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3
114화
갓즈나이츠와 네추럴 페어리즈와의 GA컵 6차전 경기는 라운드 스코어 3대 0으로 갓즈나이츠가 완승했다. 그러나 표면상 만으로만 그렇지, 범석에게 많은 교훈을 줄 정도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도 있었다.
미식축구에서나 나올 법한 태클 기술로 중견을 잠시 무너뜨린 후, 선봉이 돌진해 후미를 치는 전략. 아마도 범석이 초기에 13번 검투사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갓즈나이는 2라운드를 꼼짝없이 내줘야 했을 터였다. 아주 흥미로운 상황으로 그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약팀이라고 해도 자율성이 높은 검투경기의 룰만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강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되니, 제법 흥미가 동했다.
이날 범석은 다이아나에게 얘기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소속 검투사들에게 태클 교육을 하도록 하고, 50만 크랑을 들여 그에 관한 훈련 장비를 마련했다. 강팀에게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전략이니, 갓즈나이츠의 것으로 만들어놓으려는 의도였다. 아직은 쓸모없다고 생각되지만, 언젠가는 필요로 할 날이 찾아올지 몰랐다. 프로의 세계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고, 다시 같은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전략을 습득하고 있는 편이 나았다.
광활한 평지가 이어지는 하늘 위. 검은색의 플라잉카 한 대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말쑥한 정장차림의 범석이었다. 오늘 새롭게 팀을 창설하는 블루 버드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리 외모에 신경을 썼다. 그저 신생 아마추어팀에 불과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상당수 저명인사가 찾아오기에 부담이 되었다.
블루 버드 이번 연방경찰청에서 야심에 찬 계획하에 창단되는 검투팀이었다. 그래서 오늘 참석하는 인물 중에는 연방 경찰청장을 비롯한 고위급 경찰 관계자와 이 지역에서 제법 내놓으라는 인사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었다. 에이번드 검투계의 얼굴마담 격인 빈센트 감독은 물론, 현 블랙 캣츠 이사장이자 윈드하우스사의 대표인 루카스와 지역 유력 정치인등등. 이거 초대된 자들의 명단을 보면 갓즈나이츠팀의 이사장이라는 명함이 정말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휴~ 고작 아마추어 검투팀 창설에 무슨 인사들이 이렇게 대단한지. 그나저나 경감님은 이게 무슨 봉변이래.”
그의 푸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에스더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왜 아마추어 검투팀 창단식에 그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는 거죠?”
“뭐긴. 연방경찰청장님이 직접 행사에 참관하니, 어떻게든 안면을 익혀보려고 지역 정치가와 기업인들이 대거 행사 참여 의사를 알려왔기 때문이지. 덕분에 조촐했던 창단식이 에이번드지역 사교장으로 변모해 버렸고.”
이해한 에스더가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하긴 연방경찰청장이 방문을 해오니, 지역 내 유지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런 고위급 인물이 세계 총 512개나 되는 지역정부 중 하나인 에이번드지역으로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호호. 그렇네요. 그럼 범석님도 한 번 연방경찰청장님을 만나보시죠.”
“됐다. 일없다. 내가 그 짓을 해서 뭐하냐? 분명히 갖은 날파리들이 주변에 윙윙 날아다닐 텐데. 난 그냥 음식이나 먹고 튈란다.”
“왜요? 렉스터경감님에게 부탁하면 한 번쯤 주선해주실 텐데요.”
“그래서 싫다는 거야. 그 양반은 다 좋은데 좀 자판기 기질이 있어.”
“자판기 기질요?”
범석이 바로 대답했다.
“응.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려면 반드시 동전을 투입해야 하지. 뭐 품질이 워낙 좋아 동전만 낼름 삼키지는 않지만, 목도 마르지 않는데 일부러 주머니를 뒤질 필요는 없잖아.”
“아~”
대충 알아먹은 에스더가 입을 꾹 다물었다. 분위기상 자신이 깊이 파고들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타고 있던 플라잉카가 리마시티 내 체육 부지에 있는 블루 버드의 훈련캠프에 도착했다.
– 이사장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무미건조한 전자음성과 함께 플라잉 카의 차 문이 활짝 열렸다. 고가의 아론이라면 친근하게 알려왔겠지만, 범석은 이 목소리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아론의 음성에는 엉큼한 톤이 섞여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상하게 했다.
“자. 나가자.”
“네. 이사장님.”
에스더가 입고 있던 회갈색 정장을 정갈히 가다듬고, 차 밖으로 나왔다. 일단 갓즈나이츠의 대표 중 하나로 찾아왔으니, 차림에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에이번드 지역 내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있었다. 절대로 그들 앞에서 갓즈나이츠팀에 누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됐다.
‘후후. 그래도 잘해놨군. 역시 경감님이야.’
급하게 행사규모를 키운 것치고는 꽤 화려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경기훈련장 둘레에는 접이식 천막시설이 쭉 늘어서 있어 언제든 원하면 쉴 수가 있었고, 단 앞으로는 잔뜩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내빈객들이 편안히 행사를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훈련장 곳곳에는 만국기와 현수막이 걸어놓아 분위기를 한층 업시켜 놓았다.
‘어쭈. 이동식 고급 식당도 마련해 놨네.’
이동식 고급 식당은 아론과 같은 고급 플라잉 카였는데, 2층에 조리를 하는 주방이 마련되어 있어 1층으로 찾아오는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주로 야외행사에서 많이 부르는데, 제법 가격이 비싼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자신의 돈이 나가는 일이 아니었으니, 범석으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에스더. 우리 식사나 하러 가자.”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 에스더가 바로 대답했다.
“경감님을 뵙지 않아도 되나요?”
“괜찮아. 오늘의 주인공인데 좀 바쁘겠어? 경찰 고위 관계자와 지역 인사들을 만나느라고 정신이 없을 텐데, 괜히 옆에서 한 몫 거들 필요는 없겠지. 그냥 지나가다 얼굴을 보면 손 한번 흔들어주면 끝나는 일이야. 이런 말도 있잖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결혼식에 찾아가면 악수만 하고 헤어져야 한다고.”
에스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탓이다.
“결혼식이라면 혹시 옛날의 남녀가 그……?
앗차한 범석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 게임 내에서는 남녀 간의 혼사 관념이 없던 까닭에 이런 말을 해봤자 이해하지 못했다.
“아. 그런 게 있어. 상대가 바쁠 때는 아무리 친해도 생까주는 게 예의라는 뜻이야. 그냥 우연히 만나뵈면 인사하고, 아니면 내일쯤 전화해서 수고하셨다고 안부만 전하면 돼.”
“으음. 그렇군요. 알았어요.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에스더가 수긍을 하고 바로 범석을 따라 이동식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차 문 앞에 이르자, 마침 밖으로 나와 손님을 안내하는 웨이터가 다가왔다.
“식사하시러 오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눈에 익은 내부가 시선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주 타고 다니던 아론과 흡사한 것이, 년식만 다를 뿐 같은 ARON101 제품 같았다. 덕분에 껄끄러운 마음이 든 범석이 불안감을 가지고 웨이터가 안내하는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때 멀리서 한 노신사가 그를 불러세웠다.
“범석군. 여기네!”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범석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바로 빈센트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렉스터를 통해 초대받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넓은 훈련캠프에서 이렇듯 우연히 만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 빈센트 감독님. 반갑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웨이드가 정중히 다가와 물었다. 언제 손님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일단 동행인이라면 같이 앉히는 편이 좋았다. 오늘 내빈객들이 무척 많은 데 비해, 이동용 식당 플라잉 카는 5대밖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같은 일행분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동석하시겠습니까?”
빈센트를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독은 지금 혼자 청승맞게 앉아 냉수만 홀짝이는 중이었다. 영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런 그를 두고 따로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그러죠. 뭐.”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빈센트 감독의 앞좌석에 앉은 범석이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그래 리그전은 잘 치르고 계십니까?”
“암. 자네가 대여해 준 라피네와 오스칼로 간신히 가시방석에서는 피했네.”
그저 예의상 던지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합류로 선봉진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프리롤까지 돌릴 수 있어 근래에 제법 승수를 챙기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드래곤나이츠는 9전 2승 1무 6패로 리그 순위 16위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강등권인 18위 팀과는 승점 2점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래도 2승을 최근에 올린 탓인지 제법 마음이 편했다.
“잘됐습니다. 드래곤나이츠가 잘해 주셔서 센트럴리그에 살아남아 주셔야죠. 그래야 저희가 에이번드 프로검투계가 편해지는 것 아닙니까?”
빈센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드래곤 나이츠가 센트럴리그에 잔류해야 에이번드 검투계가 편안해졌다. 그간 에이번드는 센트럴리그팀이 없어서, 연방검투협회에서 은연중에 많은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래야지. 그럼 내년에도 라피네와 오스칼을 대여해주면 어떻겠는가? 에이번드 프로검투계를 위해서 말이네.”
범석이 바로 딱 잘라 말했다.
“당연히 안 됩니다. 내년 시즌에는 저희 팀도 와이드리그에 진출해야죠.”
“이제 사회 초년생인 뭘 그리 급한가? 그냥 천천히 올라오면 되지. 우리 드래곤 나이츠도 와이드리그에 오르기 위해서 4년을 허비했네.”
“그야. 사정이 틀리죠. 저희는 현재 능력이 되니까요. 지금 스쿼드에서 쓸만한 얘들 몇 명만 더 들여놓으면, 충분히 노릴 수 있습니다.”
입을 쩝 다신 빈센트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의 실력은 표준 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범석과 라피네등의 아주 특출한 검투사가 이를 메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게다가 실력이 떨어지는 얘들도 성장성이 무척 높아, 올해와 내년 프로리그를 경험하다가 보면 상당한 실력자로 거듭날 터였다.
모자라는 인원만 채운다면 충분히 와이드리그에 도전해 볼 능력이 되었다.
“하긴 그렇네만, 너무 서두르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아. 만약 무리해서 와이드리그에 올라갔다가 그해 다시 떨어져 보기라도 하게?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는 겐가? 차분히 전력을 갖춰놓은 후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
“아. 감독님 왜 이러십니까? 감독님이 해낸 일을 저라고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한 일? 분명히 조금 전에 나는 와이드리그에 올라서기 위해 4년이 걸렸다고 말할 줄 아는데.”
“물론 그렇죠. 하지만, 저희는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빈센트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프로팀들은 강등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거나 상위리그 진출의 야망을 보이지 한, 주주들에게 한 해 순수입금의 3~4할 정도를 배당금으로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데 갓즈나이츠는 개인 소유의 팀이라 이런 쓸데없는 자금이 낭비되는 일이 없었다. 그만큼 검투사 영입에 더욱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있으니, 빠르게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렇군. 확실히 갓즈나이츠는 우리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겠어. 이거 왠지 부러운걸.”
“하하하. 뭐 덕분에 초반에 좀 출혈이 심했습니다.”
넉살이 넘치는 대답에 빈센트가 편안한 미소를 짓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지 그의 시선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보니 자네에게 긴히 전해줄 말이 있네.”
“전해줄 말이요? 네. 말씀하십시오.”
“사실 이번에 내가 자네를 에이번드 지역 대표 검투사로 추천했네.”
마치 물을 마시려던 그가 식탁 위에 다시 물컵을 내려놓고 빈센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에이번드 대표 검투사라면, 에이번드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월드컵등의 지역정부 대항전에 나가는 검투사였다. 프로검투사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인생에 다시없는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대표팀에 뛰어봐야 하등 좋을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명성을 쌓고 몸값이 올라가는 이득이 있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그는 갓즈나이츠외의 프로팀에서 전혀 뛸 마음도 없었고, 연봉을 받아 챙기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명성을 쌓아 유명 리그 프로팀에게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즉 괜한 귀찮은 일에 휩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편안히 엘프들과 노닐거나, 다른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편이 나았다.
“으음. 왜 굳이 부탁도 드리지도 않았음에도, 저를 추천하신 겁니까?”
“일단 실력이 되니까.”
“일단이라고 하신다면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입니까?”
빈센트가 눈알을 빙그르르 돌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네만, 개인적인 욕심이라 말하기가 곤란하이.”
범석이 그의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속팀 검투사의 대표팀 차출을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이시군요.”
빈센트 감독이 곧바로 인정했다. 이렇게 꼭 집어 얘기하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대표팀의 일원은 그 지역정부 내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한 검투사로 구성하게 되어 있었다. 월드컵에 출전할 자들을 제비를 뽑아서 선출할 수는 없던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표 검투사로 선출될 자들이 대다수 센트럴리그에서 활약하는 드래곤나이츠의 소속 검투사라는 점이었다. 올해 갓 승격되어 하위권에 팀이 맴돌고 있던 감독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그 인원을 줄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었고, 그 방편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범석을 추천했다.
============================ 작품 후기 ============================
좀 늦었습니다. 기차편이 없어서 좀 늦게 도착해서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잘 놀다 왔습니다. 편안한 곳에서 잠도 자고, 맛난 음식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요. 다만, 너무 놓아서 좀 피곤한 점이 문제네요. 하하하.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 115화
“뭐. 부정하지는 않겠네. 나로서는 타 팀 소속인 자네가 대표검투사로 출전하면 그만큼 이득이 되니까.”
“그렇지만, 소속팀 검투사가 대표팀이 되어도 리그전을 못 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말도 전혀 틀리지 않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대표 검투사가 해당 지역정부 내 최고 리그에서 뛰는 팀의 검투사임을 고려해 봤을 때, 월드컵등의 지역정부 대항전을 시즌 중에 벌일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대표 검투사가 대거로 차출 팀은 거의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리그를 수행해야 했기에, 큰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가대항전은 겨울과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휴가시즌에 열리게 되었다. 이를 볼 때 겉으로 보기에는 소속 검투사가 차출되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체적으로 뛰어난 엘프라도 한계가 있었다. 장기간 리그를 수행한 후 지친 몸을 쉬어야 하는데, 대표검투사로 차출되어 휴가시즌까지 경기를 치르다 보면 육체적 피로는 극에 달했다. 그렇기에 빈센트로서는 어떻게든 대표팀으로 보내야 할 소속 검투사를 줄이고 싶었다.
“자네도 이제 프로이니 잘 알 텐데. 휴가시즌의 중요성을 말이야.”
“물론 압니다. 하지만, 다른 센트럴리그팀도 마찬가지일 것 아닙니까? 어차피 그들 팀의 검투사들도 지역 대표로 뛸 공산이 클 테니까요.”
“그야 그랬네만, 감독인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 특히 강등의 위험 속에서 팀을 운영해나가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고.”
그렇게 말한다면야 범석도 딱히 답변할 내용이 없었다. 다른 팀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프로팀의 감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뛰어난 검투사를 영입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왜 굳이 저를 끌고 들어가십니까?”
“할 수 없지 않은가? 대표팀에 끌어들일 만한 작자가 자네뿐이 없는걸. 아무리 내 사정 삼아 추천했지만, 대표팀을 망가뜨릴 수는 없잖은가?”
범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까짓것 못할 일도 아니었지만, 하려니 좀 귀찮았다.
“휴~ 아이 참 감독님도. 제 사정도 좀 생각해 주셔야죠. 저도 우리 팀을 위해, 휴가 시즌에는 쉬어야 합니다.”
“너무 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게. 자네에게도 무척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도움이요? 어떤 도움이요?”
“뭐긴. 자네가 대표팀에서 활약하고 명성을 쌓으면, 그만큼 팬들이 리그 경기에 몰려들 것 아닌가? 라피네와 오스칼도 같이 추천했으니까 자네들 셋이면 제법 끌어모을 수 있을걸.”
그 점에 대해서는 범석으로서도 관심이 갔다. 근래에 시즌권 판매가 저조해 팀 수입이 급감한 상태였다.
“정말입니까?”
“그렇고말고. 일부 팬 중에는 소속팀보다는 한 검투사에게 팬심을 쏟는 자도 만만치 않게 있지. 그래서 일부 유명한 대표팀 엘프들은 부호인 팬들의 눈에 띄어 일찌감치 주인을 얻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네만, 과거 나와 같은 리그에 뛰던 개조인간 남자검투사 중에 흔하지 않은 이상성애자가 한 명 있었다네. 바로 엘프보다는 인간 여성을 좋아했던 자였지. 엘프들은 너무 순종적이라서 싫다나? 하여간 그 작자도 지역 대표 검투사였는데, 꽤 많은 인간 여성들을 후리고 다녔지.”
그 점에 관해서는 범석도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에스더를 통해 여성팬이 응원하는 남성 검투사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이리 직접적으로 예를 들어 말하니 실감이 났던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게다가 그자는 별로 노력도 하지 않았다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그를 좋아하는 여성팬들이 때만 되면 알아서 다리를 벌렸지. 놈의 자식을 얻기 위해서 말이네. 아마도 그 작자의 2세가 적어도 전 세계에 수천 정도는 될 걸세.”
범석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직시했다. 혹시나 감언이설로 자신을 속이려 하는 것이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자신이 인간 여성을 밝힌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혹시 제 취향을 미리 아시고, 지어낸 얘기는 아니시겠지요?”
“뭐. 자네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취향을 알고 있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지어낸 얘기는 절대 아닐세. 놈에 대한 일례는 과거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다 나올 텐데, 내가 왜 거짓을 말하겠나?”
그때 범석의 옆자리에 가만히 얘기를 듣던 에스더가 자리를 일어섰다.
“저, 저기 이사장님. 전 잠시 몸이 안 좋아서 산책 좀 다녀올게요.”
“아니 왜? 곧 식사가 나올 텐데?”
“그게 아침을 먹을게 소화가 잘 안 돼서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범석이 순간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실수를 해도 단단한 것이다. 엘프만 상대하다 보니, 인간 여성이 질투심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간 여성들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엘프들을 무척 싫어하는 존재이지만, 특별히 질투심을 갖지는 않는다. 엘프들은 필요에 의해 창조된 상품. 그저 인간 남성들의 생체 자위도구쯤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인식 차이 때문에 남녀 간의 사이가 크게 벌어지기는 했지만, 인간 여성이 인공적으로 창조된 엘프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기란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한 남성이 엘프를 몇 명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가 집안에 콘돔 몇 개 비치하고 있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남성이 다른 인간 여성에 관심을 둔다면 얘기가 극명히 달라졌다. 엄연히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범석도 게임 설정정보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는 일. 다급히 일어나 자리를 떠나려는 에스더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녀는 과거부터 자신의 열성적인 팬으로 지금 데리고 있는 여인 중에서도 특히나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었다. 특정한 이벤트가 없어서 아직 공략하지는 못했지만, 질투를 보이고도 한참이나 남음이 있을 정도는 되었다. 만약 오늘 빈센트와 나눈 대화에 상처를 입고 팀을 떠나간다면, 범석이 겪을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다른 여인들을 받아들여도 용납한 수준이 되는 호감도 100까지는 극히 조심해야 했다.
“아. 에스더 잠깐 자리에 앉아 있어 봐. 일단 내가 이사장이라도, 팀 내에서는 단장 대리인 네가 대표야. 빈센트 감독님이 소속팀의 검투사를 대표팀으로 추천했다는 데에 대한 입장 표명쯤은 해야지.”
에스더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단 대리 꼬랑지가 붙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팀 대표인 것은 맞았다. 빈센트가 소속된 드래곤나이츠팀을 위해 갓즈나이츠 검투사인 범석을 임의대로 대표팀에 추천했다고 하니, 견해를 밝혀야 함이 옳았다.
“그, 그렇겠군요. 네 알겠어요.”
에스더가 무심한 눈빛을 빈센트 감독에게 던졌다. 그는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약간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전에 린의 이적 건 때도 그렇고, 이번에 그렇고, 굳이 에스더를 앞장세우려는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범석군. 일단 당사자인 자네의 의견이 중요하지, 왜 에스더 단장 대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는가?”
범석이 마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팀 대표는 에스더입니다. 당연히 단장의 의견을 들어봐야죠.”
“그건 나도 아네. 하지만, 대표팀 문제는 검투사 개인의 결정이 선행되어야 하네. 소속팀의 입장은 그다음 문제고 말이네.”
그가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대표 검투사가 별로 탐탁지 않습니까?”
뚱딴지같은 소리에 빈센트가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조금 전까지 대표팀에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아니. 자네 대표 검투사가 되려고 결심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내가 보기에는 그리 비쳤는데.”
에스더의 눈치를 슬며시 살핀 범석이 일단 입에 침부터 발랐다.
“물론 팀을 소유한 이사장으로는 관심이 있습니다. 팬들이 늘어나면 당연히 갓즈나이츠의 수입이 늘어나니까요.”
“그런데?”
“하지만, 의도가 너무 불순해 보입니다. 아무리 제가 인간여성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지만, 아무나 막 사귀지는 않습니다. 이성적 관심을 얻기 위해서 대표팀에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빈센트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지었다. 암만 봐도 저럴 사람이 아닌데, 계속 엉뚱한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까도 이상성애를 가진 남성 개조인간 대해 얘기할 때, 분명히 그의 눈동자가 광채가 일정도로 빛이 났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빈센트가 허투루 나잇살을 처먹을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프다며 어두운 얼굴을 하던 에스더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자 뭔가 연유가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으흠. 그렇군. 자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네. 그런데 이거 곤란한걸. 벌써 협회에다 추천의견을 올렸는데……. 그것도 오래전에 말일세. 혹시 달리 생각해 줄 수는 없는가?”
“글쎄요. 저는 특별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대표팀으로 참가하면 팀의 수입이 느니 좋고, 아니라면 차분히 휴식을 취하다가 틈틈이 미비한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으니 그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의 대표인 에스더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바턴은 이제 에르다에게로 넘어간 상태였다. 이에 빈센트가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용의를 물었다.
“범석군의 생각이 저러한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에스더가 대답했다.
“글쎄요. 팀이 그렇게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어요. 강등의 위험성을 안고 팀의 주축인 이사장님을 대표검투사로 차출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갓즈나이츠의 성적이 어떠헌한데?”
“지금 3승 2무 4패로 리그 내 12위를 달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승점 11점을 얻고 있다는 소리였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 같은 성과를 올린다면 강등은 피하겠지만, 자칫 삐꺽거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점수였다.
“이중 자네들 주력이 나선 경기에서는?”
“3승 1무요.”
“대단하군. 올해 라피네와 오스칼이 빠진 상태에서도 그렇다면, 내년도에는 천하무적이라 불리만 하겠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저희 팀에 이사장님이 계시는 한 절대 패배란 없어요.”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답변에 빈센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투는 단체경기. 아무리 범석이 대단하다지만, 혼자서는 승리의 향방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주전력이 이끌어 낸 3승 1무라는 성적도 에리카나 에르피나와 같은 경험 많고 뛰어난 검투사 뒤를 받쳐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범석이 있는 한 절대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이 정도까지 치켜세운다면 이사장에 대한 아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빈센트가 이내 범석을 바라봤다. 단장이라면 매우 중요한 자리인데, 이런 햇병아리를 세웠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팀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 임명을 했다면, 혼쭐을 내 고쳐야 했다. 하여간 그는 자신의 딸과도 같은 레이미와 오스칼, 다이아나, 에리카, 린을 데려간 사위 비스름한 존재였다.
‘얼씨구. 이 자보게.’
범석은 마치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남편처럼 에스더의 눈치를 단단히 살피고 있었다. 이 장면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그가 에스더를 쥐고 흔든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었다.
‘후후후. 아무래도 이 둘이 서로 마음에 있는 모양이군.’
지금까지의 상황을 살펴보면 분명해 보였다. 마음껏 인간 여인을 안을 수 있다는 말에 흥분한 수캐처럼 날뛰던 그가 갑자기 대표팀 차출에 난색을 보인 것 하며, 어두운 기색으로 힘없이 나가려던 에스더가 갑작스럽게 기운을 차리다 못해 자기 서방을 챙기는 것처럼 이리 대놓고 칭찬 일색을 던지는 것까지…….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졌다.
그리고 아무리 팀 대표가 단장이라지만, 엄연한 팀의 주인은 이사장이었다. 검투사 개인의 입장도 중히 여기는 대표팀 선출에서, 당사자인 범석이 그녀에게 저리 꼼짝하지 못할 이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빈센트가 피식하고 웃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설득은 너무 편했다.
“그래. 알겠네. 그럼 다시 대표팀 선출 건으로 넘어가지. 내 생각에는 아무리 봐도 범석군을 대표팀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어째서죠?”
“당연하지 않은가? 그가 대표팀으로 뛰며 명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팀의 명성도 오른다네. 그럼 팬 몰이를 하게 되고, 결국 범석군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지. 하지만, 만약 에이번드의 이름을 빛낼 자리를 그저 편히 쉬자고 거절을 해보게? 아마도 팬들이 대번 화를 내며, 뒤돌아설걸. 그럼 자연스럽게 수입은 적어지고 범석군은 빈털터리 신세가 되겠지.”
너무나 뻔하리만큼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에스더가 몸을 움찔거렸다. 듣고보니 어쨌든 대표팀 호출제의를 거절하면 해가 된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었다. 팀을 관장하는 단장 대리로서 또 한 사람의 범석을 흠모하는 열렬한 팬으로서
“그, 그게. 저기…….”
빈센트가 바로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어차피 대표팀에서 호출이 오면 별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검투사를 보내줘야 옳네. 한 예로 우리 팀을 좀 보게나. 주력 모두와 후보 일부를 대표팀에서 부르는데도, 내가 특별히 거절을 표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왜냐하면, 우리 프로팀은 에이번드지역 지역민의 팬심을 먹고 살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팀은 범석군 단 한 명일세. 보내지 않는다면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당할걸세.”
에스더가 곤란한 표정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자신이 어찌 결정해야 할지 모르던 탓이다. 과거로부터 극성 검투 팬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단지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이었다. 범석으로 말미암아 단장대리에 올라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중요결정을 내리기에는 연륜이 부족했다.
이에 범석이 차분한 눈빛으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대표팀에서 부른다면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그런 이상한 이유를 들어서 대표 검투사팀을 권하지 마십시오. 제가 참 난감합니다.”
대충 알아들은 빈센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가 잠시 노망이 들어 그런 소리를 했나 보이. 그럼 꼭 대표팀으로 가리라 믿겠네.”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이제 에스더에게 자신의 대표팀 참가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가 여성 팬들을 위해 가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던 터라, 그녀는 그다지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범석을 위해서는 꼭 대표팀에 가야 한다고 하니, 종래에는 극구 찬성을 하고 나섰다. 그녀는 이제 범석의 인격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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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전 박지성 축구 보러 갑니다. 그럼 주말 잘 보내시고요. 전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