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48
150화
“꺄아아악!!”
충격으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검이 바닥을 굴렀다. 불의의 일격을 받아 오른팔이 경직된 14번 검투사가 놀란 표정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한손검을 뽑으려는 순간, 바로 헤스티아의 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어, 어떻게…….”
행동불능 상태로 빠져들며 무릎을 꿇는 14번 검투사를 스치며 헤스티아가 당당히 말했다.
“뭐긴. 내 앞에서 그렇게 서두르면, 날 잡아 잡숴 달라는 얘기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 14번 검투사가 이제야 소속팀 감독이 오늘 이런 전략을 가지고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급한 마음에 빈틈을 보였다지만, 자신을 이렇듯 쉽사리 쓰렸다는 사실은 상대가 그만큼 강자라는 뜻이었다. 이런 검투사들이 즐비한 갓즈나이츠이니, 모든 주전급 검투사를 오늘 경기에 출전시켰다고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당연히 체력은 극히 소모될 테고, 앞으로 있을 리그컵과 다음번 벌어질 피스 그리핀즈와의 일정이 힘겨워질 수 있었다. 어차피 몇몇 팀은 건너뛰려 했으니, 이중 갓즈나이츠를 선택한 일은 옳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들 팀과는 승점 25점을 벌여놓은 터라, 앞으로 있을 잔여경기에서 절반만 승리를 챙겨도 순위가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창. 차창. 창. 깡.
“헤스티아. 잘 왔다. 저 7번 검투사를 막아!”
7번 검투사와 11번 검투사를 동시에 상대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범석은 헤스티아의 증원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근래에 체력적으로 성장했다고 하나, 두 명의 블랙 캣츠팀의 주전 검투사를 상대하려니, 조금 버거웠다.
“얘. 조심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7번과 11번 검투사가 서로 독려하며 범석과 헤스티아를 맞상대해갔다. 하지만, 이들의 공격을 쉽사리 막아낼 수는 없었다. 강인한 힘과 검술로 압박해 들어오는 헤스티아를 범석이 뒤에서 보좌하며 치명적인 검격을 연속적으로 뿌려대고 있었던 탓이다.
7번 검투사가 절망적인 시선으로 본진을 바라봤다. 거의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터라 구원을 가야 하는데, 정작 자신들도 도움이 간절했다. 아무래도 이번 판을 패하리라고 생각한 그녀가 11번 검투사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마주했다. 감독이 알려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쟤들 뭐하려는 거지?’
갑작스럽게 과감한 공격을 퍼붓는 7번과 11번 검투사의 행동에 범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강맹한 검격이 연속적으로 뿌려지고 있지만, 사방에서 빈틈이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연의 신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힘이 아닌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식의 공격이라면 아무리 강한 검세이라도 손쉽게 응수할 수 있었다. 무리한 동작에는 반드시 그만큼의 예비동작이 필요했고, 이는 대적하는 자에게 큰 호기를 선사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로 뻗어오던 11번 검투사의 검격을 스텝을 밟으며 피하고는, 곧바로 목줄기에 검끝을 날렸다. 그녀의 검은 무리한 공격으로 크게 회전하고 탓에 빈틈이 너무도 컸다.
퍽.
이내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11번 검투사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범석에게 손쉽게 당하기는 했지만, 작전은 성공이었다. 이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낀 그가 황급히 7번 검투사를 상대하는 헤스티아를 바라봤다. 혹시나 지금의 어이없는 행동이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난타전 속에 7번 검투사가 헤스티아에게 손쉽게 당하는 모습을 보자, 대략 사태를 직감했다.
‘이 자식들이 서, 설마…….’
아무리 헤스티아가 강하다는 하나, 블랙 캣츠팀의 7번 검투사가 저리 어이없이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지금까지 싸워본 결과 7번 검투사는 그녀보다 약간 우위의 실력을 지녔다.
황당하리만큼 무모한 공격을 퍼부으며 손쉽게 당하는 7번 검투사와 11번 검투사. 상황을 몰랐으면 멍청한 애들이었다고 혀를 찰 일이었지만, 루카스로부터 블랙 캣츠 감독의 대략적인 전략을 들은 그는 지금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패전이 짙어지자, 체력을 아끼려고 일부러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든 것이었다.
이를 부득 간 범석이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무리 저쪽 감독이 서로 득이 되자고 꺼내놓은 패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그가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더그아웃 쪽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이 이상의 경기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곧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입구 터널에 다다를 무렵 경기는 끝이 났다. 에리카가 본진에 끼어든 헤스티아와 함께 마지막 남았던 대장검투사를 해치워 버린 탓이다. 무척 다행한 일로 덕분에 범석은 퇴장 사태를 면했다. 시합 중 해당 검투사가 임의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면 규칙상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
다이아나가 급히 달려와 범석을 맞이했다. 분위기상 그가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주, 주인님. 무슨 일이세요? 왜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손사래를 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알 필요 없어. 그런데 블랙 캣츠팀의 감독이 도대체 누구야!”
경쟁팀의 감독을 모를 리가 없던 그녀가 바로 대답했다.
“롭스라는 사람이에요.”
“롭스? 뭐하던 작잔데!”
“삼 년 전까지 이르스 중앙정부 내에 있는 올레스 워리어즈팀의 감독이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여름 새롭게 블랙 캣츠팀의 감독으로 왔고요.”
“그래? 삼 년 전에 감독을 그만둔 이유가 뭐야?”
다이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데, 경영진과 큰 충돌이 있었데요.”
“왜? 성적이라도 좋지 않았어?”
“아뇨. 팀 스쿼드에 비해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어요. 다만, 소문으로는 경영진과의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해요. 경영진들은 돈을 벌기 위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경쾌한 경기를 원했는데, 롭스감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만 올리면 된다고 주장했데요. 그러다가 극단적인 수비지향적 경기로 무승부를 계속 펼치다가 팬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경영진들이 해임 통고를 받았다고 해요.”
자신이 벤치에 앉은 범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결국, 성적 지상주의자라는 얘기군.”
“예. 맞아요.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출중해서 지휘하는 팀마다 제법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했어요.”
정말 흑사회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인사랄 수 있었다. 그들의 신조는 단지 능력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롭스가 예뻐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아까 통화에서 루카스가 살갑게 자신의 감독을 언급 하나 했다.
‘쳇. 아무리 프로가 결과로 말한다지만, 이런 자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은데……. 문제는 이기는 것도 기분이 더럽다는 거야. 져주기 위해 검을 저따위로 휘두르는 애들과 싸워봐야 흥이 날 리가 없잖아.’
범석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근처에 앉아 있던 아겔리아를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루카스회장의 조언을 듣고 참가시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사실 블랙 캣츠팀이 오늘 자신들과 전심으로 싸우기가 껄끄러워 이런 황당한 전략을 꺼내 들었지만, 이겨서 하등 나쁠 것은 없었다. 2진급을 투입시켜 1승을 챙긴다면 블랙 캣츠는 체력의 소모도 줄이면서도, 우승할 확률도 높일 수 있었다.
범석으로서는 결코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왠지 롭스의 전략에 고추가루를 뿌리고 싶었다. 아겔리아는 다리만 빠를 뿐 검술 실력은 아마추어만도 못하기에 정면승부를 시킨다면 분명히 이번에 내보낼 2진에게 큰 짐이 될 터였다. 그럼 잘만하면 2, 4라운드를 내줄 수 있을 테고, 3, 5라운드에서 놈들의 주력과 싸울 수 있었다.
이때, 범석은 7번, 11번, 14번 검투사를 20분 내내 가지고 놀면서 진을 쏙 빼버릴 예정이었다. 단지 세 명이라도 그녀들은 모두가 블랙 캣츠팀의 주요전력이니, 약간이지만 저들에게 체력적인 부담을 안겨줄 수 있었다.
뭐 쪼잔한 전술이라 할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지금 머릿속을 휘젓는 화를 풀 길이 없었다.
“다이아나. 다음에는 아겔리아를 출전시킨다.”
다이아나가 슬며시 아겔리아의 눈치를 살피고는 대답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블랙캣츠팀의 저런 스쿼드를 들고 나온 이상, 정석대로 힘으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어요. 그리고 아겔리아는 단지 뜀새의 역할로 데려왔을 뿐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뜀새가 필요 없고요.”
“알아. 그래서 뜀새로 사용할 생각이 없어.”
다이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뜀새의 목적이 아니라면 패전처리용밖에 없었다.
“서, 설마 이번 경기를 고의로 지시게요?”
“아니. 이번 경기에서 질 마음은 없다. 다만, 이번 2라운드를 어렵게 가져가려는 것뿐이지.”
“아니 왜요?”
“오늘 경기에 나온 블랙 캣츠 주전 3명과 2번 싸우기 위해서지. 이번 라운드에서 이겨버리면 1번밖에 못 싸울 공산 크잖아.”
다이아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쉬운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려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말 못할 사연이 있으신가요?”
“그래. 있어. 그러니 부탁해.”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인 그가 소망하는데, 아무리 감독이라도 휘하 엘프인 다이아나가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네. 알겠어요. 뜻대로 할게요. 그런데 주인님. 저희 팀은 2진급이라도 강하다는 것 아시죠? 아겔리아 제외한 모두가 에어리어리그 주전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블랙 캣츠팀에서 변칙이 아닌 정석대로 2진급을 꾸려 내보내면, 저희가 질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저들은 이번에 대거 유망주를 경기에 투입했고 이번 라운드에 이변이 없는 한 모두 나올 것이에요.”
범석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갓즈나이츠는 아직 검투사층이 두텁지는 않지만, 그간의 노력으로 경기에 내보낼 숫자만큼은 괜찮은 전력으로 채워넣었다. 유망주가 다수 낀 블랙 캣츠팀의 2진에게 이기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건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아겔리아를 끼라는 거야.”
“하지만, 그 방법보다는 애들에게 지라고 귓뜀하는 편이 더 확실할 텐데요. 그렇게 할까요?”
그가 바로 손을 흔들었다. 목적을 위해 검투사들에게 고의로 지라고 한다면 자신도 롭스라는 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일단 경기에 나선 이상 최선을 다하게 해야 했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7번 검투사와 11번 검투사가 제대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남의 손에 놀아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났을 뿐이었다.
“됐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하여간 아겔리아는 끼고, 최대한 빈약한 스쿼드를 짜도록 해.”
“네. 알겠어요.”
감독석으로 돌아간 다이아나가 2라운드 출전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번 라운드는 패배를 위한 검투사 구성이었기에, 최대한 실력이 떨어지는 팀원들로 스쿼드를 구성했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되는 2라운드. 입장하는 갓즈나이츠의 2진을 본 관중이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역 내 유명인인 아겔리아의 재등장에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장내의 아나운서도 지금의 광경을 TV에 앞에 모여든 시청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세세한 설명을 깃들이며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비록 육상계는 떠나기는 했지만, 그녀는 전 세계의 육상계를 제패할 유망주로 지역민들에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 아겔리아입니다. 그 아겔리아가 오늘 리마시티 스타디움이 아닌 이곳 리마시티 콜로세움에서 그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시 멋쩍은 표정으로 걷던 아겔리아가 스타본능을 잊지 않았는지, 관중과 날아드는 버드 카메라를 향해 능숙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응원소리는 더욱 높아져 갔고, 그녀를 알고 있던 많은 팬이 이름을 부르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하하. 아겔리아! 오늘 잘해라!”
“절대로 지면 안 된다!”
하지만, 이들 중 오늘 아겔리아가 활약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 기사를 통해 검술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의 출전은 그저 갓즈나이츠의 팬서비스 차원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얼마후 중앙의 시내에 선 아겔리아가 손에든 양손방패를 꽉 쥐고, 비너스의 뒤에 섰다. 범석이 없을 때는 그녀가 바로 양손 방패술을 가리키는 스승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출전하는 검투 경기가 그렇게 긴장이 될 수가 없었다.
“비너스. 잘 부탁해.”
“네. 언니. 제가 확실히 막아 드릴 테니까 염려 마세요.”
삐이익!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양팀이 다리 위에서 충돌을 빚었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계속되었지만, 결국 기세를 잡은 쪽은 갓즈나이츠였다. 힘으로 블랙 캣츠팀을 다리 너머로 밀어 도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그때 블랙 캣츠팀의 진형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돌파가 아닌 의도적인 분단이었기에, 갓즈나이츠의 선봉들이 돌진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혹시나 요격팀을 꾸려 후방을 칠 의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 대장을 확실히 보호하고 기습에 주의해!”
역시나 생각이 맞았는지, 블랙 캣츠 검투사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는 다시 진을 하나로 뭉쳤다. 지금 갓즈나이츠의 2진의 가장 큰 약점은 아겔리아. 블랙 캣츠로서는 충분히 시도할만한 노림수였다.
창. 차창. 창. 깡.
다시금 정면에서 충돌을 빚은 양 팀이, 치열한 접전을 벌여나갔다. 하지만, 범석의 의도와 달리 갓즈나이츠의 2진이 서서히 압박을 가하며 전황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본연의 실력은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블랙 캣츠의 2진은 하나둘씩 쓰러져 갔고 결국 2라운드의 승리도 갓즈나이츠에게로 돌아갔다.
‘쩝 어쩔 수 없지. 1라운드만 엿 먹이는 수밖에.’
하지만, 이도 범석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단단히 노리던 7번, 11번, 14번 검투사 모두가 3라운드 출전명단에 제외된 것이다. 2패 후 더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전력을 보전시키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범석으로서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곧 3라운드는 광분을 장으로 변했고 블랙 캣츠팀은 불쌍할 정도로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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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편안한 주말 보시고요. 전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