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93
195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범석은 냉기를 푹푹 뿜어대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루카스의 승부조작 제의를 술수를 부려 거절했지만, 기분은 가히 좋지 못했다. 얼마나 자신이 만만하게 보였으면 그딴 짓거리하는지 열이 뻗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다이아나는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시합도 시합이지만, 연인엘프로서 주인의 노기를 표출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모든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시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해! 다들 명심하고 시합에 집중하도록 해!”
“넷. 감독님!”
고개를 주억거린 다이아나가 범석 휘하의 엘프들을 따로 면담하며,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설명하고 앞으로 있을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범석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승리를 거머쥐어야 했다.
정확히 오후 2시. 전광판에 오늘의 19명의 출전명단이 주룩 떠올랐다. 어이없는 사실은 삼일 전에 부상당한 검투사가 여지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측했던 바였기에 색다를 일도 없었지만, 범석의 노기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이사장인 루카스나 감독인 롭스가 쌍으로 자신을 엿 먹이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시 다 되어갈 무렵. 진행 측에서 양 팀 검투사에게 입장대기 신호를 알려왔을 때, 범석은 카타나 2자루를 허리에 동여매고, 제일 먼저 입장 터널로 나아갔다. 빨리 경기장에 나가 날뛰며, 이 쭈글쭈글한 기분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이윽고 다시금 입장 신호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자마자 범석이 급한 걸음으로 경기장 중앙 쪽으로 나아갔다.
‘기다려라. 깜장 괭이. 오늘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갓즈나이츠는 검투사들은 방진 형태로 진형을 짰다. 블랙 캣츠의 1라운드 출전 검투사들은 모두가 와이드리그급 검투사인지라, 아무리 이쪽이 최정예로 나섰다가고 하나,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반 방어로 일관하다가 기회가 엿보이면 하나씩 상대의 전력을 줄여나가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갓즈나이츠는 선봉 없이 후미로 있던 6명이 총 출동해 겹겹이 진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때 옆에서 우둑 커니 서있는 젤소미나가 범석에게 다가왔다. 작전상 자신들은 프리롤을 뛰어야하는데, 그가 진형 한편에 자리한 채 미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안 나오세요? 저희들은 프리롤을 뛰어야죠?”
“일단 아직. 너도 이리와 진형을 구성해.”
“네? 제가 진형을 구성해요? 저는 아직 포지션훈련이나 진형 훈련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지금 저희가 프리롤을 뛰지 않으면 작전이 엉망이 된다고요.”
범석이 그녀의 손목을 끌며 자신의 앞에 세웠다.
“기만책이다. 지금은 이대로 진형에 녹아드는 척 하다가, 시합이 시작되면 바로 튀어나가 프리롤을 시행한다.”
그렇다면 안심인바 젤소미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네. 그런 의도시군요. 알겠어요.”
“그리고 프리롤은 순차적으로 나간다. 일단 너부터 나가고 마크맨이 뒤따르면 내가 나간다.”
“아니 왜요?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
“있다. 성공만 한다면 이번 라운드를 이긴다.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녀는 범석을 신뢰하기에 약간 작전이 변경됐음에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게다가 감독인 다이아나가 그의 연인엘프였기에 계획과 다른 플레이를 보였다고 해도 팀 지휘부와 문제 생길 일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정확히 어떻게 하죠?”
“양 팀 간의 충돌 직전 너는 급히 진을 빠지며 블랫 캣츠의 뒤쪽 우측에 가서 자리를 잡아라.”
“네. 그렇게나 깊숙이 파고들어요? 만약 블랙 캣츠팀이 본진 공격을 포기하고 대거의 검투사를 보내 저를 잡으려하면 어떻게 해요?”
“상관없다. 그걸 노리는 거니까. 아무리 많이 보내도 너 혼자라면 넷 이상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 정도면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젤소미나가 망설임을 보이다가 결국에 가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니 믿음이 간 것이다.
이러는 사이 시합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경기장 안을 울려 퍼졌다. 갓즈나이츠와 블랙 캣츠는 서로 견제를 하며 진을 좌우로 이동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상대 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젤소미나. 이때다!”
범석의 외침과 함께 튕겨져 나가듯 진을 빠져나온 젤소미나가 블랙캣츠 진형의 후방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3, 11, 17번의 블랙 캣츠 검투사가 옳다구나 그녀의 뒤를 쫓았다. 젤소미나만 잡으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갓즈나이츠를 마음껏 몰아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 진형 후방에 위치한 젤소미나를 쫓기 위해서는 갓즈나이츠 쪽에 등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범석이 곧 손에 들고 있던 카타나를 역으로 쥐고는 가장 뒤에서 달리는 3번 검투사를 향해 힘껏 날렸다.
휘이익. 퍽!
거친 파공음 내는 카타나가 긴 궤적을 이루며 3번 검투사의 등 쪽에 정확히 강타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미끄러지듯 쓰러지는 3번 검투사. 하지만, 앞에서 달리던 탓에 11번 검투사와 17번 검투사는 동료가 당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에 범석은 나머지 또 하나의 카타나를 역으로 들고는 17번 검투사에게 날렸다.
곧 그녀가 짙은 흙먼지가 일으키며 앞으로 고꾸라지자, 뒤에서 달리고 있던 11번 검투사는 곧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제자리에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크를 나온 팀원들이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 11번 검투사가 젤소미나를 추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블랙 캣츠 진형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왠지 적의 의도에 움푹 빠져든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범석을 보고는 복귀를 멈추고 검을 상단에 세웠다. 아무리 그라지만, 맨 손이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지금 두 명의 동료가 당하기는 했지만, 범석만 잡는다면 이번 경기는 이긴 것이나 진배없었다.
“검이 없군요! 각오하세요!”
휘이익.
날카롭게 안면 쪽을 향해 쏘여지는 검을 범석이 고개를 살짝 젖혀 피하고는 11번 검투사를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팔을 약간 교묘하게 뒤튼 후 바로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괴한 파골음 소리. 지면과 충돌한 11번 검투사가 오른쪽 팔뚝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아악! 내 팔! 아악!”
동시에 전광판 시계가 멈추며 블랙 캣츠팀 진형에서 의료진이 긴급히 튀어나왔다. 이를 살짝 바라본 범석은 카메라를 향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몇 보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다가온 의료진들이 11번 검투사를 부양식 들것에 싣고는 물러나자, 그를 향해 한 명의 심판이 다가왔다.
“오범석 검투사. 혹시 관절기를 썼나?”
쓰긴 썼다. 11번 검투사는 블랙 캣츠 내의 에이스 다음의 실력을 지닌 검투사. 부상을 입혀놓으면 앞으로의 플레이가 편안했다. 그래서 마크맨으로 달려 나간 셋 중에서 그녀를 유일하게 남겨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단지 업어치기였기에, 그 누구도 사고로 알뿐이지 관절기라고 인식할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엎어치기를 시도했을 뿐입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그의 말이라도 증명이라도 하듯 공중에 떠있는 홀로그램 화면에 범석이 11번 검투사를 엎어치기 기술로 쓰러뜨리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팔이 약간 뒤틀린 감이 있지만, 관절기를 썼다고 우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단지 우연이라 단정 지은 심판이 사방을 향해 손을 내리 저은 후, 다시 심판석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중계를 맡고 있는 아나운서가 막간을 이용해 경기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이거 블랙 캣츠 팀에게는 큰 데미지이겠는데요. 11번 검투사는 팀 내에서도 수위에 드는 실력자인데 경기 초반에 부상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동조하듯 해설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오범석 검투사의 플레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상사로 인해 그냥 지나치기는 했지만, 정말 대단했어요. 젤소미나 검투사를 위험한 후방에 배치시킨 후, 마크하러 쫓아가는 블랙 캣츠팀 검투사 사각에 검을 투척해 둘이나 행동 불능을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찌됐거나 11번 검투사도 그의 플레이에 말려들어 부상을 당했고요. 역시 오범석 검투사라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블랙 캣츠는 올해 운이 따라주지를 않는군요. 보통 때라면 충분히 승격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전략인데, 강자들을 연달아 만나 이렇게 고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하긴 그렇죠. 그나저나 블랙 캣츠는 이번 1라운드를 빼앗기면, 정말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갓즈나이츠의 1차전 상대인 스플레쉬 마우스즈팀처럼 피지컬 싸움에 말려들어 고전할 수 있는 얘기 아닙니까?
– 네 맞습니다. 갓즈나이츠는 주전 검투사들 대게가 신체조건이 좋은 탓에, 충분히 3라운드를 연속해 뛰어도 무리가 없어요. 반면 블랙 캣츠팀은 그렇지 못하죠. 분명히 3라운드에는 실력이 떨어지는 2진급을 전면에 내세워야 할 테니, 이번 라운드에서 패한다면 2패를 안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해요.
– 후후후. 문제는 2패를 안는다면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겠죠. 한 번이라도 비기면, 오범석 검투사가 포함되는 승부 대결이니, 그도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래서 블랙 캣츠는 어떻게든 이번 라운드에서 무승부를 만들어야할 겁니다. 지금 2명의 검투사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오범석 검투사가 가세한 갓츠나이츠팀을 압도하기란 힘이 들 테니까요. 다행히 갓즈나이츠는 선봉을 모두 제외시키고, 후미 포지션 검투사만 6명을 채워놨으니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동조를 표하듯 아나운서가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갓즈나이츠는 6명의 검방과 듀얼실더가 있었다. 이들은 방어에 특화된 대신 공격에는 취약했기에, 블랙 캣츠가 조심만 한다면 패배까지 가지 않으리라 생각됐다. 이는 롭스 감독도 같은 생각인지, 부상당한 11번 검투사를 대신해 후미인 27번 검투사를 투입시켰다.
‘후후. 방어전으로 나가시겠다? 창사가 얼마 없으니, 원형진은 아닐 테고, 분명히 방진이겠군. 나야 아주 고맙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주어든 범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방진의 특징은 밀집을 통한 방어력 강화. 만약 뚫리면 바로 혼전이었다. 그가 지금 가장 바라는 상황으로, 계획만 성공한다면 오늘 블랙 캣츠팀을 아작 내 버릴 수 있었다.
그는 젤소미나와 함께 본진으로 귀환하고는 에르피나에게 다가섰다.
“에르피나. 블랙 캣츠가 방진을 취하면 나는 비너스, 아겔리아, 젤소미나와 함께 프리롤을 뛰며 후방을 노릴 거다.”
이에 에르피나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쳐다봤다.
“아니 프리롤을 네 명이나 돌려요?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다 계획이 있으니까.”
“무슨 계획요?”
범석이 허공에 네모형태의 그림을 그려놓고 두 주먹으로 앞뒤를 내리 누르는 시늉을 했다.
“이런 식으로 검방과 듀얼실더를 앞세워 양 쪽에서 동시에 진형을 파고든다.”
“그럼 분단시키실 예정인가요?”
“아니. 혼전을 유발시킨다.”
“그럼 우리도 피해가 클 텐데요?”
그가 전혀 아니라 듯 손을 흔들었다. 이번 계획은 순식간에 끝나게 되어 있으니, 피해를 입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재수가 없다면 한 둘 쯤은 당하겠지만, 나머지 라운드를 위해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괜찮아. 블랙 캣츠 팀의 피해가 더 클 거다.”
“그래도 혼전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희가 당할 수도 있다고요.”
“그래도 상관없어. 이번 목적은 블랙 캣츠의 2번 검투사다.”
2번 검투사라 함은 바로 블랙 캣츠를 지휘하는 대장검투사였다. 그렇다면 범석의 노림수는 진형을 분쇄한 후, 2번 검투사를 쓰러뜨려 승리를 거머쥐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에이스까지는 아니지만, 출중한 실력을 보유한 블랙 캣츠 내 얼마 안 되는 실력자였다. 게다가 검방까지 착용하고 있어, 범석으로서도 빠른 시간 내에 쓰러뜨리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갓즈나이츠의 대장인 에르피나도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와이드리그에서 활동해오며 많은 경기를 경험한 베테랑 검투사였기에, 난전을 수도 없이 경험해봤던 탓이다. 상대 중에 주인인 범석 정도의 실력이 지닌 자도 없다면, 스스로 몸쯤은 충분히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알겠어요. 주인님만 믿을 게요.”
“그래. 그럼 잘 부탁한다.”
이어 범석이 아겔리아와 비너스를 손짓해 불러내고는 젤소미나와 함께 본진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경기장은 정돈되고, 또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블랙 캣츠는 이번 라운드를 비기려는 양 방진을 짜고, 중앙에 섰다. 이에 범석은 세 명의 동료들을 이끌고 놈들 후방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아겔리아. 비너스. 잘 들어. 신호를 보내면 방패를 전면에 세우고, 블랙 캣츠팀 대장 검투사를 향해 돌진한다. 알았지?”
“네. 알겠어요.”
밀집된 군집 체를 이루는 블랙 캣츠팀을 바라본 범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아무리 방어에 특화된 방진이라도 검방이 네 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뚫고자 한다면 못 뚫을 리가 없었다. 그는 중앙 쪽에 자리 잡은 2번 검투사를 바라보고는 마이크를 통해 전체 팀원들에게 외쳤다.
============================ 작품 후기 ============================
눈 엄청 내립니다. 이대로 아침까정 내리면 내일 교통대란이겠네요. 휴우~.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아침이 아닌 저녁까지 펑펑내려 가슴까지 찼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 모두들 방구석에 꼭 박혀있을 테고, 최초로 평등한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후. 물론 이러면 안되겠죠. 하하하. 그냥 해본 말입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성탄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