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36
138화
“저기 이사장님. 어째서……?”
“아. 알고 봤더니, 파파라치가 아니라 기자더라고. 언론에 알릴 일도 있고, 이리 데리고 왔지.”
“언론에 알릴 일이라뇨?”
“뭐긴. 네가 단장이 된다는 얘기지.”
그 말에 나탈리가 가방에서 카메라를 급히 꺼내 들었다. 여성이 프로스포츠팀의 단장이 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물론 기존에 단장대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대다수 스포츠 언론은 범석이 차후에 인지도 있는 인물을 데려와 단장으로 앉힐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에스더는 나이도 어리고 스포츠계통에서는 금녀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에스더가 단장이 된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다.
“정말 에스더씨가 갓즈나이츠의 단장이 되나요?”
“응. 오늘부로 결정 났어.”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거죠?”
“뭐긴 자금관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지.”
“하지만, 단장이라는 자리가 자금관리 능력만 갖추고는 모자라잖아요. 폭넓은 인간관계와 인지도. 장기간의 경력 등등……. 갖추고 있어야 할 교양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물론 그렇기는 했지만, 에스더에게는 아주 중요한 요건을 만족하고 있었다. 바로 예쁜 여자라는 점으로, 이는 범석이 생각하는 단장 조건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스포츠계에는 이 조건을 만족할 수준의 인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성을 갖춘 여성도 별로 없었고, 간혹 있더라도 쭈글쭈글 주름이 잔뜩 끼인 중년의 아줌마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언론이나 당사자의 앞에서 떠벌릴만한 정보가 아니었다.
“상관없다. 그런 요건은 단장자리에 앉아 있으면 언젠가는 채워진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에스더를 신뢰하고 있고, 그녀라면 안심하고 팀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바로 갓즈나이츠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장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탈리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팀의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에 외부인인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에스더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자 그럼 에스더씨.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죠? 예쁘게 찍어드릴테니 잘 좀 포즈를 취해 주세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에스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론을 통해 자신이 갓즈나이츠의 단장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녀는 옷맵시를 단정하게 하고 정자세를 취했다.
“네. 준비됐어요. 찍으세요.”
“너무 딱딱해요. 표정과 몸에 들어간 힘을 푸세요. 탁자에 팔을 대고 턱을 괸후 차분하게 미소를 짓는 편이 좋겠어요.”
에스더가 어색해하며 그녀가 말한 대로 자세를 취했다.
“이, 이렇게요?”
“네. 그럼 찍을게요.”
몇 번의 플래시 터지고 나탈리가 좌석을 가져와 옆으로 앉았다. 에스더와 할 얘기가 많았던 탓이다. 그녀들은 단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소감 등의 소재를 나열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를 바라보던 수잔이 범석에게 조용히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이사장님. LKS방송이 어디에요? 저는 처음 듣는데요.”
“아. 작년쯤에 만들어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방송사라고 합니다. 그다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수잔씨는 모를 겁니다.”
수잔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명하지 않다면 자신이 모를 수가 있었다. 그만큼 세상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방송사가 많았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오늘 같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아주신 거죠? 자칫 저희가 나누는 개인적인 대화가 언론에 노출될 위험이 있잖아요.”
범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이따가 전자신문 지상에 올릴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분명히 주지시킬 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올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들어보니 LKS방송은 하루 수백 접속밖에 없는 아주 작은 방송사라고 합니다. 시청자들이 그다지 주목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저희가 부정을 표하면 흐지부지될 겁니다.”
그리고 나탈리를 영입 완료하면 100%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 잠깐요. 수백 접속밖에 안 된다고요? 그런데 어째서 인터뷰를 받아 드린 거죠? 그런 방송사라면 굳이 저희가 따로 자리를 할애할 필요가 없잖아요.”
목소리가 컸는지 나탈리가 듣고 수잔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론 지금은 작지만, 언젠가는 크게 키워 세계에서 알아줄 만한 방송사로 만들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저희 방송사와 인터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해 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냉랭한 목소리에 수잔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분명히 실례가 되는 언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에요. 전 그저…….”
그러자 범석이 나탈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슬슬 영입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오호. 대단한 자신감인데. 그래 그게 언제지? 정말 궁금하네.”
“그, 그게…….”
그녀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입을 굳게 닫았다. 직원은 딸랑 자기 혼자에다 회선용량이 모자라 동영상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텍스트정보조차 며칠씩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유지비를 벌기 위해 자신은 악세사리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다. 수많은 군소 방송사가 난립하며 피 터지는 경쟁을 하는 이 세계에서 LKS방송사가 성장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명함만 방송사일뿐, 개인 홈페이지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 자신 없어?”
“아뇨. 자신 있어요.”
“그럼 언제인지 말해봐. 참 궁금하네.”
나탈리가 당당한 표정을 하고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제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운이 좋다면 빨리 성장할 테고, 아니라면 늦겠죠.”
“그야 그렇지. 하지만, 네가 세워놓은 사업계획이 있을 것 아니야? 언제쯤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해 방송사를 얼마큼 키워놓겠다는 것 말이야. 설마, 사업하는 사람이 이런 계획도 없이 막무가내로 회사를 키우지는 않겠지?”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곡을 찔러온 탓에, 대꾸할 말을 쉽게 찾지를 못했다. 장사해 돈을 벌랴, 사이트의 자료를 업데이트를 하랴 바쁘게 살아가는 탓에, 그런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다, 당장은 없지만, 나중에 꼭 세울 것이에요.”
“이런. 나중에 하겠다? 이런 말은 실패자나 할 변명인데. 아무래도 힘들겠어.”
범석은 호감도의 하락이 빤히 보임에도 나탈리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있었다. 영입을 위해서는 그녀가 지금 하는 소꿉장난 식의 방송사업을 그만두도록 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얼마나 무모한 행동을 하는지 인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나탈리는 격한 반응을 여지없이 쏟아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실패자요?”
“으음. 아닌가? 하긴 아직 LKS방송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실패예비자라는 표현이 옳겠지.”
“뭐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범석이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며 물었다.
“설마 너는 LKS방송이 성공하리라고 믿는 거냐?”
“당연하죠! 제가 꼭 그렇게 만들 것이에요!”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질문을 던졌다.
“좋아. 그럼 한 가지만 묻지. LKS방송의 직원이 몇 명이나 되지?”
나탈리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대답했다.
“저 혼자에요! 하지만, 방송사에 수입이 생기면 그 돈으로 직원들을 뽑을 것이에요.”
“좋아 그럼 직원들을 뽑을 만큼의 수입은 어떻게 창출할 예정이지?”
“그야. 시청자들이 관심을 둘만 한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되죠. 그럼 자연스럽게 조회수가 올라가고 광고가 들어오겠죠.”
“그래 좋아. 그럼 그런 방송프로그램을 너 혼자 어떻게 만들 건데?”
“왜 못 만들어요!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죠.”
범석이 피식 웃었다.
“그래. 만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다 치자. 그다음 볼거리는?”
“또 만들면 되죠.”
“네가 질 좋은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얼만데?”
나탈리가 손으로 셈을 하며 말했다.
“뭐. 며칠 투자하면 만들 수 있겠죠.”
“지금 장난하냐? 그런 프로그램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튀어나와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며칠에 하나씩? 시청자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겠어? 다른 유수의 방송사로 채널을 돌리다가 결국에는 LKS방송이 뭔지도 잊어버리겠지.”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냉혹한 시청자의 눈이 LKS방송과 같은 작은 방송국에 오래 머무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뭐가 상관이 없다는 거지? 시청자들이 없으면 자금 유입이 없을 테고, 결국에 가서는 방송국이 망할 수밖에 없잖아.”
“아니요. 범석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틀려요.”
“뭐가 틀린다는 거지?”
“LKS방송이 건립된 지가 올해로 일 년째에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자금 유입이 없었죠. 그런데도 유지되고 있잖아요.”
범석이 짜증스러운 낯빛을 지었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네가 다른 일을 해서 자금을 충당하니까 그렇지. 솔직히 누군가 서버비용과 회선 비용을 공짜로 대주지는 않을 것 아니야.”
“맞아요. 지금 LKS방송국은 제가 직접 제작한 악세사리를 팔아서 번 돈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렇기에 절대 LKS방송은 망하지 않아요. 전 평생토록 LKS방송국과 함께 할 테니까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문 닫게 하지 않을 것이에요.”
무모하리만큼 황당한 나탈리의 발언에 범석이 당혹해했다. 이거 어린애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걸 말이라고 하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일을 해 유지비를 조달한다면 LKS방송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음은 맞았다.
“흐흠. 뭐 그렇다면 유지는 되겠지. 하지만, 인생을 허비하면서까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는 방송국에 굳이 목을 맬 필요가 있을까?”
“인생의 허비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무슨 뜻이지?”
“전. LKS방송과 함께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서 절로 흥이 날 정도로 말이에요. 그런데 인생의 허비라니요? 말도 안 되죠.”
범석이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LKS방송에 대한 사랑이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영입계획이 상당히 힘겨워질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설득을 위해서는 일단 우회했다가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새로이 접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됐다.
‘먼저 LKS방송국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겠지. 지금 나탈리를 묶고 있는 밧줄이 바로 이놈이니까.’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 긴장된 마음을 이완한 범석이 새롭게 대화를 모색해 나갔다.
“쩝. 네가 행복하다면 내가 할 말이 없지. 그런데 LKS방송국이 어떻게 설립된 거지?”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죠?”
“네가 하도 애정을 보이기에 궁금해서 그렇지. 보통이라면 일찌감치 접고 다른 직업을 찾을 테니까.”
그 말에 나탈리가 입을 열었다. 범석이 자신의 인터뷰를 허락했으니, 그 정도 얘기 못 해 줄 리가 없었다.
그녀가 LKS방송과 인연을 맺었을 때는, 4년 전 처음으로 전문학교에 입학한 시기였다. 당시 나탈리는 TV에서 본 드라마에 감명을 받아 방송과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를 못해 많은 유명 방송인을 배출한 유수의 전문학교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온 곳이 바로 여기 리마시티에 있는 한 전문학교의 방송과였다. 리마시티는 에이번드 지역의 중추도시이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지방에 속하는 지역이라 그다지 높은 성적이 아니더라도 방송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처음 학교에 등교한 그녀는 처음 교내에 있는 방송부에서 서클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저 방송인들 중에 교내 방송부에서 부활동을 했던 자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기에, 이런 경력이 자신의 꿈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부를 찾는 이는 나탈리만이 아니었다. 그녀 외에도 80명 정원의 방송과 신입생 절반에 방송부에 관심을 둔 다른 과의 학생까지 근 100명의 지원자 모여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내 규칙에 한 서클당 정해진 수용인원이 있기에, 신입부원을 20명밖에 모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방송부의 희망이 꺾였고, 같이 떨어진 과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한 군것질 파티를 열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은연중에 흘린 말이 자리에 모인 모든 친구의 관심을 끌었다. 새로운 서클을 만들자는 얘기였는데, 그 목적이 바로 방송사의 건립이었다. 방송인 꿈이었던 이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적인 제안으로, 어린 마음에 즉각 각자의 전자수첩을 꺼내 건립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런데 뜻밖에 방송사 건립의 진입 장벽은 무척 낮았다. 서버와 회선, 그리고 방송 프로듀서 3급 자격증만 갖추면 되니, 지금 모인 햇병아리들 몇 명으로도 충분히 건립할 수 있었다. 뭐 그 이후에는 치열한 경쟁이라는 무시무시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부푼 꿈에 젖은 이들에게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듯 나탈리와 친구들은 방송사 건립이라는 꿈을 안고 새로운 서클을 만들었고, 차근차근 필요한 요건들을 준비해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서버 구입비용과 회선 대여비용을 장만하는가 하면, 꾸준히 공부하며 프로듀서자격증 취득준비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 밤중이면 친구 자취방에 모여 앞으로 만들어질 프로그램과 방송사를 성장시킬 사업계획도 짜나갔다. 너무 거창해서 현재 상황에서는 적용이 불가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부푼 꿈을 논의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던 그들로서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렇듯 한해 한해가 지나고 3년 째가 되었고, 아이들은 자라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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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모두들 편한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