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42
144화
“사실. 저희 팀은 거금을 주고 아겔리아라는 검투사를 한 명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헤스티아를 구매할 비용이 모자랍니다.”
어두운 안색을 한 이단이 입을 열었다.
– 그럼 헤스티아에 대한 영입을 진행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아뇨. 영입할 마음은 있습니다. 다만, 자금 사정으로 전에 제시한 몸값으로는 영입이 불가능합니다.”
희망이 엿보이자 이단이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 얼마 정도면 트레이드를 진행하시겠습니까?
“흐음. 딱히 얼마 정도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2,000만 크랑 대 초반쯤으로 예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이상이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면 블루 버드팀에서 제시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경쟁팀이 많으면 그만큼 검투사 몸값의 상승을 가져오니, 갓즈나이츠와도 트레이드를 진행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보였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내일 한 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시간이 나십니까?
“물론입니다. 근래에 바쁜 일이 없어서 충분히 시간을 낼 수가 있습니다.”
이단이 잠시 시간을 살피더니, 바로 말했다.
– 혹시 오늘 오후에 시간이 되십니까? 이적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저희로서는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해 나가고 싶습니다.
“네. 됩니다. 지금 서둘러 준비하고 가면 한 3시쯤 되겠군요.”
– 잘됐군요. 그럼 그때 한 번 뵙기로 하시죠.
“네. 그럼. 3시에 뵙기로 하겠습니다.”
가볍게 목례로 인사한 범석이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에스더를 바라보며 자문을 구했다.
“에스더. 이거 난감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파이어 라이언스에서 거래처를 다변화할 의향인 모양이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에스더가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 바로 대답했다.
“지금 상황은 나쁘다고만 볼 수 없어요. 잘만 생각해보면 아주 호기라고 볼 수 있죠.”
“아니 왜?”
“우리가 영입의사를 밝힌 이상. 블루 버드팀에서 헤스티아를 재영입 해온다고 하더라도, 문제 생길 일은 없어요. 원하는 검투사였기에, 약간 웃돈을 얹어주고 다시 데려왔다고 우기면 되니까요. 게다가 저희는 이중으로 거래를 트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영입할 가능성이 커지게 될 뿐만 아니라, 양쪽에 거래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에 협상에도 유리한 고지를 밟게 돼요. 파이어 라이언스의 의도를 그만큼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파이어 라이언스에서 지금 우리에게 문의를 넣은 것처럼 다른 팀에게도 연락해 영입을 진행해 나갈 수 있잖아. 그럼 자칫 헤스티아를 빼앗길 수 있다고.”
에스더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아요. 검투사들은 특별히 몸값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거래된다면 바로 그 가격이 몸값이죠. 그런데 문제는 거래 시 먼저 의향을 비춘 쪽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헤스티아를 좋은 가격에 판매하려는 파이어 라이언스에서는 쉽게 다른 팀에 연락을 넣지 못해요. 지금 문의를 해온 이유는 과거 저희가 높은 가격을 제시한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에요.”
범석이 뿌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동안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매하는 쪽에서 특정검투사를 다른 팀에게 제시한다는 사실은 지금 자신들 사정이 급하다거나, 해당 검투사가 팀 내에서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사는 쪽에서는 몸값을 크게 낮추게 되었다. 헤스티아를 비싼 값에 넘기고 싶어하는 파이어 라이언스로서는 쉽게 선택할 방법이 아니었다.
“좋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영입 전략을 말해봐.”
“아주. 간단해요. 저희나 블루 버드팀에서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가격을 동결시키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가 약간 가격을 높게 가져가서 될 수 있으면 헤스티아가 갓즈나이츠 쪽으로 오게 해야겠죠. 차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없어지니까요.”
“한 마디로 담합을 하자는 얘기군.”
“네.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니까요.”
범석이 쉽사리 고개를 주억거렸다. 헤스티아를 블루 버드에서 영입하나 갓즈나이츠에서 영입하나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갔다. 괜히 경쟁을 붙여 손해를 입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담합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하고도 유일한 전략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나는 준비하고 파이어 라이언스로 갈 테니까. 에스더 너는 렉스터경감님께 연락을 취해 거래가를 계속 동결시키라고 해.”
“네. 알겠어요.”
대답을 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할 일이 제법 많았기에, 바삐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범석은 이사장실 한 편에 놓인 옷걸이에서 양복 상의와 외투를 껴입은 다음 밖을 나섰다.
범석이 급한 걸음으로 사무실 건물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문 앞 길가에서 잠시 기다리더니, 무인 전동차가 오자 바로 몸을 실었다. 주차장까지는 거리가 꽤 되기에 빠른 이동을 위해서는 이처럼 차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그때 한 여인이 손을 흔들며 급히 달려왔다. 바로 나탈리로 어제 갓즈나이츠로 이사를 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사장님. 잠시만요! 할 얘기가 있어요!”
무인 전동차의 시동을 끈 범석이 그녀를 쳐다봤다.
“무슨 말? 나 지금 바쁘니 간단명료하게 말해.”
바로 앞까지 도착한 나탈리가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면전에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무거나 말씀 주시면 돼요.”
그가 날카로운 시선을 나탈리에게 던졌다. 기껏 바쁜 사람 세워놓고 아무 말이나 하란다. 당연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장난하냐? 용건이 있으면 똑바로 말해.”
“용건은 있는데. 제가 특별히 할 얘기는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용건은 있는데 할 얘기가 없다니! 지금 나 바쁘거든. 이따가 다녀와서 얘기하자.”
범석이 무시하고 무인 전동차를 출발시키려고 하자, 나탈리가 급히 옆좌석으로 뛰어올라 앉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가 일단 주차장 쪽을 향해 차의 머리를 돌렸다.
이를 본 그녀가 급히 카메라를 올리더니, 질문을 던졌다.
“저기. 어디 가시나 보죠?”
“으음. 잠시 히스시티에 가.”
“히스 시티요? 거기가 어디에 있는데요?”
“웰링엄 지역정부 내에 있는 대도시 중 하나야.”
웰링엄 지역정부라면 나탈리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제법 맛이 좋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 그래요? 와인이라도 사오시게요?”
“내가 미쳤냐? 와인을 사러 그 먼 곳까지 가게.”
“그럼 무슨 일로 가시는 건가요?”
“아. 히스시티를 연고로 두고 있는 파이어 라이언스 팀에 가려고.”
“왜요?”
“뭐긴 검투사 한 명을 영입하려고 하는 거지.”
이에 나탈리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매달려 갔다.
“정말이에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아니. 네가 왜 따라오는데. 조금 전에 말했잖아.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저도 마찬가지에요. 일하러 가는 것이에요.”
“일? 무슨 일?”
“방송 프로그램 촬영요.”
뜬금없는 말에 범석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무슨 방송 프로그램을 찍는데 거기를 따라가. 설마 너 이상한 짓거리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아주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에요.”
“글쎄 그게 뭔데!”
“갓즈나이츠 24시요. 즉 갓즈나이츠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프로그램이에요.”
그가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LKS방송이 구멍가게 방송사라고는 하지만 팀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외부로 그대로 방영되면 곤란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작 이번 헤스티아의 트레이드 건이 방송을 타게 된다면, 피닉스 라이언스 팀이 화를 낼 것은 물론, 자칫 하이에나그룹이 영입전선에 뛰어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극구 말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프로그램이면 당연히 먼저 나에게 알렸어야지!”
“헤헤. 그게 어제 자다가 생각났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아니.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그야 제가 갓즈나이츠에서 머무르고 있으니, 갓즈나이츠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쉽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프로 검투팀이 겪는 희로애락을 방영하면 시청자들의 반응도 괜찮을 것 같고요.”
범석이 사정하듯 말했다.
“저기. 나탈리. 우리도 우리 나름이 사정이 있거든. 외부에 발설해서는 절대 안 되는 민감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단 말이야. 특히나 오늘 같은 트레이드 건은 거래가 성사되기 전까지는 절대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 돼. 이건 상대 팀에 대한 예의야.”
“그럼 거래가 종료되고 나서 방송하면 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래 장소에 방송인을 데려가면 내 입장이 어떻겠냐?”
“정체를 숨기면 되잖아요.”
“야!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정체를 숨긴다고 숨겨 지냐!”
나탈리가 넉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네요. 그럼 제가 파이어 라이언스 담당자에게 잘 말해서 양해를 구해볼게요.”
범석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잘 말하고 자시고 간에 방송인인 너를 데려가는 자체가 실례란 말이야!”
나탈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괜찮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혀 시도도 못 해보게 생겼다. 그녀는 최대한 간절한 표정을 담아 범석을 바라봤다.
“정말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순간 나탈리의 눈가에 투명한 물기가 촉촉이 배어 나왔다. 이를 본 범석이 화들짝 놀라 손을 흔들었다. 여자의 눈물.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수순은 바로 호감도 하락이었다. 그녀를 꼭 영입해야 하는 범석으로서는 극구 피해야 할 일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협조해 줄게. 단 파이어 라이언스의 담당자가 반대한다면 절대 촬영 금지다! 그리고 앞으로 방영될 우리 팀 관련 프로그램들은 사전에 모두 검열을 받아야 한다. 알았지!”
나탈리의 얼굴이 바로 화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네. 알았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악수를 청하는 그녀에의 손을 맞잡은 범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자신이 여자들에게 이리 휘둘리는지 한심스러워 보였다. 근래에 얼음장 같은 반응을 보이는 수잔에다가, 이제는 나탈리까지.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는 곧이어 도착한 주차장에서 내린 후, 아론에 탔다. 다른 플라잉 카도 있었지만, 히스시티까지 제시간에 가려면 초고속 이동이 가능한 아론이 적격이었다.
히스시티는 낮고 평활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을 폭 100미터 정도의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줄줄이 놓인 고풍스러운 돌다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는데, 오늘만큼은 기후도 포근하고 그다지 쌓인 눈도 없었다.
파이어 라이언스의 훈련캠프 주차장에 내린 범석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파이어 라이언스 팀 사무실 건물로 향했다. 이거 헤스테아에 대한 영입협상보다는 나탈리의 촬영을 허락받는 일이 더욱 걱정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범석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건물 문 앞까지 나와 마중을 나온 이단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에 범석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또 뵙는군요.”
이단이 뒤따라온 나탈리를 보더니 질문했다.
“하하하. 네. 그런데 옆에 계신 숙녀분은 누구십니까? 못 뵈었던 분이시군요.”
범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탈리가 바로 명함을 꺼내더니,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번에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아무리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너무한 면이 있었다. 그녀는 항시 주머니에 수십 가지에 이르는 명함이 있는데, 개중에는 액세서리 세공사라는 명함까지 있었다. 용하게 프로듀서 글귀가 적혀 있는 명함을 찾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LKS방송의 프로듀서인 나탈리라고 해요.”
“네? LKS방송요?”
이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LKS방송이란 사명은 들어본 역사가 없었던 탓이다.
“네. 리마시티에 있는 지역 방송사에요.”
나탈리의 대답에 그가 이제야 납득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방송사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먼 지역에 있는 리마시티의 방송사까지 자신이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충분히 모를 만도 했다.
“아. 그러셨군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네. 저도요.”
“으음. 그런데 LKS방송에서 저희 팀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 근래에 저희 방송사에서 갓즈나이츠에 대한 촬영을 시작했거든요. 프로 검투팀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오늘 범석님께서 검투사 이적 건으로 이곳 팀으로 오신다고 해서 촬영차 따라왔어요.”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은 이단이 범석을 바라봤다. 양 팀 간의 긴밀한 트레이드 협상 건을 외부에 알린다는 사실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저기. 범석님. 이러시면 저희가 곤란합니다.”
그건 범석도 곤란하기 마찬가지였다. 그가 촬영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나탈리가 바로 나서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트레이드가 끝나는 그날까지 절대 방송에 내보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기는 하나, 모든 세상 일이 사람 뜻대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에 새어나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면 상관이 없지만,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네. 그래서 기밀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만 왔어요. 촬영팀과 작가 모두 오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죠. 절대로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드려요.”
하긴 촬영하는 행색치고는 좀 이상했다. 프로듀서 딸랑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와서 촬영하는 일은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나탈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믿어도 좋을 듯싶었다.
============================ 작품 후기 ============================
아무래도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다지 일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 관리를 잘못하면 큰 병치레를 해서요. 모두들 늦가을 감기 조심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