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22
124화
“크크크. 뭐? 절대 대표팀을 나갈 일이 없다고 했나?”
어둠 속 저편. 담장 음영에 숨어서 빈센트의 비아냥거림을 듣는 클라트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신만만하게 대표팀에 남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범석이 담장을 넘어 외부로 빠져나와 저리 서성이고 있었던 탓이다. 멀리서 플라잉 택시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완전히 이 지역을 빠져나가려는 의도가 확실해 보였다.
“이걸 그냥!”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라 튀어 나가려는 순간 빈센트가 옷깃을 부여잡았다.
“자네. 가서 뭐 어쩌려고?”
“대표검투사가 야밤에 몰래 대표팀 훈련캠프를 나가는데, 가만히 두란 말입니까?”
“물론 맞는 얘기지. 하지만, 무한 외출증 끊어줬다며? 튀어 나갔다가 외출증 던져주고 가면 어찌할 텐가? 크크크.”
그럼 클라크로서는 받아들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줘야 할 입장이었다. 그는 입술을 잘끈 깨물고 다시 음영 속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딱히 나서서 막을 명분이 없기에 이대로 탈출을 감행하도록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막을 방도가 없겠습니까?”
“당연히 없지. 자네가 자충수를 둘 걸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저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고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는 편이 좋을 걸세.”
“어째서요?”
“잘 생각해보게. 아마도 자네와 범석군의 불화는 대충 기자들도 눈치챘을 게야. 지금은 양쪽 모두 조용히 있어서 가시화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저 아이가 대표팀을 무단으로 떠나갔다는 소식이 알려져 보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쪼아될 걸. 그럼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이번 예선 3차전은 보나 마나 한 얘기가 되겠지. 그리고 언론은 다시 이번 패전을 팀 스쿼드 문제가 아닌 자네의 지도력 문제로 귀결하려 들걸세.”
하며 빈센트가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목을 그었다. 즉 클라크가 대표팀 감독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의사표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네는 범석군에게 무한 외출증을 끊어줬네. 즉 어디로 갔는지만 알면 그다지 문제 될 일이 없지. 그저 기자들의 질문에 범석군이 외출증을 끊고 어디로 갔다는 얘기하고, 내가 나중에 잘 설득해서 입만 맞춘다면 간단히 끝이 날 일이지.”
“아니. 그렇다면 지금 설득해 주시면 될 것 아닙니까?”
“에이. 그게 아니지. 열이 받아서 야밤에 대표팀 담장을 넘은 아이가 설득한다고 들어먹겠는가? 좀 시간이 지나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지금 설득했다가는 역효과만 나게 되네.”
클라크가 수긍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화가 머리꼭지까지 오른 상황에서 무슨 얘기인들 통할까? 지금은 잠자코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는 곧바로 주자창에 서 있는 자신의 승용차를 불러냈다. 지켜보기 위해서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따라갈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뒤를 쫓기로 하죠.”
“잘 생각했네.”
그 사이 범석은 도착한 플라잉 택시에 몸을 싣고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져갔다. 이에 클라크와 빈센트가 자가용 플라잉 카로 뒤를 쫓으며 때아닌 추격전을 벌였다.
“후후. 벌써 아침이네.”
우베이시티 시외 터미널에 도착한 범석이 멀리 밝아오는 동창을 보고 무척 신기한 눈빛을 지었다. 새벽 1시쯤에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이동했을 뿐인데, 벌써 해가 떠올랐고 시계는 이미 시차에 맞춰 아침 6시를 찍고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슬립한 기분이랄까? 덕분에 신체시계가 잘못 작동됐는지 출출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도 많이 남은 터라, 그는 곧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이런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클라크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빈센트감독님. 어째서 저 아이가 이곳까지 왔습니까?”
“글쎄. 아무리 봐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야.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이 먼 우베이 시티까지 오다니……. 아예 대표팀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보군. 아니었다면 우리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이곳까지 올 까닭이 없지.”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클라크가 다급히 말했다. 범석의 대표팀 차출을 고사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계획은 철저히 틀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대표팀은 그를 중심으로 재편할 참이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으음~ 아마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걸세. 설득할 때 제법 공을 들여야 하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이 없네. 일단 미행하면서 기분이 풀어진 기색이 보이면 설득해 대표팀으로 데려가고, 아니라면 어디에 머무는지만 파악하고 그냥 돌아가야겠지.”
클라크가 편의점 안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지금 범석은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여성직원과 즐겁게 웃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풀린 듯도 보이는데요?”
“에이 아니지. 우베이 시티까지 도망쳐올 정도인데 벌써 풀렸겠는가? 아마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를 쓰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저 표정이 화가 난 것으로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니 내 말이 맞대도. 정 의심스러우면 자네가 한 번 들어가 보게. 단! 그 이후에 벌어질 사태는 난 절대 책임질 수 없네.”
이렇게까지 말하니 클라크로서도 감히 범석을 만나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들어갔다가 불같이 화를 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간다면 그다음부터는 전혀 대책이 없었다. 일단은 잠자코 사태를 파악하는 편이 좋았다.
“휴~ 알겠습니다. 이대로 기다려보지요.”
그 사이 모든 식사를 마친 범석이 편의점을 나와 터미널 외부에 있는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그리고 마침 서 있는 택시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에 빈센트와 클라크가 뒤따라 택시에 올라타고는 시급히 뒤를 쫓았다.
이후 꼬박 10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최종 목적지인 레드폭시즈팀의 훈련캠프였다. 범석은 떠나가는 택시를 뒤로하고 훈련캠프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을 보고는 갖은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꼼짝없이 기다리게 생겼네. 날씨도 추워죽겠구먼…….’
하긴 지금은 아침 7시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훈련 시작 시각이 한참이나 남아 있으니, 문이 열려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지금은 시즌경기가 없는 겨울 휴가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뭐했다. 한 시간 있다가 이 앞에서 에스더와 만나기로 했으니, 특별히 그 시간 동안 가 있을 만한 장소가 없었다. 결국,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근처 아크릴 칸막이로 사방이 막혀 있는 플라잉 버스 정류장에 들어섰다. 여기서 대충 한 시간을 떼어볼 요량이었다.
위이잉. 위이잉.
범석이 들어오자 정류장에서 기기에서 따뜻한 스팀이 흘러나왔다. 무척 반가운 일로, 이제 밖에서 추위에 떨 이유가 없었다. 이 세계는 수소발전과 핵융합발전으로 전기를 싸게 생산할 수 있었기에, 이런 한적한 버스정류장에도 난방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몸이 따듯해진 범석이 벤치에 등을 찰싹 붙이고 한가로이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털컹.
10여 분쯤 지났을까? 시계가 정확히 7시를 가리킬 때쯤. 레드폭시즈팀 훈련캠프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다. 이에 잠시 엉덩이를 띄우던 범석이 다시 주저앉았다. 트레이드 담당자가 출근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8시이니, 굳이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아서라 괜히 먼저 들어가 기다리고 있으면 자칫 이쪽이 안달이 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 거래에 손해가 생길 수 있고. 어차피 에스더를 만나야 하니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신경을 끄고 멀리 시민체육공원 쪽으로 시선을 돌릴 찰라. 안에서 한 엘프가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제법 큰 키에 금발을 머리 위로 땋아 올린 엘프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으음. 아겔리아도 금발인데. 머리도 땋아 올렸고 말이야.’
엘프 중에 금발은 무척 흔한 편이었고, 딴에는 검투사도 운동선수라 저런 식으로 머리를 땋아 올린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유독 긴 다리와 늘씬한 체형이 마치 아겔리아와 매우 흡사해 혹시나 싶었다.
‘어떻게 할까? 아겔리아면 잠시 만나볼까?’
범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팀과 몸값 협상을 하는 도중 검투사를 만나는 일이 프로협회에서 제공하는 트레이드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특히나 갓즈나이츠의 경우는 먼저 검투사에게 찾아가 영입의사를 밝히면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에 부정 이적협상 시 부과되는 페널티의 양이 더 클 터였다. 아겔리아처럼 주인 없는 엘프검투사들은, 갓즈나이츠에 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데, 소속팀을 무척 곤욕스럽게 만드는 사고도 예사로 저지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이적협상을 하기 전 아겔리아가 만났다가 외부에 알려진다면, 갓즈나이츠는 상당한 애로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 벌이는 팀 내 사고가 바로 자신이 부추긴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정체를 숨긴다면 별 탈이 없어 보였다. 지금 가방에는 혹시나 탈출 시 필요할까 싶어서 챙겨온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가 있었다. 이것들로 얼굴을 가린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었다.
범석은 곧 철저히 위장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오. 역시 아겔리아가 맞네.’
아겔리아는 조깅 도로 한편에 서서 몸을 풀고 있었다. 주력용 전문 스포츠화를 신고 제대로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보아 마음먹고 달려볼 심산인 듯 보였다.
범석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몰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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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겔리아.
구분 : 엘프(6년).
소속 : 레드 폭시즈 GC.
명성 : 4469.
악명 : 0.
H유무 : 무.
스테미나 : 8099/8100.
사회성 : 58, 근력 : 82, 체력 : 81.
민첩 : 87+10, 균형감각 : 87, 지능 : 78.
정신력 : 75. 판단력 : 73, 재주 : 61.
운 : 64.
현재기량/잠재능력 : 746/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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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바람의 정령.
특이사항 : 과거 다윈약품 소속의 스프린터. 작년 여름 하이른 센트럴리그 소속의 레드 폭시즈GC로 영입되어 2군 검투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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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많이 발전했는데. 레드 폭시즈 팀에서 아주 제대로 훈련을 시킨 모양이야. 이제 나도 주력으로는 아겔리아를 따라잡기 어렵겠어. 후후후.’
전에 70대 초반에 이르고 있었던 근력과 체력은 80대 초반쯤에 다다르고 있었고, 민첩과 균형감각도 10 가까이 올라 87을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다른 정신적인 능력도 고루고루 성장해 범석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 있는데다가, 그동안 큰 부상도 없었는지 잠재능력도 979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스텟만으로는 아겔리아가 범석보다 빠르지는 않아 보였다. 현재 그의 최대 민첩은 93+10. 아겔리아의 현재 민첩 스텟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됐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이 있기에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이 특성은 평소에는 민첩을 +10 상승시켜주는데, 발동 시 150분 간 모든 스텟을 추가로 +9 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즉 그녀는 한순간에 민첩이 +19가 되어 106에 이른다는 것이다. 가히 엄청난 특성으로, 제대로 성장시킨다면 스피드에 관한 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다.
‘흐흐흐. 이런 아이가 대장 검투사 된다면. 아주 죽여주지. 최고의 뜀새가 될 수 있거든.’
뜀새는 속칭 발 빠른 대장검투사를 의미하는 검투계의 은어였다. 검투 경기는 반드시 대장 검투사를 잡아야만 이기는 경기라, 뜀새가 있다면 상대편 팀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기껏 오랜 시간을 투자해 승기를 잡더라도, 요놈의 뜀새가 남은 시간 동안 지름 100미터의 경기장을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도망친다면 다잡은 경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물론 포획도구인 그물을 대거 준비하면 되지만, 2종류의 무기를 초과해 지닐 수 없다는 제약 탓에 전술 변화에 큰 난항을 겪게 되었다. 게다가 그물은 한 번 던진 후 수습하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완성된 뜀새들은 이런 그물 투척을 여유롭게 피해 다니기에 굳이 잡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데 아겔리아는 이런 뜀새의 능력도 최고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능력 또한 출중했다. 만약 그녀가 특정 무구에 전문화되고 많은 경기 경험을 쌓아, 갓즈나이츠의 대장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없었다.
정보창을 닫고 흡족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아겔리아의 옆으로 다가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
“야. 거기서 뭐하냐?”
마침 골반 관절을 풀던 아겔리아가 그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얼굴을 온통 선그라스와 모자, 마스크로 철저히 가렸던 탓에 감히 그가 범석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러시죠?”
“지나가야 하는데 네가 길을 막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녀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곳 조깅 도로는 폭이 넓어 몇 사람이 함께 어깨동무하며 지나가도 될 정도였다. 충분히 비켜서 걸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따져 물으려니 시비가 걸릴 듯 보여 길을 비켰다.
“자. 지나가세요.”
옆을 스쳐 지나가는 척한 범석이 되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잠깐. 너 복장을 보니까 요기 레드폭시즈팀 검투사 같은데, 맞아?”
“네. 맞아요. 그런데 왜 그걸 물으시는 거죠?”
“왜긴. 검투사가 스프린터나 신는 전문 스파이크를 신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 말에 아겔리아가 꽤 놀란 눈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일반인이 일반 조깅화와 스프린터 전문 스파이크를 구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관찰하면 밑창이나 굴곡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는 단지 스쳐 지나가면서 바라봤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ㅠㅠ. 오늘 야구를 안하네요. 한 참을 기다렸는데 ;;;;;;; 뒤늦게서야 월요일인줄 눈치 챘네요. 하하하.
그럼 모두들 편한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