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이 여자 뭐야 진짜……
왜 찾아온 것일까.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말이다.
이혜선.
첫 만남부터 썩 좋은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한설아가 저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살해당했으니 애초에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남지웅의 죽음?
그것으로 끝난 거 아닌가?
놈의 뒤에 블룸이 있고, 그 뒤에 AFK라는 놈들이 있다지만 한설아와 관련해서는 남지웅이 종착지다.
죽은 사람과 관련해 뭘 더 나눌 얘기가 있다고.
‘아니면 민성이 형 얘기를 하려고 하나?’
그는 서병국의 신원을 밝힌 탓에 블룸의 타겟이 되었다.
어쩌면 저 여자가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이혜선은 예전에도 블룸이 받았던 의뢰정보를 중간에 알아채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가정 역시 부자연스럽긴 하다.
당사자인 전민성도 아니고 나에게 그 얘기해서 뭘 어쩌라고?
내 실체를 모르는 이상 나는 그저 평범한 운동선수일 뿐이다.
그런 얘길 나눠봤자 경찰에 알리는 것 말고 무슨 대책이 있다고 논의를 하겠나.
‘답답하네.’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혜선은 집에 들어오더니 집 구경 먼저 시작했다.
얘기는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독립한 아들집 보러 온 엄마인 것 마냥 구석구석 돌아보고 있었다.
볼 것도 없는 집구석을 말이다.
“집이 휑한 건 이사해서 그렇다 치고, 냉장고가 이게 뭐예요?”
도대체 남의 집 냉장고까지 왜 열어보는지 모르겠다.
집 구경을 허락하긴 했지만 저래도 되는 건가?
손님을 들인 적이 없으니 저게 무례한 건지 당연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거라도 사오길 잘 했네요.”
그러면서 이혜선은 가져온 과일바구니를 풀어 냉장고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냥 가져가세요. 저 과일 안 먹습니다.”
“챙겨 먹어요. 깎아먹기 귀찮아 할 것 같아서 껍질째 먹어도 되는 걸로만 사왔으니까.”
“……”
“밥은 어떻게 해결해요? 전기밥솥도 없고, 즉석밥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제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 용건이나 빨리 말하고 나가주시죠.”
“네, 거의 다 했으니 끝나고 얘기해요.”
이혜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냉장고 문을 열더니 사과며 복숭아를 과일칸에 차곡차곡 넣었다.
눈치가 없는 타입은 아니니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후······’
그래도 슬쩍 보니 진짜 거의 다 정리한 상황.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등을 돌린 후 식탁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서는 그녀는 손에 사과 두 개를 쥐고 있었다.
그러더니 싱크대로 가서는 그걸 씻기 시작했다.
“또 뭐하는 겁니까?”
“집에 찾아온 손님에겐 과일이라도 내오는 게 예의에요.”
“……”
그녀는 싱크대 찬장을 열어보더니 말했다.
“접시도 없고, 칼도 없네요.”
“네, 없으니까 그냥 앉으세요.”
하지만 이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래 이 집에 있던 쟁반을 물로 씻고는 사과 두 개를 올려 식탁 위에 놓았다.
-찰칵.
그리고는 이브닝백에서 접이식 나이프를 꺼내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사과 두 개를 깎을 시간.
분명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말리는 느낌 때문인지 그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드세요. 포크는 없을 테고 손으로 집어 먹죠.”
나는 짧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나 빨리 하시죠.”
“그럴까요, 그럼.”
이혜선은 나이프를 접어 이브닝백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석훈 씨가 남지웅을 죽였나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살인이라는 무거운 내용과 달리 밥 먹었냐고 툭 내뱉는 한 어조에 괴리감이 들었달까.
잽 한 방에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 사람 쫓고 있었잖아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대게는 찾고 있었다고 묻지 않을까.
마치 내가 남지웅을 쫓고 있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들렸다.
“남지웅을 쫓고 있던 건 당신 아닙니까?”
“음, 다시 말할게요. 석훈 씨는 그의 자택에 침입했었죠. 평창동 살인사건이 있었던 그날 밤에.”
“……!”
“남지웅을 죽인 줄 알았는데 남지웅이 아닌 대역이었고, 이후에 명도종합병원에서 그를 납치한 후 수원에서 살해한 거예요. 어때요?”
미행을 붙였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재밌네.”
“……”
“그러니까 쥐새끼처럼 숨어서 훔쳐보고 있었다는 거군.”
나는 두 손을 깍지 끼고 식탁 위로 올린 후 입과 코를 가렸다.
“다 알면서 확인하러 온 이유가 뭐지? 날 협박하고 설아누나처럼 이용이라도 할 생각인가?”
“……”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았는데 말이야.”
죽여야겠다.
이 여자뿐만 아니라 밖의 두 놈, 그리고 그때 만났던 윤종호라는 경호실장도.
어쩌면 그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은 구명줄 역할인지도 모른다.
순순히 나가지 못하면 그놈이 발설할 거라는 식의.
하지만 상관없다.
이들을 고문해서 놈의 위치를 알아내면 되니까.
하지만,
“역시······ 그랬군요.”
“……!”
작게 읊조리는 이혜선의 말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방금 전 말은 넘겨짚었던 것이었다.
내 입으로 그걸 확인시켜 준 꼴이 되었고.
‘미행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처음부터 말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얘기가 본론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이런 상태다.
이러다가는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가 없다.
-스으으.
간밤의 감각을 떠올렸다.
내 의지대로 플로우에 들어갔던 그 순간을.
이윽고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상대의 감정상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응? 걱정?’
황당한 것이 대상이 본인의 안위가 아닌 나였다.
이혜선은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었다.
‘이 여자 뭐야 진짜······’
더 혼란스러웠다.
협박이면 우월감이나 지배욕, 자만 같은 감정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슬픔과 걱정이 느껴지는 거지?
나를 미행하고 협박을 하고 있으면서 저런 감정을 가지는 건 무슨 의미야?
‘설마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건가?’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도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그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차단했다.
알아서 혼란스러운 정보는 없는 게 나으니까.
“그래, 내가 남지웅을 죽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결국 내 입으로 시인했다.
지금의 감각에 도촬이나 도청을 하고 있다는 낌새가 잡히지 않기에 그런 것이었다.
질질 끌려갈 바에 단칼에 자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흑룡파의 그 많은 사건들, 그리고 눈깔이라는 살인마와 관련된 것도 모두 석훈 씨가 한 짓이겠군요?”
“……”
“설아 씨 때문이겠지만 너무 많은 살인을 저질렀어요. 전민성 검사님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너무 깊숙이 개입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평검사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니까.”
“……”
멘탈이 샌드백이라도 된 것처럼 두드려 맞는 기분이었다.
앞의 질문은 사건관계를 정확히 짚은 탓에 내 입으로 시인했다지만 방금 질문은 또 다르니까.
박인섭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지만 이혜선의 화법은 돌직구를 넘어서 날카로운 칼로 핵심을 찌르는 수준이었다.
“그 사건과 관련한 시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을 전부 챙겨봤어요. 경찰에서 발표한 내용보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방구석탐정이랬나? 혹시 그 사람들이 써놓은 글 봤나요?”
“……”
“대다수의 사건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하던데.”
뭘 알고 있기에 저렇게 지껄이는 걸까?
방금 전의 말은 마치 초능력에 대해서 알고 넘겨짚은 듯 했다.
‘아니야, 알고 있어. 확실해.’
넘겨짚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찌른 것이다.
한 번 당해보니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당신 누구야?”
이 여자는 위험하다.
내 능력에 대해 알게 된 박인섭, 박민영, 그리고 육해공 그놈들과는 궤가 다르다.
게다가 잠깐의 대화로 보아 돌려 말하거나 피해갈 상대가 아니다.
“아니, 말하지마. 밖에 있는 놈들 먼저 찢어죽이고 천천히 대화를 해보자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앉으세요. 석훈 씨를 위협하려고 한 말이 아니니까.”
“……”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당사자는 위협을 느꼈는데 위협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니.
개의치 않고 발을 떼는 그때였다.
“당신의 초능력.”
“……!”
“자연발생적인 능력일까요, 인위적인 능력일까요? 어린 시절은 언제부터 기억하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그 능력을 쓸 수 있었나요? 아니면 어느 순간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얻은 건가요?”
나는 충격적인 말에 천천히 돌아섰다.
“……뭐?”
“궁금하면 앉아요.”
“당신, 뭘 알고 있는 거지?”
“당장이라도 날 죽일 듯한 눈이로군요.”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해.”
“알고 싶으면, 앉아요. 아니면 내가 자연발생적인 능력이라고 순순히 말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못 믿는다.
이제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의심 없이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석훈 씨가 믿을 수 있게 설명을 할 테니까 일단 앉아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끌어다 다시 앉았다.
시키는 대로 하는 느낌에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저 여자는 고문을 가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는 게 아니라 더 혼란스럽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으니 일단 따라주는 태도를 취했다.
“설명이 부족하다 생각되면 가차 없이 손을 쓸 거다.”
“그렇게 해요.”
겁이 없는 건지 당찬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화면에 사진을 띄워놓고 나에게 내밀었다.
가족사진이다.
부모로 보이는 두 남녀, 그리고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그 중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응? 이 남자······”
그 순간 이혜선이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호, 혹시 얼굴을 기억해요?”
“기억이라니?”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알아보는 거예요?”
“당신부터 말해봐. 기억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이 사람들이 관계가 있다는 거야?”
이혜선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분들이 석훈 씨의 부모님이에요. 그리고 그 사진 속 남자아이가 석훈 씨고요.”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부모님? 그리고 이 꼬마가 나라고?
아니, 그것보다 사진 속 남자는 서병국 박사가 분명한데.
‘그럼 내가 서병국 박사의 아들, 서훈?”
생각해보니 묘하게 지금의 이름과 비슷하다.
사랑원 원장님과 함께 개명신청을 하며 정했던 이름, 염석훈.
워낙 오래전 기억이라 왜 그런 이름을 정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분과 상의하며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진도 어렸을 때 내 모습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서병국 박사의 가족사진을 보니 두 남녀의 모습과 꼬마아이의 얼굴에서 닮았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이혜선의 말처럼 내가 서훈이라면 두 사람의 아들이라 생각될 정도로.
‘조작일수도 있는 거잖아.’
요즘 세상에 사진 따위 그럴 듯하게 꾸미는 게 어려울까.
심지어 딥페이크라는 기술로 영상까지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고작 이딴 거 보여주면서 이게 내 출생의 비밀이다?”
나는 이혜선의 왼쪽 팔에 염력을 걸었다.
“사실이에요.”
“이 사진과 당신 말만으로는 증명이 안 돼.”
그리고 곧바로 왼쪽 팔을 쥐어짜듯 비틀었다.
-우드드득.
“으으윽!”
“내가 말했지? 설명이 부족하면 가차 없이 손을 쓸 거라고.”
“……”
“다음은 그 꽈배기처럼 꼬인 왼팔을 뽑을 거야. 증명해봐, 내가 서병국 박사의 아들이라는 걸.”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팔뼈가 산산조각이 난 상태니까.
하지만 이혜선은 식은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핸드폰의 이메일을 열었다.
“유전자검사기관에서 받은 친자확인서에요. 이것도 조작이라고 의심한다면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팔을 뽑든 다리를 뽑든 알아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