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레이미. 방금 나간 그자가 너를 꼭 사겠다고 했느냐?”
“네.”
“그럼. 네 몸 값 2500만 크랑 쯤은 준비했겠지?”
순간 당황한 레이미가 눈알을 빙그르르 굴렸다. 사실을 솔직히 말한다면 빈센트가 범석에게 2500만 크랑 그대로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비록 감독과 친하기는 하지만 주인이 될 그에게 해가 될 짓은 죽어도 못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낮춰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저. 그, 그게, 특별히 그 금액을, 준비 했다기보다는…….요.”
말을 더듬는 그녀를 보며 빈센트가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반평생이 넘게 수많은 엘프들을 지켜보며 살아온 그가, 지금 레이미의 심중을 꿰뚫어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말해 주면 네 몸값을 350만 크랑으로 줄여줄 수도 있다.”
그럼 처음 제시된 500만 크랑 보다 150만 크랑이나 줄어든 액수였다. 레이미가 급격히 자세를 바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정도 돈은 준비해 왔어요.”
“역시 그랬군. 음 좋아. 그럼 다들 들어오라고 해. 협상을 마무리 지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자 레이미가 바로 일어나 부리나케 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제 정말 주인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녀는 밖에서 하릴없이 먼 산만을 바라보고 있던 범석과 아놀드를 불러들였다.
자리에 앉아 주변의 눈치를 보던 아놀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감독님. 레이미와 무슨 얘기를 나누신 겁니까?”
“음. 별것 아니네. 그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을 뿐이네.”
“그것뿐입니까?”
“뭐. 다른 내용도 있지만 사적이고 사소한 일이라 자네가 알 필요는 없네.”
대충 말문을 튼 아놀드가 본격적으로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그, 그런데 방금 전 레이미가 그러는데, 감독님께서 이번 트레이드를 긍정적으로 추진해 나가실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음. 그럴 참이지.”
아놀드가 슬며시 범석의 눈치를 살피더니 귓속말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서, 설마. 서류에 기입되어 있는 그 가격 전부를 부르실 요량을 아니시겠지요. 아마 그랬다가는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겁니다.”
“아닐세. 자네의 체면을 봐서, 또 팀 내 자금 확보를 위해서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할 참이네. 한 600만 크랑 정도.”
목소리가 컸던지 레이미가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독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탓이다. 600만 크랑은 아까 자신에게 말한 액수인 350만 크랑보다 배 가까이 상승된 금액이었다.
“빈센트 감독님! 설마…….!”
이런 그녀의 옷깃을 범석이 꽉 움켜잡고는 자리에 앉혔다. 600만 크랑이 아까 언급된 액수 보다는 높은 액수임에는 확실하지만, 처음 예상했던 2500만 크랑 보다는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반드시 레이미를 사야할 입장인 범석으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협상에는 에누리라는 묘미가 있었다. 아직은 서로 얼굴 붉힐 때가 아니었다.
손을 깍지 낀 그가 아놀드를 바라봤다.
“아까 말씀하신 금액보다 100만 크랑이 상승된 금액이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기에 대해 아놀드는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는 이 자리에서 600만 크랑이 언급된 데에 대해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옹고집장이 빈센트가 자신의 체면을 위해 이 정도 선까지 양보할 줄은 전혀 몰랐다. 이제 아놀드는 감독 편이었다.
“아까는 대략의 가격을 언급했을 뿐이지, 실제 레이미의 몸값을 정확히 평가한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선에서 팀을 지휘는 감독님께서 더 확실히 파악하고 있을 터. 전 빈센트감독님의 지금의 의견에 이견이 없습니다.”
이제 바톤은 저 영감탱이로 넘어갔다. 범석이 이번에는 빈센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께서 600만 크랑을 제시하셨는데, 그 이하로는 거래할 마음이 없으신 겁니까?”
“단일 거래에 한에서는 절대 그 이하로 레이미를 트레이드를 시킬 의향이 없네. 절대로.”
범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완고하게 가격인하를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던 탓이다.
“그럼 단일 거래가 아니라면 협상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자네가 또 한명의 검투사를 데려갈 의향이 있다면 레이미를 350만 크랑에 넘겨줌세.”
파격적으로 낮아진 금액에 범석이 호감을 보였다. 어차피 레이미와 비너스만 가지고 팀을 구성할 수는 없는 법이니, 다른 검투사들을 더 구입해야만 했다. 가격 대비 능력만 괜찮다면 또 다른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듣던 아놀드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중 거래를 한다지만 레이미의 몸값을 350만 크랑으로 산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지금이야 전력 외로 구분되어 타지 스포츠센터에 파견 나가 있다지만, 과거 에어리어리그 시절 때는 엄청난 활약을 하며 많은 프로팀에게 관심을 받았다. 솔직히 500~600만 크랑의 몸값만 제시해도 그녀를 사갈 에어리어리그팀은 널렸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거래를 성사시켜 위에 보고를 드렸다가는 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너무 쌉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들은 채 만 채도 하지 않은 빈센트가 계속 범석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단. 거래할 검투사는 내가 정하겠네. 다른 검투사라면 이런 파격적인 가격인하는 없을 걸세.”
그 말에 범석은 난감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만약 그가 제시하는 검투사의 능력이 턱없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자신이 사야 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레이미의 몸값을 350만 크랑으로 낮추는 길이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고민이 되는 군요. 혹시 그 검투사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스칼이라는 아이일세.”
옆에서 듣던 아놀드의 표정이 또다시 급변했다. 오스칼은 처치 곤란한 골치덩어리로 팀 분위기를 해치는 주범이었다. 지금 팀이 잘나가는 이때에, 반드시 제거해야할 썩은 사과였다. 다른 검투사들이 그녀에게 동조되어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깨져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클럽에서는 그녀를 처리하라고 계속 압력을 넣었고, 이를 반대하는 빈센트 감독으로 지금까지 없던 팀 내 불화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감독이 오스칼을 제거하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도 앞으로 정신치료센터에 들어갈 병원비까지 합치면 마이너스 몸값이 될 그녀를, 트레이드 명목으로 자금까지 확보하면서 말이다. 여러 가지 측면을 봤을 때, 레이미 몸값에서 마이너스 된 150만 크랑은, 달게 감수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마도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면 자신은 위로부터 큰 상찬을 받을 터였다. 아놀드는 다시 한 번 감독의 딸랑이가 되기로 했다.
“그렇다면 저도 감독님의 의견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흠흠.”
얼굴표정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연발하는 아놀드를 바라보며 범석이 미심적인 눈빛을 날렸다. 지금까지 보건데 그는 클럽의 이익에 충실한 자로, 그런 자가 갑자기 찬성을 하고 나섰다는 점은 오스칼이라는 엘프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였다. 거래하는 입장에서 상대가 이득을 취한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는 법, 뭔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외지인인 그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범석은 하는 수 없이 레이미에게 조용히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그녀는 29년간 이곳 드래곤나이츠에서 활약을 해왔으니 팀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잠시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레이미를 일으켜 응접실 구석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이미. 오스칼이 누구냐?”
“제가 데몬스포츠센터로 파견 나가있는 동안 팀에 들어온 아이인데, 언니들이나 동생들이 말하기를 성질이 포악하고 크고 작은 말썽을 자주 일으켜, 팀에서 제거하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라고 했어요.”
“그래? 또 다른 얘기는?”
“그런데 빈센트 감독님이 애지중지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무사히 클럽에 잔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영입하는 게 좋겠냐?”
그녀가 멀리 아놀드와 빈센트의 눈치를 보더니, 범석의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삭였다.
“아주 좋은 기회이니 반드시 영입하셔야 해요. 엘프 보는 눈이 좋은 빈센트감독님께서 극구 데려온 아이였고, 전에 또 듣기로는 홀로 몇몇 2군 검투사와 싸워 큰 부상을 입혔다고 했어요. 자신은 멀쩡하고요. 그렇다는 얘기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라는 얘기에요.”
“괜찮겠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엘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예요. 바로 주인을 모시지 못할 때 말이에요. 하지만 범석님은…….”
알아들었다는 듯 범석이 대화를 끊었다. 지금의 대화만으로도 이 트레이드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정신적 문제는 레이미의 말마따나 자신이 한 번 눌러주면 해결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오스칼이라는 엘프를 만나 직접 그 능력을 확인해 보는 일뿐이었다.
범석이 레이미를 데리고 다시 자리에 가 앉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오스칼이라는 검투사를 만나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아놀드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마치 혹을 때줄 호구 도깨비를 만난 혹부리영감이 된 심정이었다. 그는 급히 인터폰을 눌러 누군가에게 오스칼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다시 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인내심이 극한에 이를 때쯤 한 엘프가 급히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 저기 아놀드님.”
짜증이 난 아놀드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뭐야! 왜 아직까지 오스칼은 안 데리고 오는데! 아직도 못 찾았어!”
“저, 저기 찾기는 찾았는데요.”
“찾았는데 뭐!”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직접 오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요.”
이가 부서져라 악문 아놀드가 자신의 머리칼을 꽉 움켜잡았다. 범석이 아무리 호구라도 이런 장면까지 보였으니 협상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 탓이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그는 화가 머리꼭지까지 치미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럼 뭐해! 경비를 대동해서라도 당장에 끌고 와야지!”
“실은 그 경비들이 오스칼에게 모두 당해 근처 치료센터로 실려 갔어요.”
이 소리를 들은 범석이 입이 찢어져라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 성깔이 마음에 든 탓이다. 아무리 스포츠라지만 검투는 검을 들고 상대를 쓰러트려야하는 경기였다. 그 정도 깡다구쯤은 가지고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하하하. 그럼 저희가 가죠. 한 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군요.”
실낱같지만 협상의 물꼬가 아직 틔어져 있음을 느낀 아놀드가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귀쟁이도 인재를 얻으려고 삼고초려를 했다는데, 그 정도 못가겠습니까. 산책 삼아 걷는 셈 치죠.”
“그, 그리 이해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자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난 아놀드가 엘프사무원을 채근하듯 앞장세웠다. 그 뒤를 범석과 레이미가 뒤따랐고, 소파에 앉아 가오를 세우고 있던 빈센트도 곧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응접실을 빠져나온 이들은 사무실 건물을 나와 훈련캠프 뒤뜰 쪽으로 향했다.
——
다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