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단번에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광화문 광장.
그곳에는 과거 일제시대의 잔재인 조선총독부 청사가 있었다.
서울의 심장부에, 그것도 1995년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그 거대한 건축물을 헐어 광장을 만들었고, 지금 그곳은 외국인 관광의 중심이자 각종 집회와 시위의 1번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상과 달리 까마득히 깊은 지하는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 지하방공호.
당시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던 나머지 지상의 청사만 철거하고 방공호는 은폐한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며 정부의 토목관계자들 기억에서도 잊혀지고 아는 자가 거의 사라질 무렵, AFK는 그곳을 실험실로 꾸몄다.
지어진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개보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튼튼했고, 별다른 통풍이나 환기시설을 추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삑.
이한성은 광화문역의 개찰구를 지나 5호선 종각역 방향 탑승구로 향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탑승구로 향하던 중간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적힌 철문으로 다가갔다.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연 그는 내부로 들어간 후 키패드에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그리고 지문확인절차까지 거친 한 후에야 안쪽에 위치해있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드러난 건 엘리베이터였다.
버튼은 단 하나, B10.
광화문역에서 지하 10층 깊이로 더 내려간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 앞에 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경비인력은 없었다.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중앙통제실의 철저한 관리 하에 왕래가 허락되니까.
제지가 없다는 것은 국정원에서 신화 쪽에는 공유를 하지 않았거나 자신이 상황을 오해한 것, 둘 중 하나였다.
“엘? 이게 얼마만입니까?”
지하연구실의 최고책임자 임동규 박사가 실험실로 들어온 이한성을 보고 반색했다.
“임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저야 늘 똑같지요. 매번 알이 오더니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십년 만에 성과가 나왔다니 구경 좀 하러 왔습니다. 봐도 괜찮겠습니까?”
질문을 하는 이한성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럼요.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연구성과를 확인하자는 말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상황.
하지만 이한성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임동규를 따라간 곳은 세포배양실이었다.
오른쪽에는 냉장고처럼 생긴 배양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좌측에는 현미경, 원심분리기, 무균작업대, 초저온냉동고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 이걸 먼저 좀 보십시오.”
배양기에서 플라스크 하나를 꺼낸 임동규는 현미경에 세팅한 후 손짓을 했다.
“전 봐도 뭐가 뭔지 모릅니다. 간단하게 설명만 해주시겠습니까?”
“프로젝트의 시작이 엘이었으니 처음부터 보여드리고 싶어 그렇습니다.”
결국 이한성이 못 이기는 척 현미경에 눈을 갖다 대자 임동규가 입을 열었다.
“서병국 박사가 훼손시킨 오리지널 세포 기억하십니까?”
“네.”
“그것과 비교했을 때 어떤 거 같으세요?”
“훼손된 그대로 아닙니까? 여전히 활동성이 없는 것 같은데.”
이한성이 눈을 떼며 묻자 임동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저희는 손상된 세포조직을 복원하는데 집중을 했었습니다. 원본을 되찾아야 다음 스탭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하지만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도 안 되더군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말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었죠.”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바꿨다고요? 그 말은······”
“네, 오리지널 세포의 주인이 지닌 능력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어르신들께서 탐탁지 않아 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오리지널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그분들의 성에 찰리 없다.
방향을 바꿨다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높았다.
“십 년을 연구했지만 저희들 능력으로는 그게 한계입니다. 서병국 박사가 살아 돌아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요.”
지금의 말에서 이한성은 다소 안심했다.
이 정도 결과는 자신을 버릴 정도의 가치가 없었다.
그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임동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연구기록으로 보았을 때 오리지널 세포의 가장 큰 특징은 활동성이었습니다. 세포단위의 활성화 수치로 예상컨데 세포의 주인은 회복력, 근력, 체력 등 모든 신체스펙이 초인적인 수준일 거고요.”
강화군인(Enhanced Soldiers).
우연히 손에 넣은 오리지널 세포는 타국에서 개발한 슈퍼솔져의 것이라 추정 중이었다.
강화군인은 신체능력의 향상에 그 목적이 있으니 세포 주인의 능력도 그 범주에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런데 그 특징이 서병국 박사에 의해 훼손되었고 복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최근에야 한 가지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 과도한 활동성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입니다.”
“……?”
“간단하게 말하면 튼튼하다는 겁니다. 아무 조직이나 이어 붙여도 말이죠.”
“네? 이어 붙이다니요?”
임동규는 현미경에 세팅했던 플라스크를 다시 배양기에 넣었다.
“일단 다음 실험실을 보시죠. 이번엔 재미가 있을 겁니다.”
그들은 D-15 섹터라 적힌 곳으로 향했다.
강화유리로 된 연구실 내부엔 상의가 벗겨진 한 사람이 묶여있었다.
“저 실험체가 이번에 나온 성과입니다.”
그가 손짓하자 천장에서 기계장치에 달린 권총이 천천히 내려왔다.
-탕, 탕탕!
총구가 불을 뿜으며 이마, 가슴, 배를 연달아 쏘았다.
하지만 피 한 방울 볼 수 없었고 실험체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전장에서 군인들의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질 겁니다.”
“대단하군요. 근데 저놈 왜 저렇게 고통스러워 하는 겁니까?”
“겉이 뚫리지 않았다 뿐이지 속은 많이 아플 테니까요.”
임동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피부만 강화된 겁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오리지널 세포에서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고 동물의 세포를 이어붙인 후 이식한 거거든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는데 저 세포는 실현가능하게 만들더군요. 사실 연구하면 할수록 신기합니다. 정말 선진국에서 개발한 슈퍼솔져의 세포가 맞는지 말이죠. 저를 포함해 연구원들 모두 외계인의 것이라면 차라리 믿겠다는 반응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이 정도로 안정적인 세포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힘들거든요.”
이한성은 속으로 그게 타국과 이 나라의 격차라 생각했다.
“근데 어떤 동물의 세포를 붙인 겁니까?”
“가장 피부가 단단한 동물요. 한 번 맞춰보세요. 하하하.”
“거북이?”
“거북이 등껍질을 말하는 거면 땡입니다. 그건 외골격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테스트를 해보긴 했는데 사람에게 없는 걸 이식한다고 해서 그게 생기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그럼 악어?”
“악어보다 더 튼튼한 놈이죠. 피갑목(被甲目)입니다.”
“피갑목?”
“아르마딜로 아시죠?”
“아······”
들어본 적 있었다.
아르마딜로의 갑옷은 총도 튕겨낼 정도라는 걸.
“어찌 보면 피부는 뼈나 근육보다 더 강한 부위거든요. 게다가 자극을 줄수록 더 질기고 두꺼워지고 말입니다. 왜 처녀 때 그렇게 부드럽던 마누라 손이 결혼하고 좀 지나면 발뒤꿈치 만지는 것 같고 그렇잖습니까.”
임동규는 실없는 농담을 하며 피부를 대상으로 실험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검은색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이게 개량형 각성제 AX-01입니다.”
케이스 속에는 붉은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있었다.
“알약이 아니군요? 이러면 보관이 어려운데.”
“일시적인 효과를 내는 게 아니니까요.”
“……!”
드디어 영구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한성은 그제야 왜 다들 성과니 새로운 타입의 각성제니 하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한 번만 맞는다고 끝은 아닙니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매달 한 번, 3년 정도는 정기적으로 투여 받아야 강화된 피부가 자리를 잡을 겁니다.”
“그래도 앞으로 3년이면 방탄조끼가 필요 없는 강화군인을 보유할 수 있다는 거군요. 첫걸음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네요.”
“피부가 질겨진 정도는 생존율을 높이는 정도일 뿐이니까 한참 멀었죠. 방금 개량형 ‘각성제’라 말씀드렸죠?”
“네.”
“그 안에는 각성제 성분도 들어 있습니다. 다음 목표는 그 3년의 투여 내에 각성제에 준하는 효과를 영구적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데 있고요.”
“고릴라 세포라도 섞을 생각이세요?”
“아마도요? 하하하.”
그는 이한성에게 검은색 케이스를 내밀었다.
“알에게 전해주려고 했는데 엘께서 오셨으니 직접 전해드리게 됐네요. 블룸에서 사용해보고 테스트 결과 좀 알려주세요. 실전에서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없는지. 시연회 전에 보고서에 첨부할 겁니다.”
블룸은 없어졌다.
하지만 이한성은 그 말을 하지 않고 케이스를 받았다.
“혹시 양실장님도 이거 보셨습니까?”
“네. 시연회까지 못 기다리겠다며 벌써 보고 가셨습니다.”
“만족하시던가요?”
“그럼요. 오리지널에 목메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더 활용도가 높겠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던 걸요.”
어르신들의 기대와 맞지 않는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칭찬이라니.
그 말에 이한성은 사라졌던 의심을 더욱 키우게 되었다.
‘설마 양실장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던 건가……’
***
서울로 복귀한 후 박인섭의 병실로 향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해달이 브리핑을 하겠다고 연락해왔기 때문이었다.
“서울특별시경찰청장 이정구, 역시 계장님 말씀대로 놈들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경찰특공대의 출동허가를 늦췄고, 공석인 강남서장을 대신해 1팀에 대기명령을 내리기도 했고요.”
형사들이 병실 밖에서 지키고 있는데 안에서는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모의를 시작했다.
“너 경찰청도 털었어?”
박인섭이 놀란 표정으로 해달에게 물었다.
“아니요. 이정구 핸드폰만 해킹했어요. 사적으로 연락을 했더라고요. 블룸의 움직임이 형사들에게 발각되었고, 경찰특공대 출동요청이 있었다고. 자기가 지연시킬 테니까 앞으로 이런 번거로운 일 없도록 하라고 불만을 있는 대로 드러냈어요.”
“휴우, 그렇구나.”
“뭘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래요. 그러니까 석훈 씨가 계장님 못 믿는 거 아닙니까.”
“……크흠.”
“포지션 제대로 잡으세요. 눈 벌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알았어, 새끼야. 계속하기나 해.”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긴.
내 눈엔 다 보인다.
나한테 감시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연기라는 게.
“자, 그럼 여기서 그 연락을 받은 대상이 나옵니다.”
해달은 태블릿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이 사람이 누군데?”
육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른 분들도 모르겠어요?”
모르겠다.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신화가의 구성원, 그리고 가능한 많은 고위공직자들의 사진을 보고 왔지만 저 얼굴은 처음 본다.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양경환, 국정원 최고실세나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신화그룹,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국정원 기조실장도 나왔다.
또 뭐가 더 있을까.
“AFK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갈라져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양경환이 핸드폰도 해킹해봤어?”
박인섭의 물음에 해달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사실 연락 받은 핸드폰도 양경환의 명의가 아닌 2G 대포폰이었어요. 이정구가 ‘양실장’이라고 내용을 흘려서 알아낸 거고요.”
그는 상류층 인사를 대상으로 양씨 성을 지닌 실장직함의 인물 모두를 조사했다고 했다.
만일 김, 이, 박의 성씨였다면 못 찾았을 거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리고 다른 사람 것도 아니고 국가정보원 실세의 핸드폰이에요. 본체를 손에 넣었다면 모를까 외부에서 건드리면 곧바로 국정원 사이버팀에서 저 잡으려고 달려들 테니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어요.”
“엘, 이한성과 관련한 정보는 없던가?”
“없었어요. 아마 보안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정해놓은 거 같아요. 그게 아니면 이정구가 양경환이 아닌 이한성에게 바로 연락했었겠죠.”
“그럼 신화 쪽은?”
“최근에 연락한 내역은 없었지만 연락처에 저장된 한 사람이 있어요.”
“누구지?”
“신화디펜스 조명호 사장이요. AFK와 관련이 있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신화가의 황태자, 조명호.
회장 조차신의 아들이자 그룹을 물려받을 인물이다.
증거는 없지만 조차신이나 조명호, 둘 중 한 명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신화 쪽은 좀 더 확실해지면 건드리는 걸로 하고, 이정구나 양경환 둘 중 한 놈부터 시작하자고.”
내 말에 해달은 검지를 펴서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한 놈 건드리면 자라새끼처럼 목을 움츠릴 겁니다. 그러니 단번에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