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32
234화
“아. 글쎄요. 저도 그 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범석이 지그시 눈을 추어올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제가 헤르세를 봐도 괜찮겠습니까?”
홉스가 경망스러울 정도로 양손을 흔들었다. 주인 없는 엘프에게 그를 보였다가는 뒷감당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까 분장하고 오라고 한 이유도, 범석을 팀이 소유한 엘프검투사의 눈에 띄게 하기 싫어서였다.
“그건 안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직접 보고 내용을 살피지 않는다면, 확신이 서지를 않아서 그럽니다. 선글라스와 함께 헬멧, 슈트를 착용하면 그녀도 몰라볼 테니,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 그것참 곤란한 얘기군요. 이걸 어쩐다…….”
곤란해하지만 거절을 하지 못하는 홉스의 모습을 본 범석이 좀 더 과감히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만약 헤르세가 저를 알아본다면 무조건 1억 9,000만 크랑에 구매해 가기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홉스가 넌지시 그를 쳐다봤다. 아무리 성장성이 좋다지만, 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다가 후보에도 포함되지 않은 검투사를 그 정도 가격에 판매한다면 팀으로서는 하등 나쁠 것이 없었다.
“정, 정말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 그런데 범석님께서 슈트를 착용하고 만나면 그 아이가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영입 여부를 살피기 위해 대련을 한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곧 훈련용 슈트 하나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홉스가 문밖을 나서더니, 대략 10분 후쯤에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은색의 슈트가 들려 있었는데, 엠블럼과 제품상표를 제외하고는 갓즈나이츠의 훈련용 슈트와 아주 흡사해 보였다.
이에 범석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슈트를 갈아입고는 그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범석이 도착한 곳은 실내 훈련장이었다. 사방이 녹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군데군데 검 등의 무구가 스친 흠집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걸음걸이마다 살짝 파이는 지면이 신기한 듯 땅을 주시하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헤르세는 언제 옵니까?”
“글쎄요. 부르러 갔으니 곧 올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범석이 허리에 패용한 카타나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검과 약간 크기가 달라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잠시 후, 훈련장 문이 열리며 한 사무원과 함께 그린색 머리칼의 엘프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범석은 사진으로 이피스의 얼굴을 봤기에 동생인 헤르세임을 대번 알아챌 수 있었다.
‘역시 쌍둥이라 완전히 판박인데. 아주 예뻐.’
그녀의 키는 엘프의 키의 중간치쯤 되는 175가량 되었다. S라인의 몸매는 아주 관능적이었는데, 특히나 가슴은 터져나갈 듯이 풍만했다. 눈은 우수에 젖은 듯 아주 그윽했고, 콧날은 제법 날카롭고 아주 높았다. 갸름한 턱선 위에 자리 잡은 작고 붉은 입술은 화장하지 않았음에도 윤기가 절로 흘러나왔으며, 긴 목선부터 쇄골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너무도 탐스러워 범석의 본능을 여지없이 건들고 있었다.
‘좋아. 그럼 이제 정보확인만 남았군.’
외모가 마음에 든 그가 바로 정보창을 열었다. 1억 9,000만 크랑짜리 아이를 얼굴만 보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이 돈이면 시장에서 제법 얼굴이 반반한 엘프를 근 200여 명 가까이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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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헤르세.
구분 : 엘프(9년).
소속 : 후안 아이언즈 GC.
명성 : 4121.
악명 : 891.
H유무 : 무.
스테미나 : 8800/8800.
사회성 : 84, 근력 : 87, 체력 : 88.
민첩 : 88, 균형감각 : 94, 지능 : 81.
정신력 : 88. 판단력 : 91, 재주 : 71.
운 : 74.
현재기량/잠재능력 : 84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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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쌍둥이여신의 영적교감.
특이사항 : 작년 쌍둥이 언니인 이피스가 이적한 후, 개인 성적에 급하락 했음. 근래에 전력 외로 판정되어 2군으로 가 있음. 검을 주로 다루며, 중견과 선봉의 소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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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좋다. 이거 에르피나 살핀 내용보다 높은데.’
헤르세의 신체능력은 평균적으로 80대 후반에 이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약간 낮지만, 어린 나이에 비해 정신적 측면이 아주 높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주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943의 성장능력은 마틸다를 넘어 근 제르미아의 수치에 이르고 있었다. 에르피나의 평가보다 좀 높은 편이라, 범석은 왠지 좀 이득을 본 느낌이 들었다.
‘으음. 쌍둥이 여신의 영적 교감이라? 근래에 신체능력이 떨어진 이유가 바로 이거로군.’
그녀의 특성은 한 마디로 대단했다. 쌍둥이 자매가 시선이 닿는 장소에 있을 때 모든 스텟의 +10되는 옵션으로 보아, 가히 레어급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그녀의 신체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사료되었다. 이피스의 이적으로 더는 특성이 발동되지 않았으니, 모든 스텟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는 헤르세의 슬럼프를 모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신체능력만이 아닌, 기술적인 면에도 난항을 겪고 있었다.
정보창을 닫은 범석이 다가오는 헤르세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 헤르세. 만나서 반갑다.”
손을 맞잡은 그녀가 낯선 이의 반김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슈트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어, 전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홉스가 이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직은 범석의 정체가 밝혀져서는 안 됐다.
“헤르세. 그건 몰라도 된다. 다만, 반가운 손님 정도로만 알면 된다.”
“아……. 예. 알겠어요.”
헤르세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지었지만, 분위기상 대충 상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팀에서 자신을 팔지도 모른다고 알려왔기에, 아마도 타팀 트레이드 관계자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홉스가 범석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자. 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몸 상태는 나빠 보이지는 않는군요. 저 정도 체형이라면 성장성은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홉스가 밝게 미소 지었다. 어떻게 단박에 헤르세의 가치를 살펴봤는지 모르겠지만, 호평으로 보아 일단 트레이드 성공을 위한 1단계 과정은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만한 유망주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슬럼프를 겪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으음. 몰래 부상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네. 저희도 다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부상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범석이 턱을 괸 채 헤르세의 주변을 몇 바퀴 돌며 살펴본 후, 홉스를 쳐다봤다.
“한 번 대련을 해보고 싶으신데 괜찮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홉스가 헤르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그가 슈트를 착용한 연유를 둘러대기 위해서는 대련을 해야 했다. 그저 만남만을 위해 슈트를 착용했다고 한다면,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헤르세. 이분이 너와 대련하고 싶어하신다. 지금 당장 훈련용 슈트를 착용하고 오너라.”
“네. 알았어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헤르세가 아무 주저함 없이 근처 탈의실로 갔다. 자신이야 이적을 가도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굳이 홉스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대련을 거절하여 이번 트레이드가 취소된다면, 그가 앙심을 품고 자신의 은퇴시기를 뒤로 미룰 수가 있었다. 간혹 검투사 중에는 코칭스텝이나 사무요원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훗날에 이런 말년을 피하려면 평소에 말을 잘 듣는 편이 좋았다.
잠시 후. 금색의 슈트로 갈아입고 돌아온 헤르세가 범석의 앞에 섰다.
“네. 준비됐어요. 대련은 언제 하실 거죠.”
그가 카타나를 뽑아들며 말했다.
“지금 해야지. 너나 나나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차분히 그를 쳐다본 헤르세가 허리에 찬 롱소드를 뽑아 양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이에 홉스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일반인인 자신이 프로검투사의 대련에 휘말렸다가는 잘게 다진 고깃덩이로 변모할 수 있었다. 만수무강을 위해 일단 자리를 피하는 편이 좋았다.
“아무래도 다 된 듯싶은데 이제 오시지요.”
“그럼 그럴까? 처음에는 살살 갈 테니, 너무 부담가지지 마라.”
하며 범석이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워낙 빠른 대시라 그녀는 당혹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간신히 양팔을 뒤틀어 날아오는 검끝을 튕겨내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반동으로 튕겨져나간 범석의 카타나가 작은 회전과 함께 헤르세의 허리 쪽을 향해 번뜩이는 검날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다급함에 점프하며 회피했지만, 검끝은 살아 움직이는 듯 가슴 쪽을 노리며 급격하게 다가왔다.
창!
청명한 소리와 또다시 튕겨져난 카타나. 공격을 멈춘 범석이 긴 호흡으로 자세를 가다듬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헤르세를 바라봤다. 살펴본 결과 검술 능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이다. 기본기도 이만하면 썩 쓸만했고 상대의 공격에 대처하는 자세도 아주 좋았다.
‘으음.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기본기인데 왜 검술적 측면에서 기량저조를 보이는 거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최근 그녀가 나선 경우를 보면 어이없는 실수로 행동불능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실수의 원인은 대게 기본기 부족임을 봤을 때, 지금의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헤르세는 그가 보유한 그 어느 엘프검투사들보다 뛰어난 기본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범석이 자신의 검을 상단에 세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몰아칠 생각이었다. 헤르세의 정확한 검술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바닥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간다. 네가 이길리는 없으니 어떻게든 버티는 데 집중해라.”
그 말에 헤르세는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놀랐다. 방금 이어진 두 합도 어렵사리 막아냈는데, 더 높은 수준으로 공격한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 자신은 후보에도 끼지 못할 만큼 추락을 했지만, 한 때는 팀 내에서 주전까지 올라선 전적이 있었다. 이렇듯 여유를 부려가며 몰아세울 자는 세상에 그리 흔치 않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색 되어갔다. 상대의 정체가 대략 짐작 갔기 때문이다. 뛰어난 검술 솜씨에, 남자 개조인간. 여기에 직접 영입할 검투사를 찾아다니는 행동과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며 정체를 숨기는 저 모습을 대입해봤을 때 떠올릴만한 대상은 단 하나였다.
‘서, 설마……. 그분?’
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TV에서 트레이드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 있었는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영입할 엘프가 자신을 알아볼 경우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기를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상대 팀을 배려하기 위해 조건 없는 영입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연히 헤르세로서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범석을 아는 척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가 취할 수 행동은 어떻게든 자신의 실력을 뽐내, 자신을 극구 영입하고 싶어하게 하는 일이었다.
헤르세가 기합을 불어넣기 위해 강한 일갈을 터트렸다.
“오세욧!”
“후후. 헤르세. 힘이 넘치네. 좋다. 그럼 간다.”
그 말과 동시에 범석의 검 끝이 헤르세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워낙 강렬한 기세이기에 그녀는 당혹하며 몸을 뒤틀어 피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허공의 스친 카나타는 교묘한 궤적을 그리고 목 쪽으로 궤적을 틀고 있었다.
창. 끼이이잉.
청명한 금속음이 퍼져 나간 후 두 개의 검이 맞닿은 채로 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세는 헤르세. 범석의 카타나는 점차 뒤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특성을 발동시킨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는 뒤로 물러나는 선에서 힘겨루기를 끝마쳤다. 이번 대련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헤르세의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괜히 특성을 사용해 승부를 일찌감치 결정지을 이유가 없었다.
범석은 계속 검을 내지르며 헤르세를 압박해 들어갔다.
‘검세도 제법 괜찮네. 이런 아이가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녀는 기본기뿐만 아니라 검세를 구성하는 면도 출중했다. 간결하고 빠른 동작으로 사위를 골고루 공략해 들어오는 모습이나, 적당히 강약을 조절하는 센스가 아주 돋보였던 것이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센트럴리거급 검투사로 평가해도 그다지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몇 합을 교환했을 무렵, 헤르세의 왼쪽 어깨가 크게 열리는 황당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당혹스러운 실수라 범석은 지금까지 싸워온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이게 뭐야? 어째서 이런 엉뚱한 실수를 하는 거지?’
그러나 정작 이 약점을 눈치챈 범석은 감히 공략해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승리를 벌써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 이유가 더욱 컸다. 수많은 세월 동안 전투를 경험한 본능은, 절대 접근하지 말라는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헤르세가 급격히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내리 저었다.
“아. 죄송해요. 이번 건 실수였어요.”
카타나의 끝을 내린 범석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수? 정말 실수야?”
“네. 실수에요. 이번에는 제대로 할 테니, 다시 한 번 봐주세요. 제발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자 그럼 다시 들어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석이 가로 베기에 들었다. 아주 가벼운 동작으로 헤르세를 쓰러뜨릴 의도가 아닌 거리를 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강한 상대를 팔이 닿을 만한 근접에 두다가는 자칫 붙들리게 된다면 큰 곤욕을 치를 수가 있었다.
이를 헤르세도 잘 아는지 가볍게 몸을 피하고는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그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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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