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범석은 팀 창설을 위해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다니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세계에서는 도박에 대해 한결 관대했는데, 덕분에 스포츠 도박도 크게 성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이기기를 기원하며 주술처럼 판돈을 걸었고, 전문 도박사들은 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베팅을 해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수수료는 해당 스포츠협회의 자금줄이 되어, 리그를 운영하고 프로팀을 지원하는 등 스포츠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범석이 이 스포츠도박에서 관심을 갖느냐? 그건 얼마 후에 열릴 리마시티춘계육상대회 때문이었다. 육상은 인기가 없어 프로리그로까지는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기록경쟁으로 인한 도박의 용이성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스포츠로 정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회기간동안 많은 판돈이 오고 갔고, 이곳에서 큰돈을 벌기 위한 도박사들의 노력과 애환은 가히 눈물이 겨울 정도였다.
범석은 요걸 따먹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전문화된 도박사나 베팅전문회사를 모두 제치고 그가 큰돈을 벌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나, 이번 리마시티육상대회 단 한 번에 한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돈을 딸 가능성이 많았다. 바로 범석의 민첩이 92나 되어 스피드에 관한한 이 도시 내 어느 누구보다 빨랐는데,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이 바로 당사자인 그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많은 자금을 마련하게 된다면 범석은 보다 훌륭한 검투사로 팀원을 구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난감한 문제에 직면했다. 한 경기에 베팅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10만 크랑뿐이라는 점이다. 상당한 금액이기는 했지만 많은 돈을 벌려는 그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판돈이 적다면 수입 또한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비너스와 레이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비록 엘프들이 반려동물 쯤으로 취급되지만, 개나 고양이와 달리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금융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도움이 있다면 자그마치 30만을 한꺼번에 지를 수 있었다.
결국 범석은 레이미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 목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 수입이 많으면 그 돈으로 주인이 되어주겠다고 말하자 대번 넘어왔던 탓이다.
모든 준비를 완료한 범석은 지역 내 육상연맹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고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약간의 테스트를 받았다. 대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참가자는 일정 기록이 넘어야만 참가자격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때 최소한의 기록만으로 참가자격테스트를 통과했다. 만약 여기서 좋은 기록을 냈다가는 다른 도박사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 터, 수입이 크게 줄어들 것이 자명했다.
“좋아 오늘 참 날씨 좋군.”
리마메인스타디움의 드넓은 필드에는 봄의 햇살을 한껏 머금은 잔디들이 스스로의 녹음을 뽐내고 있었다. 그 주위를 도는 트랙에는 짧고 몸에 착 달라붙는 핫팬츠와 셔츠를 입은 엘프들이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가벼운 뜀뛰기를 하고 있었다.
봄 치고는 따듯한 날씨. 기록 경쟁을 하는 육상대회를 열기는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 범석은 목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땀을 닦는 척 하며 주위를 살폈다. 거의 속내의 차림의 엘프들이 연신 앞을 지나다는데, 이를 무시할 그가 아니었다.
“범석님. 곧 베팅시간이에요.”
트랙 옆 긴 벤치에 앉아있던 레이미가 손을 흔들며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곧 베팅을 시작할 시간인 것이다. 잔디에 앉아있던 그가 슬그머니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잔디를 털어내었다.
“지금 몇 시지?”
“8시 55분이요.”
그 말을 들은 범석이 리마메인스타디움으로 관객석 쪽을 바라봤다. 이미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손에 신문과 서류철을 들고 오며, 무언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보였다. 아무리 봐도 오늘 베팅전략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 관객들도 모이기 시작하는군.”
“네. 이제 경기 시작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까요.”
오늘 경기의 시작은 10시로, 첫 종목은 200M 트랙경기 예선 1조 경기였다. 100M, 200M, 400M종목을 참가한 범석에게도 해당하는 경기로, 여기서 많은 수입을 기대하고 있었다. 첫 종목 첫 경기이기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테니, 베팅되는 금액도 많을 것이라 생각됐다.
“캬. 그래도 운이 좋았어. 관심이 집중되는 첫 경기에 내가 출전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러게요. 조사해 보니까 이런 경기에는 평균적으로 총 베팅 액이 900만 크랑 정도 된다고 나왔어요. 예선전 치고는 많은 금액이죠.”
그 말을 하고 레이미가 공중으로 3D입체 영상을 띄우고 베팅사이트로 들어가는 인터넷창을 열었다.
범석은 전자수첩에 계산기 화면을 불러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한 종목당 그가 걸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0만 크랑. 8명이 뛰니 확률적으로 그가 일등으로 들어왔을 때 벌 수 있는 금액이 총 240만 크랑 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확률상일뿐 여러 여건상 수입은 더욱 변하게 되었다. 도박사들이 트랙을 뛰는 선수 모두에게 똑같은 액수로 베팅을 하지 않을뿐더러, 또 범석 나름대로의 베팅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미. 첫 경기에 최대한 베팅금액 올려서 계속 클릭해. 시작하자마자 반드시 내 쪽의 베팅액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야 해.”
범석의 계획은 처음에 자신에게 30만 크랑을 베팅하는 것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전략 같지만 나름의 심리전이 숨어있었다.
사실 도박사들이 베팅할 때에는 여러 가지 사항으로 인한 승률을 꼼꼼히 따지기 마련이었다. 선수의 기록, 컨디션, 날씨, 심지어는 트랙의 상태까지 살핀 후, 각 선수별로 1등할 확률을 산정해 베팅 포메이션을 잡았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우승할 확률이 극히 적은 선수에게 베팅이 몰리다면, 과연 도박사들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에게 베팅을 몰아넣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범석이 바로 이를 노린 것이다.
그의 경우에는 알려진 기록이라는 것이 개인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테스트기록뿐이고 그것도 간신히 턱걸이 수준이라, 그에게 기대를 거는 도박사를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베팅 시작되자 30만 크랑이라는 거금이 몰린다면, 척보아도 기대수입이 크게 떨어지는 바, 누구도 그에게 베팅을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 자연스레 예상되는 수입이 크게 늘어나게 되어 있었다.
시침이 9시를 가르치자, 레이미에게서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석님 베팅 됐어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좋아. 그럼 오전에 열릴 내 200M경기와 400M경기에 30만 크랑씩 배팅해.”
“네. 알겠어요.”
뒤이어 레이미가 허공에 떠올라 있는 가상키보드로 각각 30만 크랑씩 베팅했다. 이로서 오전에 참가할 모든 경기에 대한 베팅을 마쳤다. 물론 오후에 있을 준결승과 결승도 있지만 오전 경기의 기록결과에 따라 조 배분이 다르게 나누어지니 지금으로서는 베팅할 수가 없었다.
범석은 잠시 모니터링을 하다가 트랙으로 나갔다.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시합을 대비해 몸을 풀어놓는 것이 좋았다.
– 10분후 200미터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합에 참가할 1조 선수는 출발선 앞에 대기해 주십시오.
방송 멘트에 스트레칭에 한창이던 범석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출발선 앞으로 걸어갔다. 그를 뒤따르듯 걸어가는 많은 엘프들. 200M 트랙경주의 나가는 선수들로, 자신의 차례가 곧 올 테니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다.
“200M 예선 1조 선수들! 모두들 트랙으로!”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준비하고 있는 몇몇의 엘프가 앞으로 나섰다. 범석은 슬그머니 경쟁자들의 정보 창을 살폈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고 같이 뛰게 될 상대의 능력을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육상은 기술이 간단했기 때문 신체 스텟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스포츠로 분류되었다. 특히 트랙경기는 그 정도가 더 심해 정보 창만 확인해보면 상대가 대략 몇 초대에 뛰게 될지 대충 나올 정도였다.
뭐 딴에는 이미 베팅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확인해 본들 소용이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었다.
‘좋아. 모두가 안심할 수준이야.’
달리기에 주가 되는 스텟은 민첩과 근력 체력. 이중에서 가장영향을 받는 것이 민첩이었는데 같이 뛰는 7명 모두 70대 미만이었다. 하긴 지역정부 대회도 아닌 한낱 도시 대회에서 범석을 넘어설 괴물 같은 자가 튀어나올 리가 만무했다.
범석은 힐끗 트랙 밖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다른 엘프들의 무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금발의 머리를 곱게 따 목덜미가 훤히 보일 정도로 머리 올린 여인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겔리아라는 엘프로 현재 다윈약품소속의 실업선수였다. 그녀가 얼마 전 기록한 100M 기록은 자그마치 5초275. 거의 범석의 기록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주의를 기우려야 했다. 특히나 그녀는 100M, 200M, 400M, 400M계주를 뛰는 단거리주자여서 범석과 같은 라인선상에서 뛸 가능성이 아주 많았다.
삑
“1조. 모두 제자리에.”
그 말에 범석이 황급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스타팅블록 위에 양발을 얹고는 상체를 앞으로 굽혀 두 손을 바닥에 대었다.
그 때 멀리서 레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석님! 37대 1이에요!”
그 말에 스타팅 준비 중이던 범석이 환히 웃었다. 전략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첫 경기라지만 총 베팅금액이 1000만 크랑이 넘어간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전자음소리.
띠띠띠. 띵!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1조의 선수들이 발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끝날 경기. 하지만 범석에게는 천만 크랑 이상의 거금이 걸린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하하하. 좋아 이길 수 있어!’
어느 새 가득 찼는지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동치는 심장소리와 채찍질처럼 힘차게 역동하는 두 다리. 범석은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신체 신호에 아랑곳없이,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한 참 여력을 두고 뛰고 있음에도 전력질주를 하는 1조 선두와 동일 선상에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것이다.
이대로 골라인까지 가서 스퍼트를 한다면 이변이 없는 조 1등은 맡아놓은 당상이었다.
“이?!”
순식간에 마지막 15미터 지점까지 도착한 범석이 골을 향해 대시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함께 달리던 엘프주자가 놀라 그 뒤를 힘껏 쫓았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10미터, 5미터, 그리고 골인!
3D 전광영상 최상단에 보이는 그의 이번 200m 예선 기록은 11초019였다.
일등임을 확신한 범석이 환호성을 질러대며 주먹 쥔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허리의 감겨져 있는 흰 테이프를 온 몸에 둘둘 말고는 관중석 쪽을 보며 방방 뛰어다녔다.
뒤이어 트랙 바깥쪽 포토라인을 통해 뒤쫓아 온 레이미가 범석을 향해 뛰어오더니 얼싸 안았다.
“범석님! 자그마치 1110만 크랑이에요. 1110만 크랑요!”
사실 수수료 5%와 베팅비 30만 크랑 빼면 1015만 크랑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 돈만 해도 레이미 몸값의 삼분지 일이 가볍게 넘는 수준. 주인을 모실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너무나도 기쁠 수밖에 없었다.
“레이미. 우린 해낸 거야! 하하하!”
“흑흑. 그래요.”
연신 승리의 포즈를 잡는 범석. 그리고 그 품에 안긴 레이미는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관중석의 분위기는 무척 좋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별 거지 깽깽한 것이 1등을 하는 바람에 큰돈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썩을 것들이 월드 대회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양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빨리 들어가!”
“그래! 조 예선 따위에서 1등 한 놈이, 이게 뭔 놈의 난리야!”
관중석의 흉흉한 분위기를 감지하자 범석이 진정을 하고 주위를 살폈다.
그랬더니 아뿔사. 관중석의 분노는 물론이고 진행자로 보이는 한 남자는 다음 경기를 진행해하니 빨리 나가라며 마구 손짓을 해대고 있었다. 또 같이 뛴 선수들 중 하나는 돌았냐는 눈초리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귓가에다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이제야 예선경기에서 너무 기분을 냈다고 생각한 그가 레이미를 다독이며 급히 트랙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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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