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9
99화. 법이 그렇다, 법이.
준비는 끝났다.
총으로 비유하자면 실탄 장전하고 머리통에 정조준한 상태.
평소였다면 골퍼의 신분으로 여기까지 작업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 부모님의 죽음을 연상시킨 고아라는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 분노를 원동력 삼아 살인의 경계선까지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근데 이 새끼 왜 이렇게 침착하지?’
말본새가 거칠고 욱하는 성질도 있던 사람이다.
실제로 게임이 안 풀린다고 골프채를 부러뜨리기도 했고.
그러니 골프공에 한 대 맞으면 이성의 끈이 끊길 거라 생각했다.
조세연의 앞이라 유지하고 있던 끈이.
하지만 이마에 혹까지 단 최철진은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 마냥 착 가라앉았다.
“그러게 왜 되지도 않는 짓을 하십니까?”
결국 한 번 더 도발했다.
쪽팔린 나머지 꾹 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야, 난 될 거라고 생각하고 쳤지. 그게 거기 맞고 튕겨 나올 줄 알았겠냐? 아우, 골이야.”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발작하면서 길길이 날뛰고 쌍욕을 퍼붓고 달려들어야 원장의 모습이 보일 텐데.
그래야 두개골을 포춘쿠키 부수듯 시원하게 박살내 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삵쾡이가 되어 발톱을 휘둘렀다.
“이제 은퇴하세요. 자기가 친 공에 맞는 프로가 어딨습니까? 최프로님보다 랭킹이 낮다는 게 쪽팔려 죽겠네요.”
“에이 X팔! 너 다친 사람 살살 긁을래?”
그때 정준성이 내 팔을 붙잡았다.
“염프로님 그만하세요. 최프로님, 염프로님도 속상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야이 씨! 저게 속상한 얼굴이야?! 놀리는 거잖아. X놈의 새끼!”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보일 듯 말 듯 그림자가 아른 거렸다.
X새끼 얼굴 떠올리는 게 이렇게 간절할 줄이야.
그런데,
“한혜진 씨!”
조세연이 갑자기 캐디 이름을 불렀다.
“네.”
“우린 공 회수하고 따라갈 테니까 최프로님 모시고 클럽하우스에 먼저 가세요. 구급차 도착하는 대로 병원에 보내드리고.”
“알겠습니다.”
“총매니저에게 얘기해서 병원비는 우리 클럽에서 부담하라고 해요.”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빨리 가요.”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어버렸다.
나는 막타 치지 못한, 세상 서글픈 표정으로 최철진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염프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조세연이 옆으로 다가와 내 속도 모르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네.”
***
남은 카트를 타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로비에는 총매니저가 나와 있었고, 한혜진 캐디가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이 뭔가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조세연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그쪽으로 향했고, 나는 육손이를 불렀다.
“무슨 일 있었어?”
“말도 마세요. 난리가 났었어요.”
육손이의 말로는 캐디가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울고불고 소리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최철진, 그 인간 때문에.
“캐디 말로는 카트에서 허벅지랑 엉덩이 쓰다듬고 온갖 음담패설을 했대요.”
“뭐?”
“최철진 프로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다가 구급차 오니까 낼름 타고 가버렸고요.”
“진짜야?”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죠. 본 사람이 없으니까.”
신사의 스포츠, 골프.
하지만 우리나라 필드에는 비매너가 판을 친다.
특히 약자인 캐디를 상대로.
“최프로님 안 좋은 버릇 나왔나보네요.”
“안 좋은 버릇이라니요?”
정준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기분 안 좋으면 꼭 그렇게 캐디를 못 살게 굴어요. 보나마나 귀엽다면서 엉덩이 툭툭 건들고 야한 농담 했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마 조프로님 때문에 참고 있었을 거예요. 그게 둘만 있게 되자 터진 거고.”
그때 한혜진 캐디, 총매니저, 그리고 조세연이 있는 곳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뭔가 싶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왜 제 말을 안 믿어주시는 건데요?!”
한혜진 캐디의 말에 총매니저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눈에도 짜증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증거가 있냐고 물었을 뿐인데 뭘 그렇게 뾰족하게 굴어?”
“증거 없으면 안 믿겠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언제 안 믿겠다고 했어? 그리고 이게 자네 혼자만의 문제야? 우리 클럽 이미지 실추되는 건 어쩔 거냐고!”
“지, 지금 제가 잘못 했다는 거예요?”
캐디는 대부분 특수고용직이다.
정직원이었다면 골프장이 나서서 보호를 하겠지만 이런 경우 열에 아홉은 손님의 편을 들게 되어 있다.
캐디는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손님은 아니니까.
게다가 상대는 최철진, 신화의 후원을 받는 프로골퍼다.
신화그룹 계열사 소속의 총매니저로서는 이래저래 껄그러울 것이다.
그러니 조세연을 계속 힐끔거리는 것일 테고.
“한혜진 씨, 심정은 이해가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조세연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달랬다.
“다쳐서 구급차를 부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혜진 씨에게 몹쓸 짓을 한 걸 경찰이나 검찰에서 믿을까요?”
“……그래서 저보고 없던 일로 하라는 거예요?”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가 도울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예요.”
“근데 정말 증거도 없고 저랑 그 인간 둘 뿐이었단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조세연이 총매니저를 쏘아보며 말했다.
“총매니저님!”
“네, 네. 아가씨.”
“카트에 블랙박스 다는 거 아직 시행 안 되고 있죠?!”
“네…… 아직.”
“무조건 이번 달 내로 전부 다세요. 아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한혜진 씨는 일단 마음 추스르고 아까 있었던 일 꼼꼼하게 적어놔요. 진술서 쓸 때 필요할 테니까.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요.”
소용없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게 뻔하니까.
설사 조세연이 신화그룹 법무팀을 붙여도 증거가 없으면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법이 그렇다, 법이.
***
나는 해달을 시켜 최철진의 핸드폰을 해킹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런 놈들 종특이 있는데 남에게 피해준 걸 자랑이라고 주변에 떠든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톡으로 온갖 지저분한 대화가 오고갔다.
-철진이 너 신화레이크에서 한바탕 했다며?
-뭐야, 소문이 거기까지 갔냐?
-어떻게 했길래 캐디가 울고불고 난리친 거야?
-별 거 안 했어. 그냥 엉덩이랑 허벅지 살짝 만져주고 이름으로 삼행시 지어준 게 다야.
-삼행시?
-걔 이름이 한혜진이거든.
-한.
-한 번 할래?
-ㅋㅋ 혜.
-헤벌레 하게 해줄게.
-진 ㅋㅋㅋㅋ
-진이 빠지도록 할 수 있는데.
-ㅋㅋㅋ 성추행으로 고소할만하네. 괜찮겠냐?
-원데이 투데이도 아니고 내가 가지고 논 캐디만 한 트럭이야, 인마. 고소하면? 증거가 있겠어, 목격자가 있겠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걸지? 그럼 깨갱하게 돼있어.
-하긴. 이거 소문나면 캐디짓도 못할 테고 소송비용도 만만치 않겠지ㅋ
-니가 걔 얼굴 봤어야 했는데. 아, 염병할 새끼한테 받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니까.
-염병할 새끼는 또 누군데?
-있어, 싸가지 없는 새끼.
그 내용을 끝으로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는 방아쇠를 당기는 걸 주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돌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거 나도 하나 줘봐.”
“사탕요?”
“그래, 그거.”
공돌이는 호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 포장지까지 벗긴 후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그작, 아그작.
사탕 먹는 내 모습에 해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슨 사탕을 그렇게 살벌하게 씹어 먹어요?”
“이거 사탕 아니야.”
“그럼요?”
“이 새끼 두개골.”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조경애 만나는 건 어떻게 됐어요?”
“조만간 연락 올 거야.”
“정말 조세연이 움직일까요?”
“걔는 이미 움직였어. 문자 와서 계약조건 묻기에 마케팅 결정권자랑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거든, 그 사람 집무실에서.”
“그럼 조경애만 오케이하면 만나게 되겠네요. 어떻게 구슬렸어요?”
“가만히 있었지. 빛나는 재능은 주변에서 안달하기 마련이니까.”
“……”
왜 또 고개를 흔드는 거야?
***
신화그룹 본사, 조경애의 집무실.
조세연은 자신이 왔음을 비서를 통해 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모, 나 왔어.”
“왔니? 그래, 우리 세연이가 무슨 일이기에 시간 비워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을까?”
“고모한테 소개시켜 줄 남자가 생겨서? 호호.”
아직 미혼인 조경애를 놀릴 때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화법이었다.
“또, 고모 놀린다.”
“이번엔 진짜야.”
“어머, 네 남자친구구나? 어떤 늑대 같은 놈이 우리 세연이 마음을 훔쳤어?”
“그런 거 아니야!”
“왜 이렇게 흥분하실까? 너 정말 남자 생겼구나?”
조카의 얼굴이 발그레해지자 조경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스무 살이니 이제 남자 생길 때도 됐지. 근데 즐기기만 해, 깊은 감정 가지지 말고. 알았어?”
“아니야, 그런 거! 나도 고모처럼 시집 안 갈 거거든!”
“호호호, 고모는 정략결혼이 싫어서 안 했다 뿐이지 연애는 다 했어.”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이거나 좀 봐줘.”
그녀는 염석훈의 프로필과 자료가 든 태블릿을 내밀었다.
마케팅팀이 보관하고 있던 스포츠마케팅 보고서를 받아온 것이었다.
“흐음, 염석훈? 잘 생겼네. 얘가 세연이 남자친구가 될 얘구나.”
“고모!”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고모가 뭘 해주면 되는데?”
“일단 그거 읽어봐.”
“도대체 뭔데 그래······”
보고서를 읽던 조경애의 눈이 살짝 커졌다.
기록만으로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이었다.
“삼년 전부터 마케팅팀에서 오퍼를 하고 있을만 하네. 근데 이게 왜? 매년 거절하는 걸 보니 계약하기 싫은 모양인데 고모더러 어쩌라고?”
“뭘 어떡해. 조건이 안 맞아서 그런 거니까 올려줘야 된다는 거지.”
“세연아, 이거 비즈니스야. 좋은 조건을 받으려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거 몰라? 너도 프로골퍼면서 왜 이러니?”
“알아, 아니까 이러는 거고.”
“……”
“고모, 나 한 번 믿어봐. 어제 같이 라운딩 했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니까.”
그녀는 신이 나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요지는 마스터스 대회에서나 받았던 느낌을 염석훈에게서 받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고작 나인홀 같이 돌고 그런 말 하는 거야?”
“맞아. 그러니까 더 대단한 거 아냐?”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구나, 너?”
“고모오오!”
“아유, 귀청이야. 고모 귀 안 먹었어!”
조세연은 그의 상황에 대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조경애에게는 역효과였다.
“휴우, 세연아. 재능이 얼마나 대단하든 나태하면 아무 쓸모없는 거야. 원석이면 뭐해? 갈고 닦을 마음이 없는데.”
“자존감이 높은 거야. 자기 정도면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갈고 닦을 마음? 골프란 운동이 마음만 있다고 갈고 닦아져?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돈이 없으면 갈고 닦을 기회도 없는 게 골프잖아.”
“……”
“그 사람 고아야. 제대로 연습한 건 중고등학교 골프부에서 배운 게 전부고. 보나마나 아르바이트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을 건데 그러면서 아직까지 후원을 거절하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겠어? 자신 있는 거야. 누군가는 자기 가치를 알아줄 거라는 자신 말이야.”
조경애는 태블릿의 보고서를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마케팅팀에서 삼년 전부터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는 건 잠재력이나 스타성이 충분하다는 증거였다.
실무진에서 그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것이니 딱히 반대를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 계약조건만 올려주면 돼?”
“아니, 고모도 한 번 만나봐. 직접 만나보면 내가 억지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거야. 뭔가…… 사람이 아우라가 달라.”
“조카사위로 봐 달라, 이거네?”
“고모! 쫌!”
“호호, 알았어. 알았어.”
조세연은 입을 삐죽 내밀고 염석훈이 마케팅 결정권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조경애는 피식 웃었다.
“맹랑하네? 후원금 받으면서 오히려 주는 걸 감사하라는 것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