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121화
싸라기눈이 강풍을 타고 피부를 따갑게 내리치는 오전 녘이었다. 범석과 라피네, 오스칼이 플라잉 카에서 내려, 널따란 경기장이 펼쳐져 있는 훈련캠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에이번드 검투대표팀 훈련캠프라.’
커다란 철창문 옆 명패를 바라본 범석이 기분 좋은 미소를 한껏 머금었다.
대표팀 소집. 이 겨울 휴가 시즌에 똥줄 빠지게 뛰어야 한다는 점이 귀찮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대표검투사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비록 오늘의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인 38명 안에 들어야 하지만, 모두 통과만 된다면 지역민들에게 갓즈나이츠라는 각인되며 높은 명성 상승이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팬들이 증가하며 수입도 늘어날 터였다.
‘이번에 참가할 경기들이 월드컵 3차전 예선이라고 했지.’
이번 겨울 휴가기간 동안 열린 대표팀 경기는 월드컵 예선 3차전이었다. 32팀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총 4번의 예선전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번에 치를 경기들은 그 중간에 해당하였다. 문제라면 에이번드 검투 역사상. 이 3차전을 통과한 예가 없었다는 것이다. 총 128개 지역정부의 대표검투팀이 참가하는 이번 예선전에서, 센트럴리그팀 하나 보유하지 못한 에이번드지역이 통과를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지역팬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바로 드래곤나이츠가 센트럴리그로 올라서며 검투사층이 매우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64개 팀이 참가하는 최종 예선전에 오르기란 무척 어려운 일. 많은 운을 뒤따라줘야 가능한 희망이었다.
‘후후후. 하지만, 내가 대표팀 검투사가 되었다는 자체가 에이번드에 운이 따라줬다는 것이지.’
범석은 지금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대표검투사 38명. 그리고 오늘 소집되는 인원 60명의 경쟁을 뚫고 충분히 주전을 꿰찰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상시간으로 수백 년간 게임을 접해오면서 쌓아온 검술이 어디에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좀 신체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걱정이지만, 지난 여름휴가와 가을시즌 동안 충분히 단련을 해왔기에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정보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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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 범석.
구분 : 개조인간(1년).
소속 : 갓즈 나이츠GC.
명성 : 4410.
악명 : 0.
스태미나 : 6243/6500.
사회성 : 70, 근력 : 67, 체력 : 65.
민첩 : 93, 균형감각 : 77, 지능 : 55.
정신력 : 61. 판단력 : 77, 재주 : 49.
운 : 66.
현재기량/잠재능력 : 68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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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위대한 의지.
특이사항 : 갓즈나이츠의 이사장이자 주력 검투사. 현재 에이번드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 훈련캠프를 찾아가는 도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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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제법 많이 성장했어.’
반년 동안의 노력으로 범석의 스텟은 전보다 눈에 띌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정신적인 능력도 제법 높아졌고, 신체능력은 민첩을 제외하고는 그전과 월등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나 갖은 정성을 쏟았던 체력 수치만큼은 10이 올라 고질적인 체력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시킨 상태였다. 모두가 초반에 막대한 투자를 통해 훈련시설을 확충한 일과 초반에는 스텟이 잘 오른다는 게임 설정 탓이었다. 이제는 그는 ‘위대한 의지’를 사용하면 여느 와이드리그급 검투사 못지않은 신체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범석이 이번 대표팀 참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신체능력이 받쳐주니, 센트럴리그급 검투사를 맞상대해도 예전과 같은 부담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자. 들어가자.”
범석과 라피네 오스칼이 훈련캠프 안으로 들어서자, 엘프 경비원이 나와 길을 막았다. 그는 곧 대표팀호출 메시지와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무인전동차를 타고 스텝진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일단 왔으니, 최소한 감독에게 인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자. 이제 올라가자. 감독실이 3층이란다.”
안내판을 보고 감독실이 3층에 있음을 확인한 범석이 긴장한 표정으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과연 대표팀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탓이다. 언론 기사를 통해 그 이름과 성향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이때 오스칼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주인님. 저희 대표팀 감독이 제법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괜찮을까요?”
에이번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사람은 클라크라는 자였다. 언론이나 TV에서 본 바로는 상당히 냉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생각됐다. 한 예로 드래곤나이츠 소속의 한 유명 검투사가 있었는데, 주인 탓에 잠시 훈련에 늦은 관계로 아예 이번 대표팀 호출에서 제외해버렸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존재는 그 누구도 대표팀 검투사로 뛸 수 없다나? 그래도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제법 괜찮아, 스쿼드가 나쁜 에이번드지역 검투사들을 데리고 나름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범석이 곧 전자수첩을 꺼내 간이화면을 바라봤다. 지금 시각은 정확히 9시. 대표팀 소집 시간인 10시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은 상태였다.
“뭐. 이 정도로 일찍 왔다면, 별로 책잡힐 일도 없겠지. 그래도 다들 감독님을 뵈면 깍듯이 인사하고, 쓸데없는 짓거리는 절대 하지 마라.”
“네. 주인님.”
오스칼과 라피네의 대답을 들은 범석이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감독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길게 심호흡을 내쉰 후, 가볍게 주먹을 쥐고 노크했다.
똑똑똑.
– 들어와.
한 사내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범석이 문고리를 젖히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클라크였다. 신체개조 시술을 받아서인지 30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짧게 커트한 갈색 머리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범석이 들어왔음에도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디스플레이된 정보를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누구지?”
“오늘 있을 대표검투사 테스트에 참가하러 온 오범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갓즈나이츠 팀 소속의 오스칼과 라피네도 왔습니다.”
“그래? 소집 시간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일찍 왔군. 그런데 무슨 일이지?”
“별 뜻은 없습니다. 그저 인사라도 드릴 요량으로 찾아왔습니다.”
클라크가 이제야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내리고 그를 쳐다봤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대표팀 검투사라면 본연의 실력과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성실한 행동으로 표현하면 될 뿐이야. 이런 인사치레는 전혀 필요 없다.”
냉랭한 감독의 목소리에 범석이 간담을 쓸어내렸다. 이거 예상대로 보통 인사가 아님을 아니었다. 그는 데리고 온 오스칼과 라피네를 대동하고 감독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들의 허리를 꾹꾹 찔러대며 인사를 종용했다.
“아, 안녕하세요. 갓즈나이츠팀에서 선봉으로 뛰고 있는 오스칼이라고 해요. 현재 드래곤나이츠에 임대되어 뛰고 있어요.”
“전 라피네에요. 프리롤과 선봉을 맡고 있고, 오스칼과 마찬가지로 드래곤나이츠에 임대되어 있어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클라크가 그녀들을 바라봤다.
“경기 영상을 통해 봐서 잘 알고 있다. 제법들 하더군. 아마도 대표팀에 들어오면 자기 몫쯤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 감사합니다.”
클라크가 다소 안심하고 있는 오스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데 오스칼. 너는 나도 감탄할 정도로 피지컬은 좋지만, 검술 능력이 무척 떨어진다. 차차 나아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 주전으로 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마도 이번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는 후보로 뛸 공산이 클 것이다.”
순간 뻘쭘해진 오스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통 때 같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난리를 쳐댔겠지만, 이미 드래곤나이츠에 임대되어 센트럴리그를 경험한 터라 가슴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후보로 뛰며 활약하고는 동안, 검술실력이 모자라 손쉽게 상대 팀 검투사들에게 당해 행동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노력 중이에요.”
“그래.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너는 잘만 성장한다면 훗날 분명히 에이번드를 빛낼 위대한 검투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도록 해라.”
“칭찬 감사합니다.”
클라크가 이번에는 라피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라피네. 너는 피지컬과 검술능력.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뛰어난 검투사다. 그런데 포지션 이해력이 너무 부족해. 검투 경기가 단체 경기임을 봤을 때, 너를 주력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후보와 교체자원으로 사용할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해.”
“아……. 네. 알겠어요.”
“하지만, 올해 포지션 이해도를 높인다면 내년부터는 주전으로 채용될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하도록 해.”
“네. 명심하겠어요.”
고개를 주억거린 클라크가 이 둘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오늘 있을 테스트에서 너희 둘은 빠져라.”
의미를 알 수 없던 오스칼과 라피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모인 60명은 지정된 테스트를 수행하고 대표팀 검투사로서 적합한지 시험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테스트에 빠지라는 얘기는 대표팀 검투사에 탈락했다는 말로 해석될 수가 있었다.
이에 범석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감독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라피네와 오스칼이 대표팀 검투사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클라크가 바로 쏘아대듯 말했다.
“정 반대다. 이 얘들은 센트럴리그에서 뛰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대표팀 경기가 일주일 후에 시작되는데, 괜한 테스트로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조직력 훈련을 수행하는 편이 낫지.”
“그렇다면 대표팀 검투사로 이미 뽑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상당수의 드래곤나이츠 검투사와 일부 와이드 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친 검투사들 몇몇은 테스트 면제되었다. 오늘 있을 테스트는 그저 모자란 대표검투사들의 숫자를 채워넣기 위한 잔챙이들의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그 말에 범석이 약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오스칼과 라피네가 확실히 대표팀 검투사로 낙점받았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뚜렷이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도토리 키재기 테스트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영 찝찝했다. 지금까지는 당연히 일로 받아들였기에 상관없지만, 감독의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테스트를 받는 검투사들은 완전히 떨거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잠깐. 저도 테스트를 받아야 합니까?”
“아니다. 너도 테스트 면제다.”
역시나 한 범석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WBS방송사에서 주관하는 세계 검투계 유망주 오인에 뽑힌데다가, 그동안 펼친 활약이 있는데 떨거지 취급을 받을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클라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너희는 테스트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훈련경기장에 나갈 필요가 없다. 오스칼과 라피네는 따로 대표팀 모임이 있으니, 제1회의실로 가라. 단 오범석. 너는 체력단련실로 가서 특별한 언급이 있을 때까지 체력단련에 매진한다.”
묘한 느낌을 받은 범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비교적 다른 검투사에 비해 피지컬이 모자란다고는 하지만, 따로 모임이 있는 상태에서 혼자 체력단련실에 가서 운동하고 있으라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저만 체력단련실에 갑니까?”
“그럼 시설 좋은 대표팀 훈련캠프에 와서 놀기만 하고 갈 건가? 차라리 네게 모자란 체력단련을 하는 편이 좋겠지.”
“자, 잠깐요. 제가 논다는 얘기는 또 무슨 소리입니까?”
“간단하다. 네가 대표팀에서 와서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눈을 휘둥그레 뜬 범석이 이마에 굵은 힘줄을 새겨넣었다. 클라크의 말에는 자신을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제가 그저 대표팀의 잉여자원이라는 것입니까?”
“아니. 너는 대표팀에서 뿌리 뽑아야 할 썩은 사과다. 잉여자원이라? 아주 과분한 직무지.”
범석이 급히 걸어가 감독의 안면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날렸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렇다면 왜 저를 대표검투사로 호출했습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는 어째서 내가 너를 대표 검투사로 선출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지?”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목청을 높여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뭐 어째기에 이러십니까?”
클라크가 양손을 깍지끼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솔직히 말한다면 난 자네를 대표팀에 부를 생각이 없었어. 검술 실력은 나름 뛰어난 듯 보였지만, 행동거지가 아예 글러 먹었거든. 팀 내에 에리피나라는 경험 많고 훌륭한 대장 검투사가 있는데, 단지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겨우 1~2년 검투경기를 경험한 새파란 풋내기가 팀을 좌지우지 움직이는 모습이 아주 우스웠지. 그래서 아는 선배감독이 갓즈나이츠를 상대로 버리는 경기를 한다기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내 전략대로 경기를 풀어나가 달라고 말이야. 혹시나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경기 운영능력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테스트 결과 영 꽝이었다. 겨우 세미프로 실력을 갓 벗어난 프로를 상대로 그 막강한 전력이 패배 직전까지 가더군.”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네추럴 페어리즈와의 GA컵 6차전 경기를 기억하나?”
그 경기라면 갓즈나이츠가 라운드스코어 3대 0으로 승리했다. 2라운드에서 불의의 자살성 태클 공격받아 패배 직전까지 가기는 했지만, 간신히 수습해 결국에는 승리로 이끌었다.
============================ 작품 후기 ============================
아 참. 박주영 이상하네요. 국대에서는 골도 잘 넣고 활약 좀 하는 데. 꼭 소속팀에 돌아가면 헤매니……..
하여간 모두들 좋은 주말 보내시고요. 전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