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23
125화
“혹시 전에 육상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혹은 육상관계자세요?”
아겔리아의 집요한 질문에 범석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으음. 전에 잠시지만 육상을 해본 적 있어. 시대회지만 시합에도 나가봤고. 뭐 지금은 사정상 그만뒀지만…….”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일어나 범석의 앞에 섰다. 전에 육상선수를 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니, 너무도 반가웠다.
“시 대회 시합에 나갈 정도면 개조인간이시겠네요?”
“으음. 그래.”
“혹시 어느 시 대회에 나가셨나요? 종목은요? 최고 기록은요?”
범석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질문을 곧이곧대로 밝혔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하는 수없이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뭐. 자랑할만한 대회가 아니라서 그렇고, 그냥 200미터와 400미터에 출전해서, 400미터는 떨어지고, 200미터는 우승했어.”
아겔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귀를 팔딱거렸다. 아무리 시대회지만 200미터를 우승했다면 손으로 꼽히는 스프린터라는 얘기였다.
“그럼 지역정부 대회도 나가셨겠네요.”
“거긴 사정이 있어서 안 나갔어.”
“아니 왜요? 원래 결승 3위까지는 지역정부 대회에 나가잖아요.”
“알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다 사정이 있는 거지. 그걸 다 일일이 어떻게 말하냐? 그냥 신경 꺼라.”
아겔리아가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닫았다. 시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도 지역정부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뜻. 괜히 남의 사생활을 캐물을 필요가 없었다. 만약 좋지 못한 이유였다면, 초면에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이었다.
“아. 그렇군요. 알았어요.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지나가세요?”
“으음. 그냥 운동이나 할 겸 나왔지.”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곳은 레드 폭시즈팀의 앞길이기도 하지만, 우베이시티의 체육부지 중 일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청 관할의 축구장이나 야구장 등 여러 스포츠시설이 있었고, 이처럼 운동을 하러 나오는 시민이 많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하고 경주를 해보실래요? 시 대회 200미터 우승자라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듯 보이는데요.”
범석이 난색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보나 마나 자신이 지리라는 것쯤은 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1년이 넘게 스타트 연습도 해본 적도 없었고, 그녀의 민첩은 지금 자신을 약간 웃돌고 있었다. 보나 마나 출발부터 뒤지다가 결국에는 점점 거리가 벌어지며 패배를 할 터였다.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전에 이겼던 상대에게 진다는 사실은 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니. 됐어. 육상을 그만둔 지도 오래됐고. 또 지금 내가 신은 운동화는 너처럼 전문 스파이크도 아니잖아. 그냥 잠시 조깅이나 하다 갈란다.”
아겔리아가 급히 옆에 놓인 가방 속을 뒤적거리더니, 운동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포츠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다용도 운동화였다. 그녀는 꼭 시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하는 범석과 경주를 해보고 싶었다. 지금 입장에서 자신이 지금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알고 보기 위해서는 그만한 경쟁자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팀 내에는 육상을 전문으로 익힌 스포츠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 저도 이걸 신고 달릴게요.”
집요한 아겔리아의 보챔에 범석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간절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 나오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거절하기가 좀 힘들었다.
결국, 그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모자를 벗고 옆에 섰다.
“휴~ 좋아. 그럼 저기 보이는 야외 주차장 입구까지만이다.”
범석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본 아겔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정도 거리라면 약 100여 미터. 경주구간으로는 딱 알맞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옆에서 출발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안 벗으세요?”
“으음. 내가 눈에 병이 있어서 선글라스를 벗으면 안 돼. 강렬한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면 실명할 수 있거든. 그리고 마스크도 일부로 벗을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100미터 호흡은 필요 없으니까.”
빤한 거짓말이지만 알아들어 먹은 듯 아겔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병은 육상선수 은퇴의 원인으로 생각했고, 5초대에 경기가 끝나는 100미터 경주에서 호흡을 해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스프린터는 없으니 마스크도 상관없었다.
“네. 알았어요. 그럼 우리 시작해요.”
헛기침을 연발한 범석이 그녀의 옆에서 스타팅 자세를 취했다.
“출발신호는 어떻게 하지?”
“그냥 먼저 셋 세고 출발하세요. 그럼 알아서 제가 뒤따라 뛸게요.”
그가 피식하고 웃었다. 아겔리아의 스펙이 자신보다 좋기는 하지만,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5초대에 결판이 나는 100미터 경주에서 상대에게 스타트의 이점을 준다는 것은 큰 페널티였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번 경주의 승리는 자신의 차지였다.
범석이 곧 속으로 ‘위대한 의지’를 외치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출발!”
몸을 튕기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범석이 초반 기세를 살려 크게 앞서 나갔다. 여유만만하게 있던 아겔리아는 출발하고서야 이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청난 스피드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가는데, 도저히 스타트의 갭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점점 거리는 좁히고 있지만, 100미터의 짧은 구간에서 앞지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 대체 누구지?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분명히 유명한 스프린터였을 거야. 그럼 내가 모를 리가 없어.’
지금 자신의 기록이면 중앙정부 대회에 결선에 오를 정도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간 스타트에서 이득을 봤다고, 자신이 도저히 어쩌지 못할 지경까지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런 자라면 꾸준히 육상계 소식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이내 한 인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전 세계 육상계를 통틀어 아주 일부만이 속했다. 게다가 육상 선수로 흔하지 않은 개조인간이라는 사실과 검은 머리칼까지 지니고 있었다.
‘서, 설마 범석님. 그럼 절대 질 수 없어!’
아겔리아가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 레드 폭시즈의 관계자들의 눈치를 받으면서까지 주력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작년 춘계 리마시티 육상대회에서 자신을 이기고 200미터에서 우승을 한 범석 때문이었다. 당시 그녀는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그에게 엄청난 거리 차이로 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와 다시 대결을 벌이기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프로검투팀인 이곳 레드 폭시즈팀으로 이적을 왔다. 뭐 와서 보니 그게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뜻하지 않게 오늘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아겔리아는 곧 팔을 빠르게 전후로 흔들며 사력을 다해 뒤쫓았다.
한 보, 한 보 전진할 때마다 거리가 좁혀졌지만, 그만큼 결승점도 가까워졌다. 그리고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때쯤. 범석이 뛰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100미터 완주에 필요한 5초의 시간은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불과했다. 그는 먼저 목표한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고, 아겔리아는 또 패배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어때 내가 이겼지?”
범석이 생글생글 웃어댔다. 승리는 언제 경험해도 달콤했다. 특히나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면 더욱 그러했다.
이 모습을 본 아겔리아가 억울했는지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목표했던 상대를 이길 수 있던 이 기회를 한순간의 자만심으로 놓쳐버린 탓이다.
“이건 무효에요. 다시 뛰어요!”
“승부에 무효가 어디 있어? 패배했으면 패배를 인정해.”
“범석님이 먼저 정체를 숨겼잖아요. 뛰기 전에 알았으면, 제가 절대 질 리가 없었어요!”
뜨끔했는지 범석이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자신인 줄 알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정체가 밝혀져서는 절대 안 됐다.
“아, 아니야. 범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다고 제가 모를 줄 알아요?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시 대회 200미터 경주에서 우승하고 400미터에서는 떨어진 데다가 지역정부대회에는 나가지 않았다고요. 이 육상계에 그런 전적이 있고, 개조인간에다가 검은 머리칼을 지녔으며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은 범석님 빼고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범석은 더는 오리발을 내밀 수가 없었다. 결국, 살며시 선글라스를 내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하하하.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이거 내가 실수를 했는데.”
“모를 리가 없죠. 항상 범석님을 이기는 날을 고대하면 달렸으니까요. 그러니 빨리 다시 달려요. 이번에는 꼭 이기겠어요.”
그건 범석이 사양할 일이었다. 다시 승부를 하면 정말 지게 되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크게 성장해 있었다.
“그건 안돼. 네가 내 정체를 안 이상 더는 여기 있을 수가 없어.”
“아니 왜요?”
“그것도 말 못해. 나중에 실컷 같이 뛰어줄 테니까 잠시만 잠자코 있어. 절대 나를 만났다는 소리를 소속팀에게 얘기하지 말고.”
“정말 만났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같이 뛰어줄 것인가요?”
범석이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이적협상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녀는 갓즈나이츠팀의 일원이자 자신의 휘하 엘프가 되었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승부 해줄 수 있었다.
“그래. 그러니 절대로 나를 다시 봐도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아겔리아가 살짝 눈을 깜빡거렸다. 그와 다시 승부를 겨룰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 기다려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언제쯤 같이 달릴 수가 있나요?”
“뭐.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며칠 후가 될 수도 있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곧 이라는 점은 약속해 줄 수 있어.”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위장해도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지금은 그녀의 곁에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레드 폭시즈팀의 앞마당이니 언제든 관계자의 눈에 띌 수 있었고, 곧 있으면 트레이드 담당자가 출근할 예정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본 아겔리아가 잠시 몸을 푸는 척하더니, 다시 팀 숙소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오늘 아침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언제든 범석과 또다시 승부를 겨룰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호오. 대단하군. 이런 수준 높은 뜀새가 둘이나 있었다니.”
멀리서 이들의 경주 장면을 지켜본 빈센트가 턱을 괴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월드리그급에서 나올법한 뜀새의 달리기가 바로 앞에서 펼쳐졌던 탓이다. 그것도 둘이나 되었고, 하나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범석이었다.
같이 이 모습을 보았던 클라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번 주력 대결로 그의 포지션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료 화면으로 봐서 그가 빠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저런 빠른 발을 가지고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얘가, 왜 선봉과 중견만 하는 겁니까! 원래 대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글쎄. 그렇기야 하네만, 저 검술 솜씨를 대장에다 처박아 두기는 아깝지.”
하긴 대장 검투사는 장기로 따지자면 장군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함부로 검을 휘두르며 상대 팀 검투사와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됐다. 하지만, 대장의 최종적인 목적은 생존. 부득이하게 상대와 맞선 상태에서 승리를 점할 수 있는 뛰어난 검술도 대장 검투사가 꼭 갖추고 있어야 할 덕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뛰어난 검술실력과 빠른 발을 갖추고 있는 이가 흔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대장 검투사는 그 어떤 포지션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자네가 왜 상관인가?”
“저 얘가 대표팀에 들어올 아이니까 그렇죠. 가뜩이나 우리 에이번드 대표팀에 대장역할을 맡을 아이가 마땅치 않았는데, 저 얘가 대장을 맡으면 후방이 무척 든든해지니까 그렇죠.”
빈센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지금 대표팀의 대장을 맡은 아이가 바로 드래곤 나이츠 소속의 검투사였다.
“왜? 우리 아이가 마음에 안 드나? 그럼 그냥 소속팀으로 데리고 가지 뭐.”
앗차한 클라크가 손을 휘저어댔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요. 좀 더 좋은 옵션이 있으니, 활용하자는 겁니다.”
“범석이 말인가?”
“네. 그럼 범석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빈센트가 레드 폭시즈 훈련캠프 안으로 들어가는 아겔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얘는?”
클라크가 상당한 탐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솔직히 달리는 속도 하나만을 봤을 때는 아겔리아가 좀 앞섰다. 중반 이후로 급격히 벌어진 차이를 좁혀가는 모습을 보면 능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검술 솜씨야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대장 검투사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크음. 검술 솜씨와 기타 여러 능력만 뒤를 받쳐준다면 꽤 훌륭한 대장검투사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빠른 발만 가지고는 대장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나이도 어린데다가 잠재능력이 무척 뛰어나다면?”
그렇다면 다 필요 없었다. 지금은 막상 빈약해도 차차 성장해나가면서 채울 수 있었기에 최고의 대장 검투사 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주 출중한 대장검투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확실히 잠재능력이 뛰어난 아이입니까?”
“물론이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간단해. 저 아이가 원래 우리 에이번드 출신의 아이였거든. 다윈약품 출신의 스프린터였는데, 성장성이 탐나 제 작년에 우리 팀에서 영입하려고 했었지.”
“아니 그런데 왜 영입을 하지 않았습니까?”
빈센트가 입을 쩝 하고 다셨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아겔리아의 성장성을 오스칼의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SK가 이겼네요. 역시 죽어도 공명인가요? 아니면 부자는 3대는 간다는 옛날이 맞는 건가요? 야신께서 나갔음에도 해줄 때는 해주네요. 반면 기아는 기세가 꺾어서 걱정이네요. 하여간 야구는 가을 플레이오프 시즌이 제일 재미있어요. ㅎㅎㅎ.
그럼 모두들 편한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