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너는 이미 죽어 있다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되물었다.
“예?”
“방금 자네가 X밥이라고 했잖아?”
“통화 중에 그게 들렸어요?”
“누구한테 한 소리야?”
하여튼 자기 욕 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잘 알아챈다.
“지는 사람이 X밥이라고 얘기한 건데요.”
얼굴에 철판 깔고 답하자 최철진은 잠시 얼빠진 얼굴을 하다 말을 받았다.
“크흠, 그래 지는 사람이 X밥 맞지. 근데 조세연 프로 앞에서는 그런 상스러운 말 꺼내지 마. 알았어?”
“넵, 입 조심 하겠습니다. 근데 자주 이렇게 불려 다니세요?”
“불려 다니긴 누가 불려 다녀. 그 뭐냐 스폰서와 친목도 다지고, 어린 후배가 열심히 하겠다니까 조언도 해줄 겸 해서 온 거지. 안 그래, 정프로?”
“네? 네······ 뭐.”
“대답이 왜 그렇게 비리비리해? 쯧쯧.”
그때였다.
정준성을 핍박하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클럽하우스 정문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조세연의 등장에 따른 반응이었다.
“저 정도면 파블로프의 개 아니에요?”
내 말에 정준성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가끔 보면 염프로님 정말 부러운 거 아세요?”
“네? 뭐가요?”
“눈치 보는 게 없잖아요. 협회, 후원사, 연고지······ 골프가 혼자 하는 스포츠라지만 사실 그럴 수가 없는데 염프로님 프로생활을 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대신 대회도 많이 못 나가고 필드훈련도 자주 못 합니다. 장단점이 있죠.”
“후원이 아니더라도 클럽에 잘 얘기하면 필드훈련정도는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지 않나요?”
“제가 그걸 못 해요, 잘 얘기하는 거. 아까도 보셨죠?”
정준성은 키득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종일 기분 더러울 거 각오하고 왔는데 염프로님 덕분에 웃네요.”
“정프로님 정도면 후원사 얼마든지 있을 텐데, 이런 게 싫으면 바꾸면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신화만큼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없어요. 일 년에 두 번이니까 돈 생각하고 참는 거죠.”
이게 다 골프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랭킹 10위권을 기준으로 한 해 벌어들이는 상금이 대략 일억 정도.
거기서 클럽 유지관리비, 레슨비, 원정훈련비, 캐디비 등등을 제하면 마이너스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때문에 후원사의 지원이 없다면 투어프로로 살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 하고.
물론 나는 다 필요없지만.
“둘이서 뭐가 그렇게 재밌어?”
최철진이 돌아오자마자 좋은 분위기를 단번에 깨버렸다.
저런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려나.
“인사드려, 우리 조세연 프로님.”
키 176의 늘씬한 미녀가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최철진의 뒤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조프로님.”
“정프로님, 저번 대회 우승 잘 봤어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최철진이 나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자네는 왜 인사 안 드려?”
“후배라면서요?”
“뭐?”
“아까 그러셨잖습니까. 오늘 이 자리는 선배가 후배 도와주는 자리라고.”
“……”
나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내가 선배 아닙니까? 그럼 인사를 드리는 게 아니라 받아야 하는 거 같은데.”
“야, 염석훈이 너······”
“최프로님.”
조세연이 팔을 내밀며 그의 말을 막았다.
“염석훈 프로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려야죠. 염프로님,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나는 싱긋 웃으며 그녀와 악수를 했다.
조세연.
재벌 3세로 신화의 황태자, 조명호의 딸이다.
그녀가 프로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 내 플레이에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다.
“저도 잘 부탁해요, 조세연 프로님.”
***
나는 육손이에게 클럽하우스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하고 세 사람과 함께 라운딩을 시작했다.
어설픈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니 공평함을 위해 전담캐디는 동행하지 않는 걸로 설득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1번 홀.
350야드, 파4홀.
시작이라 그런지 좌우 페어웨이도 넓고 그린의 형태와 벙커의 배치도 무난했다.
설계자체가 기분 좋은 출발을 위한 배려로 보였다.
-후웅, 따악!
호쾌한 드라이버샷이 시원하게 하늘을 갈랐다.
비거리 270야드.
장타가 장기인 최철진의 샷이다.
내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저 정도 비거리인 건 랭킹 5위가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슬라이스가 났네.”
최철진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표했다.
내가 볼 때는 오잘공, 오늘의 잘친 공이 분명한데 저런 말을 하며 조세연을 힐끔 거리는 걸 보니 이건 내 실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쇼를 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애쓴다, 애써.’
나는 최철진이 비켜서자 다음으로 티업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어드레스 후 릴리즈.
-훙, 따앙!
스위트 스팟에 정확하게 맞은 공은 약 230야드 정도의 거리에서 페어웨이 가운데에 안착했다.
언듈레이션(경사)도 거의 없는 좋은 위치였다.
“어이, 염프로. 그게 베스트는 아니지?”
“글쎄요.”
“내가 자네 나이 땐 300야드도 뻥뻥 날렸어.”
“그렇습니까. 이제 많이 늙으셨네요, 비거리가 30야드나 떨어진 걸 보니.”
그러자 최철진은 뜨끔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1번 홀이잖아, 1번 홀. 몸이 덜 풀려서 그렇지.”
“와, 그럼 더 멀리 날릴 수 있겠네요. 역시 대한민국 대표 장타자이십니다.”
“다, 당연하지. 커험.”
이어서 정준성이 255야드, 조세연이 나와 비슷하게 230야드를 날렸다.
정준성은 그렇다 쳐도 조세연은 역시 여자 톱랭커 이름값은 한다 싶었다.
스윙도 깔끔하고, 호리호리하지만 큰 키와 유연함에서 나오는 파워가 일품이었다.
“캬아, 조프로님 비거리가 더 늘었네요. 몸 풀리면 250야드도 거뜬히 날리겠습니다?”
“최프로님과 라운딩하면 평소보다 더 날리게 되더라고요.”
“하하하, 신기하죠? 원래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러는 겁니다. 어디보자, 염프로 자네 공이 약간 더 뒤에 있는 거 같네. 먼저 쳐.”
거의 똑같은 라인인데 뒤는 무슨.
내가 치는 코스를 조세연에게 보여주려는 수작인 듯 했다.
자기들 홈그라운드면서 뭘 그렇게까지 하는지.
“그럴까요, 그럼.”
서서히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가진 두 가지 카드 중 선택지는 플로우.
조세연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주려면 염력보다 플로우 상태에서 발휘되는 신들린 플레이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세컨 샷.
물 흐르는 듯한 스윙과 함께 날아간 공은 깃발 옆에 새처럼 내려앉았다.
“깔끔하네요. 저 정도면 들어갔을 수도 있겠어요.”
칭찬을 한 사람은 정준성이었고, 조세연은 눈을 깜박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철진만이 코웃음을 치며 툴툴거릴 뿐이었다.
“염프로님. 숏게임 능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조세연이 그린 위의 공을 보더니 감탄사를 터트렸다.
한 타 만에 진가를 알아봤다는 건 실력보다 상대를 파악하는 눈이 더 대단한 듯 했다.
“그 친구, 깔짝거리는 거 그거 하나로 먹고사는 친구 아닙니까. 염프로, 밖에 나가면 자네 정도 숏게임 구사하는 놈들은 널렸어. 세계 정상급 선수들 대부분이 장타자인 거 알지? 비거리 훈련 좀 해.”
최철진이 퍼팅으로 버디를 성공한 후 공을 빼며 말했다.
“글쎄요. 전 해외에 안 나가봐서 잘 모르겠네요.”
“아참, 자네는 스폰서가 없어서 국내훈련만 하지. 집구석에 돈이라도 많으면 좋을 텐데 고아라서 그것도 힘들 거고. 재능이 아깝네, 아까워.”
“……”
하아, 선 넘네?
이건 그냥 X밥 만드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
“왜 그렇게 봐? 내가 틀린 말 했어?”
“아닙니다. 재능 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서요.”
참아야 하는데.
지금껏 잘 참아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비사를 알았기 때문일까.
살심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끓어올랐다.
“염프로님 스폰서 없으세요?”
그때 조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랭킹 9위면 제의를 안 받았을 리가 없는데. 혹시 저희 그룹에서 연락 안 갔어요?”
제의야 받고 있지.
삼년 전부터 해마다.
“좀 더 랭킹 올린 뒤에 계약하려고요.”
“흐음······”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카트에 올랐다.
“다음 홀로 출발하죠.”
머릿속은 어디서 작업을 하면 좋을지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
라운딩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와중에 최철진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단단한 하체와 허리에서 나오는 힘을 요령껏 잘 전달하는 장타자지만 컨트롤의 섬세함이 부족한 타입.
때문에 그걸 의식하고 그때 그때의 자세와 스윙의 정도를 계속해서 수정했다.
수많은 필드경험으로 쌓아올린 노하우로 자신에게 부족한 컨트롤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노련하네.’
인성이 더러운 것과 달리 노력은 많이 했을 것이다.
저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전부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낸 걸 보면.
-스슥.
어드레스에 들어간 최철진의 왼쪽 발이 살짝 벌어졌다.
아마추어라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세가 틀어진 것이라 생각되겠지만 그의 경우 일부러 그런 것이다.
페이스를 젖혀서 똑같은 스윙폼에도 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폼은 정교할수록 무너지기 쉬운 법이지.’
최철진이 스윙하는 순간, 염력으로 페어웨이 위에 있는 공을 살짝 눌렀다.
극히 미세한 차이지만 스핀을 먹고 거리가 멀어지면 그 차이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후웅, 퍽.
최철진의 공은 붕 떠오르더니 그린 앞의 벙커에 빠져버렸다.
그 후에도 간간히 땅볼을 치게 만들고, 같은 자세에서 훅과 슬라이스를 일으키는 등 정교하게 쌓아올린 자세 하나하나를 무너뜨려주었다.
“이런 씨! 오늘따라 왜 이래!”
그러자 최철진은 조세연의 앞에서도 클럽을 부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답답할 것이다.
프로가 자신의 폼을 믿지 못할 테니까.
“최프로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조세연이 그를 걱정하듯 물었다.
아무래도 평소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일 터.
하지만 최철진은 그녀 앞에서만큼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멘탈을 회복해야……”
그 순간 내가 날린 파5홀 세 번째 샷이 내리막에 위치한 그린 위에 올랐고, 염력의 도움을 받아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이글이었다.
“와아! 저긴 홀컵이 언덕에 있는데 거길 올라갔어요! 염프로님, 설마 백스핀이에요?”
조세연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이 거리에서 백스핀이라고?”
“그린이 아래쪽에 있어서 해봤는데 스핀이 잘 먹었네요. 최프로님 차례니까 어서 치세요.”
나는 눈빛으로 압박을 가했다.
지금이 나인홀에, 나와의 차이가 일곱 타.
소위 말해서 발려버린 상황이다.
나머지 홀에서 만회할 생각이면 무리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고.
“재촉하지마. 나도 이번에 제대로 된 리커버리 샷을 보여줄 테니까.”
최철진이 자세를 잡자 정준성이 만류했다.
“최프로님, 앞에 나무가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염력으로 세팅한 자리다.
두 개의 소나무를 앞에 둔 위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훅이나 슬라이스를 줘서 우회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두 개의 소나무 사이에 난 틈을 노리는 것.
틈이 성인 팔 하나 간격이라 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넓은 것도 아니니 선택의 문제인 것이었다.
최철진은 과감히 그 틈을 선택했고.
“이런 걸 피해가니까 니들이 세계무대에 못나가는 거야. PGA 가면 이런 거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이 널렸어, 알아?”
꼴랑 PGA 1승 해놓고는 참 오래도 우려먹는다.
최철진이 어드레스에 들어간 순간 공에 염력을 걸어놓고 대기했다.
무섭게 집중하자 플로우의 감각이 찾아오며 시간마저 느려졌다.
-타악!
아이언의 페이스를 올라탄 공이 흩날리는 잔디를 뒤로 한 채 쏘아져나갔다.
나는 그 궤적을 붙잡아 오른쪽 나무에 처박은 후 튕겨 나오는 공이 최철진의 이마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빠악!
“끄아악!”
정통으로 맞은 최철진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헉! 최프로님!”
“꺄악! 어떡해!”
나는 두 사람이 놀라며 주춤하는 사이 그에게 다가갔다.
“상처 확인하게 손 좀 내려 보세요.”
“끄으으, 아파! 아프다고!”
“확인만 할게요.”
손을 떼자 자두 크기의 혹이 발갛게 솟아 있었다.
나는 혹 주위를 손가락으로 살짝 눌렸다.
“아야! 아프잖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병원은 가보셔야겠어요. 빨리 구급차 불러요.”
내 말에 캐디가 서둘러 전화를 했다.
나는 최철진을 내려다보며 아무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총알 빼내던 때처럼 촉감으로 연결하는 게 되네.’
방금 손가락으로 건드릴 때 머리뼈를 느끼고 염력을 걸 수 있었다.
이제 언제든지 뇌출혈로 죽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철진, 너는 이미 죽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