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7
119화
“혹시 레퍼드씨 아니세요?”
레퍼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기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미처 몰랐던 탓이다. 뭐 밝혀진다고 해도 문제 생긴 것은 없지만, 왠지 드러내기가 겸연쩍은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크음. 그렇다네. 잘도 나를 알아보는군.”
“모를 리가 있나요. 오십 년 전만 해도 팬들에게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는데요.”
범석이 눈을 깜빡깜빡 거리며 글로리아를 바라봤다. 도대체 원래 몇 살이기에 오십 년 전 인물을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이놈의 개조인간들은 정보창에 시술을 받은 직후의 나이만 기재되어, 실제 나이를 정확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궁금한 내용은 레퍼드의 정체였다. 거의 비루먹는 초로의 늙은이가 과거에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정보창에 보면 대충 유명한 가수라고 했지만,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었다.
“글로리아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레퍼드님이 과거에 연예인이었다는 말입니까?”
“네. 당시에는 샹송이 전 세계를 강타했었는데, 레퍼드씨가 그 유행을 중심에 서서 주도했을 정도로 대단한 스타였어요. 하여간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가수라고 할 수 있죠.”
범석이 새삼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레퍼드를 바라봤다.
“정말이십니까?”
“쑥스럽지만, 그렇다네.”
“이거 정말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괜찮네. 어차피 다 과거사고 나도 특별히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다네. 사실 몰라주기를 더 바랐지.”
과거 전 세계의 최고 가수라고 불리던 자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거의 거지와 같은 신세였다. 누군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글로리아가 주책없이 지금 근황에 대한 질문을 던져댔다. 양장점에서 그럴싸한 옷을 맞춰 입었던 탓에, 지금 그의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세요? 은퇴하고 난 뒤에도 연예매니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레퍼드가 크게 기침을 연발하며 불편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 기억만큼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늘 크게 신세를 진 범석의 지인이자 과거 자신의 팬이었다. 매몰차게 질문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일이 여의치가 않아 손을 떼게 되었네. 크흠.”
“아? 왜요? 제가 알기에는 꽤 잘나갔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영입하는 가수나 배우마다 대박을 치며 회사를 유명한 연예매니지먼트사로 성장시키셨잖아요?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회사명도 바꿨다고 하던데, 그게 어디였더라…….”
“아무래도 하이에나 엔터테이먼트로 바뀐 얘기를 하는 모양이군.”
글로리아가 손뼉을 짝 쳤다.
“맞아요. 하이에나 엔터테이먼트요. 아마 당시에 언론에서 꽤 떠들썩했었죠.”
그러자 범석의 표정이 아주 볼만해졌다. 하이에나그룹이라면 자신의 적인 줄리앙의 가계가 경영하는 그룹. 그 회사의 대표가 지금 앞에 있는 레퍼드라니? 도저히 작금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하자 뭔가 사연이 있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수억 크랑의 돈을 펑펑 써대는 줄리앙과 택시비조차 없어서 쫓겨 다니는 최고경영자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줄리앙의 성은 분명히 레퍼드가 아니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는 그룹 총수는 따로 있었다.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해.’
역시나 예상이 맞았는지 글로리아가 얼굴을 새하얗게 변색시키고 있었다. 그때의 언론 기사를 떠올리고는 자신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죄, 죄송해요. 워낙 오래전 얘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실례를 범했어요.”
레퍼드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괜찮네. 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별로 개의치 않네.”
글로리아가 입을 다물고는 마침 레일을 타고 앞으로 지나가는 캐러멜 시럽 하나를 집어들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임산부인 그녀로서는 꺼려야 할 음식이었지만, 워낙 당황스러워 잠시 잊었던 것이다. 글로리아는 곧 포크로 한쪽 면만을 약간 베어 먹은 다음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때 범석이 차분한 눈빛으로 레퍼드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런데 레퍼드님. 어떻게 하다가 하이에나그룹으로 이름이 바뀐 겁니까?”
글로리아가 슬며시 손을 내려 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이 이상 캐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범석은 하등 상관하지 않고, 계속 레퍼드를 직시했다. 하이에나그룹과 자신은 적대관계. 사소한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이에 레퍼드가 조용히 말했다.
“꼭 들어야겠나?”
“예. 무리가 안 된다면 설명해 주십시오. 저로서는 꼭 알고 싶은 내용입니다.”
긴 한숨을 내쉰 레퍼드가 한 참을 뜸을 들이더니, 기어이 입을 열고야 말았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늘 범석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으니 그에 대해 보답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얘기는 가수생활을 은퇴하는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레퍼드는 뜻하지 않은 성대결절이라는 병명으로 가수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발달 된 의료기술로 충분히 치료 가능했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떠나고 싶은 자긍심과 기나긴 연예계 생활에 지쳐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범인으로 내려앉은 그는 참으로 평온한 삶을 살았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많았고, 매달 들어오는 음반 사용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평소에 꿈꿔왔던 세계 일주여행도 떠날 수 있었고,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러 프로스포츠경기도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퍼드에게 가요계 선배 한 명이 찾아왔다. 별로 유명세는 타지 못했지만, 워낙 대인관계가 좋고 넉살도 좋아 연예계서 꽤 좋은 평가를 받던 인물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지금 하이에나그룹의 명예 회장으로 있는 마이어라는 자일세.”
마이어는 대뜸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같이 연예매니져먼트 회사를 설립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얘기였다. 당시 오랜 휴식으로 따분한 삶을 살았던 그로서는 꽤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비록 명예욕과 지친 심신으로 연예계를 떠났지만, 평생 몸담아오던 그 장소가 그립지 않으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경영자로 참여하는 일이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도 않아도 되니 그리 고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레퍼드는 결국 그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연예매니지먼트사인 레퍼드 기획을 설립하게 되었다.
“아니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요? 참으로 간도 크십니다.”
“당시에는 아직 젊었기에 겁이 없었지. 그리고 전에 가수로서 순탄하게 정상의 자리를 차지해 왔던 터라, 자만심이 가득했을 때이고…….”
하지만, 걱정과 달리 레퍼드 기획은 승승장구하며 크게 성장해 나갔다. 얼굴마담인 그의 인지도와 대인관계가 좋은 마이어의 경영적인 능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던 탓이다. 곧 소속 연예인들은 전 세계의 방송가를 휘저으면, 회사에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던 중 회사의 회계를 맡아보는 한 직원이 몰래 투서를 보내왔다. 전무로 있던 마이어가 막대한 자금을 유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메일이었다. 그러나 이때 레퍼드는 사실 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모르는 척 눈을 감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대표이사 명함은 레퍼드가 가지고 있었지만, 경영적인 측면은 모두 마이어가 맡고 있기에 그가 사표를 내고 나간다면 회사가 큰 곤경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당시 회사는 몇 년간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어, 자금이 풍족한 상태였다. 괜히 비리사실을 외부에 표출시켜 언론에 질타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살이 썩었으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확실히 도려냈어야죠.”
“휴~ 그랬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잘 나가는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네. 그리고 부정한 금액도 그리 크지 않았고 말이네.”
이렇듯 몇 해가 지나는 동안 회사는 더욱 성장해 전 세계에서 알아줄 만한 거대 연예메니지먼트사로 성장했다. 이에 언론은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던 레퍼드를 새롭게 조명하며 뛰어난 경영인으로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수로서의 성공은 물론 은퇴 후에 설립한 회사까지 십 년도 안 되는 기간에 업계 수위에 드는 연예매니지먼트사로 성장시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받는 이 순간. 그는 등 뒤로 다가오는 어둠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바로 최고라는 먹이가 담긴 흉악한 덫이었다.
“최고요? 덫이요?”
“그렇다네. 나는 경영인으로서도 최고가 되고 싶었지. 누군가 내 앞에 있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했어. 당시 레퍼드 기획은 업계 순위 5위 정도에 이르고 있었는데, 그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지.”
그때 마이어가 그에게 다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회사를 업무를 다변화해서 이에 대한 시너지효과로 업계 선두 기업들을 공략하자는 전략이었다. 워낙 선두 기업들의 위세가 대단해 단숨에 치고 올라갈 수가 없던 터라, 레퍼드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전력을 내밀었는데, 관심을 보입니까?”
“간단히 얘기해서 영화나 드라마제작사, 프로스포츠팀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덩치 싸움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지. 대게 기업 평가를 할 때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지 않나? 바로 그걸 노린 게지.”
“그래요? 그런데 사업확장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회사가 잘 나갔다고 하지만, 분명히 무리가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 하지만, 전혀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
사 업확장 자금을 조달하는 일은 뜻밖에 손쉬웠다. 당시 레퍼드기획에 관심이 있던 투자사가 있었는데, 마이어의 설득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물론 필연적으로 유상증자를 통해 회사 지분을 넘겨줘야 했지만, 기존에 주식 대부분이 자신과 마이어가 가지고 있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결국, 레퍼드는 회사 지분의 30%를 넘겨주는 대신, 자금을 지원받아 몇몇 에어리어 리그급 프로스포츠팀을 구매해 회사의 덩치를 키웠다. 이런 식으로 차차 레퍼드 기획은 점점 성장했고, 종래에는 업계 최고의 자리를 넘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영광의 순간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그의 면전 앞에서 벌어졌다. 주총이 열리는 날. 마이어와 투자사가 공모해 그를 대표이사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회사에서 쫓아냈던 것이다. 여기에 레퍼드 기획이라는 간판까지 내리고 현재의 하이에나 엔티테이먼트사라는 이름까지 올려버렸다.
이에 화가 난 레퍼드는 복수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투자사야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니 이해할 수 있지만, 믿고 신뢰하던 마이어의 배신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처분한 후에, 새롭게 연예매니지먼트사를 건립해 그와 대적해 나갔다. 그는 경영적인 면이 모자랄 뿐이지, 재능있는 꿈나무를 찾아 발굴하는 일은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하이에나그룹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 탄생 되는 족족히 막대한 자금력으로 쏙쏙 뽑아 가 버리니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새로 건립한 회사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그는 거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주저앉게 되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이 하이에나그룹과 관련된 나의 과거라네. 이제 만족하겠는가?”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이에나 엔티테이먼사가 이런 배경으로 탄생 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큰 수확이었다. 물론 이 일로 놈들을 쓰러뜨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덕적인 면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데 자네가 왜 나 같은 늙은이의 과거에 관심을 두는가? 통 이해할 수가 없네.”
“으음. 글쎄요. 뭐라 설명해 드리면 좋을까요. 사실 레퍼드님의 과거사보다는 하이에나그룹에 관심이 있어서 물었다고나 할까요.”
“왜 자네가 하이에나그룹에 대해서 알려는 게지?”
“간단히 말해서 그들과 저와는 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팀을 운영해오면 많은 충돌이 있었거든요.”
그 말에 레퍼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이에나그룹 자체도 거대한 기업이지만, 그들의 뒤에는 막대한 힘을 지닌 경제인단체가 버티고 있었다. 과거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이 일방적으로 놈들에게 당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껏해야 프로검투팀을 운영하는 자가 맞상대할 만한 작자들이 아니었다.
“자네. 아무래도 실수를 하는 듯 보이는군. 그들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내가 전에 싸워봐서 잘 알고 있다네.”
“물론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세상에는 그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 경제인 단체가 대단해도 전 세계를 통틀어 망라해보면 그저 티클과도 존재일 뿐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놈들과 비견할 만한 세력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 중 하나가 저를 뒤에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관심이 가는 듯 레퍼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을 이처럼 처참하게 몰락시킨 상대와 싸우고 있는 자들이 있다니, 너무도 궁금했다.
“그, 그게 누군가?”
“흑사회입니다. 지금 하이에나그룹이 가입된 경제인단체와 사활을 걸고 싸우는 존재들입니다.”
흑사회라면 레퍼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연예계에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방송국과 언론사들이 그들 손에 장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등 사회 전반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들었다. 충분히 그 빌어먹을 경제인단체와 한 판 뜰만 한 상대였다.
============================ 작품 후기 ============================
어제 이어 오늘 방정리를 하는 구석에서 사물함 하나가 나왔습니다. 열어봤더니 자격증이 수북하게 쌓여 있더군요. 소싯적에 따놓은 것들인데, 제법 많더라고요. 여러 기사자격증과 기능사 자격등등…… 하다못해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있더라고요. 하하하. 정말 옛날에는 뭐든 열심으로 살았는데요. 근래에 들어와서는 왜이렇게 허투루 사는지……. 쯧쯧. 아무래도 과거의 제 자신을 거울삼아 열심히 글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시고요. 저는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