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58
160화
범석은 레이보우 호텔 야외 분수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빨리 글로리아를 만나 상황을 파악하고 싶지만, 일단 렉스터를 만나야 했다. 전전긍긍 발을 구르던 그에게 렉스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범석아! 오래 기다렸지?”
범석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레이보우그룹의 어려움에 적지않이 당황했는지, 렉스터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야.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얼마 전에 글로리아여사를 만났을 때는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잖아. 어떻게 갑자기 그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거지?”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확인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자. 그럼 얼른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
범석이 레인보우호텔 문앞을 바라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취재를 위해 지역언론은 물론 전 세계언론사에서 찾아온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경비원들이 문앞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무작정 들어가기 애매한 면이 좀 있었다.
“아무래도 글로리아님께 연락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들어가다가는 경비원들에게 막힐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뭐해. 빨리 전화를 걸어봐.”
전자수첩을 꺼낸 범석이 등록된 글로리아의 번호를 찾아 통신버튼을 눌렀다. 호출음이 한 번, 두 번이 들려오고 십여 번이 넘게 이어질 무렵 다시 수첩을 닫은 그가 렉스터를 쳐다봤다.
“지금 글로리아님이 좀 바쁘신가 봅니다.”
“회의 중인가? 그럼 어떻게 하지. 이대로 무턱대고 들어가면 경비원들에게 제지당할 것 아니야?”
난감함에 혀를 다신 범석이 호텔 정문을 바라봤다.
“그래도 일단 들어가 보시지요. 도움을 주러 왔다고 한다면 대놓고 쫓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럴까? 좋아. 한 번 들어가 보자.”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렉스터를 따라 레인보우호텔로 나아갔다. 정문은 취재를 위한 기자들로 거의 시장바닥이 되어 있었다. 에이번드 지역경제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미칠 사건이니,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경비원과 몸싸움에 가까운 접촉을 벌이며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나갔다.
“저기요! 도대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 겁니까? 레인보우그룹은 이번 신용등급 하락을 맞이하여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까?”
“LHN은행에서 일방적인 채무상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레인보우그룹에서 이 채무를 모두 변재할 수 있는 겁니까?”
이에 정문에 나와 있는 50대쯤으로 보이는 레인보우그룹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레인보우그룹은 LHN은행의 말도 안 되는 채무상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만, 채권 만기일이 도래한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지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인보우그룹이 부도사태를 면한다는 얘기입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레인보우그룹은 그 어느 회사보다 튼튼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도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한 금발의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그런데 어째서 LHN신용평가사에 전격적인 신용등급 하락을 선언한 겁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게 아닙니까?”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의 사태는 LHN금융지주의 횡포일 뿐입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관계자의 말에도 기자들은 믿지 못하고, 미심쩍은 시선을 날렸다. 위기 당사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에는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그 사이 접근 금지선까지 도달한 범석이 한 제복을 입은 엘프경비원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갓즈나이츠에서 온 오 범석이라고 하는데, 들어가도 되냐?”
엘프경비원이 신기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지역 내 최고의 검투사라고 알려졌기에, 범석의 외모를 모르는 에이번드 주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대놓고 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글로리아회장님을 뵈러 왔다.”
“회장님을요? 어떤 이유로 뵈려 하는데요.”
범석이 차분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글로리아회장님과 우리는 무척 친한 친분관계에 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뭐 도울 일이 없는지 여쭤보러 왔다.”
엘프경비원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회사사정이 어려운 지금 이렇게 돕겠다고 찾아오는 인사가 있다니 반가웠던 것이다. 게다가 범석은 갓즈나이츠팀의 이사장이었다. 상당한 부자일 테니, 회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됐다.
“아. 그러세요? 그럼 제가 윗분들에게 보고를 올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래. 꼭 좀 부탁해.”
엘프경비원이 급히 정문 앞에 있는 고위급 관계자에게 뛰어가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그 관계자는 범석과 렉스터를 잠시 바라보더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레인보우호텔 홍보팀 부장인 제이드라는 자로, 전에 갓즈나이츠와 스폰서 계약 당시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범석님. 오랜만입니다.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요.”
“네. TV에서 보니, 상황이 심각한 듯 보이더군요. 글로리아님께 전에 큰 신세를 진 일이 있어서, 뵙고 도울 일이 있다면 한 손 보태려고 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심정에 빠져 있는 레인보우그룹으로서는 작은 도움도 간절했다. 제이드는 반가이 범석과 렉스터를 맞이하며 접근 금지선 안으로 들였다.
“자자. 따라오시지요. 제가 회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이렇게 도움을 주시려고 직접 찾아오셨는데,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잠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이들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회장실 앞까지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께서는 지금 대회의실에서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계세요. 지금은 뵐 수 없는데요.”
한 여성비서의 말에 제이드가 난감한 표정으로 범석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당장 뵙기는 어렵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범석이 렉스터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바로 대답했다.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여기 응접실에 계십시오. 저는 기자들과 계속 대담을 나눠야 하기에 이만 정문 쪽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제이드가 떠나가자, 여성비서들이 범석과 렉스터를 데리고 응접실로 안내했다.
고요한 응접실 안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범석과 렉스터가 긴장 어린 시선을 던져댔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렉스터였다.
“범석아. 부채가 230억 크랑이나 된다는데, 우리가 도움이 되겠냐?”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손가락셈을 했다. 그가 지금 보유한 현금은 1억 3천만 크랑이었고, 갓즈나이츠를 담보로 은행권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이 대략 4억 크랑 정도 되었다. 이 돈을 모두 합치면 대략 5억 3천만 크랑. 아주 큰 돈이기는 하지만, 레인보우 그룹의 230억 부채를 생각해보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었다.
“휴~ 글쎄요. 제가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아도 대충 5억 5천만 크랑이 안될 테니, 그다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냐? 나는 기껏해야 1,500만 크랑정도인데. 이거 영 앞이 깜깜하군.”
범석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렉스터를 쳐다봤다. 최근에 그는 상당수의 엘프검투사를 영입하느라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다. 1,500만 크랑이나 되는 거금을 장만한다는 것은 자신과 같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글로리아를 돕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상당한 힘이 될 겁니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니까요.”
“그래야 할 텐데. 그나저나 글로리아님의 건강도 걱정이다다. 만삭에 가까운 몸으로 이런 일을 당하셨으니 말이다.”
스트레스는 임산부에게나 태아에게나 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연인이요, 아버지인 범석으로서는 근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참…….”
“그런데 범석아. 이번 사태가 좀 이상해 보이지 않냐?”
“뭐가 말입니까?”
“사실. 전에 LKS방송 투자건으로 글로리아님을 만나봤을 때는 회사가 어렵다는 등의 분위기가 없었잖아. 아니 아예 더 나아가 나탈리에게 2,000만이나 되는 거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말이야. 레이보우그룹이 사정이 어려웠다면 그런 행동을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 아니야.”
의아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요. 레인보우그룹이 조그만 회사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어려워질 수는 없는데요.”
“혹시 분식회계나 이중장부가 있는 것 아니야? 그래서 검찰이나 연방세무청에서 포착됐고, 이를 안 LHN금융지주사에서 먼저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고.”
범석이 마구 손사래를 쳐댔다.
“에이. 설마요. 글로리아님이 그럴 분으로 보이십니까?”
“설마가 아니야. 원래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래야 하는 경우가 허다해. 드러나지 않아서 다들 모를 뿐, 대다수의 회사들은 크건 작건 간에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성자가 아닌 이상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고.”
하긴 레인보우그룹이라고 불법적인 자금운영이 없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글로리아는 에이번드의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이니, 여러 방면에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았고, 좋지 않은 방법으로 비자금을 장만해 놓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에 범석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봤다.
“경감님.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글쎄다. 경찰이나 검찰 쪽이라면 어떻게든 손 쓸 도리가 있는데, 연방 세무청이라면 나도 힘들다. 그쪽으로는 거의 끈이 없거든.”
끼이익.
응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참 대화를 나누던 범석과 렉스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혹시나 글로리아가 들어오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은빛 머리칼의 젊은 여인이었는데, 그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자였다.
“뭐야. 나탈리잖아.”
“나탈리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나탈리가 콧김을 연방 뿜어대며 소파에 철퍼덕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고 범석과 렉스터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번갈아 바라보더니 잔뜩 노기 어린 음성으로 쏘아댔다.
“아니. 저만 혼자 남겨두고 두 분만 오시면 어떻게 해요! 글로리아님께서 우리 LKS방송에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하셨는데, 제가 안 보이면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볼 것 아니에요! 다들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렉스터가 난감한 얼굴을 하고는 범석을 쳐다봤다. 나탈리는 그의 갓츠나이츠 팀 숙소에서 머물고 있기에, 알아서 챙겨왔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억척녀에다 성격도 드세 자칫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버럭 소리부터 질러댔다. 전에 그가 LKS방송이 카렌의 프로그램으로 큰돈이 벌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 차 찾아갔다가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회사 서버가 밀려드는 접속량에 다운되어버려 꽤 예민한 상태에 있었는데, 그 분출구가 바로 렉스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 쟤 안 불렀냐?”
“그게. 워낙 경황이 없었고 급하게 오다 보니 깜빡했습니다.”
그녀가 범석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잊어버릴 일이 따로 있죠. 저를 빼놓고 가면 어떻게 해요. 아침에 뉴스를 보고 얼마나 범석님을 찾아 헤맸는지 아세요!”
겸연쩍은지 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라고 그랬잖아. 그냥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라. 나도 당황스러워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어.”
“흥. 그러면서 렉스터경감님은 잘도 모셔왔네요.”
계속되는 추궁에 범석의 머리 위로 김이 흘러나왔다. 나탈리는 능력면과 외모 면에서는 너무 좋은데, 성격이 너무 개차반이었다. 뭐 이런 여인을 정복해 속살을 즐기는 일도 색다른 묘미이기는 하지만, 오늘같이 기분이 쭈글쭈글한 날, 별것도 아닌 일로 장황한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짜증이 물씬 풍겨왔다.
이런 그의 심경을 눈치 챈 렉스터가 급히 대화를 전환했다.
“나탈리. 이 자리까지 왔으면, 그만큼 각오를 하고 왔겠지?”
“각오요? 무슨 각오요?”
“범석과 나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다해 레인보우그룹을 돕기로 했다. 네가 우리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 여기는 글로리아님께 힘이 되기 위한 자리이지, 위로만 하고 입 닦는 자리가 아니야.”
나탈리가 차분한 눈빛으로 렉스터를 직시했다. 그녀는 자신의 우상이자 LKS방송의 은인인 글로리아가 몰락해 가는 것을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좀 아깝기는 하지만, 힘이 닿는 만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이에요. 저도 힘껏 도울 것이에요.”
“좋아. 그럼 얼마나 지원할 수 있겠어?”
“통장에 있는 자금 모두 다요.”
렉스터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수전노인 나탈리가 주머니를 탁탁 털 각오를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근래에 막대한 돈을 벌고도 방값과 식비가 아깝다며 아직도 갓즈나이츠 팀 숙소에 빈대 붙어먹고 있었다.
“오. 그래? 얼마나 되는데?”
“당장은 5억 4,000만 크랑요. 그리고 계속 우리 카렌에 대한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인 호응으로 큰 호조세를 보이고 있으니, 다음 달에도 비슷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에요.”
렉스터가 기특한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로 모든 자금을 쏟아부을 각오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5억 4,000만 크랑이라면 세금과 약간의 운영비를 제외한 LKS방송가 보유한 모든 자금이었다.
그가 범석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범석아. 어떠냐? 잘만 하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범석도 같은 생각인지 밝게 웃었다. 자세한 내용은 글로리아를 만나 사정을 정취 해야 알겠지만, 지금 모인 자금이라면 이번 레인보우그룹의 위기에 큰 활력소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됐다. 당장 11억 크랑에 가까운 자금이 지원될뿐더러, 추가적으로 상당량의 자금이 유입될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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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하마타면 내일 아침에 올릴 빤했네요. 졸려서 잠시 자리에 누웠다가 지금에서야 일어났습니다. ㅎㅎㅎ.
그럼 모두들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