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6
118화
“하하하. 그래. 지금 갓즈나이츠에서 활약하고 있지. 너는?”
보조개가 들어갈 정도로 배시시 미소를 지은 카렌이 대답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대표로 있는 레퍼드 메니지먼트사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범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 가수? 그럼 노래 잘 부르겠네.”
“네. 물론 잘 불러요.”
뻔뻔한 대답이지만 그는 카렌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일단 그녀는 프로 가수. 이 정도도 자신감쯤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 범석도 누군가가 검술에 대하여 같은 질문을 한다면, 같은 대답을 할 터였다.
“대단한 자신감인데. 언제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불러봐라.”
“기회요?”
“그래. 나중에 우리 팀 홈 경기에 있을 때 시격자로 초대할 테니까. 그때 불러봐. 물론 보수도 주마.”
시격자라고 함은 경기 시작 전에 초대 손님으로 나와 특정 검투사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야구로 치면 시구였고, 축구로 치면 시축이었다. 다만, 보통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인사들이 주로 했기에, 아직 무명인 카렌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제, 제가 나가도 되나요?”
“상관없어. 간혹 팬 중의 한 명을 선출해 하는 때도 있거든. 내가 단장에게 잘 말해 둘 테니까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 ”
“정말요? 그런데 오빠가 말한다고 단장님께서 저를 시격자로 부를까요? 오빠는 단순히 검투사잖아요. 그런 팀 경영적인 일에 깊숙이 상관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범석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조금 전에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 내용이 아무래도 예의상 내뱉는 인사치레였음을 깨달은 탓이다. 에이번드지역에서 어느 정도 검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자신이 갓즈나이츠의 이사장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귀엽고 예쁘니 모든 것이 용서됐다.
“응. 내가 갓즈나이츠팀의 이사장이기도 하거든.”
카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프로 검투팀의 이사장이라면 상당한 부자라는 뜻. 가난에 찌들어 사는 그녀로서는 무척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러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시격자로 참여하면 받을 돈이었다. 갓즈나이츠는 그의 재산이지만, 시격자로 나서고 노래를 불러 받는 보수는 바로 자신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되었다.
“와. 정말요! 그럼 제가 시격자로 갔을 때 보수도 많이 주겠네요.”
“글쎄다. 일단 주긴 주는데, 네가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어, 얼마나 주실 건데요?”
범석이 턱을 괴며 곰곰이 고민해 봤다. 보수는 시격자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라면 평균적은 15만 크랑을 주었고, 일반 평범한 시민이라면 3,000크랑 정도를 지급하고 있었다. 카렌은 무명 연예인이기에 대충 5천에서 일만 크랑 정도만 줘도 별 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앞으로 대스타로 자라날 성장성을 가진 여인. 곧이곧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약간 배려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됐다.
“글쎄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어떻게요?”
“보통은 일만 크랑을 주겠지만…….”
그 말에 카렌의 입에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일만 크랑이라면 족히 봉지라면 2,000개가량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까지 포함, 1년을 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가 초조한 눈빛으로 범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럼 깎일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요?”
“아니. 일단 일만 크랑을 내뱉었는데, 매정하게 깎을 수 있겠냐? 여건에 따라서 더 올려준다는 얘기지.”
“도, 도대체 얼마나요? 또 제가 뭘 하면 되죠?”
범석이 바로 한 손을 쫙 펴며 말했다.
“오만 크랑을 주지. 대신 나를 평생 오빠로 삼아라.”
몸을 부들부들 떤 카렌이 촬영장 뒤편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장내가 떠나갈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할아버지! 다음 일감 맡았어요! 범석오빠가 제가 시격자로 나서면 오만 크랑을 준 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인이 급히 걸어왔다. 이를 본 범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카렌을 쳐다봤다.
“저분이 네 할아버지인 레퍼드씨야? 매니저가 아니었어?”
“할아버지 맞아요. 매니저이시기도 하고요.”
“네. 할아버지는 연예기획사 사장님이라며?”
“사장이시기도 해요. 저희 기획사에는 저와 할아버지밖에 없어요.”
당황스러워하는 그에게 레퍼드가 다가왔다.
“자, 자네. 정말 우리 손주에게 일감을 준다고 했나? 그것도 5만 크라이나 되는 거금에 말이네.”
“아 네. 거금까지는 아니지만, 맞습니다.”
레퍼드가 셋트까지 올라가 범석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정말 고맙네. 오늘 자네에게 무척 신세를 졌는데, 이런 배려까지 해주다니……. 어떻게 이 신세를 갚을지…….”
“뭘요. 일을 시키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무안하리만큼 감사를 받을 만큼은 아닙니다.”
“아니네. 정말 고마우이. 그 돈이면 한동안 우리 조손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네.”
‘나. 이거 참. 무슨 말을 못하겠네.’
범석이 겸연쩍어하는 사이 촬영준비가 완전히 끝났는지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저기 노인 양반! 빨리 내려가세요! 곧 촬영이 시작됩니다!”
“아. 아. 이거 미안하이. 내가 잠시 흥분을 했네. 이제 내려가겠으니 촬영을 시작하게.”
레퍼드가 내려가 음영이 진 뒤쪽으로 돌아가자, 감독이 바로 CF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은 이날 해가 지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단지 18초에 해당하는 분량이었지만, 감독이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대니,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범석은 단지 몇 마디의 대사와 지정된 연기를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야 했고, 촬영이 끝날 때쯤 극심한 노곤함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하긴 아무리 CF가 얼굴을 파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3,200만 크랑을 버는 게 그리 쉬울 리만은 없었다.
“자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돌아들 가십시오.”
감독의 파장 멘트를 들은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며 셋트장을 내려섰다.
‘쳇. 이러면 아까 카렌이 늦지 않았어도, 오후 훈련은 못 했잖아.’
지금 시각은 정확히 오후 6시. 카렌이 늦은 시간이 40분 남짓임을 봤을 때, 확실히 이번 촬영만으로도 충분히 오늘 훈련을 공쳐야만 했었다. 왠지 제우스그룹의 홍보팀 담당자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끝난 일이니 특별히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출연료만 받고 내일부터는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되었다.
그는 오늘 함께 출연한 휘하 엘프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자. 오늘은 특별히 수고했으니, 저녁은 레인보우호텔 뷔페에서 한다.”
“와아아아!”
개중 오스칼의 외침이 가장 컸다. 범석 소유의 엘프가 된 뒤로 거의 술을 마시지 못했는데, 외식할 때면 알딸딸한 기분이 들 때까지 마시는 것이 허락되었다. 특히나 오늘같이 그가 큰돈을 벌어 기분이 좋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이내 그녀를 비롯한 엘프들이 범석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범석군.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네. 나중에 꼭 좀 연락을 주게나.”
카렌과 동행한 레퍼드가 자리를 떠나가려는 범석에게 다가와 하직인사를 고하고 있었다.
이에 범석이 그를 향해 정중한 자세로 얘기했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식사하러 가시죠. 제가 한턱내겠습니다.”
“레인보우 호텔에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레퍼드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급호텔에는 드레스 코드라는 복장 제한이 있는데,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추리닝은 대다수 호텔에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입고 온 옷이 있기는 했지만, 비에 젖어 꾸깃꾸깃하고 오랫동안 빨지를 못해 심한 냄새가 풍겼다.
“그게 좀 복장이 이래서…….”
“상관없습니다. 호텔 지하로 내려가면 쇼핑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간단히 기성복을 맞춰 입으시면 됩니다.”
레퍼드가 더욱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택시비로 없어서 무임승차를 할 정도인데, 옷을 사입을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를 모를 리 없던 범석이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벌 맞춰 드리겠습니다.”
레퍼드가 손을 마구 저어대며 난색을 보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네. 지금까지 해준 것만 해도 너무도 고마운 것을…….”
“하하하. 너무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번 식사 초대는 다음에 카렌을 시격자로 초대하는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업무에 관계되기도 했으니, 그 정도 편의는 봐 드려야죠.”
카렌이 할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오늘 마침 돈이 똑 떨어져서 저녁 식사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물론 이번 CF출연료가 나온다면 좀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당장에는 지갑이 텅 빈 상태였다.
“할아버지. 저희 가요. 이번 일 꼭 맡아야 하잖아요.”
“하, 하지만……. 너무 폐가…….”
범석이 억지로 레퍼드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어떻게든 오늘 이들과 인연의 끈을 만들어 카렌 공략에 대한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이렇게 뵙게 된 것도 다 인연 아닙니까? 자 가시죠.”
“아. 안 되는데……. 휴. 알겠네. 그럼 또 한 번 신세를 짐세.”
레퍼드가 기어이 수락하고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렇게까지 권유하는데 거절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게다가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런 식사초대는 가급적 응하는 편이 좋았다.
이들은 곧 아론을 불러 탑승한 후 레인보우호텔로 향했다.
“우와. 대단해요. 저 이런데 처음 와봐요.”
호텔 로비로 들어선 카렌이 신기한 듯 사방을 훑어보았다. 지나가다가 종종 외관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안까지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촌티를 내려고 하지 않은지 그리 촐싹거리지는 않고 있었다.
“자. 2층으로 올라가자.”
길게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범석과 일행이 2층에 있는 뷔페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자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엘프호텔리어가 다가오더니 공손히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은 하셨습니까?”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 아론을 타고 오면서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응. 얼마 전에 했어.”
“그럼 성함이?”
“오범석이라고 하는데.”
깜짝 놀란 엘프종업인이 화급히 허리를 숙이며, 근처에 보이는 한 룸을 양손으로 가리켰다.
“자.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레인보우 호텔의 회장이라면 바로 글로리아였다. 최근에 몸이 좋지 못해 휘하 직원들에게 잠시 경영을 맡겼다고 했는데, 오늘은 출근은 한 모양이었다.
“그래. 글로리아님이? 이거 빨리 가서 뵈어야겠는데. 근래에 통 소원해서 말이지.”
말투에는 여유가 넘쳤지만, 범석은 꽤 곤란한 심정이었다. 글로리아를 만난다는 사실은 무척 반갑지만, 앞으로 공략할 예정인 카렌에게 그녀를 보인 점이 좀 부담스러웠다. 인간 여성들 간에는 질투심이 있어, 동시 공략을 위해서는 매사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쩝. 어쩔 수 없지. 바로 앞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으니까.’
그가 이내 모두를 데리고 엘프종업원의 뒤를 따랐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직 카렌과의 관계는 그저 오빠 동생 사이였기에 그리 문젯거리가 될 일이 없었다.
“자. 이쪽으로 들어가시죠.”
범석이 엘프 종업원이 손수 열어준 문으로 들어서자, 20인 석쯤 되어 보이는 넓은 방이 나왔다. 그 안에는 임신복을 입은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를 보자 급히 일어나 반가이 다가섰다.
“범석씨. 어서 오세요.”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글로리아님. 혹시 기대하고 이곳 호텔에 예약했는데, 결국 뵙는군요.”
글로리아가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석의 말투 속에서 그녀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호호호. 범석씨도 참.”
그가 은근슬쩍 글로리아의 배를 바라봤다. 임신복을 입어서인지, 아니면 아직 4개월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예비 엄마로서의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범석과 보낸 뜨거운 밤. 그녀는 막대한 방사량으로 결국 원하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나저나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까?”
“네. 물론이에요. 오늘 아침에도 병원에 다녀왔는데,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데요.”
“그것참 다행입니다. 그럼 몇 달 후면 엄마가 되시겠군요.”
“네. 모두가 범석씨 덕분이에요. 언제 꼭 신세를 갚을게요.”
범석이 주위를 살핀 후 그녀의 귓가에다 작게 속삭였다.
“될 수 있으면 몸으로 해주십시오. 둘째도 만드셔야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글로리아가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 범석씨도 참. 자자. 다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하하. 네.”
범석이 그녀의 옆으로 앉자 휘하 엘프들과 레퍼드, 카렌이 차례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에 글로리아가 좌석에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이윽고 탁자에 비치되어 있던 레일이 서서히 원형을 그리듯 움직이더니, 그 위로 갖가지 음식물이 담긴 접시들이 나타나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 하나를 빼어 들은 범석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뷔페는 직접 음식물을 가져다 먹는 줄 알았더니, 굳이 그렇지는 않군요.”
글로리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로 대답했다.
“이곳은 여닫이문이 있기에 접시를 들고 다니기 불편하니까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회전 초밥처럼 자동화 시스템을 설치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역시 고급 호텔이라,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괜히 호텔 식당이 비싼 것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역시 레인보우 호텔입니다.”
“호호호. 별것 아니에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던 글로리아가 레퍼드와 잠시 시선을 마주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면이 많이 익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참 동안 기억을 더듬더니 기어이 레퍼드의 신분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 작품 후기 ============================
휴. 겨울 맞이 집안 대청소를 했더니, 삭신이 다 쑤십니다. 청소까지는 별것 아니었는데, 여름 옷 잘 개서 집어 넣고, 겨울 옷 꺼내고, 이불도 다 바꾸고, 휴~ 이 가을 날 땀 삐질했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