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18
220화
우거진 숲 속 중앙에 자리 잡은 넓은 공터. 수십 기의 고급 버스형 플라잉 카가 어지러이 늘어져 서 있었다.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난 흙길을 따라 줄리앙이 한 적발의 엘프를 대동하고 느릿느릿 거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기색이 한껏 넘치고 있었는데, 바로 뒤를 따르는 프리스카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멜리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검투사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심히 못마땅한지 얼굴에 심드렁한 기색이 가득했다. 한창 리그 전이 열리는 중요한 이 시기에 팀의 에이스인 자신이, 이곳에 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단장님은 어째서 날 여기를 보낸 거지? 내가 왜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야 하느냐고? 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단 말이야. 아멜리에에게서 최고의 자리를 다시 빼앗아와야 한다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 프리스카가 리그 9차전이 벌어진 한 달 전쯤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그녀는 소속팀인 에인션트 워리어스의 중견으로 출전해 에밀리에가 뛰고 있는 데빌 스프릿즈와 일전을 벌였었다. 전설의 귀환 대 현역 최고의 검투사인 자신이 맞는 경기이기에, 115,000석의 경기장은 응원하러 온 팬들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프리스카는 그들 앞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는 흉한 꼴을 선보였다.
항시 최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던 그녀는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이제 자신이 이인자로 강등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홈에서 에밀리에게 3라운드 연속으로 행동불능을 당했으니, 달리 변명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프리스카에게는 반드시 그녀를 쓰러뜨리고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최고가 아니면 난 세노사이드로 가는 길이 족히 몇 년은 더 늦어질지 몰라! 반드시 최강의 자리를 되찾아야 해!’
세노사이드는 전 세계의 행정의 중심지로, 이곳에서는 일 년에 단 두 번 특별한 워커옥션마켓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최고의 자리와 세노사이드의 워커옥션마켓을 연관시키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 경매에서는 그해 은퇴하는 월드리그급 선수들이 판매되는데, 여기에 스포츠를 좋아하는 세계 최대의 부호들이 모여들어 수집욕구를 마구 분출해대던 까닭이다. 덕분에 명성을 얻은 엘프스포츠인일수록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고, 절대자로서 전설로 자리매김한 엘프는 은퇴했음에도 불가하고 전성기의 몸값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아주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이에 그러한 검투사나 선수를 보유한 프로팀은 한 가지 재미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경매에서 비싸게 팔릴 만한 엘프가 체력이 손실되어 그 명성에 흠집이 가기 전에 얼른 팔아치워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그 나이는 적어도 30살 이전. 여느 엘프스포츠인들보다 빠른 은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등장한 아멜리에로 손에 잡힐 듯한 그 꿈이 저 하늘 멀리 사라져버렸다. 이제 프리시카에게 남은 희망은, 아멜리에를 쓰러뜨려 명예회복을 하는 길뿐. 훈련과 리그경기의 경험을 통해 본연의 실력을 갈고 닦아야 했다.
“후후. 프리스카 다 왔다. 앞으로 만날 사람은 비즈니스 관계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여인이니,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줄리앙의 말에 프리스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여기에 와 있는 이유가 바로 저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줄리앙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불만에 가득한 표정을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의 발로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붉은색의 플라잉 버스 앞에 선 그가 노크하자, 바로 출입문이 스르르 열렸다.
“줄리앙. 어서 와. 그래 그 아이는 데려왔어?”
출입구 계단에 올라선 줄리앙이 엄지를 들어 뒤따라온 프리시카를 가리켰다.
“물론이지.”
“오. 제법 능력 있는데. 줄리앙 다시 봐야겠어. 자 이리 와서 앉아.”
버스 좌석과 천장의 판자가 이동하며 실내를 간단히 회의장소로 만들었다. 잠시 기다리며 지켜보던 그가 자리가 마련되자 거만한 자세로 착석했다. 프리시카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멀리 입구 근처에 있는 좌석에 앉아 그대로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본 줄리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아울라. 네가 이해해라. 프리시카는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엘프검투사라 함부로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호호호. 그래? 아주 마음에 드는데. 최고라면 당연히 저런 자부심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나는 이해하니까 염려하지 마.”
예상은 했지만, 아울라가 이해하고 넘어가자 줄리앙이 다소 안심했다. 둘의 충돌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봤자 자신이 득 될 일은 없었다.
“그럼. 이제 됐지?”
“뭘 말이야?”
“뭐긴? 최강의 검투사단을 구성해준다면, LHN금융지주가 우리 경제인단체에 붙기로 했잖아?”
“응. 맞아. 나와 할아버지가 분명히 가입하기로 약속했어. 그런데 왜?”
“왜긴! 지금 구성해 왔잖아!”
줄리앙의 다그침에 아울라가 진하게 콧방귀를 꼈다.
“네가 데리고 온 아이들이 최강인 줄은 내가 어떻게 알지?”
“보면 몰라. 프리시카를 데리고 왔잖아! 아멜리에가 이번 싸움에 참여하지 못한 이상 그녀가 최강이란 말이야! 그건 검투관계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여유롭게 고개를 흔든 아울라가 방긋 웃었다.
“아무래도 네가 생각하는 최강과 내가 생각하는 최강이 좀 다른 모양이네.”
“다르기는 뭐가 달라!”
“확실히 다르지. 난 아무리 명성을 날려도 패배자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는 않거든.”
길게 한숨을 내쉰 줄리앙이 그녀를 지그시 노려봤다. 그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즉. 이번 싸움에서 승리해야지만, 약속을 지키겠다는 얘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야? 나 이번에 이번 게임에 동원할 검투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버지께 LHN을 경제인단체에 가입시킨다는 명분으로 들었단 말이야. 만약 너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 맞아 죽어.”
하긴 시즌이 한창인 이시기에, 이만한 스쿼드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LHN의 이름이 반드시 필요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줄리앙의 사정. 아울라가 관여할 바가 전혀 아니었다.
“너도 전에 내가 레인보우그룹을 칠 때 뭐라고 했어? 성공했을 때만 하이에나그룹의 장부를 준다고 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아니면 국물도 없는 거야.”
“아, 아울라. 너 정말 이러기야!”
“그러니까 이겨. 이기서 최강임을 증명하면 되잖아. 왜 자신 없어?”
너무도 원론적인 얘기였기에, 줄리앙이 입술 꽉 깨물기만 할 뿐 딱히 반박을 못 했다. 확실히 아까 그녀가 말한 대로 패자에게 최강의 명칭을 주기에는 모순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게임에서 충분히 승리할 자신감이 있었다. 막강한 검투사로 팀을 구성해놨고, 또 여러 잡다한 작업을 준비해놨다.
자세를 흐트러뜨린 그가 넌지시 아울라를 쳐다봤다.
“좋아. 그럼 이기면 딴말하지 않기다?”
“염려 마. 나와 할아버지는 신용이 생명인 금융인이야. 너희가 약속을 지킨 이상 절대 딴소리하지 않아.”
줄리앙이 바로 손을 쭉 내밀며 말했다.
“그럼 저쪽에서 출전할 최종 명단과 사진 자료를 건네줘.”
“왜? 작전에 필요해?”
“그래. 지금 여기 상공으로 초소형 첩보위성을 띄어놨어. 영상자료만 있다면,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수시로 감시할 수 있어.”
그 말에 아울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 줄리앙 제법 신경 썼는데.”
“물론 LHN이 우리 경제인 단체에 가입하는 중대사인데, 그 정도 서비스는 제공해야지.”
“호호호 그래? 다른 서비스는 없어?”
“이번에 심판을 볼 자들을 매수 놨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골적인 편파판정을 할 수는 없지만, 여러 도움은 받을 수 있지. 그리고 이 근방 숲 속에다 늑대를 상당수 풀어놨다.”
아울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심판을 매수한 일은 이해하지만, 늑대를 풀어놔서 무슨 이득을 취하려 지는 몰랐다. 늑대는 개과 동물이기는 하지만, 야수이기에 적아를 구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조련이 필요했다.
“혹시 훈련받은 늑대야?”
“아니. 야생 그대로다.”
“그럼 우리를 공격해 올 수도 있잖아?”
“괜찮아. 늑대들이 극히 접근을 꺼리는 분말을 준비했거든. 이걸 근처에 뿌리거나 슈트에 묻히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설령 공격해오더라도 늑대의 이빨로는 슈트를 착용한 자를 상처입히거나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 정도의 물리 데미지는 줄 수 없으니까 상관없어.”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상대편도 슈트를 착용할 테니, 늑대에게 공격받아봐야 아무런 해를 입을 일이 없었다.
“아니 그럼 왜 늑대를 푼 건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
“아니 큰 도움이 돼.”
“어떻게?”
“사실 우리가 인공위성을 동원했다고는 하지만, 놈들이 이곳의 우거진 숲 속을 방패 삼아 기습전을 펼친다면 큰 효력을 발휘 못 해. 인공위성으로 볼 수 있는 장소는 잘해야 사방이 트인 개울가나, 놈들 별장 주변뿐이니까. 하지만, 늑대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 늑대는 침입자가 접근해 오면 울음소리로 동료에게 경계하라고 알리기에, 그 음향만 탐지한다면 놈들의 숲 속 이동을 대략 알아챌 수 있어.”
아울라가 새삼 경이로운 눈빛을 지으며 줄리앙을 바라봤다. 생각과 달리 제법 똑똑한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초소형의 인공위성이야 보일 리가 없으니 걸릴 이유가 없었고, 이곳 숲 속은 과거부터 야생동물이 살아가고 있기에 늑대가 있어도 하등 문제가 없었다. 상대 팀에서 의심할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반칙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만약 늑대들이 이 숲 속을 떠나면 어떻게 할 거야?”
“으음. 그래서 심판들을 매수한 거야. 그들이 늑대로 말미암아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숲 속 이곳저곳에 먹이를 뿌려댈 것이거든. 먹이만 충분하다면 그 어떤 야생동물도 살아갈 터전을 절대 벗어나지는 않아.”
“좋아. 그럼 늑대들 간이나 다른 야생짐승과의 충돌로 벌어지는 울음소리는 어떻게 구별해 낼 거야.”
“그 점도 염려하지 마. 그런 충돌은 인접한 두 영역에서만 벌어지고 끊어지지만, 놈들이 기습을 펼칠 때는 그 이동거리의 모든 영역에서 연이어 울음소리가 발생해. 우리가 준비한 음향탐지장치에는 이런 차이를 분석할 수 있는 이동 경로 예측프로그램이 부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
아울라의 철저한 그의 준비성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상대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으니, 만약 기습을 감행해온다면 대기하고 있다가 일거에 전멸시켜버릴 수 있었다.
“이거 대단한데. 덕분에 편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겠어.”
“후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자 그럼 명단을 내놔.”
그녀가 얼른 상대팀 명단을 뽑아, 줄리아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첫 장에 나와 있는 한 흑발의 엘프를 보고는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루이스부회장도 제법 신경을 썼는데. 세계 랭킹 4위인 에우리네를 동원하다니 말이야.”
“으음. 자존심 싸움이라 그분도 날카롭게 발톱을 세웠겠지.”
줄리앙이 고개를 돌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프리시카를 향해 외쳤다.
“프리시카! 저쪽에서 S등급 검투사로 에우리네가 나온다는데 괜찮겠어?”
마지못해 그를 바라본 프리시카가 음산한 투로 얘기했다.
“제가 그녀에게 지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참고로 현재 검투계에서 S2등급 이상을 받은 자는 아멜리에와 저밖에 없어요.”
“후후. 좋아. 그럼 확실하게 처리해주기 바란다.”
줄리앙이 안심하고 명단을 계속 넘겨나갔다. S등급은 다른 등급과 달리 단계별 실력 차가 아주 극심했다. S3는 그저 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실력자를 의미하지만, S2등급은 전설로 기억될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아무리 에우리네가 세계 랭킹 4위에 올랐다지만, 실력은 그 수치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W등급 3명을 지나쳐 C등급을 살피던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아주 뜻밖의 인물이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에게 철저히 모욕을 안겨다 준 빌어먹을 범석이라는 자식이었다.
“이, 이 자식. 그 자식이 맞지?”
“보면 몰라?”
이를 부득 간 줄리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야! 오범석! 이놈이 나온다면 진작에 나에게 알렸어야 할 것 아니야!”
고막이 울렸는지 귀를 후빈 아울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얘도 참. 나도 최근에 알았어. 가장 나중에 팀에 가세했단 말이야.”
“화, 확실해?”
“그래.”
“좋아. 그런데 왜 이놈이 이번 게임에 참가한 거야?”
“그건 아마도 캐시라는 검투사를 선물 받아서 그럴 거야. 최근 부르스부회장님이 캐시를 5억 1,000만 크랑에 범석이라는 자에게 팔았는데, 실상은 금융거래가 없었어.”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던 프리시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고 있던 줄리앙을 밀쳐낸 후, 탁자에 양손을 기댄 자세로 아울라를 노려봤다.
“방금 누구라고 했죠?”
“으음. 오범석. 저기 줄리앙과는 사이가 꽤 좋지 않은데, 이번 게임에 참가하고 있어.”
“그래요? 그럼 그자가 델로이 와이드리그 소속의 갓즈나이츠팀에 뛰고 있는 그 오범석이 맞나요?”
“맞아. 그런데 왜 그런 것은 물어?”
아무런 대답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던 프리스카가 한쪽 입꼬리를 히죽 세웠다. 쓸데없는 세월낭비라고 생각했던 게임에서 뜻밖에 월척을 건진 것이다.
그녀는 지난 9차전에서 아멜리에와 맞붙어 패배했을 당시 아주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대가 자신에게 2번째로 검을 뽑게 한 상대라는 얘기였다. 단지 자격지심에 불과했지만, 2번째라는 말이 마치 자신을 삼인자라고 암시한다는 착각이 들었다. 또 다른 누군가를 자신의 머리 위에 둘 수 없었던 프리시카는 아멜리에의 경기 영상을 살피며 그 대상을 찾았고, 결국 범석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좋아. 이번에 그자를 쓰러뜨리고, 내년 춘계시즌에 새로운 마음으로 에밀리에에게 도전한다.’
자리에 앉은 프리시카가 즐거이 콧노래를 불렀다. 하등 쓸데없는 짓거리라고 짜증을 내던 이번 일이 아멜리에에게로 향하는 계단 중 하나라고 인식되니, 그렇게 기대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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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