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61
163화
며칠 후 연락을 받은 범석이, 글로리아와 함께 실로니아의 엘링턴 시티로 찾아갔다. 델로이광역정부의 중추도시로, 1,04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거대행정도시였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루카스 회장이 경영하는 윈드하우스사 본사가 있었던 탓이다. 오늘 그는 레인보우그룹의 생존이 걸린 협상을 진행할 참이었다.
10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범석과 글로리아가 멀리 회장실 푯말이 걸려 있는 문쪽을 향해 걸어갔다.
“글로리아님. 긴장하지 마십시오.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쳐 루카스회장님께 좋지 않은 인상으로 줄 수 있습니다. 그럼 자칫 오늘 설명회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브리핑은 평생을 일궈왔던 회사가 문을 닫느냐 살아남느냐의 분수령이었다. 당사자인 글로리아로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길게 심호흡을 하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도요.”
“후후.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고, 편히 마음을 먹으십시오. 레이보우그룹의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한다면, 충분히 투자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회장실에 가까워질수록 글로리아의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만큼 떨리는 순간이 있었을까? 그동안 몇 번의 위기가 레인보우그룹을 강타했지만, 한 번의 브리핑에 자사의 사활을 결정되는 사태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결국, 문 앞까지 다다른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노크를 범석에게 양보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낭랑한 여성에 목소리에 범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몇몇의 엘프가 서 있는 자세로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어서오세요. 범석님. 안 그래도 루카스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래. 루카스 회장님께서는 어디 계시지?”
여성 정장을 잘 차려입은 금발의 엘프가 내부의 있던 문 중, 중앙 쪽으로 걸어가더니, 양손을 뻗어 가리켰다.
“일단 여기 회장님실로 들어가십시오.”
“알았어. 고마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범석이 글로리아를 데리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범석군. 어서 오게.”
언제봐도 루카스회장은 과할 정도로 호쾌했다. 서글서글한 얼굴 표정하며, 반기듯 양팔을 벌리는 모습까지……. 왠지 느낌이 좋았던 범석이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루카스회장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하하하. 나야 잘 지냈지. 그래 그 레이보우그룹의 회장이라는 분이 옆에 계신 숙녀분이신가?”
루카스가 글로리아를 바라보며 미소 짓자, 범석이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렇습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자 글로리아님 인사하십시오.”
“안녕하세요. 글로리아라고 해요.”
아무 말 없이 유심히 그녀를 살펴본 루카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반갑소이다. 난 루카스라고 하오.”
“네. 알고 있습니다. 루카스회장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루카스가 응접용 소파로 이들을 데리고 갔다.
“자자. 다들 앉지. 아무래도 할 얘기가 무척 많을 게야.”
“후후. 네. 오늘 무척 귀찮게 해 드릴 테니, 긴장하십시오.”
“이런 무서운걸.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귀찮은 것이 딱 질색이야. 그런 낌새라도 있다면, 바로 튈 걸세.”
모두 자리에 앉자 범석이 미소를 짓고는 글로리아에 눈짓을 보냈다. 이제 브리핑을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얼른 품 안에서 전자수첩을 꺼내더니, 탁자 앞에 펼쳐 보았다.
“벌써 시작들 하게? 이거 숨넘어가겠네. 그러지 말고 차를 들며 느긋하게 하지.”
하며 루카스가 인터폰을 통해 엘프비서들에게 차와 다과를 준비하라고 했다. 범석도 특별히 급할 이유가 없기에, 곧 들어오는 간단한 만찬을 즐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브리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시겠지만, 레인보우그룹은 보기 드물 정도로 건실한 회사입니다. 이 위기만 벗어나면 얼마 안 가 정상화가 되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후후. 회사라는 것이 다 그렇지. 위기와 호황을 번갈아 맞이하며 성장하는 게야. 그나저나 자네 갓즈나이츠팀의 성적이 최근에 어떤가? 전에 확인해봤을 때는 꽤 잘 나가는 듯 보였는데 말이야.”
그가 무심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레인보우그룹이 주가 되어야 할 자리에 갑작스럽게 갓즈나이츠의 팀 성적을 물어오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딱한 투자설명회 전에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배려일 수도 있으니, 기꺼이 말하기로 했다.
현재 갓즈나이츠의 성적은 최근 4승 1무를 얻어 18승 5무 7패로 리그 내 4위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18승 6무 6패로 승점 동률을 이루고 있는 파이어 피닉스즈팀과 피스 그린핀즈팀과 차이가 고작 승점 1점 차이이고, 후반부에 이들 모든 팀과 한 번씩 붙게되니, 언제든 2위까지 치고 올라갈 기반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리그경기가 단 8경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갓즈나이츠가 양 팀 중 하나에게 패전이나 무승부를 기록하고, 그 팀이 나머지 경기를 승리로 마감한다면 2위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피스 그리핀즈입니다.”
“그래 어째서인가?”
피스 그리핀즈팀이 현재 파이어 피닉스즈팀과 동률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전검투사의 부상으로 기인한 컨디션 저조일 뿐이지, 기본적인 전력은 많이 앞서고 있었다. 이제 모든 부상검투사가 팀에 복귀하고 제 역할을 하는 마당이니, 팀 승률은 크게 상승할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이들 팀은 갓즈나이츠와 원정경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강팀과 승부를 본 상태이고, 남은 8경기 중 6경기가 홈경기였다. 충분히 앞으로 남은 대다수 경기를 승리로 마감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런가? 그럼 자네팀의 2위 전망은 어떤가?”
“아마도 리그 최종전인 38번째 경기에서 2위 자리가 판가름날 공산이 큽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저희와 피스 그리핀즈가 맞붙게 되니까요.”
루카스가 턱을 괴며 그를 유심히 쳐다봤다.
“오. 대단한 자신감인데. 즉 자네팀도 남은 경기를 피스 그리핀즈와 거의 같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당연한 일입니다. 피스 그리핀즈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전력은 저희가 우위에 있습니다. 오스칼과 라피네만 있었다면, 회장님의 블랙캣츠팀도 충분히 이길 정도로 갓즈나이츠는 강합니다.”
루카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팀의 감독인 롭스에게도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리그전에서 블랙 캣츠의 가장 큰 행운이 갓즈나이츠가 전반기에 승격을 포기하며 GA컵에 집중한 일과 오스칼, 라피네가 드래곤나이츠로 임대된 사건이라고 했다.
이렇듯 자타가 공인하니,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군. 납득이 가는 바이네.”
이제 대충 설명을 마쳤다고 생각한 범석이 글로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분위기 전환 삼아 꺼낸 담소이기는 하지만, 사정이 급한 그녀를 옆에 두고 떠벌리기에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자. 그럼 루카스회장님. 이제 브리핑을 하시죠. 오늘의 주는 레인보우그룹의 투자 설명회이니까요.”
그 말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루카스가 손을 휘저었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네. 이미 대충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네? 다 알고 있다니요?”
“며칠 전. 자네에게서 레인보우그룹에 대한 부탁을 받고 따로 조사해 살펴봤네. 아마도 저기 글로리아회장이 할 말 중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을 걸세.”
범석이 환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습니다. 레이보우그룹의 재무상태가 매우 건전하다는 사실도 아실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알아보니 보수적으로 보일 정도로 무척 건전하더군. 매출도 꾸준할 뿐만 아니라 매년 10억 크랑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더군. 또 부동산 전문 기업치고는 채무상태도 양호하고 말이네.”
“그럼 투자를 해주는 겁니까?”
루카스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흑사회는 범석이 이 문제로 찾아오리라는 것을, 레인보우그룹 사태가 터지기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들 정보원을 통해 줄리앙이 LHN금융지주사에 찾아가 누군가를 긴밀이 만났다는 사실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한 끝에 현재 LHN금융지주사의 회장 손녀인 아울라가 그놈과 동창임을 확인했고, 긴밀히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아울라의 추종자 중에는 라이드 전무라는 자가 있는데 은행들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래에는 흑사회와 끈끈한 연이 닿아있는 유니크은행 부회장을 당당히 찾아와 한 가지 커다란 선물과 함께 레인보우그룹에 압박을 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흑사회의 수뇌부는 무척 고심했다. 아울라가 유니크은행 부회장이 흑사회와 친분이 있음임을 분명히 알 터인데, 이런 요구를 해왔다는 것은,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앞으로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협박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자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고 무시하고 넘어갈 터였지만, 그녀는 LHN지주금융의 최우선 순위에 올라 있는 후계자 후보였다. 그곳 회장인 발바르가 나이가 들어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얼마 안 가 LHN지주금융의 수장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간 범석과 관계를 봤을 때는 그래도 물리쳐야 했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인의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가 있었다.
알려진 바로 아울라는 독종에 가까운 성격이라, 한 번 쌓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훗날 중립을 유지하던 LHN지주금융이 경제인 단체 쪽으로 붙을 수도 있는 일. 흑사회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무료신체시술 제도에 대한 싸움은 경제인 단체 쪽이 백기를 든 상태라 범석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하락했고, 엠마가 프로로서의 경험을 상당히 쌓았기에 갓즈나이츠에서 나온다고 명분상 아무런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아울라의 전언에 의하면 이번 일만 도와준다면 LHN은 계속 중립을 지켜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흑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번에 모르는 척 넘어가는 편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글쎄. 그게 좀 힘들 것 같네.”
부정적인 그의 발언에 범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레인보우그룹의 재무 건전성은 어느 우량 기업 못지 않게 튼튼합니다.”
“그건 방금 말했다시피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 레인보우그룹 사태는 LHN은행이 적의를 가지고 망하게 하려고 작정하고 나선 일이야. 게다가 얼마 전에는 우리가 레인보우그룹을 돕는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 협박을 해왔네. 물론 우리 흑사회가 그들보다 못할 리는 없지만, LHN이 경제인 단체 쪽으로 넘어가 버리면, 지금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놈들과의 전선에서 일방적으로 우리가 밀리게 되네. 그리고 나 비롯한 흑사회 멤버들 상당수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 세계 최대규모의 금융사와 척을 지고 싶어하지는 않아 해.”
예상은 했지만, LHN이 이 정도 적의를 가지고 레인보우그룹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흑사회 세계 최대규모의 경제, 정치단체. 이들에게 협박하는 모험을 걸었다는 것은, 즉 작정하고 덤비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는 글로리아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글로리아님. 혹시 LHN과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아뇨. 전혀요. 저희 같은 지역정부를 기반으로 둔 회사가 그런 초대형 금융회사와 척을 지겠어요.”
하긴 그도 맞아 보였다. 레인보우그룹은 LHN금융지주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였다. 평생을 경영일선에서 살아온 글로리아가 함부로 밉보일 짓을 할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한 범석이 루카스를 쳐다봤다. 이번 사건의 뒷면에 경제인 단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자신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이런 짓을 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루카스 회장님. 혹시 이번 일이 저희를 향한 경제인 단체 쪽의 공격이 아니까요?”
“우리도 그 점이 의심됐지만, 확인 본 결과 아니라고 판명됐네.”
루카스는 전혀 표정 변화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레인보우그룹 사태는 경제인 단체 쪽 일원인 줄리앙에 의해 벌어진 일이지만, 자신들이 아닌 범석의 주변인에 국한된 공격이었다. 당연히 부정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에 범석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흑사회와 놈들의 관계를 봤을 때, 이런 유유자적한 행동을 보일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휴~ 그럼 대체 LHN에서 왜 이러는 겁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볼 문제일세. 지금은 레인보우그룹의 부도가 확실시되는 이 시점에서 글로리아회장이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의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네. 레인보우그룹에서 아직 20억 크랑 정도의 현금자산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늦기 전에 이 자금을 외부로 반출해 훗날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네. 사실 오늘 이렇게 자네와 글로리아회장을 내가 만나겠다고 한 것도 이 점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네. 원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뒤탈이 없도록 손 써줄 수가 있네만…….”
그때 글로리아가 분에 겨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레인보우그룹은 그녀가 평생을 일궈온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고, 오갈 데가 없는 많은 여성이 삶의 터전으로 삶는 직장이었다. 자신 혼자 살겠다고 돈을 빼돌려, 단칼에 죽여버릴 수는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 손으로 레인보우그룹을 무너뜨리라고요! 그럴 생각이었으면 이 자리에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루카스가 냉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딱히 나로서도 글로리아회장을 도울 방도가 없소. 우리 흑사회는 절대 LHN과 척을 질 마음이 없으니까 말이오.”
“알겠어요. 저도 구차하게 더는 부탁하지 않겠어요.”
글로리아가 전원도 켜지지 못한 채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전자수첩을 품 안에 잘 갈무리해 넣고는 회장실을 떠나갔다. 난감해진 범석이 루카스 회장에게 간단히 하직인사를 올리고 급히 그녀를 뒤따라 나섰다. 흑사회는 레인보우그룹의 마지막 희망이었기에, 글로리아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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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