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64
166화
“좋습니다. 은행은 신용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치죠. 그럼 레인보우그룹과의 신용은 왜 무시하십니까? 업계와의 신용은 그렇게 중요시하는 분이, 왜 고객과의 신용은 개차반처럼 여기는 겁니까?”
윌킨스가 딱히 반박할 말이 없던지, 잠시 범석을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윌킨스금융지주사가 레인보우그룹에게 12%의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 상생해보자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으음. 그렇기는 하겠군. 자네 말이 틀리지는 않네. 우리는 레인보우그룹과도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네.”
가능성이 엿보인 범석이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그럼 레인보우그룹을 도와주십시오.”
“아니. 그럴 수는 없네.”
“아니 왜입니까!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레인보우그룹과도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요.”
윌킨스가 느릿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채권단 쪽의 약속도 지켜야 할 입장일세. 즉 두 가지의 신뢰관계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지. 자 그럼 여기서 하나만 묻지. 자네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세계 최대 금융기업인 LHN의 편에 서겠는가? 아니면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레인보우그룹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범석이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인즉슨, 윌킨스는 지역기반의 레인보우그룹을 돕기보다는, 전 세계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LHN과 함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LHN과 함께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세상에는 힘의 역학관계가 존재하는 법이고, 이를 거슬렸다가는 큰 손해를 보기 십상이지. 어차피 선택해야 한다면 LHN쪽이 훨씬 낫겠지.”
“그럼 결국 윌킨스금융지주사는 저희의 적이 된다는 뜻이군요.”
그 말에 윌킨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의 적?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지? 나는 레인보우그룹을 치겠다고 했을 뿐, 자네를 해코지할 마음은 없네. 즉 자네와 내가 싸울 이유는 없다는 게지.”
“아니요. 이유는 있습니다. 레인보우그룹의 글로리아회장은 저희 모임의 한 구성원. 그녀를 치는 행위는 저희 전체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오. 레인보우그룹을 위해 나 윌킨스와 기꺼이 적이 되시겠다?”
범석이 다부진 얼굴로 그를 직시했다.
“물론입니다.”
“후후후. 재미있군. 재미있어. 어떤 대단한 모임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상대한다면 그만한 대가가 따를 텐데, 각오는 되어 있는가?”
“충분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윌킨스가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렉스터를 쳐다봤다.
“자네도 나와 싸워볼 의향이 있겠는가?”
긴 한숨을 내쉰 렉스터가 범석을 원망하는 눈초리로 쏘아봤다. 도움 요청이 거절됐으면 즉각 자리를 뜰 것이지 왜 애꿎게 윌킨스 같은 거물을 적으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채면 상 여기서 고개를 흔들 수는 없었다.
“휴~ 마음에는 안 들지만, 까짓것 하겠습니다. 하지만, 단단히 각오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자식도 그렇지만, 저도 만만한 인사가 아닙니다.”
윌킨스가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치열한 세상사에서, 자신과 맞상대하면서까지 레인보우그룹을 돕겠다고 말하니 기특해 보였다. 이런 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도와줘도 나쁘지 않을 듯 보였다. 지금 은혜를 베풀어두면 훗날 반드시 신세 갚음을 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킨스는 지금 LHN과 조용한 알력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의 성미 상 업계 2위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저번 경제위기를 통해 TNB 은행의 흡수병합하며 덩치싸움을 벌여나가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제대로 한 번 붙어야 할 터, 이번 사태를 도화선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LHN은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이들이 그 풍파 속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가였다. 없다면 굳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될 일.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으음. 자네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내가 생각을 달리해 볼 수도 있지. 나는 자네들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갑작스러운 윌킨스의 태도 변화에 범석이 자리를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정말입니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그게 뭡니까? 말씀만 주시면 반드시 들어 드리겠습니다.”
윌킨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발바르회장의 지갑 속 돈을 내게 가져오게. 빌리든 사기를 치든 전혀 상관하지 않겠네.”
범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발바르회장이라면 그 LHN의 회장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하지만, 꽤 어려울 거야. 나조차도 그 친구의 지갑을 열어본 역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수전노이거든.”
범석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윌킨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이 너무도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발라르회장을 만나는 일은 흑사회에게 주선해달라고 한다면 간단히 해결되었고, 아무리 수전노라고 해도 지갑 속의 돈을 꺼내게 하는 방법은 널리고도 널렸다.
게다가 윌킨스 대화 내용으로 볼 때, 이번 사태가 발바르회장의 진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잘만 설득한다면 이 만남을 통해 LHN의 레인보우그룹의 공격을 거둬들일 수도 있었다. 그는 윌킨스의 이번 미션이 레인보우그룹 사태 해결을 위한 열쇠의 힌트라고 판단될 정도였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발바르회장님을 설득해 보이겠습니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윌킨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언? 그게 무슨 뜻인가?”
“저보고 발바르회장님을 만나, 레인보우그룹에 대한 압박을 멈추게 하라는 것 아닙니까?”
윌킨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가 거하게 김치국물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말을 비비 꼬는 성격이 아니네. 정확히 그 작자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오면 도와주고, 아니면 없던 일이 되는 게야. 괜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앞으로 발바르회장의 돈을 가져올 궁리나 하게.”
“하지만, 발바르회장을 만나 설득하면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뭐. 그야 그렇겠지. 그런데 어떻게 그 작자와 만날 겐가? 발바르놈은 지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LHN본사 빌딩에 주거지를 만들고 두문분출하고 있네.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외부에 나오지 않으니, 만나기 꽤 어려울게야.”
“괜찮습니다. 흑사회에 도움을 청한다면, 간단히 주선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윌킨스가 바로 비웃음을 흘려댔다.
“후후후. 흑사회가 자네를 도와준다고? 정말 그럴 것 같은가?”
“물론입니다.”
“자네가 아직 뭘 모르는 모양이군. 이번 레인보우그룹 사태의 주동자가 누군 줄이나 아나?”
범석이 당연하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LHN이지 않습니까?”
“아니네. LHN은 그저 전면에 나선 세력일 뿐, 사실 암중에 다른 세력이 그들을 움직이고 있지.”
뜻하지 않는 정보에 범석이 눈을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지금까지 그는 이번 사태의 원흉이 LHN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그게 누구입니까?”
“하나는 경제인 단체 산하의 청년연합기업회 소속의 줄리앙이라는 놈으로, LHN그룹 후계자이자 동창생인 아울라를 움직이며 이번 사태를 조장하고 있지. 레인보우그룹 채권단을 만나 작업을 거는 라이드전무가 바로 아울라 고년의 최측근일세.”
범석이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노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줄리앙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작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에 만난 흑사회의 루카스회장은 이 내용을 전면 부인했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흑사회가 파악하기로 놈의 움직임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말을 했겠지. 두 번째 관련자가 바로 흑사회이거든. 레인보우그룹을 압박하고 있는 유니크은행의 실세가 홉스 부회장이라는 작자인데, 바로 흑사회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인사지. 즉 이번 사태는 경제인 연합회와 흑사회의 공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네.”
충격을 받아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가 멍하니 윌킨스를 바라봤다.
“확, 확실한 얘기입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렇다네. 정 의심스러우다면 계속 흑사회를 의지해도 나는 말릴 생각이 없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범석이 모진 호흡을 품어댔다. 머리끝까지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정확하지 않다고 했으니, 아직은 흑사회가 이번 사태에 연류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들도 인간일 진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지는 않으리라 생각됐다.
‘윌킨스회장님의 착각일 거다. 내가 그 작자들에게 해준 것이 얼마인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상한 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흑사회가 자신의 도움 요청에 너무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렉스터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엄지로 문쪽을 가리켰다. 이만 돌아가자는 얘기였다. 이미 시간도 충분히 지난데다가, 윌킨스와의 용건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럼 윌킨스회장님.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으음. 그러도록 하게. 그럼 부디 소기의 성과를 내게 가져오기를 바라네.”
“네. 그럼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팩하고 몸을 돌린 범석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흑사회가 배신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복도로 나선 그가 주먹으로 벽면을 힘껏 갈겼다.
쾅.
충격에 못 이겨 살짝 부서져 내리는 콘크리트가루를 본 렉스터가 급히 다가가 그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범석아. 진정해. 윌킨스 회장님께서 확실한 내용이 아니라고 했잖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범석이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참는 중입니다.”
“참고 있다는 놈이 애꿎게 벽을 왜 치냐?”
범석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아닐 것으로 생각하지만, 약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럽니다.”
“뭐가 의심스러운데?”
“생각해 보십시오. 솔직히 LHN에서 레인보우그룹에 그런 악의적인 작태를 벌이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분명히 경제인 단체가 연류되었을 가능성이 많은데, 전에 루카스회장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줄리앙이 연관된 것이 사실이라면 흑사회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놈은 주 관심 대상이라 항시 흑사회의 정보원이 따라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지지는 않았잖아. 일단 전후 사정을 알아본 이후에도 늦지 않아. 내가 한 번 지인들을 통해 알아볼 테니까, 일단 그때까지만 참아.”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범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당장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이번 일에 관련된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렉스터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흥. 흑사회가 잘도 사실대로 말하겠다.”
“아뇨. 흑사회가 아닙니다. 아주 멍청하고 쪼다 같은 놈 하나가 있죠. 아마 전화를 걸자마자 대번 술술 읊어댈 겁니다.”
“어떤 병신 같은 자식이 자기가 했다고 떠벌리겠냐?”
“그 자식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단 내가 직접 연락을 취해야 하겠지만요.”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범석이 품에 든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 목록을 선택한 후, 한 인물의 연락처를 찾아 바로 통신버튼을 눌렀다. 잠시 이어지는 호출음. 곧이어 화면 상으로 갈색 머리칼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범석과 갈등관계에 있는 줄리앙이었다.
– 여어. 이게 누구신가? 아주 오랜만이네.
“그래. 오래만이다.”
– 그런데 내게 무슨 일로 전화를 했지? 우리는 서로 연락을 취할 만큼 사이가 좋지는 않잖아.
“어. 그렇지. 하지만, 레인보우그룹 때문에 열이 뻗쳐서 말이야. 이번에 네가 제대로 일을 벌였더군. 아주 놀라서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야.
그 말에 줄리앙이 묘한 미소를 입가에 새겼다.
– 호오. 그래? 이거 애쓴 보람이 있는 걸. 네게서 이 정도의 반응이 얻어내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제대로 고른 것 같군.
“그래. 하여간 너도 제법이다. 동창생인 아울라를 움직여서 내 주변인을 칠 생각도 다 하고.”
– 뭐. 기본이지 뭐. 어때? 달려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면 한 수 물려줄 수도 있는데? 혹시 관심 없어?
“아니 관심 없다. 아. 그리고 고맙다. 무척 참조가 됐다. 그럼 잘 있어라.”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힘을 꽉 쥐어 손에든 전자수첩을 부숴버렸다. 이로써 윌킨스회장의 말이 옳았다고 판명되었다. 줄리앙은 분명히 이 사건에 관계되었고, 그를 항시 감시하는 흑사회가 모를 리가 없었다.
범석이 흉흉하게 눈빛을 번뜩이며 렉스터를 바라봤다.
“경감님. 흑사회와 유니크은행의 홉스부회장 관계. 그리고 홉스부회장이 이번 사태에 얼마나 관련됐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그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전까지 수사과에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아는 후배나 선배를 통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범석을 안정시키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그는 현재 몹시 분노했는지,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 알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진정해라.”
“진정요?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 줄리앙 놈이 이번 사태와 관계됐다는 것은 바로 흑사회가 배신했다는 뜻입니다!”
렉스터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만약 여기서 범석이 흑사회로 달려가서 행패를 부리는 순간, 자신들은 양쪽으로 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일단 지금은 모르는 척하는 편이 신상에 좋았다.
그가 멀리 보이는 휴게실을 바라보더니, 범석을 이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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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