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22
224화
“뭐야? 저자는? 설마 혼자서 우리 모두와 싸워보자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왜 저러고 서 있는 거지.”
그러나 LHN쪽 참가자들은 감히 다가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낮의 경험으로 울창한 밀림의 무서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던 탓이다.
이때 뒤쪽에서 줄리앙과 아울라가 .두 명의 엘프를 대동하며 다가왔다. 이들을 본 엘프들은 극히 경외심 어린 행동으로 이들을 대했다. 바로 함께 온 엘프가 검투계에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린 프리시카와 티엘라였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프리시카 언니, 티엘라 언니.”
줄리앙이 앞으로 나서며 소란을 떠는 엘프들을 쏘아댔다.
“도대체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빨리 침입자를 찾아야 할 것 아니야!”
헬멧 밖으로 은발을 삐쭉 내밀고 있던 한 엘프가 퉁명스러운 태도로 그를 대했다. 자신들을 억지로 이곳에 오게 한 작자가 바로 줄리앙이었다.
“저기 안보이세요! 침입자가 앞에 있잖아요.”
엘프들이 일제히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본 줄리앙이 인상을 구겼다. 침입자로 예상되는 작자가 유유자적 팔짱을 낀 채 이곳을 주시하고 있음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놈을 잡아야 할 엘프들은 빤히 보이는 와중에도 가만히 여기에 서서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었다.
“너희! 저놈을 안 잡고 뭐 해!”
음성이 너무 컸었나? 목소리의 주인공이 줄리앙인 줄 안 범석이 얼씨구나 소리쳤다.
“여어! 줄리앙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눈을 껌뻑껌뻑 거리던 줄리앙이, 얼마 안 가 숲 경계선에서 반쯤 상체를 내밀고 있는 상대가 범석임을 깨달았다. 상대 측 게임 참가자 중 자신에게 이런 말을 짓거릴 자는 그밖에 없었다.
“너! 이 자식! 범석이 맞지!”
“아 참나! 자식! 물어보긴 뭘 물어 보냐! 척 보면 눈치채야지!”
“너, 너! 여기 왜 왔어!”
“왜 오긴! 네가 먼저 우리 진영에 내가 누구냐며 물었다던데! 그래서 옛정도 있고 해서 직접 찾아왔다! 하하하!”
그의 조롱어린 말투에,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만든 줄리앙이 자리에 모인 엘프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뭐해! 당장에 쫓아가 저 작자를 잡아!”
마지못해 엘프들이 움직일 찰라, 아울라가 그를 만류하고 나섰다.
“가긴 어디를 가! 또 당하고 싶어! 우린 벌써 일곱이나 당했어.”
“그럼 저놈을 가만히 두란 말이야!”
“가만히 안 두면 어쩔 건데? 이대로 가서 또 단체로 미아가 되자고?”
“하,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 상관없이, 프리시카가 티엘라를 포함한 모든 엘프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줄리앙의 명을 따라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다리던 사냥감이 제 발로 바로 앞까지 찾아왔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 숲으로 들어가 놈을 잡는다!”
그 말에 아울라가 그녀를 막아섰다.
“프리시카! 너 뭐하는 거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너도 낮에 무슨 사태가 벌어진 지 빤히 알고 있잖아!”
프리시카가 사방을 환히 밝히고 있는 라이트를 쳐다봤다.
“이 근방이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요. 라이트의 불빛만 따라가면 바로 캠프니까요.”
옳다구나 한 줄리앙이 나서서 아울라를 설득했다.
“프리시카의 말이 맞아. 밝은 라이트의 빛이 있으니, 이 근방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거야.”
그럴싸하게 들렸던 아울라가 순간 주저했다.
“하,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잖아.”
“만약은 무슨 만약이야. 지금 저놈을 계속 가만히 두다가는 빈틈만 보이면 계속 기습해올 거야. 그럼 오늘 잠은 다 잔 거라고! 너 그다음에 벌어질 작전 차질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잖아.”
하긴 침입자를 바로 곁에 두고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히 두 눈 부릅뜨고 새벽을 맞이해야 할 터. 극심한 체력소모가 예상되었다. 아무리 엘프라도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면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아울라가 프리시카를 바라봤다.
“좋아. 프리시카. 최대한 조심히 작전을 수행해야 해.”
“염려하지 마세요. 제 검으로 반드시 저 범석이라는 자를 반드시 쓰러뜨려 버릴 테니까요.”
그 말을 하고 난 프리시카가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고는 서서히 범석이 서 있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티엘라와 다른 LHN쪽 참가자들이 따랐다.
순간 자취를 감추며 사라지는 범석의 음영. 프리시카를 비롯한 일행들의 발길이 빨라졌다.
“놈이 도망친다! 반드시 잡아야 해!”
수풀을 해치며 숲 속 안으로 들어온 프리시카가 주변을 둘러보며 범석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라이트 불빛으로 환히 모습을 드러낸 수풀과 이에 가린 짙은 어둠의 그림자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긴장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한 발을 옮기던 프리시카가, 순간 무리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꺄아아악!”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장면은 맨 뒤로 따라오는 한 엘프가 누군가에게 붙잡혀 나무 그림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이에 프리시카가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범석이라고 예상되는 인영은 벌써 옆에 서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간 상태였고, 끌려 들어간 동료는 몸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그 작자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모두 이 나무를 포위해!”
“됐어! 이제 잡은 것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동료 하나를 잃었다지만, 침입자를 나무 위로 몰아넣었으니 소귀의 성과를 올린 셈이었다. 이제는 활을 쏘며 잡아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궁을 든 엘프들이 화살을 죄더니, 일제히 나무 위를 향해 겨누었다.
“모두 쏴!”
프리시카의 명령에 일제히 활시위가 퉁겨졌다. 끊임없이 날아가는 화살과 함께 가지와 나뭇잎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원한 비명은 그녀들의 뒤에서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두 명의 검투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범석이 기척을 숨기며 뒤로 진입해 그녀들의 등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는 다른 엘프들이 돌아설세라 머리 위로 뻗어 있는 나뭇가지를 움켜잡고는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근처에 보이는 나무로 점프해 옮겨 가서는 다시 검은 음영 사이에 몸을 숨겼다.
‘이거 영 싱거워서야. 판타지게임 속 엘프와는 전혀 딴판이네.’
손쉽게 셋은 더 제거한 범석이 거목의 꼭대기에서 웅크린 자세로 앉은 채 주변을 수색해가는 LHN측 참가자를 바라봤다. 뾰족한 귀에 나름 큰 키와 아름다운 외모로 보아 할 때, 그녀들은 여느 엘프와 외모상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행동거지를 보니 이거 완전히 딴판이었다. 판타지 속 엘프들은 두려울 정도로 밀림전에 강했는데, 여기 엘프는 검술만 뛰어날 뿐이지 그 외에는 완전 꽝이었다. 이거 어린애들 손목을 비트는 느낌이 들어 민망할 지경이었다.
‘후후. 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수는 없지. 숲 속에서 나를 적으로 만난 자신을 원망해라.’
범석이 마침 나무 아래로 지나는 한 엘프 창사를 보고는 그대로 뛰어내려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리고 무리의 시선을 받기도 전에, 다시 수풀 속에 뛰어들어 빠르게 나무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모두 조심해! 또 한 명이 당했어! 절대 혼자 다녀서는 안 돼!”
LHN쪽 참가자들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진입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동료 넷이 행동불능 되어 버렸는데, 침입자로 예상되는 범석은 제대로 코빼기조차 못 보았다. 아무리 이쪽이 수십이나 남아 있다지만, 이런 상태라면 오늘 안에 모두 전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숲 속을 나가 전력을 보전하는 길이 최선의 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엘프 검사가 프리시카 쪽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 언니. 빨리 여기를 나가야 해요. 이러다가는 다 당해요.”
그 사이에도 동편에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청명한 검음이 울려 퍼졌다. 또 한 명의 동료가 당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두려움에 젖어든 눈빛을 한 티엘라가 프리시카를 바라봤다.
“맞아요. 언니.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에 들어요. 빨리 숲에서 벗어나야 해요.”
동료 중에 가장 숲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싸워보나 마나였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던 프리시카는 결코 몸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멜리에에 이어 또다시 범석이라는 개조인간검투사에게까지 꼬리를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자, 잠시만 더. 침입자는 단 하나야. 지금 수십이나 되는 우리가 물러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만한 수모도 없어.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반드시 범석이라는 검투사를 잡아야 해!”
“언니!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자는 범석이라는 검투사 한 명이 아니에요. 별장의 적도 고려해야 하니, 전력을 보전해야 한다고요.”
티엘라의 격양된 조언에도 프리시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이번 게임은 자신들 편이 진 것과 진배없었다. 지금껏 희생된 수는 12이었다. 이처럼 전력 차가 난 상태에서 완전한 전략을 갖춘 채 별장을 방어하고 있는 상대편을 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차라리 오늘 범석이라는 자를 잡아 자존심을 세우는 편이 좋았다.
“아니. 잠시만 더 살펴보자.”
“이건 살펴보나 마나 에요. 척 보면 모르세요!”
그때 한 명의 엘프가 나무 위로 끌려 올려져 갔다. LHN쪽 참가자들이 급히 화살을 날려댔지만, 떨어지는 것이라고 잡혀갔다가 행동불능이 된 동료뿐이었다. 이에 프리시카가 이를 아득 문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범석이라는 개조인간만큼은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듯 보였다. 그는 숲 속의 지배자였고, 자신들은 그저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철수! 내가 뒤를 맡을 테니, 모두 캠프로 돌아간다!”
안도의 표정을 안면 실드 사이로 드러낸 LHN 참가자들이 캠프의 불빛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호위하듯 돌아선 채로 뒷걸음질을 치는 프리시카가 흔들리는 검 끝을 어둠 속에 겨누며 사위를 주시했다.
‘정말 조심해야 해. 여기서는 에밀리에라도 절대 그자를 이길 수 없어. 아무리 나라도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당한다.’
그래도 호위를 선 보람이 있었는지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이 숲 외곽까지 거의 다다를 수 있었다. 모든 동료가 무사히 빠져나감을 확인한 프리시카가 급히 몸을 캠프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숲 경계선 너머로 한 발자국을 옮길 찰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걸음을 멈췄다. 목에 사늘한 카타나의 검날이 와 닿아 있었던 탓이다.
“네가 프리시카지?”
음산한 범석의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프리시카가 떨리는 음성을 토해냈다.
“네, 네. 맞아요.”
“후후. 그래. 이거 영광일걸. 검투계 최고 연봉의 엘프를 바로 면전에서 보다니 말이야. 으음. 다른 이유로 만났으면 사인이라도 한 장 받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
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내 이름을 몰라? 아까 전투 전에 밝힐 것으로 아는데.”
“네. 범석님이라는 사실은 잘 알아요. 제가 여쭙고자 하는 것은 과연 누구기에 이런 전투력을 보일 수 있느냐는 거예요. 아멜리에와 대전했을 때도 전 이런 절망감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미안하지만, 나는 아멜리에는 물론, 너보다도 실력이 떨어진다. 그러니 너무 추켜세우지는 마라.”
프리시카가 버럭 소리쳤다.
“거짓말 말아요! 당신의 전투 센스는 그 누구보다 앞서요. 전 범석님에게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했어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맞붙은 장소가 어둠 속에 잠긴 숲 속이었으니까.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할지라도 밀림에서는 한낱 조무래기에게도 당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도 저희는 족히 수십이나 있었어요.”
“이런 이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지형지물을 우습게 생각하네. 방금 너희는 수영도 칠지 모르면서, 식인상어가 도사리는 깊은 바닷물 속에 몸을 던진 꼴이었어. 아무리 수십이라고 해도 당연히 나 하나를 이길 수가 없지. 크크크. 이참에 충고하겠지만, 다음에 나를 상대할 때는 생각이라는 것을 먼저 해. 낮에도 길을 잃어 끝없이 헤매는 애들을 데리고 감히 밤 중에 내가 있는 숲 속 따위에 기어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야.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프리시카가 두 눈을 질끔 감았다.
“좋아요. 그렇다고 쳐요. 이제 저를 어쩌실 요량이시죠?”
“글쎄다. 어떻게 할까? 단번에 없앨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랑은 이런 식으로 승부를 결정짓고 싶지 않네.”
“그, 그럼 이대로 보내주실 건가요?”
“글쎄다. 너를 그냥 보내기에는 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정면 승부를 했다가는 내가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럼 도대체 저를 어쩌실 요량이죠.”
범석이 왼손으로 가슴 쪽 포켓을 뒤지더니, 네모난 칩 하나를 찾아 꺼냈다. 바로 줄리앙이 심판들을 매수한 자료가 담긴 메모리칩이었다.
“자. 일단 한쪽 손을 내밀어 봐라.”
“손이요?”
“잔말 말고 내밀기나 해.”
하는 수 없이 프리시카가 한쪽 손바닥을 내밀자, 범석이 그 위로 칩을 툭 떨어뜨렸다.
“이, 이게 뭔가요?”
“으음. 알 필요는 없고. 너는 이걸 아울라라는 계집에게 가져다주며 내가 하는 말을 똑똑히 전해. 그럼 이번에는 무사히 보내주도록 하지.”
그녀가 순간 두 눈을 빛냈다. 그저 심부름 하나로 범석과 다시 한 번 붙어볼 기회가 마련되니,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뭐라고 전해 주면 되죠.”
“이 안에 있는 자료가 곧 채플린회장과 브루스부회장의 손으로 들어갈 테니, 낮에처럼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검투사의 수를 조작하는 어이없는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해. 계속하다가는 곱절로 당할 테니 말이야.”
“아, 알겠어요. 꼭 전해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곧이어 프리시카의 목을 감싸고 있던 카타나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범석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황급히 뒤돌아섰지만,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수풀만 보일 뿐, 그 어디에도 인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아 이거 주말만 되면 계속 늦네요. 술 먹고 이제야 들어와서요. 아. 내일도 약속이 있는데, 이거 고민입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즐거운 설 되시고요. 전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