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59
161화
응접실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고 있을 무렵. 긴급 대책 회의를 마친 글로리아가 회장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비서들에게 범석의 일행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반가운지 급히 응접실로 찾아갔다.
“범석씨. 여러분들.”
환한 표정을 짓고 반기는 글로리아를 범석을 비롯한 렉스터와 나탈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글로리아님.”
“글로리아회장님. 힘내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나탈리의 위로에 어깨를 도닥거린 글로리아가 힘겨운 몸을 하며 소파에 앉았다. 출산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탓에, 몸이 제법 무거운 모양이었다.
“다들 걱정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염려하지들 마세요. 다 잘 될 것이에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범석이 다소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정말 힘겨웠다면 글로리아의 표정에서 저런 여유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을 터였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럼요. 저희 레인보우그룹은 그리 만만한 기업이 아니랍니다. 누누이 언급하는 내용대로 저희는 재무구조가 튼튼해 이번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뜻밖에 반응에 범석과 일행들이 어리둥절했다.
“아니 빚이 230억 크랑이나 된다면서요?”
“네. 맞아요.”
“지금 가지고 계신 자금이 얼마인데요?”
“현금 자산으로는 대략 22억 크랑 정도 가지고 있어요.”
22억 클랑이면 빚의 10분지 1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 범석이 되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시다고요? 어째서인지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주. 간단해요.”
하며 글로리아가 레인보우사의 상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범석이 말한 바와 같이 230억에 달하는 빚이었다. 그런데 다행인 점은 이 빚 모두를 당장에 갚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레인보우사가 보유한 채권은 1년 채 8%, 3년 채 69% 5년 채가 23%가 있었다. 이들은 각각 정해진 법적 만기일 있어 회사는 그 날짜에 지급하기만 하면 되는데, 대충 한 달에 들어오는 레인보우그룹으로 들어오는 채권금액이 6억 8천만 크랑 정도 되었다. 그리고 230억에 대한 이자금이 매월 8,000만 크랑가량 되니 레인보우그룹은 한 달에 7억 6천만 크랑을 물어야 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보유한 자금이라면 3달도 버티지 못하지 않습니까?”
“네. 단순히 계산해 보면 그렇게 나오죠.”
3달의 리미트타임. 하지만, 이는 허수에 불과했다. 현재 레인보우그룹의 채권은 LHN계열사가 17%, 윌킨스계열사가 12%, 유니크은행이 32%, 그리고 지역 내 제 1금융권이 가지고 있는 채권 27%와 시중에 돌고 있는 채권 11%가 다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거래 은행인 유니크 은행은 얼마 전에 오네츠빌딩을 구매하도록 권유할 정도로, 레이보우그룹의 재무상태가 건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거래로 많은 신용도까지 쌓여 있어, 충분히 만기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역 내 제 1금융권도 레인보우그룹과 관계를 살펴볼 때, 자사의 재무구조를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대부분 수긍하리라 생각됐다. 그럼 우려가 되는 부분은 사건의 원흉인 LHN계열사와 의중을 알 수 없는 윌킨스계열사, 그리고 시중에 돌고 있는 채권을 합친 92억 크랑의 빚이었다.
“즉 저희가 한 달에 물어야 할 최대한의 비용이 3억 5천만 크랑 정도라는 얘기에요.”
범석과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으음. 그렇다면 레인보우그룹은 적어도 반년은 버틴다는 소리군요.”
“아니요. 그 이상이에요.”
“아니 어째서죠?”
“저희 그룹이 한 해 올리는 총매출액이 30억 크랑이에요. 인건비나 운영비 등을 다 빼도 한 달에 1억 5,000만 크랑 정도 이윤이 남아돌아요. 이를 볼 때 최악의 경우라도 대략 9개월 이상은 버티리라 생각되는데, 그 사이 최근에 구매한 오네츠빌딩을 매각하면 이번 싸움은 끝이 나요. 저희 그룹의 불안요소가 되는 채권 중 대부분을 갚을 수 있으니까요.”
렉스터가 분기를 표시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황을 들어보니, 레인보우그룹 같은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진 부동산기업도 없었다. 이런 회사에게 악의적인 평가를 한 LHN에 대해 화가 치솟아 올랐다.
“아니. 도대체 LHN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인 겁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어딘가에서 실수가 있지 않나 사료될 뿐이에요.”
“그럼 이제 완전히 해결 나는 겁니까?”
순간 글로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심히 걱정되는 점이 한 가지 있어요.”
“뭡니까?”
“저희 레인보우그룹의 주력 사업이 숙박 및 임대사업이라는 점이에요.”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우려되는 부분을 설명했다.
임대사업은 사무실이나 주거공간을 빌려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사업인데, 필시 입주자들에게 보증금을 걸게 되어 있었다. 레이보우그룹이 보유한 보증금의 총액은 73억 크랑. 만약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나가고 불안감을 느낀 입주자들이 자신의 재산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모두 돈을 빼 간다면 회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보통 임대계약은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일제히 빠져나간다면 한 달에 추가로 들어가야 할 비용이 6억 크랑이 넘어요. 게다가 그들이 빠져나간다면 매출액이 문제가 생기기에 추가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고요.”
“해결 방도는 없습니까?”
글로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매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입주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계속 머물도록 할 수밖에 없어요. 보증금만 돌려준다면 떠날 이유가 없으니까요.”
잠시 잠자코 있던 범석이 경직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국, 이미지 싸움이라는 얘기군요.”
“네. 이번 위기는 시장에서 우려를 표한다면 위험하고, 그렇지 않다면 언제 그랬냐는 양 아무 일 없이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가 곁에 있던 나탈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최근 급성장하는 LKS방송의 CEO였다. 카렌의 프로그램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쌓고 있으니, LKS방송을 통해 레인보우그룹의 속사정을 외부에 자세히 알린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됐다.
“나탈리. 네가 좀 나서줘야겠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청자들에게 LHN금융지주사의 말도 안 되는 처사를 알리고, 레인보우그룹의 재무건전성을 널리 알려라.”
상기된 표정을 한 나탈리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자신이 글로리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총력을 기울여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제작할게요.”
“그래.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해라.”
“네. 알겠어요. 돌아가는 대로 기획안을 짜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겠어요.”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렉스터를 쳐다봤다.
“경감님. 아무래도 저희의 모임을 구체화 시켜야겠습니다.”
“구체화 시키다니. 왜?”
“아무래도 그냥 몇몇 친인이 모여서 돕는다는 내용보다는, 제삼자의 입장을 지닌 신비 단체가 레인보우그룹의 건전성을 신뢰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시청자들에게 잘 먹힐 테니까요. 즉 저희의 이름을 대신해 전면에 내세울 단체 이름을 만들자는 겁니다.”
렉스터가 나탈리를 보며 얘기했다.
“정말이냐?”
“네. 확실히 제삼자 필이 나는 편이 좋아요.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수긍의 빛을 눈가에 새긴 그가 다시 범석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하지 뭐. 뭘로 하면 좋을까?”
“글쎄요. 저도 갑작스럽게 내놓은 제안이라 특별히 생각해놓은 이름이 없습니다.”
곁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던 글로리아가 궁금한 점이 있는지 범석에게 질문했다.
“자금을 지원한다니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후후.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가 글로리아님의 위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자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대충 11억 크랑 정도 되니, 제법 힘이 되실 겁니다.”
그림자가 졌던 그녀의 표정에 금세 화사한 빛이 감돌았다. 이번 위기는 오네츠빌딩을 매각할 때까지 레인보우그룹이 버틸 수 있느냐가 생존의 관건이었다. 만약 지금의 자금에 11억 크랑이 더해진다면, 보유 금액은 총 33억 크랑이 되었다. 우려하고 있던 입주자의 보증금 반환 요청 사태가 대거로 터져 나오더라도 상당기간 버틸 수가 있었다.
“저, 정말인가요?”
“네. 물론입니다. 그리고 나탈리가 다음 달에도 상당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략 수억 크랑정도요. 최근에 카렌의 프로그램 건으로 떼부자가 됐거든요.”
글로리아가 촉촉한 눈빛으로 나탈리의 손을 붙잡았다. 염치는 없지만, 사정이 급하니 감사히 받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이 신세는 훗날 회사가 정상화되는 날 갚으면 되었다.
“고마워요. 나탈리양. 그리고 모두들요. 여러분이 지원해줄 자금이라면 확실히 이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어요. 나중에 꼭 신세를 갚을게요.”
범석을 위시한 일행들이 뿌듯했는지 싱글벙글했다. 레인보우그룹의 부채 230억 크랑에 20분지 1도 안 되는 금액이라, 과연 큰 도움이 될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결정적인 자금이 되고 있었다. 도와주는 입장으로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흥에 겨운 렉스터가 손뼉을 쳐대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하하하. 자. 그럼 우리 단체의 이름을 뭘로 하면 좋겠습니까? 다들 의견들을 제시해주십시오.”
나탈리가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의 이름을 썼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된다라? 제법 괜찮은 분위기인데……. 범석아 너는 어떠냐?”
같은 생각이기에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쁘지 않은데요. 아주 좋습니다.”
대충 의견이 모이자 렉스터가 거창한 이름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일진회가 어떠냐? 하나가 되어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어때 괜찮지?”
당혹한 범석이 손을 뻗으며 제지했다. 이들은 모르겠지만,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그로서는 참 달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자신의 조직에 쪽빠리 매국노를 동경하는 치기 어린 청소년 양아치 조직 이름을 채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진회는 대한제국 말에 일본의 한국 병탄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친일단체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절대 안 됩니다!”
나탈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보기에는 꽤 느낌이 좋았다.
“왜요? 괜찮은 이름 같은데요.”
“그래도 안 돼.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일진회는 매국노와 얘들 양아치조직의 이름이란 말이야. 우리 모임 이름에 그런 지저분한 이름을 붙일 수는 없잖아.”
나탈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로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확실해요?”
“확실해.”
단호하게 반대의견을 매진하는 범석으로 일진회는 일단 후보에서 탈락 되었다. 그는 이 모임의 중추로 입김이 무척 셀 수밖에 없었고, 그런 요상스러운 자들의 이름을 자신들 조직의 이름에 가져다 붙이기 찝찝했다.
이에 나탈리가 다른 이름을 꺼내 들었다.
“그럼 의미 그대로, 하나회라고 하면 어때요?”
범석이 이마를 부여잡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일진회와 거의 필적하는 수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휴~ 그 이름도 안 돼.”
“아니 왜요? 괜찮은 이름인데요.”
“하여간 안된다면 안돼. 그거 두 개만 빼고 아무거나 다 되니까 다른 이름으로 정해.”
입을 삐쭉 내민 나탈리가 렉스터에게 눈길을 주었다. 범석의 억지를 막아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피했다. 범석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다른 좋은 이름으로 찾는 편이 시간 낭비를 피하는 일이었다.
잠시 곰곰이 새로운 이름을 찾는 사이, 응접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한 사내가 급히 뛰어들어왔다. 범석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했던 제이드라는 자였다. 다급한 모습을 한 그가 글로리아를 바라보고는 목청껏 소리쳤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글로리아 힘겹게 돌아다 보고는 타박하듯 말했다.
“제이드부장. 손님들 앞에서 이게 무슨 경망인가요. 채신을 지키세요.”
“회장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기자들에게 들은 내용인데, 조금 전 유니크은행에서 저희 레인보우그룹에 대해 전면적인 채무반환요구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글로리아가 벌떡 일어섰다. 유니크은행은 레인보우그룹의 채권 32%를 가지고 있는 주거래은행이었다. 그들이 등을 돌려버린다면 에이번드지역 내 모든 은행도 자신들을 불신하며 외면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연쇄적인 시장 패닉이 일어나, 대부분의 채권이 회사로 쏟아져 들어오게 될 뿐만 아니라, 계약 만료된 입주자들의 보증금 반환요청도 거세질 터였다.
이때 들어가야 할 자금은 한 달에 최대 13억 크랑. 이런 상황이 매월 벌어질 테니, 지금 모인 자금으로는 3개월도 버티지 못했다. 물론 그 사이에 오네츠빌딩을 매각하면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80억 크랑에 가까운 건물이 일반 단독주택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 짧은 기간 내에 판매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레인보우그룹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지금 막 들은 내용이라 정확한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한목소리로 유니크은행의 채무반환요구선언을 알려오는 터라,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마를 부여잡은 글로리아가 몸을 휘청거렸다. 그만큼 유니크은행의 배신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범석이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글로리아님. 괜찮으십니까?”
정신없이 고개를 흔든 글로리아가 그와 일행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아, 아무래도 저는 유니크은행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주시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점도 사과드리겠어요.”
자기 할 말만 한 글로리아가 급한 걸음으로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이에 심각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렉스터와 함께 뒤를 따랐다. 그냥 돌아가 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걱정스러워 이대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가을의 끝에 와있습니다. 집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노랗던 잎들 조차 다떨어지고 앙상항 가지만 남았더군요. 아마도 곧 날씨가 쌀쌀해지고 겨울에 문턱에 들어설 것 같습니다.
그럼 얼마 안남은 늦가을 하루 보람차게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