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28
130화
“무슨 일이십니까?”
홀로그램 영상 위로 떠오른 서류를 뒤적거리던 클라크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경기 과연 누가 이기겠냐?”
범석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상당수의 월드리그급 검투사가 포함된 무로바가 자신들 에이번드대표팀을 이길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다들 무로바대표팀이 이길 것으로 예상할 겁니다.”
“난 네 생각을 물었다.”
“저도 대체로 무로바대표팀이 이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클라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만하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어차피 12대 12이 붙는 경기. 누가 이긴들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가 유독 강해 부담스러울 뿐이죠.”
화면을 내린 클라크가 그를 똑바로 직시했다.
“후후. 그럼 상대의 강함을 지우면 우리가 이기겠군.”
“그럴 수만 있다면 가능하겠죠.”
“좋아. 그럼 한 가지 문제를 내겠다. 상대는 월드리그급 주전급 검투사 11명이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들도 우리 주력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검투사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길 방도는?”
감독의 질문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로바를 이길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원래 그들은 13명의 월드리급 주전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격전으로 운이 나쁘게도 2명이 부상당해 엔트리에서 빠져 11명이 된 상태였다.
팔짱을 낀 범석이 넌지시 상대팀 더그아웃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검투경기에서는 기세 싸움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기세에서 밀려버린다면 약팀에게 패하기도 하죠.”
“후후. 그게 쉽다면 하위팀 감독들이 고생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쉽습니다.”
“왜지?”
범석이 차분히 대답하기 시작햇다.
“첫째. 일단 우리는 홈팀입니다.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에 힘입으니, 기세가 오를 수밖에 없는 반면 무로바는 정반대의 상황이죠. 둘째. 무로바는 지금 5전 전승을 달리며 최종예선 진출은 물론 조 1위까지 확정 지은 상태입니다. 굳이 이번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월드리그급 검투사들의 몸값이 무지 비싸다는 겁니다. 이런 쓸데없는 경기에서 부상이라도 당하게 하는 날이면, 소속팀으로부터 엄청 욕을 먹게 되죠. 그런데 벌써 2명이나 아작내버렸습니다. 여기에 또 한 명을 추가시키기가 대표팀 감독으로도 무척 부담스러울 겁니다.”
“후후. 그렇군. 그래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나가야 하지?”
“거친 플레이로 밀어붙여야죠. 아니 그 차원을 떠나 1라운드에서 무로바 주력 검투사 중 하나를 반드시 치료센터로 실려 보내야 합니다. 그럼 무로바의 대표팀 감독은 굳이 이번 경기에서 이기려 들지 않고, 자팀 검투사 보호에 들어갈 공산이 큽니다. 즉 소극적인 게임 플레이로 나간다는 것이죠. 그럼 자연스럽게 우리 에이번드가 기세에 묻힐 수밖에 없으니 저희의 승률은 그만큼 상승합니다.”
클라크가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고의로 상대팀의 검투사를 부상시키라는 말도 좀 그랬고, 설령 실천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에 참가하는 검투사들은 모두가 슈트로 몸을 완벽히 보호하고 있었는데, 불량품이나 아니면 장기간 사용해 낡지 않았다면 아무리 강한 힘의 엘프가 무구를 휘둘러도 꿰뚫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방법은 관절꺾기였는데, 출중한 기량의 월드리그급 검투사를 상대로 기술이 제대로 먹혀들어갈 가능성도 무척 낮았고, 고의적으로 이 같은 플레이를 실행했다가는 해당 검투사도 퇴장당해 팀에 큰 부담이 되었다. 당연히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과격한 방법이지만, 나쁘지 않군. 하지만, 너도 잘 알 텐데. 노골적인 관절기술은 바로 퇴장감이라는 것을 말이야.”
“관절 기술 외에도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방법.”
범석이 싱긋 웃었다. 라피네의 무투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실전과 같은 지하투기장을 전전하며 상대를 완벽하게 쓰러뜨리기 위한 여러 기술을 완벽히 몸에 체득하고 있었다.
“타격기를 이용한 뇌진탕입니다. 다만, 최악의 경우 당하는 상대가 약간 위험한 상태로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후후후.”
이런 그를 향해 클라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너무 잔인한 방법이지 않나?”
범석이 하등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명단을 살펴보니 무로바 대표팀 주전 검투사 중 다행히도 개조인간 남성이 하나가 껴 있더군요. 선봉을 맡고 있는 자인데 중앙의 시내를 건너올 때 확 보내버리면 됩니다.”
클라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범석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로서는 남자 개조인간은 부상시켜도 되다는 얘기를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부상을 당하는데, 남자와 엘프가 무슨 상관이 있어!”
“그럼 안 하시면 됩니다. 저도 별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승률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끙하고 고개를 돌린 클라크가 짝다리를 하며 경기장을 쳐다봤다. 스텐드 하단을 가득 메운 팬들의 열기와 응원소리가 더그아웃 강화아크릴 칸막이를 지나 귓가를 후비자 마음이 약해진 그가 다시 되돌아 봤다.
“잘못하면 죽나?”
“뇌진탕만 가지고는 죽지 않습니다. 대부분 얼마 있다 깨어나고, 최악의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워낙 비싼 몸값이라 면밀하게 병원에서 검진할 테니, 일찌감치 발견하고 급히 손을 써서 치료할 겁니다.”
하긴 현대 의학기술로는 즉사가 아니고서야 죽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 죽을 가능성은 아예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군. 방법은?”
“라피네에게 놈의 턱을 정확히 몇 대 가격할 기회를 마련해 주면 됩니다.”
그렇다면 테클로 쓰러뜨린 후, 두 명의 검투사로 목표가 된 상대의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으면 그뿐이었다.
“의외로 간단하군. 정말 가능해?”
고개를 가볍게 주억거린 범석이 라피네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아무도 들리지 않게끔 조용히 말했다.
“라피네. 전에 상대를 뇌진탕에 걸리게 만들 수 있다고 했지?”
“글쎄요. 워낙 정교한 기술이라,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게 상대의 턱을 제대로 3연타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을 준다면 높은 확률로 실행할 수 있어요.”
가능하다는 말에 클라크가 급히 자리에 일어서서 말했다.
“실전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나?”
라피네가 미소로 긍정을 표했다. 자신의 무투기술은 모두 실전을 바탕으로 했다.
“네. 실전에서 자주 사용 봤어요. 상당수 통하기도 했고요.”
“좋아. 그럼 라피네. 너는 1라운드에 출전해 선두에서 달려오는 한 검투사를 향해 그 기술을 사용해라.”
“라피네. 개조인간 남자 검투사다. 다른 아이는 절대로 안 된다.”
범석이 대화에 끼어들자 클라크가 살짝 노려 보고는 다시 말했다.
“어때 라피네. 자신 있나?”
“네. 제대로 타격할 시간만 벌어준다면요.”
“그건 염려하지 마라. 확실한 기회를 주마.”
“네. 알겠어요. 해보겠어요.”
“그래. 그만 자리로 돌아가 편히 쉬고 있어라.”
라피네가 자신의 벤치로 돌아가자 클라크가 진지한 눈빛으로 리마시티 콜로세움의 경기장 전경을 계속해서 살폈다.
원래 그는 이번 월드컵 대회는 이번 3차전 진출로 만족하려 했다. 자신의 월드리그 경력과 그간의 대표팀 성적으로 감독의 자리가 위태롭지 않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다음번 월드컵에서 확실한 전력으로 본선 진출을 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3차전 조별 예선을 수행하며, 욕심이 샘솟듯 피어올랐다. 솔직히 최종 예선에 나간다고 해도 지금 전력으로는 본선에 진출의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지만, 대표팀 검투사들에게 전 세계 64개 강팀이 맞붙는 최종예선전을 경험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를 밑거름 삼아 다음 월드컵을 대비할 수 있을 터, 본선 진출의 희망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경기를 이겨야 했다. 물론 이오닉 팀이 랜드닉 대표팀을 상대로 패전한다면 최종예선에 자동진출하겠지만, 워낙 약팀이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저번 월드컵 때의 에이번드 팀을 보는 듯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5전 전패로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으니, 열의도 그다지 높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으로서 클라크가 선택할 길은, 범석의 제시한 전략으로 상대의 기세를 확 꺾어버린 후 무승부 작전으로 나가다가 한 라운드에서 승리해 경기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생각을 마친 클라크가 더그아웃이 울릴 정도로 박수를 쳐대고는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작전 변경이 있다! 1라운드에 출전할 주력들은 모두 여기로 모여라!”
그러자 벤치 곳곳에 앉아 있던 주전들이 일어나 다가왔다. 그는 전자수첩으로 경기장 전경을 홀로그램 화면으로 띄우고는 차근차근 방금 구상한 작전을 설명해 나갔다.
이를 들은 대표팀 검투사들은 어쩔 줄을 몰라 웅성거렸다. 워낙 해괴망측한 전술이라 도무지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오랜 기간 검투사생활을 해왔던 멀시도 이런 전략을 수행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작전 자체는 워낙 간단했기에, 어렵지 않게 감독의 뜻에 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들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이번 작전을 깊이 되뇌며 몇 번이고 복기했다.
그리고 화려한 경기 전 행사를 마친 얼마 후.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 멘트가 들려왔다.
– 월드 최종예선으로 가는 마지막 6번째 경기. 에이번드 대 무로바 대표팀간의 경기를 오늘 중계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열정의 에드번드냐? 아니면 강자의 면모를 갖춘 무로바이냐? 오늘의 승패가 흥미진진 예상되는 가운데, 양 팀의 운명적이 대결이 곧 시작되겠습니다. 해설 위원님 오늘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 글쎄요. 객관적인 볼 때는 상당수의 월드리거가 포함된 무로바가 승리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홈팀의 이점과 승리의 대한 갈망이 더욱 간절한 에이번드도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아마도 승패는 막상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 그렇다면 흥미진진한 경기가 예상할 수 있겠군요.
– 글쎄요. 그건 동시간 대에 벨로나시티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이오닉과 랜드닉 경기를 꾸준히 살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초반에 랜드닉팀이 이오닉 팀을 크게 이긴다면, 에이번드 팀으로서도 굳이 무리하며 싸우기보다는 비기려 할 것이고, 전력을 보전하고 싶은 무로바도 이에 호응해 느슨한 경기를 펼쳐나가리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어 이오닉이 랜드닉팀을 상대로 라운드 승수를 쌓아나간다면 에이번드팀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그때는 아마도 양 팀 간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아주 볼만한 경기내용이 펼쳐질 겁니다.
– 아. 그럼 경기내용을 위해서는 이오닉이 이겨야 하겠군요.
순간 관중석 팬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아나운서석으로 한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물론 이들이 돈을 내고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왔지만, 아주 볼만한 경기 내용이 펼쳐지다가 에이번드 대표팀이 떨어지기보다는, 좀 느슨한 플레이를 하더라도 자 지역팀이 최종 예선전으로 올라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연히 조금 전 아나운서의 발언이 꼬깝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해설자가 급히 마이크를 잡고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 아. 그렇지만 제가 알아보니, 랜드닉 대표팀이 전패로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다며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오닉이 강팀이라도 승리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겁니다.
– 큼큼. 그렇군요. 하여간…….
아나운서가 하려던 말을 끊고 양 팀 출전 터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양 검투사들이 이미 나와 경기 시작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다. 이에 그가 전광판에 뜬 명단을 읽어내려가며, 1라운드에 출전할 검투사들을 간략히 설명해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긴 호각소리와 함께 에이번드와 무로바의 대표팀 주력들이 서서히 입장을 시작했다.
– 양 팀 검투사 입장!
서서히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간 양 팀 검투사들이 시내를 앞두고 상대를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이 순간. 응원하러 나온 팬들이 쥐죽은 듯 숨죽여 바라보며 에이번드 대표팀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이런 전경을 멀리 더그아웃 안에서 살펴보던 범석이 클라크를 쳐다봤다.
“그런데 감독님 저는 언제 출전시켜 줄 겁니까?”
팔짱을 낀 채로 다리를 꼰 클라크가 잠시 대답을 미루었다. 오늘 경기에 반드시 승리하기로 결심했으니, 언제 그를 투입할지 예상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범석의 성미 상, 언제 어디서 튀는 행동을 해 경기의 흐름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몰랐다. 뭐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나 할까나? 실력은 참 인정해 줄 만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영 골치 아픈 존재였다.
하지만, 그를 내보내지 않으면 총 18명으로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무리를 감수해야 했다. 언제고는 한두 번 내보내 다른 검투사를 쉬게 해야 했다.
“글쎄.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혹시 극적인 상황에 내보내 승리의 모든 영광을 저에게 돌려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글쎄. 패전 처리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 중인데.”
범석이 삐쭉 입을 내밀며 말했다.
“경기 전 패배를 예측하는 일은 감독으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일도 대표팀 검투사가 갖출 덕목이 아니다. 특히나 오늘 같은 상대로 두고 말이야.”
“후후후. 하지만, 주눅이 든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죠.”
그를 쳐다본 클라크가 흰 이를 드러낼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무로바 대표팀은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상대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경기장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1라운드가 시작될 테니, 범석과 농담할 시간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하아. 9회말 무사에 1, 3루. 외야 플라이 한 방이면 역전후 게임 끝. 막강 화력 롯데가 이걸 못해주네요. 그리고 결국에는 10초 홈런 한 방에 무너지고요. 역시 야구는 끝까지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보내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