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2
113화
“자자. 이제 2진이 출전할 차례다. 린! 비올렛! 따라와라.”
범석의 호출에 린과 비올렛이 헬멧을 쓴 후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그리고 뒤를 바짝 따르며 출입구 터널로 나아갔다.
‘오늘 잘해야 해. 그래서 주인님에 인정을 받을 해.’
갓즈나이츠 검투사로 최초로 출전하는 경기인지라 그녀들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묻어 나왔다. 주인인 범석에게 실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던 탓이다. 그가 막대한 돈을 들여 자신들을 구매했으니, 그에 따르는 활약을 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프로검투사의 자세이자, 주인 모시는 엘프의 본분이었다.
하지만, 범석은 오늘 린과 비올렛에게 기대하는 바는 크지 않았다. 그녀들은 기껏해야 에어리어 프로 검투사급의 실력자. 수천만 크랑의 몸값을 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린. 비올렛. 오늘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저 새로 할당한 포지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우리 팀 특성을 잘 파악해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면 돼. 괜히 나대다가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면 오늘 출전한 의미가 사라진다. 알았지?”
린과 비올렛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딴에는 프로검투사로 2년을 보냈으니, 그의 주문이 무언지는 충분히 알아들 수가 있었다.
“네. 주인님.”
“좋아. 그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출전 전 전의를 가다듬도록 해.”
“네.”
짧게 대답한 그녀들이 자신들 포지션 동료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이에 범석도 중견의 자리로 돌아가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린과 비올렛을 살펴볼 요량으로 경기에 참가하기에, 상대와 정신없이 격전을 벌이는 선봉에 서서는 안 됐다.
잠시 후. 장내 방송에서 출전 신호를 알려왔다.
– 자. 양 팀 모두 경기장 중앙으로 나오십시오.
동시에 발을 맞춰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에게로 팬들의 여유 있는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갓즈나이츠. 살살해라. 양민 학살은 보기가 안 좋다!”
“오범석! 왜 네가 2진으로 나오냐! 가뜩이나 약한 애들 기죽일 일 있냐!”
봐주라는 멘트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대 팀 원정팬들을 골리려는 수작이었다. 리마시티의 검투팬들은 다혈질적인 면이 많아서, 자주 원정온 상대팀에게 저런 식의 도발을 자주 하고는 했다.
이를 충분히 알고 있던 범석이 손짓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괜히 싸움이라도 붙는다면 하등 좋을 일이 없었다.
– 자. 모든 검투사들이 중앙 시내를 앞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제 호각 신호와 함께 6차전 제2라운드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 7차전에 오를 팀이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각소리와 함께 2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언제 돌격해 들어가는 거지?’
선봉에 서 있는 비올렛이 동료 선봉 검투사들의 행동을 세세히 살폈다. 그녀들은 모두 드래곤나이츠에서 오랫동안 검투사 생활을 해왔던 엘프들로, 새롭게 선봉 포지션으로 온 비올렛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녀는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는 언제든 뒤따라 도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다른 선봉진들은 전혀 시내를 건널 생각을 하지 않고 적진을 살펴보기만 했다.
“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일단 상황을 살피자.”
“그래. 내가 보기에도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아.”
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비올렛이 네추럴 페어리즈의 진형을 살펴봤다.
‘뭐야? 왜 쟤들이 봉시진을 짜고 있지?’
상대 팀이 지금 구성하고 있는 진형은 놀랍게도 봉시진이었다. 추행진보다 심한 극강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 전술이었는데, 자팀이 월등히 전력이 앞서나 필시 승리가 요구될 때 간혹 사용되었다. 단지 2라운드 시작시점에서 전력이 크게 떨어지는 네추럴 페어리즈에서 채용할 진형이 절대 아니었다.
‘정말 봉시진인가? 쟤들이 그런 진형을 짤 리가 없잖아.’
앞에 삼각형 모양에 배치된 6명과 그 뒤로 가로 형태로 한 줄을 이룬 4명의 검투사. 그리고 최종적으로 꼬리에 붙어 있는 두 명의 검방으로 완전한 화살표 모양을 이루는 것을 봤을 때 확실히 봉시진이 맞았다. 그렇다면 이제 상대 팀은 도강을 시도해 갓즈나이츠의 진형을 돌파한 후 대장인 에르피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들 터였다.
그런데 이 봉시진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6명의 선봉으로 말미암아 가장 위력 있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대신, 후미 하나와 이를 지원하는 중견의 수가 4명밖에 없어 대장 수호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만약 상대 팀의 기습조가 우회해 후미를 쳐버린다면 정작 자신들 대장이 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비올렛이 한 금발의 동료 선봉 검투사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언니. 지금 쟤들이 뭐하는 건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아직 공격을 감행 오지 않고 상황만 살피는 것으로 보아 우리 선봉들이 넘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넘어가면요?”
“그럼 우리 선봉진들을 무시하고 도강한 다음 에르피나 대장을 노리겠지. 선봉이 없으니, 뚫어야 할 진형도 그만큼 얇아지니까.”
비올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선봉진이 넘어가면 확실히 갓즈나이츠의 진형은 얇아졌다. 하지만, 이쪽에는 범석과 에리카, 에르피나등의 막강한 전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들이 의도한 대로 손쉽게 뚫릴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희가 당할 리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주의한다고 해가 될 것은 없잖아.”
그때 뒤에 바짝 붙어 있는 범석이 네추럴 페어리즈의 진형을 살핀 후, 앞으로 나섰다. 확실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들은 정석적인 봉시진이 아닌, 변형 봉시진을 채용하고 있었다. 배치된 등번호를 확인해봤을 때 정작 선봉진은 중견에 가 있고, 중견을 봐야 할 애들이 선봉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조심해라. 확실히 꿍꿍이 수작이 있다.”
고개를 주억거린 비올렛 이하 선봉진들이 세심히 앞을 살피며 경기를 느슨하게 이끌어나갔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몸을 움직였다가는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출전한 네추럴 페어리즈 검투사들은 2군에 후보로만 구성된 검투사 중에서도 2진에 속하는 허약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라운드의 시간이 20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이들을 상대로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비올렛이 범석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어떻게 하죠? 쟤들이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가 전광판 시계를 바라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치 상태로만 보낼 시간이 벌써 5분. 아무래도 네추럴 페어리즈에서 넘어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니, 자신들이 넘어가야만 했다. 즉 상대의 의도에 빠져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 비길 수는 없으니까.’
범석이 눈짓으로 선봉들을 향해 도강을 명령하고는, 중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단단히 준비해. 분명히 뭔가가 올 거다!”
일제히 점프하며 시내를 넘어가는 갓즈나이츠의 선봉. 그녀들을 공격할 만했지만, 네추럴 페어리즈의 검투사들은 아예 무시하고 역으로 시내를 건넜다. 그러는 와중에 대장 검투사는 모든 무구를 버린 뒤를 향해 줄행랑을 쳤고, 그녀를 보호해야 할 유일한 후미인 23번 검투사는 방패를 버린 채 공격대에 가세하고 있었다.
11명의 노도와 같은 돌진.
범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곧추세웠다. 대장을 혼자 내버려두고 모두가 공격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네추럴 페어리즈의 대장 검투사는 비올렛을 포함한 세 명의 선봉에게 공격을 당해야 했다.
“됐다! 중견들 모두 작전대로 해!”
7번 검투사의 외침이 있자마자 선두에서 달려오던 네추럴 페어리즈의 중견들이 모두 들고 있던 무기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범석이 비웃음었지만, 얼마 안 가 상황은 180도로 급변했다. 네 명의 중견들이 맨몸으로 뛰어들며 태클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급히 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13번 검투사의 머리를 정확히 강타했지만, 돌진해오는 물리력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대로 엉켜오는 그녀의 양팔에 붙잡혀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갓즈나이츠 중견 진형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에리카는 물론, 미를리, 릴리스 엠마, 린등이 상대의 자살 성 태클 공격을 받고 바닥에 엎어지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여섯의 선봉들이 에르피나가 위치한 후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에 폴리아가 방패를 앞세우며 앞을 막아섰지만, 뒤따라온 유일한 상대 팀 후미인 23번 검투사의 태클에 잡혀 옆으로 밀려나며 고목이 쓰러지듯 넘어갔다.
이제 남은 검투사는 비너스와 에르피나 뿐. 갓즈나이츠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콰쾅. 쾅! 쾅!
이어지는 연타소리. 여섯이나 되는 선봉의 공격을 받는 비너스와 에르피나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지만,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태클 공격을 받고 뒤로 바닥에 쓰러졌던 범석을 비롯한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다시 일어나, 가세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이를 살핀 7번 검투사가 모든 동료를 향해 외쳤다.
“뭣들 해! 모두 달려들어!”
그러자 태클을 시도했던 중견들 중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지 않은 검투사들이 계속해서 손을 뻗어 다른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선봉 중 2명이 일제히 비너스를 태클해 뒤로 밀어버렸다. 이에 에르피나까지 길이 환히 열렸고, 나머지 네 명의 선봉 중 둘이 몸을 던져 그녀의 양쪽 팔을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검격이 에르피나의 복부를 강타할 찰라. 강한 쇳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태클 전에 13번 검투사를 이미 행동불능 상태로 빠뜨렸던 범석이 급히 달려들어 막은 것이다.
그는 곧바로 에르피나를 붙잡고 있었던 32번 검투사와 27번 검투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의 등 뒤로 2명의 상대 검투사가 공격을 가해왔던 것이다.
차창. 깡. 창!
범석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 에르피나가 몸을 비틀고 튕겨나며, 자신을 부여잡고 있는 32번 검투사와 27번 검투사를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들의 무기조차 내팽개쳐 버린 채, 에르피나를 꽉 부여잡은 상태였다. 당연히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비켜!”
퍽! 퍽!
둔탁한 격타음과 함께 비너스에게 태클 걸었던 네추럴 페어리즈의 선봉 둘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녀가 방패의 모서리로 엉겨붙어 있던 둘의 복부를 강타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커다란 타워실드 두 개로 몸을 가리고 있었던 덕에 정확한 태클이 용이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유로운 상태에서 태클러들을 견제할 수 있었고, 지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기습을 당해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허접한 검투사 둘에게 힘으로 당한 그녀가 아니었다.
“비너스! 잘했어. 빨리 이쪽으로 와서 에르피나를 도와!”
범석의 다급한 외침에 비너스가 황급히 뛰어왔다. 그리고 에리피나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32번 검투사의 뒤통수를 향해 방패를 냅다 휘둘렀다.
살벌한 파공음이 전해지자, 32번 검투사가 급히 팔을 놓고 옆으로 빠졌다. 비록 방패공격이기는 했지만, 워낙 강맹한 힘이 담겨 있어 제대로 맞았다가는 자칫 행동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차라리 뒤로 빠져서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 나았다. 그녀는 마침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숏소드를 들어 비너스에 대적했다.
쾅. 콰쾅. 쾅.
그러는 사이 오른쪽 팔이 자유로워진 에르피나가 자신의 왼팔을 부여잡고 있는 27번 검투사를 향해 검을 휘둘러 떼어놓았다. 그런 다음 곧바로 달려들어 공격을 시작했다.
이 모습을 곁눈질로 슬쩍 바라본 범석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위기 상황을 벗어났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여전히 여섯이나 되는 네추럴 페어리즈 검투사들에게 연합공격을 받고 있지만, 자신과 에르피나 비너스 셋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지금 주변을 정리한 갓즈나이츠의 중견들이 속속히 지원을 해오고 있었다.
“얘들아! 빨리 에르피나 언니와 주인님을 도와!”
초반 태클러의 역할을 맡았던 23번 검투사를 홀로 상대해 쓰러뜨린 에리카가 린과 함께 범석의 곁으로 섰다. 이제 5대 6의 상황. 숫자상으로도 밀리지 않은 터라, 그는 한결 편안한 상태에서 싸움에 임할 수 있었다.
차차. 창. 창. 쾅.
“꺄아아악!”
뾰족한 비명과 함께 27번 검투사가 쓰러졌다. 린의 언월도에 그대로 뒤통수를 격타 당한 것이다. 동시에 범석도 최종 공격조 중 하나인 4번 검투사를 허리를 갈라, 행동불능 상태에 빠트렸다. 이러한 현상은 사방에서 벌어지며, 네추럴 페어리즈의 기습작전은 서서히 진압되어 갔다. 그리고 얼마 후 경기장 종료를 알리는 호각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비올렛을 비롯한 선봉들이 상대 팀 대장 검투사를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기까지 버리고 줄행랑을 쳤지만, 비올렛의 특성 도합 90이 넘는 민첩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와아아아!
스텐드에는 관중의 환호 소리가 퍼져 나왔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갓즈나이츠에게 이런 위기상황을 선사하다니 네추럴 페어리즈 검투사들이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이는 범석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참 동안 헛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무리 승패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지만, 프로리그 최하위팀 2군의 2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다행히 이겼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평생의 수치로 남을만한 경기를 오늘 기록할 뻔했다.
============================ 작품 후기 ============================
아. 죄송한 말씀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제가 내일 1박 2일 동안 따뜻한 남쪽으로 가야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양 이틀 중 하루는 연재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전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