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06
208화
휘리릭. 휘리릭.
동시에 4개의 편 끝이 먹이를 노리는 뱀 머리처럼 빠르게 날아왔다. 아멜리에의 쌍편과 이오니스와 랜드라의 것이었다.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은 경기 전 범석에게서 채찍을 막는 방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경황이 없었던지 린이 낚여 공중으로 치솟아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꺄아아악!”
순식간에 팀원 하나를 잃은 범석이 이를 잘근 깨물며 맨 앞으로 나와 충돌을 빚었다. 이 이상 손해를 입었다가는 이번 라운드는 필패였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채찍공격을 사전에 차단했다.
“모두 흩어지지 마! 흩어지는 순간 끝장이다!”
채찍의 포박을 막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밀집이었다. 사이사이에 빈틈이 없다면 편끝이 파고들 수 없었고, 그럼 옭아맴을 피할 수 있었다. 이를 철저히 교육받았던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진형을 협소하게 밀착시키며 돌파를 시도했다.
“뚫어! 목표는 아멜리에다!”
“반드시 아멜리에를 해치워야 해!”
아멜리에와의 거리는 쉽사리 좁히지 못했다. 채플린 위스퍼팀 검투사들이 능숙하게 뒤로 이동하며 돌진력을 흐트러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파를 막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채플린 위스퍼팀이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델로이 와이드리그 최강 피지컬팀은 엄연히 갓즈나이츠였다.
“모두 사력을 다해 진입을 막아!”
순간 오스칼의 거검이 횡으로 넓게 그어졌다. 음산한 파공음에 겁이 찔끔 났지만 야미야와 카네로아가 들고 있던 양손검을 맞대어 기어이 막아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 충격은 어쩔 수 없었던지 야미야가 중심을 잃고 헛발을 내디뎠다.
기회다 싶은 범석이 안쪽을 파고들며 옆구리에 검을 강하게 꽂아넣었다.
휘리리릭!
야미야를 해치우고 뒤로 물러서는 범석의 머리 위로 두 개의 편끝이 하강하는 독수리처럼 빠르게 내리꽂혀 졌다. 직격으로 맞으면 행동불능상태에 빠져들 만한 공격이었기에, 그가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편끝은 교묘하게 검의 궤적을 피해 가더니, 근처에 있던 오스칼의 양쪽 어깨를 여지없이 강타했다. 이를 본 카네로아가 바로 어깻죽지를 축 늘어뜨린 그녀의 복부를 향해 검끝을 찔러넣었다.
“꺄윽!”
서서히 몸을 허물어뜨리는 오스칼을 곁눈질로 확인한 범석이 모두를 향해 외쳤다.
“모두 머리 위를 조심해! 편끝이 날아온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상대와 검을 나누는 중에 날아오는 편끝을 눈치챌만한 실력자는 범석과 라피네, 레이미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갓즈나이츠의 일원은 피지컬에만 의지할 뿐, 전투 센스는 형편없었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추가로 비올렛과 시야가 당해 전력비는 11대 8이 되었다.
‘안 돼.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해 보고 모두 당해.’
사실 아멜리에를 노린다는 전략이 간파된 상황에서 갓즈나이츠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이제 수적 차이로 말미암아 도리어 힘에서까지 밀리고 있었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 성과도 없이 1라운드를 이대로 채플린 위스퍼팀에 넘겨줄 공산이 무척 컸다.
‘반드시 상황을 역전시킬 방도를 찾아야 해.’
순간 범석의 날카로운 눈빛이 상대 진형 맨 끝에 위치해 있는 4번 검투사에게로 가 박혔다. 바로 대장검투사로 갓즈나이츠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채플린 위스퍼는 막강한 검투사진을 보유하고 있지만, 약점 하나가 있었다. 아멜리에를 비롯한 센트럴리거급 이상의 실력을 지닌 아홉의 검투사들이 모두 선봉과 중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격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문에 후미와 대장검투사는 와이드리거급 실력자로 채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채플린 위스퍼의 검투사들이 아멜리에를 보호하기 위한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대장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크게 결여되어 있는 상태였고, 기습적으로 노려볼 만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대장검투사를 쓰러뜨리면 1라운드를 따내 갈 수 있는 일. 아멜리에를 해치운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범석이 전략을 급반전시키기로 했다.
“라피네! 지금이다! 발동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라피네의 눈빛이 붉게 물들어갔다. 특성인 투지의 광전사를 발동한 것이다. 그녀는 양손에 하나씩의 츠바이핸더소드를 잡고는 미친 들소처럼 마구 날뛰었다.
“이, 이게 뭐야! 저 얘를 막아!”
광전사가 된 라피네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동안 꽉 막혀 있었던 채플린 위스퍼의 진형이 균열이 가며 흐트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멜리에가 위세에 놀라 급히 편끝을 날려보냈지만, 그녀의 손에 잡혀 오히려 서서히 끌려나오는 신세가 되었다.
“뭐, 뭐야! 라피네 대단하잖아!”
“말도 안 돼! 신체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아멜리에가 힘에서 밀리는 것 봐! 이거 엄청난데!”
라피네의 갑작스러운 활약에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아멜리에가 저리 끌려다닐 정도라면, 그녀의 힘은 세계 최강에 올라섰다는 얘기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힘에 겨운 아멜리에가 결국 하나의 채찍을 버리자, 벌떡 일어나 환호를 내질러댔다. 네 경기의 연습경기 동안 그 누구도 혼자서 그녀를 이런 지경까지 빠뜨린 검투사가 없었다.
“라피네! 잘한다! 그래 그런 식으로 몰아붙여!”
어느덧 팬들은 약자의 판타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실 강력한 전력의 채플린 위스퍼보다는 훨씬 약한 갓즈나이츠가 승리하는 편이 더욱 짜릿한 묘미가 있었다.
특히나 지금 상황은 장내를 찾은 스포츠기자들에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갓즈나이츠가 이긴다면 대서특필 감으로 저녁 타임의 스포츠 뉴스의 시청률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그들은 벌떡 일어나 라피네의 활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렌즈를 들이대었다.
‘좋아 지금이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오자 범석이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라피네와 아멜리에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진 바로 이 순간이 4번 검투사를 요격할 가장 확실한 기회였다. 그는 뒤를 따르는 모두를 향해 급히 명령했다.
“J7번 작전이다!”
J7번 작전은 멀리 떨어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고안해낸 포메이션 전법 중 하나였다. 많이 연습해본 터라 바로 뒤에 있던 레이미와 헤스티아가 주저 없이 깍지낀 양손을 무릎 부위에 위치시켰다.
이에 그가 급히 두 발을 올려놓으며 외쳤다.
“지금이야! 힘껏 던져!”
반동과 함께 하늘 높이 점프한 범석이 채플릿 위스퍼 진형을 넘어 맨 후미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다 급히 방어에 나선 9번 검투사의 방패를 밟고는 옆에 있는 8번 검투사의 목줄기를 부여잡고 낙법을 시행했다. 흙먼지와 함께 구르는 범석은 당혹해하는 8번 검투사의 목줄기를 가차없이 그어버리고는 바로 일어나 4번 검투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주춤거리던 4번 검투사의 앞을 9번 검투사가 급히 막아섰다. 후미 동료였던 8번 검투사가 당했으니, 이제 대장을 보호해야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델로이 와이드리그 최강자로 알려진 범석이었다. 일격도 받아보기 전에 겁을 질려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대장이 위험해! 빨리 지원을 와줘!”
이 소리를 들은 아멜리에가 급히 뒤돌아봤다. 이미 범석은 9번 검투사를 방패와 검을 든 손을 잡고 업어 쳐서 넘어뜨린 상황이었다. 대장인 4번 검투사가 나서서 마지막 남은 후미검투사를 보호하려 했지만, 범석의 발길질에 밀려 뒤로 나자빠져 나갔다.
안 되겠다 싶은 아멜리에가 자신의 제자이자 동료인 히야스와 에미레스를 바라봤다.
“얘들아! 라피네는 너희가 맡아!”
“넷. 아멜리에님!”
히야스와 에미레스가 라피네의 앞을 막아서자 아멜리에가 급히 채찍을 뻗었다. 마침 9번 검투사를 해치우고 4번 검투사에게 달려들던 그가 섬뜩한 느낌에 급히 몸을 돌려 편끝을 검으로 쳐 튕겨냈다. 욱신거릴 정도의 데미지가 손목을 울려대고 있지만, 범석은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으며 아멜리에에게 다가섰다. 이 절호의 기회에 대장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녀 또한 만만치 않은 대어였다.
“아멜리에. 결국은 이렇게 만나네.”
“그러게 말이에요. 오늘은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요.”
아멜리에가 오른손에 든 채찍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맹한지 터져 나온 흙더미가 범석의 헬멧을 마구 두드릴 정도였다.
그가 안면 실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애꿎은 바닥은 왜 치냐. 아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우리 팀 홈 경기장이다. 유지보수료 때문에 경기장 대여료가 오르면 네가 책임질래?”
“뭐 그다지 상관없지 않나요? 이번 저로 인해 꽤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퉁치세요.”
범석이 피식 웃었다. 연륜이 깊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말하는 본새가 예사가 아니었다.
“후후. 하긴 그렇군. 알았다. 따로 손해배상 청구서는 보내지는 않지.”
“고맙군요. 그런데 저희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요. 아실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맞상대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에요.”
범석이 힐끔 본진 간의 싸움을 바라봤다. 비록 라피네가 광분을 하며 선전하고는 있지만, 전력과 수에서 밀리는 터라 점차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말마따나 그녀와의 일전은 그리 길지 못할 듯싶었다.
그가 검을 중단에 세우고 전투자세에 들어갔다. 허리에 차고 있던 예비용 카타나를 꺼내 쌍검으로 대적할까 봐도 생각했지만, 아멜리아 또한 채찍이 하나밖에 없어 이대로 싸우기로 했다.
“자. 그럼 이제 오시지.”
“네. 그러죠.”
순간 그녀의 손목이 꿈틀대자 채찍이 살아서 움직이는 양 편끝을 세우고 범석에게로 날아왔다. 그러나 전초전인 탓인지, 기교만 넘칠 뿐 그다지 위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검을 까딱거려 채찍의 측면을 툭치며 궤적을 틀었다.
“이거 너무 시시한 것 아니야?”
“그렇다면 착각이에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석에서 멀어져가던 편끝이 똬리를 틀더니 주위를 압박해 왔다. 이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다고 판단한 범석이 빠르게 앞으로 내달리며 포박 시도를 무위로 돌린 후, 아멜리아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밀어붙여 채찍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지경까지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휙. 휙.
연달아 그어진 검세가 그녀의 양옆을 스쳐 지나갔다. 날카로운 소리에 흠칫 놀란 아멜리에가 그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 아무리 일편만을 지니고 있었지만, 너무 쉽게 접근을 허락했던 것이다.
일단 쌍방 간의 싸움은 범석의 우세였다. 근접전에서는 검술이 편술을 앞선다는 속설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아멜리에의 사위를 옭아매며 거침없이 검끝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역시 과연 레베카 아가씨를 손쉽게 쓰러뜨린 검투사다워. 이거 만만치가 않아.’
간신히 뒷걸음질로 공격범위에서 벗어나 아멜리에가 이오니스의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더니, 허리에 있던 예비용 채찍 하나를 낚아챘다. 범석은 일편술로 상대하기가 제법 까다로웠기에, 쌍편술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날아온 범석의 검을 몸을 뒤틀어 피한 다음 곧바로 양손에 쥐어진 채찍에 반동을 넣었다.
“치잇! 이제부터는 본론이군.”
바짝 칼자루를 부여잡은 범석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두 편끝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이제 아멜리에의 본 실력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꽤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 거리를 좀 더 넓히고는 연달아 접근해오는 편끝을 차례로 튕겨냈다.
‘아무래도 잠시 아멜리에의 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회심의 수가 있다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까.’
편사와 상대하는 검사는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야 하는 함이 보편적 전략이었다. 그러나 아멜리에는 경험 많고 노회한 전설적인 검투사였다. 어떤 꼼수를 품고 있을지 모르니, 확실히 눈여겨보고 공격의 형태를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실상 다가가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워낙 예리한 공격이 이어지는 통에 막기에도 급급한 지경이었다. 생소하면서도 변화가 극심한 채찍의 율동은 그는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 대단합니다. 오범석검투사! 전설을 맞상대하며 전혀 꿇림 없이 승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거 흥미진진한 데요!
아나운서는 범서과 아멜리아의 접전에 정신없이 중계해댔다. 목이 타 근처에 있던 물컵을 짚다가 실수로 쓰러뜨릴 정도로 잔뜩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이는 옆에 있던 해설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리마시티콜로세움을 찾아오기 전까지 범석이 아멜리에의 상대가 결코 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거 전혀 예상 밖의 선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약간 밀리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사소할 뿐 범석은 아멜리에의 쌍편술을 모두 튕겨내고 있었다. 물론 전혀 공세에 나서지 않음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노림수가 있는 듯 보였다.
– 허허허. 이런. 오범석 검투사가 이런 검투사였다니 놀랍군요. 진작에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였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허허허.
–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약간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소싯적의 아멜리에 검투사는 토네이도 스네이크라는 필살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현역으로 복귀한 후 지금까지 보여주지는 않고 있지만, 그 기술이 튀어나온다면 오범석도 검투사도 쉽사리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토네이도 스네이크. 40여 년 전 아멜리에가 선보인 기술로, 마치 그 모습이 폭풍우를 치는 뱀과 같다 하여 언론에서 토네이도 스네이크로 명명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시전해 보인 적이 없어 잊혔었지만, 지금 아나운서의 입에서 새롭게 언급되고 있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린 해설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