되찾은 건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해.’
이혜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에 갑자기 찾아갈 순 없으니.
그리고 또 한 가지.
윤종호에게 그 아이의 능력에 대해서 들키지 않아야 하니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인 이엘바이오의 충실한 수족.
그 아이가 가진 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회장에게 보고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누구도 알아선 안 돼.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