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29
131화
삐이익!
– 네.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라피네를 선두로 나머지 선봉들이 발목이 잠긴 만큼 시내로 들어가, 무로바 대표팀 검투사들의 도강을 견제했다. 그 뒤로 중견들이 따라붙으며 지원할 준비를 했고, 대장인 멀시를 비롯한 후미들이 바짝 붙어서는 진을 구성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추행진의 형태. 무로바의 검투사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공격할 태세를 만반이 갖추고 있었다. 전력 차가 확연히 나는 와중에도 에이번드팀이 방어진이 아닌 추행진을 선택하자, 이번 라운드를 쉽사리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추행진은 전형적인 공격진으로 적진을 돌파하는데 큰 효율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돌파에는 취약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득의의 표정을 지은 무로바 검투사들이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며 도강의 기회를 엿보았다.
“이때야! 선봉 돌격해!”
잠시 에이번드 검투사들이 움찔하며, 미처 자신들의 이동을 따라붙지 못한 사이 무로바의 선봉 검투사들이 점프해 도강을 시도했다. 하지만, 틈을 보인 것은 에이번드 팀의 기만동작.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라피네. 지금이다!”
순간 라피네를 제외한 선봉과 중견들이 건너온 세 명의 무로바 검투사들을 향해 태클을 시도해 넘어뜨렸다. 그리고 대장인 멀시와 후미들이 뒤이어 도강해 오는 무로바의 중견들을 막아갔다.
라피네는 일리스와 동료 하나에게 잡혀 넘어져 있던 목표인 7번 검투사를 깔아뭉개고는 꽉 쥔 양쪽 주먹으로 턱의 끝 부위를 연달아 타격했다.
퍽. 퍽. 퍽.
허리에 잔뜩 탄력감을 실은 정확한 3번의 주먹질.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엄청난 힘의 타격으로 7번 검투사의 고개가 기이하게 좌우로 젖혀져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장 안을 울리는 요란한 기적소리와 함께 전광판의 시간이 멈추었다. 바로 경기정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제대로 공격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한 라피네가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7번 검투사의 몸을 꽉 부여잡고 있는 일리스와 동료 검투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룰이 비교적 단출한 검투 경기에 있어서, 이처럼 경기 진행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일은 부상자의 발생 말고는 좀처럼 없었다. 분명히 7번 검투사는 의식을 잃었고, 착용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센서가 이런 그의 상태를 의료진들에게 알린 것이 확실했다.
이내 무로바 팀 입장터널 입구에서 긴급히 의료진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호호호. 됐어. 보냈어.”
서서히 일어서서 떨어져 있던 무구들을 주운 에이번드 검투사들이 일제히 무로바 검투사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날려보냈다. 이번 부상자 발생이 고의였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막 도착한 의료진들이 7번 검투사의 헬멧을 벗기고는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구 진행자 측에 손을 휘젓고는 부양식 들것에 태웠다. 이 모습을 바라다본 무로바 검투사들이 격양된 시선으로 에이번드 검투사들을 쳐다봤다.
– 이거 암만 봐도 이상한데요. 무로바 대표팀 7번 검투사의 부상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해설자의 발언 뒤로 아나운서의 질문이 뒤이었다.
– 예사롭지 않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 아무래도 이번 부상은 고의성이 엿보이고 있어요.
– 왜요. 제가 보기에는 룰을 어긴다든가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 네. 맞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태클 공세와 멀시 검투사를 비롯한 후미들이 유기적으로 상대 중견의 도강을 견제한 점은 무척 조직적인데 반해 쓰러트린 상대 선봉에 대한 공격이 너무나 어설펐습니다. 태클로 쓰러뜨렸는데, 왜 라피네가 자신의 쌍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주먹질만을 사용합니까? 검으로 꼼짝 못하는 7번 검투사의 복부를 찌르면 바로 행동불능 상태가 되며 킬 포인트 하나를 올릴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다른 태클러들에게 잡힌 다른 선봉들을 모두 없앨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주먹질로만 일관했죠.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얼마후 7번 검투사가 부상으로 실려갔습니다.
아나운서가 들릴 정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고의로 부상을 입혔다고 한다면 문제가 상당히 커졌다.
– 그럼 이번 전술의 목적이 무로바 검투사를 부상시키는 것이었단 말입니까?
– 글쎄요. 제가 라피네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지금 무로바에서 가장 꺼리는 일이 부상자 발생이니까요.
– 하지만, 사고가 아닌 이상 주먹으로 가격하는 일로 상대를 부상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너무 무리한 해석이 아닙니까?
– 글쎄요. 그렇기는 하지만, 포퍼먼스가 큰 주먹질로 시선을 유도한 다음 암중에 다른 수를 썼을 수도 있죠. 가령 7번 검투사를 붙잡고 있던 태클러들이 몰래 관절기를 사용한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마침 자세한 리플레이 화면이 떠오르자 해설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태클러들이 한 일이란 고작 7번 검투사의 양쪽 팔과 어깨를 무릎과 양손으로 지면에 누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행동만 가지고는 에이번드에서 반칙을 범했다고 추측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의료진에서 보내온 부상원인은 뇌진탕이었다. 검투계 역사상 고의로 뇌진탕을 일으킨 예는 한 번도 없었다. 검투사들은 주로 검을 다루었기에 맨손기는 그다지 능통하지 못했다.
– 에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 그, 그렇군요. 제가 아무래도 잘못 예상한 듯 보입니다.
곧 무로바에서 교체 검투사 하나를 더 내보내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양 진영이 시내를 앞두고 진형을 구성했다. 1라운드가 재개되자 지루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무로바 팀에서 감히 공격해 올 생각을 못하던 탓이다.
현재 무로바는 3명의 주력 검투사가 부상을 당한 상태인데, 모두 한 월드리그 프로팀에서 차출해 온 검투사들이었다. 또다시 부상 검투사가 발생했을 시에는 해당팀은 4명의 주력이 빠진 상태에서 봄철 리그를 수행해나가야 했다. 가뜩이나 하위에서 전전긍긍하는 팀인데, 더는 소속 검투사를 희생시키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아무리 무로바 주민들을 위한다지만, 쓸모없는 경기를 위해 무로바 지역정부의 자랑거리인 월드리그 검투팀을 센트럴리그로 강등시킬 수는 없었다. 이는 해당 프로팀에게도 손해일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게도 많은 피해를 안겨다 주었다. 강등은 곧 많은 주력 검투사들의 유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만 봐도 이번 부상은 고의로 예상되었다. 다만, 반칙성이 아니어서 따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무로바 감독의 선택은 승부를 피하는 일뿐이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1라운드가 싱겁게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팬들은 환호를 보내며 에이번드팀의 주력들을 응원했다. 지금 이오닉과 랜드닉과의 경기도 1라운드를 비긴 상태라, 이대로만 간다면 월드컵 최종예선진출도 꿈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라운드가 많기에 긴장의 끈은 풀지 않고 있었다.
“모두 잘했다. 안으로 들어와 쉬어라.”
클라크의 치하에 에이번드의 주력 검투사들이 의기양양 벤치로 가 앉았다. 이번 전술의 주인공이었던 라피네는 귀를 팔랑거리며 범석의 옆으로 와서 알짱거렸다.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모를 리가 없던 범석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다. 라피네. 덕분에 에이번드 팀이 크게 유리해졌다. 이제 무로바의 공세는 무척 무뎌지게 될 거다.”
“뭘요. 그저 주먹을 몇 번 날렸을 뿐인데요. 호호호.”
“후후. 하지만, 아무나 날릴 수 없는 주먹이니 문제지.”
주종 간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클라크가 범석을 불렀다.
“오범석. 이리와 봐.”
라피네의 등을 도닥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감독에게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클라크가 멀리 경기장 정경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이 경기장의 지형이 어떠냐? 가운데로 시내가 지나고 있으니, 공격 측에서는 무척 불리하겠지?”
물론이었다. 전에 범석도 리그전을 치르며 도강에 실패해 몇 번 곤욕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했고, 한 번은 주력으로 해당 경기에서 패한 적이 있었다. 정말 맘먹고 상대팀이 견제를 한다면 정말 경기운영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얼마 전에 시청에 가서 지형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대표팀 사정으로 불가능하다고 통고를 받고 반포기를 한 상태였다.
“네. 공격 측이 도강할 때 큰 빈틈이 생겨버리니, 저번 라운드와 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그래서 여기를 홈 콜로세움으로 삼는 저희 갓즈나이츠팀으로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형을 교체해 볼까도 생각 중인데 네 생각은 어때?”
범석이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곳 리마 콜로세움은 갓즈나이츠의 홈경기장이기도 하지만, 대표팀의 주 경기장이기도 했다. 비교적 약팀에 속하는 에이번드 대표팀이 사용하기에, 이처럼 약팀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정작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가, 교체하자고 제의를 해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번 라운드도 중앙의 넓은 시내 없었다면, 라피네를 활용한 전략이 쉽게 성공하지 못했을 터였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원래 대표팀의 편의로 지형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까?”
클라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드래곤나이츠가 센트럴리그에 진출함으로서 실력 있는 검투사들이 대표팀에 유입되고 있었고, 갓즈나이츠에서 범석을 비롯한 라피네, 오스칼 같은 검투사들이 계속 추가 지원될 터였다. 즉 이제는 강팀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랬지. 하지만, 상황이 뒤바뀌었다. 드래곤나이츠의 센트럴리그 진출을 시작으로 에이번드 팀은 점점 강팀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의 지형이 앞으로 우리 대표팀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형을 약간 바꿔보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지?”
범석으로서는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갓즈나이츠이 주력은 에이번드 지역 내 최강. 굳이 불리한 지형을 안고 싸울 필요가 없었다.
“바꾸면 저로서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으음. 그래? 다행이군. 그럼 시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 자 그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널따란 중앙의 시내를 바라본 범석이 턱을 괴며 말했다.
“글쎄요.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저 시내를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용도 그렇지만,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저 시내를 없앨 수는 없다. 괜히 육지로 메웠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시 파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규정상 지형의 변화는 4년에 1회만이 가능하다.”
하긴 군발이 삽질시키는 일도 아니고, 시에다 계속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굳이 시내를 없애지 않더라도 공격진에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럼 다리를 하나를 놓죠. 그럼 공격측이 진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일제히 공격해 들어갈 수 있으니, 불리한 상황은 많이 없어질 겁니다.”
클라크가 동조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어측이 다리의 입구를 막으면 여전히 곤란하기는 했지만, 점프를 해 시내를 건너편보다는 공격 측에 훨씬 유리한 지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군. 다리가 적당하겠군. 좋아 그럼 같이 시에다 건의해볼까?”
“후후후. 저야 좋죠. 그런데 언제쯤 하려고 합니까?”
“글쎄.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요번 대표팀 경기가 끝나자마자 하는 것이 어떨까?”
범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경기가 끝이 난 후 열흘 후쯤에는 리그가 시작되었다. 다리를 건설할 시간으로는 촉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월드컵 최종예선에 올라간다면, 지금의 지형이 에이번드팀에 극히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사기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번 경기가 끝나면 열흘 후에 리그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월드컵 최종예선전에 올라간다면 저희보다 강팀만 모일 테니, 지금의 지형이 유리할 테고요.”
클라크가 피식 웃었다. 지금 그가 리마시티 콜로세움의 지형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는 최종라운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표팀 검투사들에게 새로운 지형 속에서 최종예선전에 나올 강팀과 맞서 싸우는 요령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괜히 다음 회 월드컵쯤에서 부랴부랴 지형을 바꾸는 것보다는, 이편이 본선 진출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상관없지 않을까? 다리 건설이야 조립식 철제 다리로 만들면 하루면 되니까. 그리고 우리 에이번드가 최종라운드에 출전한다고 쳤을 때 과연 우리 팀이 이길 만한 경기가 있을까? 대다수 무로바 같은 강팀인데다가, 종종 약팀이 있어도 이오닉과 같은 팀인데, 여기서 에이번드가 살아남기는 어렵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음 월드컵을 대비하는 경험의 장으로 삼는 편이 낫지.”
“뭐. 그야 그렇지만, 굳이 지레짐작 최종예선전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운이 좋아 통과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네 말도 맞다. 미리부터 포기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수가 필요하다. 6게임 모두 비겨봐야 승점은 단지 6점. 이런 팀이 조별 예선에서 통과한 예는 거의 없다. 만약 우리가 꼭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무승부만 펼쳐도 본선에 출전하는 강팀을 이 홈에서 만나면 어떻게 할 텐가?”
그럼 대책이 없었다. 상대 팀은 무리하게 도강할 이유가 없으니, 결국에는 에이번드가 넘어가야 했다. 그럼 그 경기의 승패는 보나 마나 패배였다. 무승부 작전을 펼치기 위해 유리한 홈경기장의 지형이 홈팀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지만,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까요?”
“비슷한 경우가 오늘 당장에 일어나지 않았나? 만약 이오닉이 다음 라운드에서 랜드닉팀을 꺾고 승리한다면 우리가 넘어가 무로바를 쓰러뜨려야 한다. 아니면 최종예선 진출은 없지.”
할 말이 없던지 범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이번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 한 라운드 이상을 가져가야 했다. 다행히 1라운드 작전으로 무로바의 공세를 무디게 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 넓은 시내는 큰 장애물로 다가올 것이 확실했다.
============================ 작품 후기 ============================
오. 오늘은 롯데가 이겼네요. SK에게 안된 일이지만,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죠. 플레이오프 전은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경기에서 피터지게 양팀이 싸우는 장면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하하하.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