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52
154화
차창. 창. 창. 깡.
멀리서 양 진영의 전투 장면을 살펴보던 범석이 땅을 박차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웃힐 고스트즈 검투사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서쪽으로 이동이 없을 듯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언덕쪽 길을 마크하기보다는 프리롤 역할을 수행하며 상대의 후방을 치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오범석이 온닷!”
아웃힐 고스트즈의 검투사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쪽 길을 막을 줄 알았던 범석이 공세를 취하러 온다는 사실이 사뭇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세계 5대 유망주로 오른 인물이자, 지난 월드컵 3차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큰 활약을 해 에이번드 대표팀을 최종 예선전에 올린 뛰어난 검투사였다. 이 와중에 뒤를 친다는 큰 위협이니 되니, 호숫가로 진입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곧 7번 검투사가 실력이 출중한 동료 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작년과 재작년 팀이 야망을 품고 와이드리그에서 영입한 검투사들로 현재 팀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너희들. 빨리 저자를 막아.”
순간 3번과 11번 검투사가 진형을 빠져나와 뒤로 다가오는 범석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지척에 이르자 온 힘을 다한 검격을 내지르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히?!”
범석의 헬멧으로 기괴한 파공음 내는 검 끝이 스쳐 지나갔다. 날카롭고 강한 위력이 담긴 이 검세에, 살결이 쭈뼛 서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 정도의 솜씨라면 에어리어리그급 검투사 수준은 아닌바, 흥이 난 그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아이들을 둘이나 동시에 상대해 쓰러뜨릴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후후. 제대로 된 먹잇감을 던져주는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3번 검투사의 위세 등등한 검날이 범석 가슴의 바로 앞을 스쳐 갔다.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었을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왠지 어색한 면이 있었기에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허리 쪽을 파고들어 오는 11번 검투사 회심의 공격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조금 전 3번 검투사 검격은 단지 자신을 뒤로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였을 뿐, 진정한 공격이 이번이었음을 능히 알아챌 수 있었다. 범석은 화급히 몸을 날려 땅바닥을 뒹굴어서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나려타곤의 묘리로 간신히 살아남은 그가 잠시 뒤로 물러나 헛웃음을 흘려댔다. 이거 졸지에 개망신을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이거 제대로 된 연합공격을 가해오는데. 리그 5위가 그저 운뿐이 아닌 모양이야.’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웃힐 고스트즈는 그리 강팀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리그 중하위권 정도에, 보통은 강등권을 겨우 벗어난 수준이랄까? 인구 120만을 기반으로 한 도시에 5곳의 프로스포츠팀이 밀집해 있기에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삼 년 전 모회사였던 고스트사의 식품 가공사업 부분에서 큰돈이 벌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평소에 검투경기를 좋아하던 그 회사 사장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뛰어난 실력의 검투사를 다수 영입해왔고, 이로 말미암아 성적이 좋아지자, 지역민에게 큰 호응을 받아 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팀 수입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이 자금이 계속해서 검투사 영입에 재투자되자 어느새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되며 올해 2위 쟁탈전에 끼어들 정도까지 성장했다.
‘지형만이 아니라, 검투사들의 수준도 높아. 하긴 올해 12승을 챙긴 팀인데 만만치 않을 테지. 정말 조심해야겠어.’
마음속에 남아 있던 터럭의 자만심을 털어버린 범석이 검 손잡이 꽉 부여잡았다. 상대의 듀엣공격이 만만치 않았으니, 정심을 쏟아 상대해야만 했다.
창. 차창. 창.
범석이 미친 듯이 평야를 질주하며 3번 검투사와 11번 검투사에게 검을 날렸다.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장점 삼아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곧 검의 현란한 부딪침과 동시에 금속 파편이 튀겼고, 눈을 어지럽힐 정도의 신형이 무수한 잔영을 만들어냈다.
“역시. 갓즈나이츠의 에이스야. 조심해!”
섬뜩한 카타나의 끝이 어깨 위를 스치자 3번 검투사가 마른 침을 삼킬 정도로 긴장한 몸짓을 취했다. 예상대로 범석의 공세는 대단했다. 다행히 동료인 11번 검투사와 연합하며 막기에 버틸 수 있었지, 자신 혼자였다면 진작에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으리라 생각됐다. 그녀는 더더욱 동료와 몸을 가깝게 붙이며 날아오는 검날을 힘겹게 쳐냈다.
‘안 되겠어. 이러다가는 우리가 당해.’
전투상황을 관망하던 아웃힐 고스트즈의 대장검투사가 표정에 걱정스러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아직 당한 동료들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밀리는 형세로 보아, 이대로라면 자신들이 1라운드에서 패배할 공산이 커졌다. 그렇다면 승리를 따내기 위해 계속해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라운드에서는 공세를 취해야 할 터, 상대가 원하는 평지 전투가 주가 될 터였다. 그렇다면 결국에 가서는 전력이 떨어지는 자신들이 당하게 될 공산이 컸다.
‘어쩔 수 없어.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당하니, 모험을 걸어볼 수밖에…….’
입술을 꽉 깨문 7번 검투사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모두를 향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짧게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한 말투였기에, 모든 동료들이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운트.
“셋……. 둘……. 하나……. 모두 뿔뿔이 산개해서 호수로 뛰어들어!”
순간 모래알처럼 흩어진 아웃힐 고스트즈 검투사들이 넓게 퍼져 나가며 호수 쪽으로 내달렸다. 진형과 포지션을 무시한 질주만을 동작이라 갓즈나이츠의 검투사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들을 일일이 뒤쫓기 위해서는 진형을 무너뜨려야 했는데, 이는 고정관념에 철저히 위반되는 일이었다. 검투 경기에서 진형의 붕괴는 곧 각개격파라는 처절한 결과를 의미했다.
“뭐해! 빨리 쫓아가 잡아!”
에르피나의 뾰족한 외침에 뒤를 쫓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대다수의 아웃힐 고스트즈의 검투사들은 호수 안으로 진입해 새로이 진형을 짜고 있었다. 다행히 발 빠른 비올렛과 마틸다가 무의식중에 진형을 빠져나가 13번 검투사를 붙잡지 않았다면 모두를 놓칠 뻔한 상황이었다.
에르피나는 하는 수없이 13번 검투사를 제거하는데 모든 팀원을 투입시켜야만 했다.
‘이런 젠장 할…….’
범석도 두 눈을 멀거니 뜨며 3번, 11번 검투사를 놓쳤다. 치열한 접전 중이라 방심한 탓도 있었지만, 교묘한 연격 전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저했던 이유가 더 컸다. 그리고 이곳이 워낙 호수 쪽에 가까운 지역이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손을 써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에르피나를 향해 걸어갔다.
“이게. 무슨 경우냐?”
“죄, 죄송해요. 상대가 진형을 무너뜨리며 산개해 호수로 달려갈 줄은 몰랐어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은 범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본진은 하나의 검투사라도 잡았지만, 자신은 빈손이었다. 즉 그녀를 탓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나간 일이니 됐어. 지금은 아웃힐 애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만 생각해.”
에르피나가 무심히 호수 쪽을 바라봤다. 지금 아웃힐 고스트즈의 검투사들은 호수 중앙에서 방진을 구성한 채, 간신히 코끝만 나올 정도로 물속에 깊이 몸을 담근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검방들을 앞세워, 만약에 있을 화살 공격에 대비했다.
“아무래도 활을 쏴서 끌어내야 할 것이에요.”
범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간신히 머리 반만 내민 사물을 활로 쏴 맞히기도 무척 어려운 일인데, 전면이 방패로 막혀 있었다. 물론 물에 잠겨 있는 하단부를 맞추면 간단해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물에는 표면 장력이 있었다. 지금 이 각도에서 화살을 쐈다가는 냇가에서 돌팔매 장난을 할 때처럼 튕겨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 같았다. 게다가 운이 좋아 파고든다고 해도 방패가 물속 깊숙한 곳까지 잠겨 있어, 피해를 줄지 미지수였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힘들듯 보이는데?”
에르피나도 눈이 있기에 범석이 말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 보유한 장비로 수행할 수 있는 전술은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뿐이었다.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은 수중전에 극도로 약해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필패였다.
“어쩔 수 없어요. 저희가 호수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활을 꺼내더니 에르피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검과 방패를 들고 나온 터라, 규정상 다른 무구를 더 챙겨 나올 수 없었다.
“에르피나 활 쏠 줄 알지?”
“네. 약간요. 그런데 왜요?”
“네가 내 활을 사용하라고. 난 활을 잘 쏠 줄 몰라.”
에르피나가 놀란 눈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검술은 물론 모든 무투기와 검투경기에 필요한 갖은 잡기를 섭렵하고 있는 그가 활을 쏠 줄 모른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님 정말 활을 쏠 줄 모르세요?”
범석이 거칠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설마 쏠 줄이야 모르겠느냐마는 다만, 맞지 않아서 문제였다. 수많은 게임을 섭렵해오며 그는 단 한 가지 소양을 익히지 못했는데, 그게 바로 궁사 직업이었다. 몇 번은 건들려 봤지만, 이전에 경험한 게임에서 자신이 쏜 화살이 목표물이 아닌 다른 적이 맞아 죽는 장면을 보고는 다시는 잡아보지 않았다.
“알지. 다만, 화살이 원하는 장소로 날아가지 않아서 문제지.”
여전히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은 에르피나가 활을 받아들었다. 하긴 인간이 완결 무결한 존재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곧 활을 든 동료 검투사 여덟을 학익진 형태로 세우고는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모두 조준해!”
이윽고 에르피나를 포함한 아홉 명의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찰랑찰랑 거리는 물결 위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아웃힐 고스트즈 검투사를 향해 일제히 둥그스름한 촉 끝을 겨누었다. 코만 물 위로 내민 모습들이 볼썽사나울 정도로 우스워 보였지만,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 화살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번 라운드가 무승부로 끝나리라는 사실쯤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발사!”
동시에 활시위가 튕기며 9개의 화살이 직선거리로 빠르게 날아갔다.
퉁. 퉁.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튀고, 방패에 부딪히는 화살들. 예상했던 대로 이번 공격은 아웃힐 고스트즈팀에게 아예 데미지를 안겨주지를 못했다. 그녀들의 수중진형도 견고한 이유도 있었지만,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은 경험이 짧아 활을 잘 다루는 자가 적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정확하게 안면 쪽으로 날아간 화살이 단 2개밖에 안 된다는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범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환장하겠군. 이거 꼼짝없이 비기게 생겼잖아.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수중전 훈련을 빡빡하게 시켜야겠어.’
범석은 팀원들에게 수중전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점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갓즈나이츠 훈련 캠프는 리마시티 콜로세움 경기장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기에, 중앙을 지나는 넓은 시내가 있었다. 충분히 수중전을 연습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신체단련과 주요 무구 숙련훈련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로 수중전 훈련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다른 경쟁팀들도 갓즈나이츠가 수중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파악할 테니, 시내를 도강하기보다는 아웃힐 고스트즈처럼 물속에 들어가 무승부를 유도할 터였다. 그럼 홈에서 무승부가 나올 공산이 커질 테고, 갓즈나이츠는 2위 쟁탈전에서 멀어질 터였다.
휘이익. 휙휙.
어느덧 화살 통이 거의 비어감을 본 범석이 에르피아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뒤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이번 라운드는 어쩔 수 없으니, 이만 무승부로 끝내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갓즈나이츠는 홈팬들의 야유와 조롱을 들으며, 나머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야만 했다. 좀 더 숫자를 줄여놨으면 한 번 시도해보겠지만, 상대가 11명이라면 공격 감행 시 자신들이 오히려 당할 공산이 크다고 생각됐다.
1라운드가 끝이 난 후, 갓즈나이츠의 더그아웃에서는 긴급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1라운드의 무승부는 라운드 하나를 비겼다는 차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숫자를 하나 줄였음에도 수중전을 회피했다는 사실은 갓즈나이츠가 물에 약하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려준 꼴이 되었다. 만약 아웃힐 고스트가 이 점을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오늘 경기가 매우 어려운 양산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범석이 찹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서쪽은 포기하고 동쪽진로를 집중해 막는 편이 낫겠다. 호수보다는 언덕 쪽이 훨씬 상대하기 편하니까.”
다이아나가 바로 동조를 표했다.
“네. 맞아요. 언덕은 절벽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최소한 화살 공격은 효과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고저 차라는 지형적인 문제와 활 능숙도 때문에 우리가 원거리 공방전에서 철저히 밀릴 거야. 이를 확실히 대비해야 해.”
그 점에 대해서는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서쪽 루트는 열어주기로 했으니 아웃힐 고스트즈의 검투사는 손쉽게 언덕으로 오를 터였고, 활을 능숙하게 다루는 일은 한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무구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대장과 후미들 모두 듀얼실드를 착용하죠.”
좋은 생각이었기에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갓즈나이츠는 듀얼실더의 유용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모든 후미와 대장에게 교양으로라도 익히게 했다. 이제 대다수가 능숙하게 듀얼 실드를 다룰 수 있으니, 실전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었다.
후미와 대장 모두 듀얼 실드를 착용하고 나간다면 6개의 방패로 장벽을 쌓을 수 있으니, 적의 화살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하하하. 오늘 PC가 나갔습니다. 아주 기쁩니다. 단단히 준비해놨거든요. 자료는 D드라이브에 담아놓고 있었고, 하드카피 해놓은 것이 있어 10분만에 복구를 해버렸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