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199
201화
강렬할 햇살이 비치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흑색의 도시라고 불리는 아마나의 창공 위로 날던 한 플라잉카가 넓게 펼쳐진 초원 위에 위치한 한 검투 훈련캠프 주차장에 내려서고 있었다.
이내 차분히 안착한 플라잉 카의 문이 열리며 범석과 에스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무인전동차가 그 앞에 서자, 바로 올라타고는 멀리 보이는 푸른 색 건물로 향했다.
“에스더 내리자.”
건물 앞에 도착한 범석이 에스더와 함께 푸릇푸릇 잔디가 자라있는 정원 사이길을 따라 문 앞에서 섰다. 그러자 반백머리칼이 인상적인 검은 피부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문을 열고 나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갓즈나이츠관계자 여러분. 저는 골든 라이언스의 트레이드 담당자인 쥬바입니다.”
“이사장님 오범석입니다.”
“단장인 에스더라고 해요.”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이들은 복도를 따라 1층에 있는 한 응접실로 향했다. 모두를 좌석에 앉힌 쥬바가 사무원 엘프에게 말해 다과상을 차린 다음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하하하. 범석님. 먼저 오늘 협상에 응해주신 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윽한 향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범석이 대답했다.
“뭘 감사는요. 서로 득이 되자고 하는 일인데요.”
“네. 물론입니다. 분명히 오늘 거래는 갓즈나이츠에게 큰 득을 가져다 줄 겁니다.”
쥬바의 말에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맞는 얘기지만, 인정을 해버리면 협상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뭐. 우리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는 보면 알게 되겠지요.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하하하. 그럼 그럴까요?”
쥬바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머금어져 있지만, 눈가에는 진지함이 흘러넘쳤다. 바로 자신들 최대의 고객인 범석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 팔고자 하는 매물은 바로 제르미아였다. 일 년 전에 다크 하이에나즈에서 영입해온 검투사였는데, 성장성이 좋아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있다는 흠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겠다는 자세가 마음에 들어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했었다. 보통 주인 없는 검투사들은 투지가 약해 건성건성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아주 많았기에 프로팀들로서는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주 흡족했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 트랙을 도는 부지런함과 주인 있는 엘프 이상으로 성심껏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그리 기대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리그경기에 투입시키는 날. 그 환상은 여지없이 조각조각 깨어져 나갔다. 제르미아가 1라운드가 시작되기 무섭게 포진션, 진형을 다 무시해버리고 홀로 적진을 향해 돌진해버린 것이다. 당연지사 스텝진을 포함한 골든 라이언스 팀원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상대팀은 옳거니 12명 모두가 한꺼번에 공격해 바로 그녀를 행동불능 상태에 빠뜨려버렸다. 그 후 한 명이 비는 골든 라이언스는 1라운드 내내 고생하다가 결국 패배를 당했다.
이러기를 몇 번. 팀은 자기가 무슨 아두를 등에 맨 자룡이 된 것처럼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제르미아를 결국에는 골칫거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급기야 시합 전 약물복용이 사전에 발각되는 일이 발생했고, 경영진과 스텝진은 그녀를 방출하기로 만장일치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제르미아를 영입하는데 사용된 2억 크랑의 거금이 마음에 걸린다는 점이었다. 약물 복용에다 시합 중 혼자 돌진해버리는 황당한 적극성까지 가미되었으니, 고가의 판매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주인 없는 엘프는 절대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갓즈 나이츠가 포착되었고, 연락을 취하게 되었다. 엘프들이란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존재들. 갓즈 나이츠에서라면 제대로 된 자세로 경기에 임할 것이 분명할 터, 잘만 하면 그리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듯 보였다.
“자 그럼. 이 문서를 보시지요. 제르미아에 대한 정확한 신체정보입니다.”
전자서류를 힐끔 쳐다본 범석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문서 상으로 볼 때 1년 전보다 무척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력과 체력 등은 거의 극에 다다르고 있었고, 민첩과 균형감각도 90대에 초반에 이르고 있었다. 또한, 정신적인 부분도 상당한 수준이라, 능력치 상으로 거의 월드리거급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한 840 정도 개발되었군. 이런데도 아직 잠재능력이 100 넘게 남아 있으니, 환상이라 할 수 있지. 게다가 그녀는 맑은 날과 여름에 모든 스텟이 +10이 되는 엄청난 특성이 있어. 어려운 시즌 초반 큰 힘이 될 것이 확실해.’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는 8월 첫째 주 주말. 아직 여름이라고 할 수 있으니, 4~5주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특성이 발동될 터, 상당한 힘이 될 것이 자명해 보였다.
그가 넌지시 화면을 내리고는 쥬바를 쳐다봤다.
“무척 좋군요. 아주 예술인데요. 하지만, 이 측정치가 확실한 겁니까?”
쥬바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냉큼 말했다.
“물론입니다.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몇 번이고 신체측정과 지적능력 테스트를 거쳐 산출된 자료입니다. 100% 확실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범석이 가만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철저히 준비해왔으니, 몸값을 다운시키기가 무척 어렵다고 판단되었던 까닭이다. 사실,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춘 어린 엘프검투사를 1억 4,500만 크랑으로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골든 라이언스에서는 이런 아이를 왜 파시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문제점이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있습니다. 제르미나는 팀플레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밝히지만, 이기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해 이전 팀은 물론 저희 팀에서까지 약물을 복용한 전적이 있습니다. 뭐 마음가짐은 기특하지만, 이러니 저희로서는 골치 아플 수밖에 없죠.”
너무도 솔직한 답변에 범석이 할 말이 잃었다. 판매하는 장사꾼이 자기 상품의 흠집을 정확히 골라내며 내미는데,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손님이 없었다.
“둘 다 치명적인 문제점인데, 저에게 함부로 말씀 주셔도 되는 겁니까?”
“전혀 상관없습니다. 이 아이가 갓즈나이츠로 가면 여기 계시는 범석님께서 주인이 되실 테니, 명령만 내리면 조금 전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즉 완벽한 검투사로 거듭난다는 얘기이니,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의 주인에 대한 복종심은 세 살배기 아이도 다 아는 기본 상식이었다.
“하긴 그렇기는 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제가 장담컨대, 범석님께서 제르미아를 데려간다고 하신다면 큰 이득을 보실 것입니다. 결코, 1억 4,500만 크랑은 비싼 금액이 아닙니다. 아니 아주 저렴하다 못 해 공짜나 다름이 없죠.”
범석이 곤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르미아를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는 사정에 초반부터 명분 싸움에서 밀려버린 터라, 운신의 폭이 무척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그 큰돈을 아무런 가감 없이 내밀자니, 좀 아까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있다고, 구차스럽지만 마지막 영입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바로 빈 지갑 작전이었다. 만고 이래로 손님들이 능숙능랄한 장사꾼을 상대로 큰 효과를 본 전략으로, 아마도 이번에도 통하리라 생각됐다. 지금 제르미아를 가장 비싸게 팔아먹을 만한 상대는 갓즈 나이츠가 유일했다.
그가 천장을 우두커니 한 번 쳐다보고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휴~ 이거 무척 탐이 나기는 하지만, 저희 팀 사정이 별로 좋지 못해서요.”
“사정이 좋지 못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시다시피 저희 팀은 주인 없는 엘프를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식회사 방식으로 팀을 운영할 수 없게 됐고, 이번 연도에 와이드리그로 승격하고도 펀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저희 팀은 에어리그에서 일 년 만에 승격하는 바람에 자금도 그다지 쌓아놓고 있지 못했고요.”
쥬바가 긴 한숨을 쉬며 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유일한 거래처라고 생각하던 갓즈나이츠에 저런 사정이 있다니 내심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도 이 자리에 찾아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들이 원하는 금액을 맞춰줄 수 있다는 뜻. 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갓즈나이츠에서 올해 검투사 영입자금으로 얼마를 배정하셨습니까?”
“일단 팀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자금을 배정했는데, 고작 1억 3,000만 크랑 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1억 3,000만 크랑을 조용히 되뇐 쥬바가 난처한 듯 아무 말 못 하고 탁자 위에 놓인 다과만 씹어댔다. 그까짓 1,500만 크랑 손해 감수 못 할 리는 없지만, 범석은 더 낮은 금액을 원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올해 갓 와이드리그로 올라온 팀이 올 이적 시장에서 단 한 명의 검투사만 영입한다는 것은 다음 연도에 다시 강등되어 떨어지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혹시 제르미아를 더 저렴한 가격에 데려가고 싶은 겁니까?”
“물론 그럼 저야 좋죠. 하하하.”
“그럼 옵션계약을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단 올해……..”
인상을 찌푸린 범석이 바로 그의 말을 막았다. 요놈의 옵션계약은 사채이자보다 무서워,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괜히 이런저런 옵션으로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이쯤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는 편이 좋다고 생각됐다. 어차피 극히 불리한 여건에서 오늘 협상을 시작했으니, 1,500만 크랑을 다운시켰다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왜요? 그 금액이 마음이 안 드십니까?”
쥬바가 바로 두 눈을 반짝였다. 그가 올해 배정된 이적자금을 모두 내놓는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갓즈나이츠로서는 아주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자팀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니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다.
“그럼 1억 3,000만 크랑으로 제르미아를 데려가겠다는 얘기십니까? 그렇다면 저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 특별히 1억 3,000만 크랑이라고 못 박을 필요는 없지만, 그 정도 선에서 거래를 마치자는 얘기입니다. 하하하.”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범석이 옆에 앉아 있던 에스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어떤 협상이든 정점을 찍을 때는 반드시 그녀의 손을 거쳐야 했다.
“그건 이쪽에 있는 에스더 단장과 마저 협상하십시오. 구체적인 자금사항은 그녀가 자세히 아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범석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저는 제르미아를 만나봤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쥬바가 검은 피부에 음영이 들도록 미간을 찌푸렸다. 범석이 제르미아를 만났을 때 부작용이 걱정되었던 까닭이다. 분위기상 거래가 성사될 듯 보이지만,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골든 라이언스 곤란한 사태를 맞이할 수가 있었다.
“그건 좀…….”
“후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골든 라이언스에서 1억 3,000만 크랑 인근에서 제르미아를 거래할 마음이 있으시다고 한다면, 반드시 오늘 거래가 성사될 겁니다.”
그 말에 쥬바가 만남을 수락하기로 했다. 골든 라이언스는 1억 3,000만 크랑이면 거래할 마음이 있으니, 이미 이번 트레이드는 성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곧 엘프사무원을 불러 안내를 부탁한 다음, 에스더와 마무리 협상작업을 시작했다.
“범석님. 이곳에 계시면 제가 제르미아를 데리고 나올게요.”
엘프사무원이 안내한 곳은 훈련캠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정원이 달린 공원이었다. 소속 검투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는데, 지금은 훈련 중이라 아무도 없어 만남의 장소로 삼게 됐다. 괜히 사무실건물 인근이나 훈련시설 앞에서 만나게 했다가 다른 팀원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이면 팀 사기에 별로 좋지 못했다.
‘후후후. 드디어 제르미아를 만난다 이거지. 이거 기대되는데.’
범석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연두색 빛 풀밭을 밟으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 후 엘프사무원과 오솔길을 따라 다가오는 핑크빛 머리칼을 한 엘프를 바라보고는 환한 낯빛을 지으며 마중 나가듯 다가섰다. 바로 제르미아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범석의 모습을 보자마자 살짝 울먹였는데, 옆에 사무원이 있어서 드러날 정도로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범석님. 여기 제르미아를 데리고 왔어요.”
은근슬쩍 제르미아의 손을 부여잡은 범석이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 그럼 긴요히 할 얘기가 있으니까. 넌 가봐.”
“네. 알겠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자리를 떠나간 엘프사무원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제르미아가 기어이 눈물을 글썽이며 범석의 품에 안겨왔다.
“흑흑. 범석님 보고 싶었어요.”
길게 흐트러져 내려는 제르미아의 핑크빛 머리칼을 쓰다듬은 범석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르미아 많이 기다렸지? 미안하다.”
그녀가 마구 고개를 휘저어댔다. 범석이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지 겨우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힘겹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무척 빠른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흑흑. 아니에요. 솔직히 저는 범석님이 저를 이렇게 일찍 데리러 올 줄은 몰랐어요.”
“후후. 내가 전에 말했잖아. 될 수 있으면 빨리 너를 내 연인엘프로 삼겠다고 말이야. 그동안 수고 많았다.”
범석이 눈물을 훔쳐주자, 제르미아가 그윽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저는 범석님을 모시게 되는 건가요?”
“그래. 지금 에스더가 마무리 거래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일만 끝나면 돼. 아마도 곧 연락이 올 거야.”
그때 범석의 품 안에서 짧은 호출음이 들려왔다. 에스더의 연락이라고 생각한 그가 바로 전자수첩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사장님. 1억 2,300만 크랑으로 거래를 끝마쳤어요.’라는 글귀를 보고는 제르미아를 확 끌어안았다.
============================ 작품 후기 ============================
이제 며칠 후면 2011년이 지나갑니다. 언제나 연말만 되면 아쉬움이 이렇게 남는지 한 숨만 나옵니다. 아마도 이래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술자리 모임을 가지며 시간을 아작내는 모양입니다. 아쉬움의 시간을 잊게하고 희망찬 새해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전 또 내일 푸러갑니다. 하하하하. ^^;;;;;;;;;;;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