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5
117화
“저, 저기 택시비가 없었어요.”
너무도 황당한 말에 감독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천 크랑만 있어도 택시비는 떡 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감독은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
“택시비가 없었다고? 너 지금 나 열 받으라고 장난치는 거지?”
“절대 아니에요. 정말 돈이 없었어요.”
“그럼 네가 소속된 연애기획사는 뭐 하고 있던 건데? 전자수첩을 있을 테니, 온라인으로 송금받을 수 있었을 것 아니야!”
“그게……. 근래에 사정이 좋지 못해서 저희 기획사에도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CF를 꼭 맡아야 해요. 안 그러면 저희 기획사 망해요.”
CF감독이 이마와 목을 동시에 부여잡았다. 그저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애라 아무 스텝에서 무심코 맡겼더니, 이거 거지새끼를 섭외해 왔던 것이다. 살다 살다 택시비조차 없는 연애기획사는 처음 봤다.
그는 문쪽을 향해 한 손을 저어대며 카렌의 등을 밀었다.
“야. 나 열 받게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이미 다른 애 불렀으니까 네가 나올 자리 없다.”
“안 돼요. 오늘 꼭 출연해서 돈을 벌어가야 해요.”
이들의 실랑이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던 범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시비가 없어서 늦을 정도로 사정이 급하다는데, 야박하게 내쫓다니 너무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는 차분히 걸어가 CF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사정도 딱해 보이니, 그냥 저 애를 끼고 하시죠.”
감독이 난처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그게 좀 곤란합니다. 이미 다른 기획사에다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건 저도 옆에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됐으니 다시 취소할 수도 있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하여간 이 애는 촬영에 큰 차질을 주었으니 혼쭐을 내야 합니다.”
“차질을 빚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CF촬영이 늦어져서, 오후에 있을 훈련까지 모두 취소시킨 상태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혼을 내야죠. 범석씨를 곤란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범석이 짜증스러운 낯빛을 지었다.
“서로의 잘잘못을 논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도 감독님의 사정을 봐서 손해를 감수한 만큼, 감독님도 그녀에게 아량을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솔직히 촬영이 늦어진 원인은 이 아이에게 있지만, 책임은 감독님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하여간 감독님은 이번 CF촬영의 총 책임자시니까요.”
감독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양 입을 다물었다. 원론적으로 따지고 들어오니 대꾸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카렌을 섭외한 쪽은 자신들이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발생한 범석의 시간적 피해는 모두 감독인 자신에게서 비롯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그렇기야 하지만…….”
“어차피 고의로 저지른 행동도 아니니 이해하고 넘어가시지요. 딱한 처지의 저 여인을 내쫓아버리면 제가 기분이 좋지 못해서 그럽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감독이 이내 알아들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피해 당사자인 범석이 이리 말하니, 자신이라고 매정하게 굴 수가 없었다.
“쩝. 알겠습니다. 그럼 저 아이를 끼고 촬영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까?”
“후후. 잘 생각하셨습니다.”
의외의 구원을 받은 카렌이 밝은 표정으로 감독에게 나아가 허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내게 고마워하지 마라. 여기 계신 범석씨가 아니었으면 바로 내쫓아버렸을 테니까.”
카렌이 다시 범석을 향해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도,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런데 분장실에서 옷 좀 갈아입고 와야 하겠다. 이 상태에서 촬영은 힘들 테니까.”
하긴 그녀의 몰골은 말도 아니었다. 물기를 머금은 탓인지 화장이 지워져 사방으로 번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떡 진 듯 엉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촬영을 위해서는 단단히 손질을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카렌은 분장도구를 챙겨오지 못했다. 사무실에 있기는 하지만, 빨간 딱지가 붙어 있어 밖으로 반출할 수가 없었다.
“저, 저기 그게 갈아입을 옷과 분장도구가 없어서요. 지금 압류상태거든요.”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은 감독이 마침 지나가는 스텝 한 명을 불러세웠다. 저 상태에서 촬영에 참가시킬 수는 없으니, 좀 손질을 볼 필요가 있었다.
“이봐. 이 얘를 분장실로 데려가. 그리고 사람을 붙여서 치장 좀 시키고.”
“예. 알겠습니다.”
바로 대답을 한 스텝이 카렌을 데리고 촬영장 밖에 있는 분장실로 데려갔다.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감독이 안도하는 순간, 또다시 촬영실 문이 열리며 제복을 입은 경찰 2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감독을 향해 걸어가 질문을 던졌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여기 웬 백발의 노인과 핑크빛 머릿결의 한 여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왜 그러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자들이 길가에 고장 난 플라잉 카를 무단으로 세워놓고 플라잉 택시를 탔는데, 요금도 내지 않고 그냥 도망갔다고 합니다. 목적지가 여기라고 하던데, 혹시나 해서요.”
대충 감이 온 감독이 너무도 어이가 없던지 헛웃음을 흘려댔다. 참으려고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후후후. 그자들이 택시비를 떼어먹고 도망쳤다는 얘기군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 택시 안에 탄 사진이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
사진을 확인한 감독이 문밖으로 걸어나가더니, 주변을 살펴봤다. 한 명은 분장실에 있으니, 또 한 명인 백발의 노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멀찌감치 화장실에서 세욕을 하고 나오는 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라렸다. 바로 사진 속의 나머지 한 인물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저기. 거기 노인 양반. 이리 좀 와보십시오!”
그를 본 노인이 급히 다가왔다.
“아니 무슨 일이시오?”
“혹시 카렌을 데리고 오신 분 맞습니까?”
“아. 그렇소이다. 내가 그 아이의 매니저요.”
감독이 엄지로 경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경찰들이 당신들을 잡으러 왔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뜨끔한 노인이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지은 죄가 있으니 경찰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던 경찰들이 황급히 뛰어왔다. 사진 속 인물이 도망치려는 시늉을 보이고 있으니 치안 공무원으로서 그를 체포할 의무가 있었다. 그들은 노인의 옷깃을 붙잡고는 사무적인 말투를 내뱉었다.
“저기. 파출소에 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아니. 이 양반들이. 내가 거길 왜 가나?”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택시비를 띠어 먹고 도망쳤다고 말입니다.”
“그, 그게 좀 사정이 있어서 그러네. 나중에 다 갚아…….”
이들의 실랑이를 옆에서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지갑에서 500크랑 지폐를 꺼내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도와줬으니, 끝까지 뒤를 봐주려는 것이다.
“저기요. 잠시만요. 급한 사정 때문에 피치 못하게 벌어진 실수인데, 파출소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급한 사정요? 그게 뭔데요?”
경찰에 질문에 그가 돈을 넘겨주며 바로 대답했다.
“네. 지금 중요한 촬영이 있는데, 저 노인분이 데리고 온 한 출연자가 지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삐 오다가 잠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고요. 그러니 여기 택시비를 받고 그냥 없던 일로 하시지요.”
지폐를 받아든 경찰이 노인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정말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돈을 받은 이상 그들도 괜한 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택시회사 측도 이런 사정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해 주고 넘어갈 일이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실례는요 무슨, 이쪽이 실수했는데요. 그저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좀 처리해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으니, 점심값을 하라고 드리는 겁니다.”
하며 범석이 따로 천 크랑짜리 지폐를 꺼내 경찰들 호주머니에 깊게 찔러주었다.
“뭘. 이런 것을요. 하여간 잘 받겠습니다.”
냉큼 돈을 받아챙기는 경찰들이었다. 지금 온 인원이 둘이었으니 1,000 크랑은 뇌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 윤리 조항 상 1인당 500 크랑까지의 식사 접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네. 그럼 일들 보십시오. 저희는 촬영 때문에 바빠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경찰이 떠나가는 모습을 본 노인이 다소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는 범석에게 다가갔다.
“젊은이. 고맙네. 오늘의 도움은 결코, 잊지 않겠네.”
“괜찮습니다. 이제 들어가시지요. 카렌이 나오는 대로 곧 촬영이 시작될 테니까요.”
그러자 노인이 주춤거리며 들어가기를 꺼렸다. 그도 카렌과 마찬가지로 비에 흠뻑 젖어서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촬영장에 들어갔다가는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게 되니, 그냥 이 자리에서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젊은이 나는 괜찮네. 그냥 저기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있을 테니, 너무 마음쓰지 말게.”
“아니. 그래도 매니저시니, 카렌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셔야죠. 제가 저희 팀 엠블럼 추리닝을 하나 가지고 있으니 갈아입고 오십시오.”
하며 범석이 비너스를 시켜 추리닝을 가져오도록 했다. 노인은 멋쩍어했지만, 결국에는 추리닝을 받아들고 화장실에서 대충 옷을 갈아입었다. 자신도 카렌이 촬영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범석은 감독을 따라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제 카렌이 오는 대로 CF촬영이 시작되니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자. 카메라 테스트 완료했지?”
“네!”
“좋아. 그럼 조명팀 조명 다시 확인해봐.”
“네! 알겠습니다.”
스텝진이 분주한 가운데, 범석이 셋트 위에 섰다.
오늘 CF는 제우스그룹에서 새로 시작하는 대규모 부동산 임대사업의 알리는 선전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그와 휘하 엘프들은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 공간 안에서 호화로운 삶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야 했다. 단지 18초 분량이라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내용을 알려야 하므로 세심한 표정 연기가 필요했다.
‘뭐 편안히 내 집에 왔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범석이 셋트장에 마련된 침대와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깔끔한 양장차림을 한 여인이 서류철을 한 손에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카렌이었다. 그녀는 오늘 범석과 휘하엘프들을 셋트로 꾸며진 방안을 안내하는 직원 배역을 맡고 있었다.
“왔으면 빨리 셋트로 올라가!”
감독의 버럭하는 외침에, 카렌이 다급한 걸음으로 셋트장으로 갔다. 이를 싱긋 바라보던 범석이 그녀가 가까이 이르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까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을 봤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막상 치장한 모습을 보니 외모가 보통이 아니었던 탓이다.
160정도의 키에 축 처져 있었던 핑크빛 머리카락은 걸음걸이마다 탄력 있게 출렁거렸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것 같은 이목구비는 부드럽고 여리기 그지없었고, 사파이어 빛의 푸른 색의 눈동자는 유난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꽉 끼는 사무용 정장으로 드러난 몸매는 아주 마른 편이었는데, 가슴과 힙은 두드러질 만큼 굴곡이 져 있었다.
‘대단하군. 역시 연예인라서 그런가?’
외모에 관심이 갔던 범석이 이내 카렌의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
이름 : 카렌 레퍼드.
구분 : 인간(18년).
소속 : 레퍼드 기획.
명성 : 22.
악명 : 0.
호감도 : 58.
H유무 : 무.
스테미나 : 630/700.
사회성 : 89, 근력 : 6, 체력 : 7.
민첩 : 9, 균형감각 : 11, 지능 : 74.
정신력 : 88. 판단력 : 65, 재주 : 91.
운 : 77.
현재기량/잠재능력 : 517/618.
————————————————
특성 : 천상의 메아리.
특이사항 : 과거 유명 가수였던 할아버지의 연예 기획사인 레퍼트 기획 소속 가수로 활동 중. 기획사의 재정 악화로 현재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는 중.
————————————————
‘뭐야. 엄청난데. 어떻게 이런 얘가 다 있지?’
카렌은 18살이라는 제법 어린 나이에도 능력치가 아주 훌륭했다. 가수로서 꼭 필요한 재주는 91이었고, 연예인으로서 중요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성과 정신력도 80대 후반에 달해있었다. 게다가 잠재능력도 618이나 돼, 장래가 촉망되었다.
하지만, 정작 범석이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특성인 ‘천상의 메아리’라는 특성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재주+20, 사회성+15, 정신력+15을 시켜줌은 물론, 지켜보는 시청자나 관중 수의 1,000분의 1만큼의 명성을 얻는 엽기적인 특성으로, 만약 WBS와 같은 전 세계 방송파에서 노래하게 된다면 곧바로 명성치가 만 땅에 오름과 동시에 전 세계 유례가 없는 대스타가 될 터였다.
‘문제는 나에게 전혀 쓸모없다는 사실이야. 아쉽네.’
범석이 연예기획사 사장이었다면 바로 눈이 뒤집어질 노릇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프로검투팀 이사장이었다. 카렌을 사용할 곳이라고는 그저 경기 전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일뿐이었으니, 하등 그녀의 능력을 탐낼 만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외모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공략하는 데에 있어서 쓸모가 있음과 없음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침대에서 구르며 성적 만족감을 얻는다면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 이 정도의 미모라면 검투에 관련하지 않은 여인이라도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 공략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는 셋트 위에서 서성이는 카렌에게 다가가 친근히 말을 붙였다.
“카렌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 오빠는 범석님이시죠? TV에서 검투경기를 할 때 종종 뵈었어요.”
오빠. 이 얼마나 짜릿한 단어이던가? 범석이 바로 입을 잔뜩 찢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런닝차림으로는 지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환절기철 감기 조심하십시오.
그럼 전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모두들 보람찬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