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그 때 문이 열리며 커피잔을 한 아름 들고 있는 엘프 보안요원이 들어왔다. 이때까지 대화에서 소외되고 있던 해리슨이 자리를 정리하고 모두를 불러 세웠다. 이제부터 잡담은 그만두고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야할 시간이었다.
“모두들 여기 앉으시죠. 할 얘기가 많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렉스터가 범석을 쳐다봤다. 지금까지는 대화를 나누느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불법도박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범석이 그저 선수로서 이곳에 볼 일을 있어 왔나 생각해서 반갑게 정담을 나눴는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까 그가 바로 불법도박의 혐의자 같았기 때문이다.
“야! 그 놈이 바로 너였냐?”
“뭘 말입니까?”
“하여간. 그런 게 있다. 일단 앉자.”
다들 자리에 착석하자 해리슨이 전자서류를 띄우고는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사실은 오늘 베팅 시스템에서 경고를 알려왔는데, 바로 오범석씨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내용이요? 구체적으로 무슨 경고였습니까? 잘 알아듣게 설명해 주십시오.”
“한 마디로 말해서 불법적인 베팅의 위험성이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표정을 지은 범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제가 왜 사기 도박을 합니까?”
요것 봐라 하는 식으로 해리슨이 범석을 노려봤다. 현재 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베팅 시스템은 고도의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된 프로그램으로 불의한 도박행위를 100% 탐지 보고하는 기능이 있었다. 거기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는 것은 분명 베팅에 무슨 조작이 있다는 뜻이었다.
해리슨이 시스템에서 뽑아온 자료를 근거로 얘기를 시작했다.
“오범석씨의 기록을 살펴보니까. 보름 전 개인 출전 테스트 당시 200M 기록이 11초 630이었던 것이, 오늘 보니 11초 019로 크게 단축됐더군요. 자그마치 0.611초나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기록을 그만큼 단축시킬 수 있는 겁니까?”
“하하하. 절대 불가능하죠. 기록이 그만큼 떨어질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까?”
“제가 방금 전에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기록이 떨어질 수는 있다고 요. 테스트 당시 제가 발목을 약간 접질려서 컨디션이 좋지 못했습니다.”
말을 하는 본새로 보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한 해리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 그런 불상사가 있으셨군요. 그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겠네요?”
여기서 갔다고 했다가는 분명 병원진료 기록을 살펴보자고 할 터. 거짓이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범석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고개를 저어야 함이 당연했다.
“아뇨.”
“아니 왜요? 다치셨으면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참나. 세상 살기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발목 약간 접질렸다고 바로 병원에 튀어갑니까? 해리슨님은 그런가 보죠?”
그건 해리슨도 가지 않기를 마찬가지였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약간 아픈 일로 병원에 직행하기란 정말로 어려웠다.
“흠흠. 하긴 저도 굳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범석씨는 대회를 앞둔 육상선수가 아닙니까? 대게의 선수들은 약간이라도 다치면 팀닥터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던데요?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가요? 전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었던 터라, 그런 인식이 없었습니다. 사실 트랙에서 달려보는 것도 개인출전 테스트 당시가 처음이었고 오늘 두 번째입니다. 하하하.”
몰랐다는 데에 어쩌겠나? 사실 서류에서 보면 범석의 육상선수로서의 경력은 말대로 확실히 짧았다. 당연히 이를 가지고 그를 더 이상 채근할 수가 없었다.
“하긴.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럼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범석님은 왜 자신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는 데에 10만 크랑이나 되는 거금을 베팅하신 겁니까? 소유 엘프까지 합치면 20만 크랑이 되는군요.”
“왜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법은 없었다. 프로경기와는 달리 아마추어 같은 경우에는 대다수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단승식에 한해서 선수 자신에게 베팅하는 한 부정의 소지가 거의 없었다. 돈을 잃기 위해 일부로 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법은 아마추어 선수가 스스로에게만 돈을 거는 행위에 대해서는, 허용하는 한도금액까지 얼마든지 베팅할 수 있게 허가하고 있었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너무 자신의 실력에 대해 관대한 듯 보여서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입니다만……”
고개를 저은 해리슨이 범석의 발에 묶인 테이핑을 보더니,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저 테이핑을 한 장면 때문에 400M 3조 예선에서의 베팅률이 크게 변동한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십니까? 도박사들이 베팅을 할 때 부상당한 선수를 피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 발목에 묶인 테이핑말입니다. 범석님이 200M 1조 예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이후 배당율이 크게 불리하게 흘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 테이핑이 묶인 장면이 관객과 시청자에게 비쳐진 이후 다시 배당률이 어느 정도 회복했고요. 혹시 이를 노리고 일부로 저 테이핑을 한 것은 아닙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정말 그건 우연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전에 발목을 접질렸던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신경성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오늘 200M미터 예선 경기 직후 조금 그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 테이핑을 했고요. 왜 문제 있습니까?”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운동선수가 혹시 모를 부상위험에 대비해 테이핑을 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었다.
뜨거운 커피를 훌쩍 들이켜 마신 해리슨이 들고 있던 종이컵을 꽉 쥐어 구겨 버린 후 휴지통에 버렸다. 아무래도 사기베팅을 했다는 심증이 가는데 증거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저리 잘 가져다 붙이는지, 억측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그가 이번에는 곁에 앉아 있는 렉스터를 바라봤다. 수사관인 그의 자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자신으로서는 범석의 범법 사실을 증명할 도리가 없었다.
“렉스터 경위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곰곰이 듣고만 있던 렉스터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해리슨의 전자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지금까지 들어본 대화로는 특별히 의심할 사항이 없지만, 자료와 맞추다 보면 뭔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가만히 서류를 보던 그가 범석이 수입 부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늘 벌어들인 돈이 서민인 자신으로서는 꿈도 못 꿔볼 엄청난 금액이었다.
“휴. 두 게임 뛰고 474만 크랑이라……. 또 소유 엘프인 비너스가 베팅한 금액까지 합치면 그 배가 되는군. 확실히 미심쩍긴 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 보이자 해리슨 채근하듯 물었다.
“그렇죠? 이 정도면 충분히 경찰에서 조사해 볼만한 내용 아닙니까?”
그렇지만 렉스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심이 좀 가기는 하지만 벌어들인 금액가지고 죄의 유무를 따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해리슨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액이 너무 큰 점이 문제지만 혐의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증거는 물론 증인도 없고요. 방금 전 얘기를 들어봤을 때 정황증거도 확실치 않아요. 이 상황에선 내가 무리하게 조서를 꾸며 검찰에 올린다 해도 바로 불기소처분 될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네.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쟤가 사기도박을 했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안 듭니다.”
“하, 하지만 일반인이 한 경기당 20만 크랑이라는 돈을 막 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건 쟤가 좀 헤퍼서 그랬을 겁니다. 전에 처음 만났을 때 보니까, 즉석에서 수십 만 크랑씩 막 꺼내 쓰더라고요.”
아무래도 비너스의 치료비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았다. 범석이 잽싸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확히 60만 크랑입니다.”
“그래요. 60만 크랑. 해리슨씨는 혹시 60만 크랑을 이 자리에서 바로 꺼내 쓸 수 있습니까?”
60만 크랑이라면 해리슨의 거의 3년치에 가까운 봉급이었다. 살 떨려서 절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그, 그렇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런데 쟤는 그걸 하는 놈이라고요. 일반적인 상식으로 넘겨 집어서는 안 됩니다.”
해리슨이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경찰까지 이리 말하니, 그런가보다 생각되는 것이다. 하긴 60만 크랑을 마구 써대는 작자가 20만크랑을 부담스러워할 리가 없었다.
“그, 그렇군요. 네 그럼 알겠습니다. 그럼 경위님 말을 믿고 이번 일은 여기서 종결짓겠습니다.”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자 실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해리슨은 괜히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범석에게 사과했고, 그는 괜찮다며 능청을 떨었다. 잠시 이렇게 덕담을 나눈 범석은 레이미를 데리고 조직위원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때 그 뒤를 렉스터가 조용히 뒤따르며 미심적은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너 다음 경기에서도 지금보다 기록이 단축된다든가 그러는 것 아니겠지?”
갑작스런 렉스터의 돌출된 발언에 범석이 뜨끔했다. 잘 끝났나 싶었는데 새롭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수사관의 직감이란 무서웠다. 여유로운 척 표정을 지은 그가 몸을 풀며 말했다.
“당연히 기록이 단축되겠죠.”
“너. 설마……?”
얼토당토하지 않다며 범석이 마구 손사래를 쳐댔다.
“그런 거 아닙니다. 원래 중요한 결승을 앞두고 예선전 준결승전에서는 설설 뛰며 체력을 비축하는 하는 건, 누구라도 구사하는 전략입니다. 특히 저는 200M, 400M, 100M를 다 뛰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하고요.”
“아. 그런가? 그런데 하여간 결승을 갈 자신은 있기는 하냐?”
그 말에 범석이 어떻게 대답할까 살짝 고민을 했다.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앞으로의 수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렉스터도 사람인 이상 돈에 관심이 있을 터, 분명 자신에게 베팅을 할 것이 자명한 탓이다. 하지만 한 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준결승전부터는 관객들의 관심도가 높아져 총 베팅액이 크게 오르는 반면, 그가 베팅할 한도액은 여전히 30만 크랑이었다. 즉 렉스터가 끼어들어도 수입에는 큰 변동이 없다는 얘기다. 입을 막는 차원에서 또 비너스를 얻게 해준 은혜 갚음으로 가르쳐줘도 무방할 것 같았다.
“결승만 가겠습니까? 솔직히 경위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자신도 있습니다.”
렉스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저, 정말이냐?”
“네. 제 200M 최고 기록이 10초 461입니다. 이 도시 최고 주자인 아겔리아보다 0.1초 앞서는 기록입니다.”
눈이 시뻘게진 렉스터가 주위를 살피더니 그와 비너스, 레이미를 한적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진한 돈 내음을 맡은 탓이다. 세상에서 돈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 농담 아니지?”
“제가 경위님을 모시고 농담할 군번입니까. 당연히 진담입니다.”
“그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야?”
“글쎄요. 저 빼고는 없을 걸요.”
렉스터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독수공방해온 세월이 올해로 몇 해던가? 지금 엘프를 한 타스로 사서 주지육림을 이룰 기회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경찰 기동타격대로 키워 일을 시키면 평생 편안히 놀고먹을 수도 있었다.
“야. 그런데 나 좀 너한테 베팅 좀 해도 되겠냐?”
“뭐. 상관없죠.”
“네 수입이 떨어지는 데도?”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돈 때문에 이번 경기에 출전한 게 아닙니다.”
부들 손을 떤 렉스터가 범석의 어깨를 팍 하고 한 번 내리쳤다.
“좋아! 그럼 적금 깨서 다 너한테 올인 한다. 대신 절대 거짓말이면 안 된다. 알았지?”
“아참 거짓말이면 깨신 적금 제가 다 물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드릴까요?”
렉스터의 표정이 볼만할 정도로 환해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다.
“됐어. 그 정도까지 말해줬으면 됐어. 그럼 나 은행 좀 다녀와야 하니 간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아참 그리고 베팅은 베팅타임 시작되자마자 바로 하십시오. 그래야 수입이 좋습니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렉스터가 자리를 횅하니 떠나갔다. 그 만큼 마음이 급했던 탓이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기회가 지금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은행도 다녀와야 하고, 베팅을 위해 여러 가지 파악해두어야 정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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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