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104화
잠시 뜸을 들인 루카스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래서 저희가 현 에이번드 협회장의 비리를 문제 삼아, 임시투표를 열고자 합니다. 힘을 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비리 말이오?”
“조사해보니 협회 자금을 유용한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아무래도 그 자금이 아브라힘 회장 쪽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그 문제까지 꺼내 들었다가는 싸움이 크게 번질 테니, 일단 개인비리로 몰고 갈 겁니다.”
빈센트가 심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딴 짓거리를 벌이고도 이제는 협회자금까지 유용해 이브라힘에게 받쳤다고 한단다. 그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감독인 그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감독은 그저 얼굴마담일 뿐,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협회투표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팀 내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단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리 힘이 없습니다. 도와드리려고 해도 특별히 가지고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투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나서서 따질 발언권도 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빈센트 감독님께서는 저희 옆에 계시며, 동조한다는 반응만 보이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습니까? 그 정도는 기꺼이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루카스가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빈센트감독은 이 지역 내의 유명인사라, 동조를 표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명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팀 차원의 지지가 있다면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드래곤 나이츠는 프로검투경기가 생긴 이후 에이번드지역 최초의 센트럴 리그팀이었다. 그만큼 이 지역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 드래곤나이츠의 이사장님과 단장님은 오시지 않았습니까?”
“아. 예. 그분들은 안 오실 겁니다. 이사장은 따로 사업을 경영하시기에 팀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단장은 그분의 둘째 아드님이신데 오늘 하이른 센트럴리그의 단장모임이 있어 부득하게 불참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사장님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드래곤운송이라는 대규모 운송사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왜 묻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입니다.”
손사래를 치며 어물쩍 넘긴 루카스가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운송업을 하고 있다면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피자전문점의 식재료 운송을 맡기거나, 다른 흑사회멤버의 운송일을 건네주며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아니 이참에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여 두고두고 활용하는 편이 좋았다.
– 자. 이제 51/52년도 에이번드 지역 프로팀 개막 축하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여러분은 준비된 음식들을 마음껏 드시며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 직후, 미리 대기하고 있던 클래식 음악가들의 트리오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내에 퍼지는 음악 소리와 함께 일제히 들어오는 엘프 호텔리어들이 음식들이 담긴 은빛의 수레들을 끌며 원형의 탁자 위로 차곡차곡 놓기 시작했다.
즐거운 축제의 시간. 여느 때 같았으면 실컷 먹고 마시며 올해의 리그전을 예상하는 잡담들이 화기애애 오고 갔을 테지만, 오늘 장내에는 극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대략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으니, 음식이 제대로 입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때 좌측 편에 앉아 있던 한 인사가 범석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갈색 머리칼의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는데, 범석도 아주 잘 알고 있던 자였다.
영 껄끄러웠는지 그가 헛기침을 연방 터트려댔다. 밥 먹는데 옆에서 누가 응가를 한다면 과연 이런 기분이 들까?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수저를 내려놓고 날카로운 눈빛을 날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어때 무지렁이 자식이 프로에 올라와서 뛰는 소감이?”
비꼬는 말투에 범석이 바로 되받아쳤다.
“후후.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자격도 안 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와서 김칫국을 마시는 것이고. 안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여긴 빈센트감독이 넌지시 물었다.
“범석군. 이 자는 누군가?”
“네. 그레이트 하이에나즈단장인 줄리앙이라고 합니다. 지난 승격토너먼트 당시 8강전에서 저희에게 깨지고, 지금 아마추어리그에 머물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자가 엠마를 팀에서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범석의 고자질에 빈센트가 살벌한 눈매로 줄리앙을 쳐다봤다. 감히 남의 팀의 검투사 운용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다 못 해, 협회까지 움직여 장난질을 친 주인공이 저렇게 새파란 젊은 놈이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레이트 하이에나즈는 작년까지 에이번드 에어리어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작년 봄에 아마추어리그로 강등했다고 들었다. 오늘 개막전 축전 만찬에 참가할 수 있는 인사들은 프로팀 관계자들뿐. 아마추어팀 단장인 그는 오늘 참가대상에서 제외였다.
빈센트가 목소리 톤을 가라앉히고 점잖게 말했다.
“아마추어팀의 단장인 자네가 오늘 개막 축하연에 왜 찾아온 건가?”
“특별 초대손님으로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은 작년까지 여기 에어번드 에어리어리그에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빈센트가 거하게 콧방귀를 꼈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지금 아마추어리그에 있는 세미프로팀 대다수가 오늘 이 자리에 찾아왔어야 했다.
“낄 자리 안 낄 자리 전혀 구분을 못 하는 작자로군. 알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자네팀과 함께 강등된 팀이 2팀이나 더 있고, 올해도 3팀이 강등해 내려갔어. 자네 말대로라면 그들은 왜 이 자리에 못 왔겠는가? 새파랗게 젊은 놈이 칠칠치 못하게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어서는……. 쯧쯧. 어쩌다 에이번드 프로검투협회가 이렇게까지 썩었는지. 한심하군. 한심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줄리앙이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의 조롱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럴싸한 명분을 가져다 붙이며 따져오니 할 말이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 아마추어리그에는 프로로 활동한 전적이 있던 팀이 부지기수 존재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에이번드지역 검투계에 큰 신망을 받고 있는 빈센트감독을 자신의 라인쪽으로 끌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흑사회 놈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도발해오는 마당에, 인맥조차 밀려버린다면 앞으로의 싸움이 힘겨워졌다.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이 자리에서 그를 모시고 나가야만 했다.
“그, 그렇지만, 저희는 와이드 리그급 검투사 다섯에 나머지들도 이곳 에어리어리그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실력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상하건대 충분히 이곳 에이번드 에어리어 리그 내에서 우승을 다툴 수 있는 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강등팀과는 전혀 상황이 틀립니다.”
“그래서? 그런 전력으로 올해는 왜 못 올라왔나? 아직 젊어서 잘 모르는가 본데.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거야. 아무리 뛰어난 전력이 있더라도 17위 이상 순위에 못 들면 강등되어 떨어지는 것이고, 아무리 허접한 전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해당 리그에서 우승한 후 승격 토너먼트를 통과하면 바로 승격이야. 그 정도 전력으로 아마추어 승격 토너먼트에서 떨어지고 한다는 소리가 고작 프로리그에서라면 우승할 수 있다고? 나 같으면 창피해서 아무 말도 못 하지.”
줄리앙이 할 말이 없는 듯 애꿎게 손만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었다.
“저기. 빈센트 감독님. 저는 감독님과 말다툼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계속 용건을 말하려는 순간 줄리앙이 고개가 범석에게로 팩하니 돌아갔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TV 뉴스화면을 키웠을 뿐이었지만, 그곳에 들려오는 멘트는 무척 심각한 내용이었다.
– 오늘 벌어진 개막전에서 헬드라이어즈팀을 2승 2무 1패로 승리한 다크 하이에나즈 팀 일부 검투사들이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나 월드리그 내 큰 파문이 예상됩니다. 이로써 다크 하이에나즈팀은 오늘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추가로 페널티로 마이너스 승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다크 하이에나즈팀은 3년 전 우연히 월드리그에 진출하고 하이에나즈 그룹의 얼굴로 등극한 검투팀이었다. 전 세계에 20개 팀밖에 없는 월드리그팀을 소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회사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하는바, 어떻게든 월드리그에 계속 안착시키기 위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지금까지 겨우겨우 리그에 잔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보옥과도 같은 다크 하이에나즈팀에 약물복용 파동이 일어났다. 세월이 지나면 팬들 사이에서 잊힐 일이지만, 승점 하락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가뜩이나 하위권에서 맴도는데, 개막전 경기가 끝난 직후 -3점을 달고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팀에 큰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화급히 자신의 전자수첩을 열어 TV뉴스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난 검투사는 총 3인으로 울리스, 엔드라, 제르미아로 판명 났습니다. 이에 관계 당국은 팀 차원의 조직적인 약물복용 장려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착수하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줄리앙의 표정이 파리하게 물들어져 갔다. 한 명도 아닌 세 명이나 걸렸으니 빼도 박도 못했다. 잘못하면 고의성이 인정되어 마이너스 승점이 더 늘어날지도 몰랐다. -3점의 페널티는 일상적으로 먹이는 페널티일 뿐이지, 상황에 따라 더 큰 페널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울리스와 엔드라를 이름을 곱씹으며 분기를 표시했다. 모두다 주인 있는 엘프들로 아마도 주전에 올라 주인을 기쁘게 할 요량으로 약물을 복용한 듯 보였다.
‘이래서 주인 있는 엘프를 쓰면 안 된다니까! 걔들은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단 말이야! 그런데 또 제르미아는 왜 약물을 복용한 거야! 미치겠군!’
줄리앙이 급히 전자수첩을 닫고 몸을 돌렸다. 지금은 이 작은 에이번드지역 상황에 신경 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각계각층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 협력을 받은 다음, 이번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다크 하이에나즈가 이번 일로 강등하게 된다면, 회사는 큰 데미지를 입게 되었다. 그는 급한 발걸음으로 서둘러 연회장을 떠나갔다.
이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 범석이 루카스에게 작게 속삭였다.
“세 명이나 걸렸군요.”
“그러게 말이네. 준치를 낚으려는 채비에 대어가 낚인 꼴이군.”
“아마도 제르미아가 걸리자, 전체 팀원을 대상으로 약품검사를 진행했나 봅니다.”
“그렇겠지. 규칙이 그러하니까.”
“그래도 저희에게 해가 될 것은 없겠죠?”
“좋으면 좋았지 탈이 날 이유는 없지. 덕분에 제르미아에 대해서도 덜 미심쩍게 여기겠지.”
이들의 귓속말에 빈센트감독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니. 지금 무슨 얘기를 나누나?”
범석이 바로 손사래를 쳐댔다. 이번 건수는 흑사회와 자신만 아는 대외비, 굳이 빈센트에게까지 알릴 필요는 없었다.
“별것 아닙니다. 줄리앙을 좀 걱정했을 뿐입니다. 딴에는 그룹의 대표 스포츠팀인데, 그런 꼴이 났으니, 저로서도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긴 뭐가 안타까운가? 그딴 짓을 벌이는 놈들이 소속 검투사들에게 약물인들 복용시키지 못하겠나? 수작을 부리다가 된통 걸린 게지.”
“뭐. 그럴 수도 있죠. 후후후.”
이들이 대화하는 사이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빈센트 감독도 끌어들였으니, 본격적으로 작업할 시기가 찾아왔다. 그는 멀리서 식사를 하는 브라이언과 고든에게로 가 탄핵을 시작하라고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현 에이번드 프로검투협회장인 바이트씨를 고발합니다! 그는 협회의 자금을 빼돌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비리에 연류되어 있습니다. 나 고든은 도저히 이 사실을 묵과할 수 없는바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이트씨를 탄핵하고자 합니다!”
순간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에이번드지역 프로검투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바이트에 대한 탄핵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과 언론사 기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로스가 일어나 소리쳤다. 이미 브라이언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은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증거도 없이 그런 소리를 지껄이지 마시오!”
고든이 바로 품에서 전자수첩을 꺼내 머리 위로 흔들어 보였다.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확보한 증거서류들을 전송시켜 드리겠소! 충분히 증거가 될 것이오!”
“그걸 여기 계신 분들이 믿을 것 같소! 분명히 댁들이 꾸며낸 증거가 확실하오!”
질타가 서로 오가는 가운데, 범석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 안에서 이전투구 하는 일은 흑사회에게 맡는 일이니, 그가 따로 나설 입장이 못됐다. 뭐 표 하나 던져주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일은 단장 대리인 에스더가 해도 됐다.
“에스더. 너는 이 자리에 남아 있다가 루카스님이 표가 필요하다면 동조를 표해줘.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데요.”
“응. 별일은 아니고, 여기에 온 김에 글로리아님을 만나서 인사라도 하게.”
“네. 알았어요. 그럼 다녀오세요.”
범석이 빈센트의 양해를 얻어낸 후,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침 복도를 지나는 연미복 차림의 한 남성 호텔직원에게 글로리아의 집무실을 알아낸 후, 그 앞까지 찾아갔다.
“여긴가?”
이미 야심한 밤이 되었는지, 외부 창문 밖으로는 어두운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들 퇴근했는지 사무실 일부는 불이 꺼져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무원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혹시나 글로리아도 퇴근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한 범석이 회장비서실 문을 똑똑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고운 여인의 목소리에 범석이 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업무를 보는 여성 비서들이 몇몇 보였는데, 그를 보자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는 정면에 회장실이라고 써져 있는 문패가 달린 문을 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혹시 글로리아회장님 계십니까?”
“네. 안에 계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비서들이 매우 경계하는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외부시찰 중에 한 포악한 엘프에게 인질이 된 일이 겨우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낯선 외부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아.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어제부터 감기기운에다 복통까지 겹쳐 컨디션이 영 아니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약간만 글을 쓰고 푹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모두들 변절기 날씨 조심하시고요. 저는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