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13
215화
“범석님. 이분은 제 할아버지인 채플린회장님이세요.”
범석이 잠시 채플린회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딴에는 세계 10대 기업 중 하나인 채플린그룹을 경영하는 자를 이리 면전에서 보다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탓이지, 특별한 감흥은 생기지 않았다.
그가 다시금 가볍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오 범석입니다.”
“으음. 그래. 자네. 얘기는 많이 들었네. 우리 아들내미 연인엘프와 대적해서 무승부를 펼쳤다고?”
아무래도 아멜리에를 말하는 듯싶었다. 무승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가 그러하니, 순순히 인정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여간 대단허이. 앞으로 잘 부탁하네.”
범석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무슨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용을 들어보지 않고는 긍정을 표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지자 레베카가 그의 팔뚝을 끌고 옆에 있던 비만 노인 앞으로 나아갔다.
“범석님. 이분은 루이스부회장님이세요. 잘 아시죠?”
범석이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던졌다. 알긴 개뿔이……. 오늘 처음 본 면상을 그가 알아볼 리가 없었다.
“너 지금 장난해? 내가 이분을 어떻게 알아?”
그러자 비만 노인이 어색함을 모면하고자 호쾌하게 웃어댔다.
“하하하. 자네 나를 진정 모르는가? 난 자네를 아는데.”
“물론 TV에서 보셨으니까 잘 아시겠죠. 저도 카렌이라는 가수를 잘 압니다.”
카렌이라면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알리고 있는, 대형신인가수였다. 즉 범석의 말뜻은 자신은 유명인이라 얼굴이 알려졌으니 댁이 아는 건 당연하지만, 자신은 루이스라는 이름을 모른다는 뜻이었다.
레베카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옆구리를 깊게 찔렀다. 그가 루이스부회장을 몰라서는 절대 안 됐다.
“연방프로검투협회 부회장님 말이에요.”
잠시 기억을 더듬거린 범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연방프로검투협회에는 총 7개의 계파가 있었는데, 이중 첫 번째 세력이 바로 이브라힘회장의 계파였고, 그 뒤를 루이스부회장과 쿠퍼부회장계파가 이었다. 검투계에 종사하는 이상 그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큰 실례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어쭙지않은 변을 늘어놓았다.
“하하하. 노, 농담입니다. 실은 제가 카렌이라는 가수의 후견인입니다. 그래서 그 애도 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루이스 회장이 무심코 그를 쳐다봤다. 농담치고는 너무 진지했던 탓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범석은 이번 일에 꼭 필요한 자이니 사소한 일을 들먹여 대화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었다.
“후후후. 초면에 이런 농담도 하고. 이거 재미난 친구로군.”
“하하하. 워낙 실내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한 번 무리를 해봤습니다. 하하하.”
범석이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윌킨스회장에다 이제는 갓즈나이츠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루이스부회장까지. 무슨 부탁인 줄은 모르지만, 여기서 안된다며 고개를 젓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이런 그를 바라본 윌킨스회장이 한 마디 던졌다.
“소개가 끝났으니, 서 있지 말고 자네도 여기 와 앉지. 할 얘기가 많네.”
길게 호흡을 내쉰 범석이 한쪽 빈 소파에 착석했다.
“흐음. 그럼 저를 급히 부른 용건에 대해 말씀 주시겠습니까?”
그의 옆에 앉은 레베카가 대뜸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는 유능한 검투사가 많이 필요해요.”
“다짜고짜 필요하다고만 말하면 어떻게 해?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줘야지.”
그녀가 할아버지와 윌킨스회장, 루이스부회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정황을 설명해줘도 되는지에 대한 무언의 질문이었다. 이에 윌킨스회장이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중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은 범석과도 크게 연관되어 있었다. 아니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주원인이라고 해도 하등 틀린 말이 아니었다.
허락을 얻은 레베카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LHN금융지주사의 발바르회장님께서 여기 계신 어르신들께 선전포고를 해왔어요.”
“발바르회장님께서 선전포고를 해와? 왜?”
“전에 인터넷상으로 어느 괴한이 발바르회장님의 돈 5크랑을 강탈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언론 상으로는 게이드라는 자의 단독범행으로 알려졌지만, 그분께서는 여기 있는 분들 중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고 착각하고 계세요.”
너무도 정황을 잘 알고 있던 범석이 당혹해하며 윌킨스회장과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때 사건을 들먹이며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분위기상 윌킨스회장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괜히 입을 잘못 놀려 윌킨스회장에 자신까지 수렁에 빠져들 이유는 없었다.
슬그머니 레베카를 돌아다본 범석이 어눌하게 말했다.
“그, 그래. 그것참 큰일이네. 그런데 내가 기업인들 싸움에 도움을 줄 일이 뭐가 있겠어? 프로검투팀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영에 관해서는 그리 아는 바가 없다고.”
“네. 그렇죠. 하지만, 발바르회장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겠다고 하신다면 충분히 도움이 되죠.”
“서, 설마?”
“네. 발바르회장님은 무력을 동원할 예정이세요.”
머리가 지끈거린 범석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무력동원이라면 치고 싸워야 하는 일. 제법 귀찮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탓에 벌어졌으니, 암만 봐도 코가 꿰여도 단단히 꿰일 듯 보였다.
“그럼 나보고 이분들을 경호해 달라는 얘기야?”
“네. 그 비슷한 형태에요.”
“경호면 경호지 또 비슷하다는 얘기는 또 뭐야?”
“그게 처음에는 발바르회장님께서 무작정 자택에 침투조를 보내 지갑을 강탈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르신들께서 설득하셔서 겨우겨우 방식을 달리했어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가 있으니까요.”
범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근처 산지에 있는 저희 별장에 있는데, 어르신들이 머무를 예정이세요. 그럼 그 별장을 발바르회장님 쪽이 공격해 오는 것이죠.”
“참나. 뭘 그리 복잡하게 하냐?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다 끝나잖아?”
맞는 얘기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발바르회장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노친네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우의 사이였던 데다가, 지금은 여러 이권 관계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만약 발바르회장이 삐쳐 막 나간다면 여러 곤란한 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이 노친네들이 이번 사태를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대처하려 하지 않고, 자존심이 달린 진지한 놀이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좀 힘들어요. 어른신들은 공권력에 의지하면 발바르회장님의 무대포에 쫄아 항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그래서 자신들 힘으로 그분의 도전을 깨려고 하고 있어요.”
입술을 잘끈 깨문 범석이 윌킨스회장을 비롯한 자리에 함께한 노친네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늙으면 애가 된다지만, 간단히 해결될 일이 이리 어렵게 꼬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일단 정해진 룰 대로해야겠죠.”
“룰?”
“네. 양 진영이 각각 56명씩의 투사를 준비해 서로 싸우는 형태인데요. 좀 복잡한 조항 달려있어요. 혹시 G랭킹 사이트에 대해서 아시나요?”
“응. 알고 있어. 검투팀이나, 검투사들의 랭킹을 매기는 사이트잖아.”
“거기 보시면 프로검투사를 크게는 S~A급. 세부적으로 0~3등급까지 매기잖아요?”
그건 범석도 잘 알고 있었다. S랭킹 사이트는 검투사의 실력을 순위별로 나열하기도 했지만, 등급별로도 나누어 그 가치를 평가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프로검투사의 숫자는 족히 100여만 가까이가 되니, 이 숫자에 대해 일일이 순위를 매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0위 이하의 검투사는 등급만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에 에어리어리그급 검투사는 A. 와이드리그급 검투사는 I. 센트럴리그급 검투사는 C. 월드리그급은 W로 표기하고 각각 실력차이에 따라 추가적으로 0~3의 숫자를 옆에 붙여 세분했다. 그리고 최상위 10위 안에 드는 검투사는 따로 S등급으로 구분하며 최강의 반열에 오른 자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있었다.
“음. 그렇지. 그 사이트에서 아멜리에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S1등급에 올라 있잖아.”
“네. 무척 고무적인 일이죠. 복귀전의 아멜리에도 S2등급을 10년 이상 유지한 것만으로 전설이 되었으니까요.”
“좋아. 그런데 그게 이번 사태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아주 많아요. 전투에 동원될 56명의 숫자를 이 등급에 맞춰 선정해야 하거든요. 에어리어리그급에 해당하는 A등급은 24명. I등급은 12명. C등급은 6명. W등급 3명. S등급은 1명으로요. 그리고 나머지는 10명은 검투사들을 제외한 자유초빙이고요.”
범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법 복잡하네? 왜 이런 식으로 하지? 그냥 능력껏 아무나 뽑으면 되잖아. 자금 문제 때문에 그런가?”
“아니요. 자금 문제 탓이 아니에요. 바로 발바르회장에게 이브라힘계파가 달라붙었기 때문이죠. 그쪽은 S등급 검투사를 3명이나 보유하고 있거든요.”
그제야 범석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라르 회장에게는 아울라라는 손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줄리앙의 동창이었고, 그의 아버지인 하이에나그룹의 회장은 아브라힘계파의 일원이었다. 분명히 이들 간에 모종에 무언가가 오고 간 듯 보였다.
“그렇군. 동원할 검투사의 질이 차이 나니,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지?”
“네. 쉽게 말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아멜리에가 있잖아. 그녀가 무서운 점은 단체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거야. 분명히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음이 있을 텐데.”
“물론 그랬으면 좋겠죠. 하지만, 그녀가 임대간 과거의 친정팀이 바로 아브라힘계파쪽 팀이에요. 그래서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하는 바람에 저희도 동원할 수 없게 되었어요. 대신 지금 규정을 추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냈지만요…….”
범석이 희미한 웃음을 흘려댔다. 최상의 패를 손에 가지고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니, 제법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좋아. 대충은 이해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직 모르는 점이 하나 있다.”
“뭔데요?”
그가 루이스 부회장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왜 내가 필요한 거지? 저기 루이스부회장님 계파에도 제법 쓸만한 검투사가 다소 나오리라 생각되는데.”
“그렇죠. 하지만, 이 룰을 채용했음에도 불가하고 동원할 수 있는 검투사의 질이 여전히 이브라힘계파보다 떨어져요. 참고로 저쪽에서는 S등급이 2명이나 나와요.”
“왜 그쪽은 2명이야? 룰 상으로는 S등급은 한 명만 동원할 수 있다며?”
“네. 맞아요. 하지만, 아멜리에가 등장하며 10위권에서 밀려난 한 엘프검투사가 S3에서 W0등급으로 떨어졌어요.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죠.”
이제야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재 전문가들은 아멜리에의 막강한 채찍 공격을 버틴 그를 S3등급에 올라도 될 실력자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와이드리그에 뛰는 바람에 실적이 모자라 G랭킹 사이트에서 C0등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들은 6명을 뽑을 수 있는 C급 인원에 범석을 채워넣어 S급 실력의 검투사 2명을 만들려는 의도 같았다.
“한 마디로 나보고. 저쪽의 S급 검투사 하나를 잡아달라는 거지?”
“잡기보다는 막아달라는 것이죠.”
범석이 기분 나쁜 낯빛을 지었다.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아무리 S등급 애들이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라지만, 막는 데에만 치중할 만큼 그다지 실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막아?”
“범석님이 상대할지도 모르는 자가 바로 S2급에 올라 있는 프리스카니까요.”
프리스카. 현존 최고의 몸값인 74억 크랑을 자랑하는 세계 랭킹 2위의 검투사였다. 아멜리에만 없었다면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엘프로, 범석도 감히 이기리라 장담할 수 없는 출중한 실력자였다. 사실 지금의 신체조건으로는 쪼매 자신이 없었다.
“흐음. 저쪽에서 꽤 세게 나오는군.”
“게다가 발바르회장 쪽에서는 자유초빙 인원에 라말라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 말에 범석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라말라는 프로무투계의 최강 무투사였다. 비록 재능있는 실력자가 프로검투계로 빠져나가, 프로무투계에는 그다지 뛰어난 실력자가 없다지만, 세계 최강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재미있군. 기존 최강 검투사와, 현존 최강 무투사의 조합이라.”
“하지만, 라말라에 대한 대책은 세워놓았어요.”
“그래? 다행이군. 세계 제2위 무투사라도 섭외해 왔나?”
“아니요. 다행히 저희 진영에 상당히 괜찮은 무투사가 한 명 있더라고요.”
“누군데?”
“라피네요.”
범석은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혹시 레베카가 라피네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지 걱정이 들었던 탓이다. 라피네는 지하무투계 최강의 무투사였다. 비록 지금은 정체를 숨긴 채, 검투계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다프네라는 본명을 대면 지하 무투계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우, 우리 라피네 말이야?”
“네. 빈센트 감독님이 그러시는데, 그녀라면 충분히 라말라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가 인상을 푹 일그러뜨렸다. 하여간 그 노친네는 평생 도움이 안 됐다. 지난 일 년간 데리고 있으면서 그녀의 특성을 파악한 것이 틀림없었다.
“휴~ 나에다 라피네까지 필요하다 이거지?”
“네. 거기다가 엠마씨를 포함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엠마를? 왜? 걔는 실력이 별로인데?”
“그래서 더욱 필요로 해요. 엠마씨는 A2급으로 분류된 실력자임에도 불과하고 저희 리그 킬포인트 순위 14위를 달리고 있어요. 즉 킬러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죠. 이번 싸움은 단판이라 상대의 숫자를 확실히 줄일 수 있는 엠마씨와 같은 능력자가 큰 효용을 발휘해요.”
자신과 라피네이라면 모르지만, 엠마는 큰 부담 없이 지원해 줄 수 있었다. 그녀는 와이드리그로 올라온 직후 계속 후보로 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G랭킹 사이트의 등급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에어리어리그급 : A0, A1, A2, A3와이드리그급 : I0, I1, I2, I3센트럴리그급 : C0, C1, C2, C3월드리그급 : W0, W1, W2, W3 그리고 S등급은 세계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등급니다. 다만 대다수가 S3등급만 주고 그 위인 S2, S1, S0등급은 잘 안 주죠. 이 세부등급을 받으려면 그만큼 실력이 되야 합니다. 참고로 S1등급은 아멜리에가 이번에 최초로 받은 등급이고, S0는 아직 그 누구도 받은 역사가 없습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