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
9화. 청부살인 맞아
“언니, 설아언니가 정말 주……죽었어?”
꾹 다문 입술이 떨리고 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이라고 답해주었다.
“으흐흐흑.”
최미연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나에게 기댔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진심으로 설아누나를 위했었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가벼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최미연은 한참동안 오열하며 감정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나까지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흐윽, 흐윽.”
“좀 진정이 돼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품에서 떨어졌다.
“최미연 씨, 진정이 좀 되셨으면 이쪽으로 앉으세요. 염석훈 씨는 밖에서 기다려주시고요.”
형사는 내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나를 떼어놓는 것은 내 진술과 그녀의 진술을 맞춰보려는 의도로 보였다.
“알겠습니다. 누나,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나와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
“으, 응.”
나는 그녀를 남겨두고 경찰서 입구로 나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니코틴이 들어가니 그제야 긴장이 좀 풀어지는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에 들어 가장 파란만장한 하루였지 않은가.
누군가를 처리하기 위해 돌아다닐 때보다 더 긴장되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후우우우.”
이러고 있으니 죽은 한설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거의 미소 위에 살해당한 모습이 겹쳐지며 덧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X같은 기분이다.
그녀의 미소는 내 살인이 정당한 행위라는 것을 상징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이 훼손된 것이다.
‘찾아야지.’
다른 일 제쳐두고 찾는다.
누군지 몰라도 찾아서 갚아줄 것이다.
복수라고 해도 좋고, 화풀이라고 해도 좋다.
그녀를 살해한 놈이든, 사주한 놈이든 관련된 놈들은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싸늘하게 전면을 바라보는 그때였다.
‘누구지?’
멀리서 다가오는 남자가 보였다.
주차를 한 그는 경찰서로 들어가려는 게 아닌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가까이 오니 알겠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그를 마주했다.
“민성이 형, 맞죠?”
“역시 병한이 맞구나.”
“저 개명했어요. 석훈이라고 불러주세요.”
“아참, 그랬지. 들었는데 깜박했네. 그래, 석훈아. 미연이는?”
“지금 조사받고 있어요.”
전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설아누나가 죽다니.”
“미연이 누나가 말해줬어요?”
“어, 경찰서에서 연락 왔다고 출발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했었어.”
택시에서 통화한 것처럼 함께 하기로 한 게 맞는 것 같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주다니.
“와줘서 고마워요, 형.”
“당연히 와야지. 고아원 애들 중에 설아누나에게 도움 안 받은 놈이 누가 있어. 근데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나는 그에게 형사에게 말한 진술과 달리 최대한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명했다.
전민성은 정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신고를 한 건 잘했어. 거기서 그냥 나왔다면 분명 의심을 받았을 테니까.”
“네.”
“근데 형사에겐 왜 있는 그대로 밝히지 않은 거야?”
“수사가 지연될 것 같아서요.”
“……뭐?”
“그렇잖아요. 십오 년 만에 미연이 누나와 설아누나가 ‘우연히’ 만났고, 저랑 연락하는데 흥신소를 통했어요. 저는 업소마담을 미행하다가 ‘우연히’ 시체를 발견했고요. 누구라도 의심할만 하죠.”
“흠······”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설아누나를 돕기 위한 동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때 미소고아원에 있었던 우리는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힘들 테니까.”
한, 두 푼도 아니고 20억이다.
그냥 빚도 아니고 사채빚.
아무리 과거에 고마웠던 사람이라도 그걸 도와주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아닐 것이다.
우리니까.
그 지옥을 함께 겪었기에 발 벗고 도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수사방향이 저나 미연이 누나 쪽으로 움직였을지도 몰라요.”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런 과정이 의미없진 않아.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증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수사는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거든.”
“미연이 누나와 관련된 건 아닐 거예요. 누나가 범인이거나 혹은 누군가가 누나를 움직여서 설아누나를 해치려고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저랑 형이 엮일 이유가 없잖아요. 오늘만 하더라도 제가 돌발적으로 미행을 했고요. 제가 범인이었다면 변수를 많이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 원론적인 얘기는 그만하죠. 전 최대한 빠르게 설아누나를 죽인 범인을 찾고 싶으니까.”
나는 입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형, 검사라면서요. 경찰 쪽 수사정보 좀 알아낼 수 있어요? 일반인들에게 알려주는 거 이상으로요.”
우리나라 경찰의 수사력은 세계적으로도 수준급이라고 들었다.
광범위하게 깔린 CCTV와 블랙박스라는 인프라의 도움, 그리고 과학적인 수사기법이 결합되면 검거력이 장난이 아니다.
이는 내가 작업을 할 때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알아내는 건 문제가 아닌데 범인을 찾아서 어쩌려고?”
전민성은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사적인 복수를 염려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설아누나…… 십오 년 만에 만났는데 죽어있었어요. 그것도 처참하게.”
“……”
“수사결과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싶진 않아요.”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한 명이 계속 눈에 밟혀서요.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너 설마 그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김천수. 그놈은 확실한 살해동기가 있잖아요. 조폭이기도 하고.”
전민성은 턱을 긁적거리며 주저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석훈아, 내 생각엔 김천수는 아닐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그놈, 흑룡파 간부잖아. 흑룡파 같은 대형 조직들은 그런 식으로 광고하듯 죽이지 않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만약 흑룡파가 움직였다면 실종시키는 방향으로 작업했을 거란 얘기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민성의 말대로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실종시키는 것이 낫다.
피해자가 ‘없다면’ 사건화 되기도 힘들고 상대적으로 주목도 받지 않으니까.
어린애라면 몰라도 성인은 잠수 탔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 보면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나 호수에 수장시키는 것처럼 한다는 말이죠?”
“그래. 근데 그 방식도 잘못하면 발견될 수 있으니까 요즘은 다른 방식을 쓴다고 하더라고.”
“어떻게요?”
“방법이야 많지. 소문으로 들은 것만 해도 소각로에서 태워버리거나 분쇄기에 갈아……”
전민성은 말을 하다말고 멈칫했다.
“휴우, 방금 건 못들은 걸로 해라. 일반인에겐 너무 잔인한 말인데 네가 너무 덤덤해서 할 말 못할 말 구분을 못했네.”
“괜찮아요. 오늘 칼에 찔린 시체도 봤는걸요 뭐.”
조금 놀랍긴 하다.
시체를 유기하는 게 아니라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니.
“근데 형, 김천수가 흑룡파를 움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손을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랬을 리 없어. 일반조직원들과 달리 간부들은 사적인 일이라도 그렇게 함부로 처리할 순 없거든.”
“……”
간부라서 오히려 자유롭지 않다는 건가?
그래도 그놈 밑으로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정말 아닌 걸까?
“부연설명을 하자면 세상이 바뀌었어. 예전 전국구 조폭시대와 달리 이젠 놈들도 함부로 칼부림을 하거나 패싸움을 하진 않아. 그랬다간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뭉칠 땐 또 기가 막히게 잘 뭉치거든.”
“그래서 조폭들이 몸을 사린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은밀해지고 잡기 어려워졌다고 해야겠지. 규모가 큰 조직들은 조직원들이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는 걸 철저하게 단속해. 특히 살인은 더더욱.”
전민성은 확인시켜주려는 듯 나에게 물었다.
“너 뉴스에서 조폭과 관련된 거 나오는 거 봤어? 보이스피싱이나 다단계, 불법토토 같은 자잘한 거 말고 강력범죄랑 관련해서.”
“……”
생각해보니 기억에 없다.
어렸을 때만 해도 문신돼지들이 나오는 뉴스를 흔히 본 것 같은데.
“조폭세계도 세대교체가 되고 있거든. 피 묻은 돈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은 2세들을 중심으로 말이야.”
“……?”
“그놈들은 돈이 돈을 버는 걸 알아.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것도. 그래서 조직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걸 극도로 경계해. ”
전민성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김천수가 흑룡파 몰래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간부자리 내놓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놈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거고.”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정말 단순 강도살인일까요?”
“글쎄, 그런 것 치고는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뭐가요?”
“너 아까 설아누나가 여러 번 찔렸다고 했지?”
“네,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꽤 많았어요.”
“단순강도면 보통은 그렇게 많이 찌르진 않아. 한두 번이면 충분하니까.”
전민성은 손가락을 두 개 펴고 말했다.
“그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야. 하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그냥 살인과정을 즐기는 거지, 계속 찌르면서. 그리고 강도살인으로 보이려고 방 안을 어지르고 도주한 거야.”
“다른 하나는요?”
“프로 청부업자.”
“……킬러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설아누나를 죽인 거야. 여러 번 찌른 건 위장일 가능성이 높고.”
그는 상흔을 여러 번 남겨 프로의 솜씨로 보일만한 흔적을 지운 것이라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나는 믿기지 않아 다시 되물었다.
“근데 우리나라에 프로 청부업자 같은 게 정말 있어요?”
“영화에서만 보던 거긴 한데 정말 있더라. 내가 형사3부에서 일하거든.”
“……”
“석훈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전민성이 갑자기 이름을 불렀다.
“네?”
“마음은 이해하는데 이런 일은 냉정하게 바라봐야해.”
“……”
“김천수가 그랬을 가능성이 완전 제로는 아니지만 그놈 성향을 생각하면 난 아니라고 생각해. 상대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놈이잖아. 돈에 대한 집착도 상당하고. 김천수라면 설아누나가 죽을 때까지 괴롭히고 이용해먹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뭔데요?”
“원장의 죽음이 과연 김천수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었을까?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 입지, 목숨. 그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그건······ 그렇네요.”
내가 아는 김천수는 사이코패스다.
놈은 촌 동네에서 고아원이나 운영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했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풍족하지 않고, 돈이 안 되는데 그 넓은 땅을 놀리고 있었으니.
‘그래, 그놈이라면 오히려 좋아했을지도 몰라. 원장이 죽은 덕분에 땅 팔아서 부자가 되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김천수는 아닌 걸까?
내가 그놈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애초에 한설아를 작업해 나락으로 떨어트린 장본인이기도 하니까.
“석훈아.”
“네, 형.”
“일단 내가 좀 알아볼게. 그러니까 마음 추스르고 이상한 생각 품지 마.”
“걱정마세요.”
일단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되려는 그때였다.
“청부살인 맞아. 설아언니, 계획적으로 살해당한 거야.”
조사를 끝내고 나오는 최미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