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24
226화
‘뭐야! 이런 사기가 어디 있어!’
아울라의 능력치 신체적인 면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정신적인 면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재주를 제외한 모든 스텟이 90을 넘어서니, 딱히 단점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에 사기 급에 해당하는 ‘금융의 손’이라는 특기는 두려움을 자아내게 할 지경이었다. 바로 자신과 휘하 조직원들의 모든 여수신 거래에 대해 +4% 이득을 본다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연 4%의 이자를 지급해야 유지할 수 있는 고객의 예치금을 3.84%의 이자로 유지할 수 있고, 6%의 대출금리로 유지할 수는 모든 대출금을 6.24%로도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뭐 100만 크랑의 적금을 봤을 때는 매해 기껏해야 1,600크랑의 이득이 있을 뿐이었지만, LHN그룹 전체의 예치금과 대출금을 놓고 생각해봤을 때는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만약 그녀가 LHN금융지주의 수장이 되어 모든 직원에게까지 특성의 영향이 미친다면, 윌킨스회장의 업계 1위의 희망은 봄날의 꿈처럼 사라지게 된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확 죽여버릴 수도 없고.’
범석이 살기 어린 눈초리로 아울라를 노려봤다. 계속 적으로 두기에는 부담요소가 무척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몰래 제거해 우환을 없애자니, 여자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여인에게 손찌검하는 일조차 무척 꺼리는 성격이었다.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은 범석이 아울라의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이.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할 것 아니야.”
“하,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울라.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자신 같았어도 이 와중에 대화하자고 선뜻 나서기가 어려울 터였다.
“휴~ 그럼 나 바빠서 가볼 테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그녀가 그만 자리를 떠나려는 범석의 발목을 힘껏 부여잡았다. 촉각이 급한 이 마당에, 체면치레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저, 저기 칩에 담긴 문서를 다른 어르신들에게 넘겼어?”
아마도 줄리앙이 심판들 매수한 자료를 말하는 듯 보였다. 아직 넘기지 않았던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직 안 넘겼다. 하지만, 조만간 넘기게 될 듯 보인다.”
그 말에 아울라가 고개를 들며 목청껏 소리쳤다.
“안 돼!”
“왜 안 되지? 잘못했으면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함이 옳은 일이잖아.”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그 일로 친우분께 조롱을 당하시면, 난 그룹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할지도 몰라!”
순간 묘한 빛줄기가 그의 안광을 스쳐 갔다. 아울라의 특성은 LHN금융지주사를 물려받았을 때 사기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아니라면 범용의 잡특성보다 못한 등급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가령 그녀가 은행에 10억 크랑의 거금을 예치 놓아봐야 특성으로 인한 한 해 수입의 이득 분은 겨우 160만 크랑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뜻 결정 내리지는 못했다. 이 문서를 윌킨스회장 일행들에게 넘겼을 때, 아울라가 후계자 자리에서 탈락 된다는 보장이 없던 탓이다. 잠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범석이 시간을 벌기로 했다.
“무슨 얘기인 줄은 모르지만, 일단 씻고 하자. 이 상태에서는 도저히 대화를 나눌 수 없겠다.”
같은 생각인지 아울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민망한 꼴은 다 보였지만, 확실히 지금은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 좋아. 대신 그 사이에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는 절대 안 돼.”
“뭐. 그 정도는 들어주지. 대신 그 사이에 허튼수작을 부리면 알지?”
“걱정하지 마. 절대 너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너희 캠프와 계곡 중 어디로 갈 거지? 가깝기는 계곡 쪽이 훨씬 가깝기는 한데.”
아울라의 선택은 너무도 자명했다. 지금 이 찝찝한 기분으로 오래 걸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곳 계곡은 깨끗한 물이 흐르기에, 몸을 씻기에는 적당했고, 숲 속에서 헤맬 경우를 대비해서 가방 속에 예비용 옷가지를 준비해왔었다.
“계곡으로 안내해줘.”
“좋다. 따라와라.”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서쪽으로 길을 틀고는 안내를 시작했다. 작은 숲과 산을 하나 넘어 도착한 계곡에는 청량감이 넘치는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경사가 급격해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바위틈 사이로 고인 물이 있어 목욕하기에는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저쪽에서 하면 되겠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긴 아울라가 빤히 그를 쳐다봤다. 숙녀가 목욕하기 위해서는 결코 근처에 엉큼한 사내의 시선이 없어야 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쉬운 표정을 지은 범석이 멋쩍은 몸짓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피해있어야겠지. 그럼 근처에 있을 테니, 다 씻고 나면 큰 소리로 불러라.”
아울라가 자리를 떠나가는 그를 불신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정보에 의하면 그는 여성에게도 애정을 느끼는 사내라고 했다. 혹시나 훔쳐볼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티엘라를 비롯한 대동한 엘프들로 겹겹이 자신을 가리게 하고는 옷을 벗어 내렸다. 그리고 나신의 몸을 계곡 속에 담가 씻기 시작했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아울라가 몸을 씻는 계곡물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장소. 범석이 입을 삐죽 내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려고 했는데, 엘프들이 주위를 포진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었다. 외간 남자에게 자신의 나신을 흔쾌히 드러내 보이는 여자를 여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목욕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인내할 수 없었다. 10년 묵은 때를 벗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말 이럴 수가 없었다.
“미치겠군. 누구 똥개 대기 훈련 시키나? 뭔 놈의 목욕을 이렇게 오래 해. 젠장 할.”
이러기를 한 참. 개울가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끝이 났다고 생각한 범석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비탈을 내려갔다.
그리고 계곡 외곽에 다다랐을 무렵, 티엘라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범석님. 아울라 아가씨가 얘기할 준비가 되었데요.”
그렇지 않아도 가고 있던 범석이 하얀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껴입고 있던 아울라를 향해 소리쳤다.
“야. 너! 빨래 했냐! 목욕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울라가 볼을 크게 부풀리며 그를 노려봤다. 숙녀에게 저런 모욕적인 언사를 하다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결코 불만을 입 밖으로 늘어놓지는 않았다. 앞으로 있을 대화는 그녀의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고비가 될 터이니, 자존심이 약간 상한다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미안해. 기분이 찝찝해서 말이야. 이해해줘.”
근처 바위에 철썩 앉은 범석이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좋아. 뭐. 사정이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지. 그럼 이제 이야기를 마저 나누자. 지금 너는 내가 가진 문서가 윌킨스회장님들에게 넘어가면 안 된다는 얘기지?”
“물론 이야. 제발 부탁이니, 이번 일은 그냥 모르는 척 해줘.”
“일단은 싫다. 나도 이번 사태를 그 어르신들에게 알려야 할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부정적인 발언에 당혹스러웠지만, 아울라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그의 옆에 앉았다.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아주 간단하다. 어르신들이 큰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 문서를 사기로 했으니까.”
아울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르신들이 이 문서를 산다는 얘기는 곧 자신의 치부가 이미 알려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너, 너. 설마 이 문서와 내가 연관되었다는 소리를 했어?”
“아직 안 했다. 지금 확실히 언급된 자는 줄리앙 단 한 사람이다.”
그녀가 세차게 뛰는 심장박동을 안정시켰다. 그럼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사실을 줄리앙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아울라가 티엘라와 일행인 엘프들을 바라봤다.
“너희. 잠시만 멀리 물러나 줄래?”
그녀들이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줄리앙에게 명받기를 아울라를 호위함과 동시에 어째서 범석을 만나려고 하는지 그 연유를 알아오라고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갔다가는 크게 질타를 당할 터였다.
“그럴 수 없어요. 저희는 한 시도 아울라님을 홀로 두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대략 그녀들의 의도를 눈치챈 아울라가 피식 웃었다. 엘프를 설득하는 일은 너무도 쉬웠던 탓이다. 다행히 어제 상당수의 검투사와 무투사가 당했던 터라, 티엘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몸값이 저렴한 와이드리거급 이하의 실력자로 배정되어 있었다.
“오늘 일만 모르는 척해준다면, 티엘라는 힘들겠지만, 나머지들은 조만한 주인을 얻게 해주지. 그래도 거절할 거야?”
눈동자를 파르르 떤 다른 엘프들이 티엘라를 간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녀만 묵인해 주면 자신들은 평생의 꿈을 당장에 이룰 수가 있었다. 아울라의 재력이라면 충분히 약속을 지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마음이 약해진 티엘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약속을 지키실 건가요?”
“그래. 비록 하위급 리그에 소속되어 있지만, 우리 LHN그룹도 산하에 홍보를 위한 프로검투팀을 하나 두고 있어. 내가 손을 쓰면 충분히 너희를 구매해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티엘라에 대해서도 노력을 해보지. 어때?”
티엘라가 차분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은 워낙 몸값이 나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지만, 타박 한 번 듣는 것이 껄끄러워 다른 엘프들의 염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하이에나그룹에 소속된 검투사가 아니니, 줄리앙과의 의리를 지킬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꼭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라요.”
그녀가 물러서서 거리를 두자, 동료 엘프들이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뒤쫓아갔다. 티엘라의 결정으로 이제 자신들은 이 지긋지긋한 주인 없는 신세를 청산할 수 있었다.
이제 주변에 듣는 귀가 없음에 아울라가 계속 범석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으음. 나에 대해서는 왜 언급을 하지 않았어? 이 문서를 나에게 줄 정도라면 연관관계는 알고 있다는 얘기잖아.”
“간단하다. 너는 정황만 있을 뿐, 확실한 증거가 없었으니까.”
아울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야료에 대한 모든 사항은 줄리앙에 맡겼기에, 그가 증거가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녀는 괜히 설레발을 쳤나 후회가 들 정도였다. 자신은 줄리앙만 입막음하고 시치미만 떼면 의심은 받겠지만, 최악은 면하게 되었다.
“이거 그럼 내가 네 낚시질에 걸려든 꼴이네?”
“낚시라니? 난 그저 반칙을 그만 하라고 협박했을 뿐이다. 심판을 매수해 킬 데스 수를 조정하는 일은 참 치사한 짓이거든.”
“하긴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할아버지를 위해 이번 승부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거든.”
“하지만, 인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이미 너희는 숫자상 볼 때 진 것이나 다름없잖아?”
아울라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래서 더 해야지. 지금 상황에서 다른 도움이 없다면 절대 너희를 이길 수 없으니까.”
“그래? 그럼 인정을 둘 필요가 없겠군. 줄리앙과 함께 너를 동시에 훅 보내주지.”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이렇게 협박하면 내가 오냐 하며 머리를 숙일 것 같았어? 증거가 없는 이상 넌 날 어쩌지를 못해. 할아버지는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시거든.”
“후후. 미안하지만, 네가 이번 매수사건에 관여된 증거는 있거든. 네가 불쌍해 보여서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무슨 소리야! 증거가 없다며!”
“그냥 조크야. 실은 확실한 증거가 있어.”
그의 눈빛에는 진실함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증거가 확실히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범석의 품 안에 있는 전자수첩이 열심히 녹음기능을 돌리고 있었다.
“저, 정말? 무슨 증거?”
“뭐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 자료와 함께 이번 게임을 조기 종결하라는 통보가 곧 갈 테니까 말이야. 그럼 수고해라.”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아울라가 손목을 부여잡았다. 미심쩍기는 하지만,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모험을 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증거를 확인할 방법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 내게 넘기고 조용히 한다고 약속한다면, 1억 크랑을 줄게.”
“1억 크랑? 그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알아. 하지만, 그 증거자료보다는 비싸지는 않아. 어때 관심 없어?”
물론 관심이야 아주 많았다. 1억 크랑은 와이드리거급 실력을 지닌 유망주 하나를 구매하고도 남음이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앙금을 풀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당연히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돈을 더 원하는 거야! 좋아 원하는 금액을 말해봐. 다 줄 테니까.”
“100억 크랑을 준다고 해도 싫다.”
몸을 파르르 떤 아울라가 원독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왜!”
“너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이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적이 돼!”
범석이 피식 비웃음을 흘려댔다. 그녀와는 LHN본사 빌딩침입 사건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정상 이 얘기를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이라? 하긴 처음이겠지. 하지만, 레인보우그룹 사태를 떠올려봐. 당시 너무 재밌는 일을 당해서 나는 아직도 뒷골이 땡기고 있거든.”
그때의 일을 떠올린 아울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그녀는 줄리앙의 요청에 따라 범석의 지인이 경영하는 레인보우그룹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그런데 그 일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줄기를 조르고 있었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후후. 일정 부분만 간추려져 있어서 네가 몰라보는 모양인데. 심판을 매수한 금융자료는 하이에나그룹의 경영진들만 알고 있는 비밀장부에서 뽑아온 거다. 이런 고급정보도 알아내는데, 허술하게 처리된 그때의 일도 모를까 봐? 하여간 너는 죽었다고 복창해.”
아울라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이에나그룹의 비밀장부는 자신이 그토록 알고자 했지만, 아직도 손에 거머쥐지 못한 고급정보였다. 이런 장부를 입수할 능력이 있는 자가 레인보우사태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당시 채권은행들을 압박을 위해 대놓고 자신의 수족을 활용했었다.
============================ 작품 후기 ============================
1. 조카들과 PK를 떠서 지갑을 수탈 당했습니다.
2. 친척들의 장가 강요 크리에 맞아서 하루간 스턴 상태입니다.
3. 낮술 페널티로, 반 나절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위 세 줄이 제 오늘 하루의 일과입니다. 아마도 독자분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을 듯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설 되시고요. 전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