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33
235화
창. 차창.
서로의 검이 공중에서 충돌을 벌이며 강한 불꽃의 향연을 연출했다. 연달아 부딪히는 공방에 헤르세는 거친 호흡을 내 품을 정도로 지쳐갔지만, 범석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차분하게 결투를 이어나갔다. 비록 신체능력은 헤르세가 우세하기는 하나, 그는 쓸데없는 동작을 줄이며 체력을 안배하는 노련함이 있었다.
‘역시 대단해. 과연 그 아멜리에와 접전을 벌인 실력자다워.’
그녀는 범석을 경외심에 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의 손에서는 여유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검세 만이 뻗어나오는데, 정작 막는 자신은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만약 범석이 전력을 다해 몰아붙인다면 과연 자신이 무사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인을 모시는 환희를 경험해야 했다.
“햐앗!”
뾰족한 외침과 함께 헤르세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과감한 공세로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참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검은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범석을 향해 날아들었다.
창. 차창. 창.
그녀의 저돌적인 돌격에도 범석은 전혀 당황함이 없이 적절히 대처해나갔다. 섣부른 공격에 곤경에 빠질 정도로 그는 서투르지 않았다.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길을 열어주며 그녀를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후후. 한 번 공세는 어떤 식으로 이끌어가는지 볼까?’
사방으로 뻗어오는 검끝을 회피한 범석이 진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공격 일변도를 펼침에도 헤르세는 자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본연의 검술이 완성되었다는 뜻. 영입을 생각하고 있던 그로서는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갓즈나이츠에 들어와 활약하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때 해괴망측한 공격이 이어졌다. 상체와 무릎을 급격하게 굽힌 헤르세가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던 것이다. 물론 성공만 한다면 자신은 이동을 못 하는 지경에 빠지게 되지만, 그건 맞았을 때의 얘기였다. 저리 허리와 관절이 구부정한 상태에서 내지르는 검격에 힘과 속도가 제대로 붙을 리가 없었다.
범석은 이런 못된 버릇은 따끔하게 혼쭐을 내어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칼자루를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제자리 뛰기로 공격을 회피한 후 그녀의 머리를 향해 검을 힘껏 내리쳤다.
휙. 까깡. 쿵.
강력한 일격을 간신히 검을 되돌려 막은 헤르세가 그 충격으로 바닥을 굴렀다. 이제 뒤쫓아 가서 가볍게 검을 찔러넣기만 한다면 범석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경직된 자세로 멈춰선 채 먼 허공을 향해 가늘게 떨리는 시선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검을 내리치는 순간에 또다시 커다란 위화감이 몸을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이거다! 내가 이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헤르세의 검술은 반쪽짜리 합격술이다.’
헤르세의 공격이 허무하리만큼 황당했던 이유는 머리 위로 아주 큰 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검투사라면 이런 검격에 당할 수는 없을 정도로 아주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비어 있는 그 공간을 통해 창과 같은 긴 무구를 뻗어왔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신체 일부 하나를 내어줘야 하는 큰 위기에 빠졌을 터였다. 아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형성된 타이밍이라 그로서도 마땅히 회피할 공간이 없었었다. 정말 이것이 합격술의 일부였다면 그녀와 언니인 이피스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검투사였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범석이 다시 일어서서 검을 겨누고 있는 헤르세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은 또 뭐지?”
그녀가 당혹한 표정을 안면실드 사이로 드러내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시, 실수에요.”
“넌. 실수를 연거푸 두 번씩이나 하냐?”
“제, 제가 컨디션이 좋지 못했나 봐요. 제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제대로 잘할게요.”
가히 볼 만 할 정도로 울상이 된 헤르세의 어깨를 툭툭 내리친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카타나를 검집에 꽂았다. 직접 펼친 그녀도 알지 못하는 정도라면 거의 본능에 가까운 합격술이거나, 죽어도 고치지 못할 버릇이라는 뜻. 이제 더는 결투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믿기지 않지만, 전자라면 반드시 영입해야 할 검투사였고 후자라면 결코 팀 내에 들이지 말아야 할 골칫덩어리였다.
“이제 됐다. 대련은 이것으로 끝낸다.”
“그, 그럼 전 영입 대상이 아니라는 건가요?”
전자수첩을 꺼내 언니인 이피스의 정보를 살피던 범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연하게도 그녀의 주 병기가 창이었던 것이다.
“아니. 일단 몇 가지 더 알아보고 결정을 내릴 거다.”
“그럼 저를 영입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잠시만 조용히 있어 줄래. 지금 너에 대해 살펴볼 자료가 많아서 말이야.”
아직 영입거절 상태가 아님을 안 헤르세가 기쁨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꿈의 검투팀인 갓즈나이츠에 갈지도 모른다니,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었다.
“네, 네. 알겠어요. 잘 부탁해요.”
희미하게 미소 지은 범석이 이번에는 그녀의 컨디션 난조가 있기 전 경기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수많은 리그전 중 두 자매 중 하나만이 참가한 경기를 찾아서 나머지와 비교해 보면 대충 이 정체불명의 합격술의 유무를 대충 확인할 수 있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개의 메뉴 위에 각기 경기성적을 쭉 배열하고는 합산해 살펴봤다.
‘이거 너무 극명할 정도로 차이를 보이는군. 잘하면 그 무시무시한 합격술이 존재할 수도 있겠는데.’
자료를 살펴본 결과 헤르세와 이피스중 하나만 출전했을 경우는 I0~C3 정도의 성적을 보이지만, 동시에 출전했을 때는 둘 모두가 C1~C0급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완전히 극과 극을 이루는 결과에 범석은 이 말도 안 되는 합격술의 존재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매가 함께 출전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기량의 차이를 보이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범석이 전자수첩을 닫고는 헤르세를 쳐다봤다.
“헤르세. 언니인 이피스와는 언제부터 검술을 익혔지?”
“태어나자마자 얼마 후요. 팀에서 일찌감치 저희를 구매하고, 코치진을 보내 훈련을 시켰거든요.”
그럼 8년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검술과 창술을 익혔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이 합격술은 쌍둥이의 교감과 긴 세월 동안 공유한 훈련시간이 서로 결합하며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 같았다. 헤르세가 자신이 본능적으로 합격술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일 터였다.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자신의 검술이 합격술의 일부임을 알 리가 없었다.
대충 상황을 정리한 범석이 홉스에게로 걸어갔다. 자세한 내용은 그녀들인 참가한 경기 영상을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거래의 물꼬를 터놓을 필요가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홉스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헤르세와 대련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자주 범하더군요. 아마도 이 때문에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진 평가에 그가 씁쓸한 얼굴빛을 내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접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 변명해볼 건덕지가 없었다.
“아 네. 이거 죄송합니다. 원래 저런 아이가 아닌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성장성이 좋은 아이이니, 처음부터 새롭게 검술을 가르칠 생각으로 키워나간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그랬기만 하다면 저희야 바랄 것이 없겠죠.”
하지만, 후안 아이언즈 팀에게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 줄 인내심이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엘프학교에서 거의 무료에 가깝게 구매해온 사례라고 하지만, 4억 크랑에 육박했던 몸값이 지금은 1억 9,000만 크랑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이제 리그전에도 나가지 못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몸값이 떨어질 터. 모험을 걸기보다는 빨리 팔아치워 현금화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되었다.
이런 낌새를 대략 눈치챈 범석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홉스님. 저희와 거래할 마음이 있으십니까?”
홉스가 주저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때라면 애를 태우며 몸값을 올려보겠지만, 지금 범석 말고는 헤르세를 데려갈 팀이 없었다.
“몸값만 신경 써 주신다면 충분히 응할 마음은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은 오늘 협상은 여기서 끝을 내기로 하고 저희 팀 사무실에서 2차 협상을 진행하기로 하죠. 어떠십니까?”
바라는 내용이었기 그는 특별히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범석이 계속 자신의 팀 훈련캠프에 알짱거려봐야 득 될 것이 없었다.
“네. 그러도록 하죠. 그럼 제가 언제 찾아뵈러 가면 되겠습니까?”
“으음. 일주일 후쯤이 좋겠습니다.”
“일주일씩이나요?”
“네. 헤르세에 대해 좀 더 살펴봐야 할 내용이 있어서 그럽니다. 워낙 거금이 달린 일이라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군요.”
하긴 2억 크랑 가까운 자금이 왔다갔다하는 대규모 거래를 즉흥적으로 임할 수는 없었다. 자신 같아도 검토에 검토를 더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을 터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홉스가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제가 찾아가기로 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뵙기로 하겠습니다.”
이후 범석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급히 후안 아이언즈 훈련캠프를 떠나갔다. 이번 거래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모자라는 자금도 마련해야 했고, 경기 영상을 살피며 합격술의 유무도 확인해야 했다. 여기에 이피스의 이적도 진행해야 했으니, 다음 이적협상 시기인 일주일 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야 했다.
“주인님. 다녀오셨어요?”
후안 시민체육공원에 범석이 도착하자, 에르피나가 차에서 나와 그를 반겼다. 그는 인사할 틈도 없이 에르피나를 차에 태우고 그 옆에 앉았다.
“에르피나. 출발하자.”
“훈련캠프로 돌아갈까요?”
잠시 뜸을 들인 범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유자금이 부족해 돈을 융자하러 가야 했지만, 이피스의 영입결과를 모르니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아니다. 리마시티로 가자.”
“네. 그럼 출발할게요.”
에르피나가 바로 플라잉 카의 이동 경로를 설정했다. 곧이어 범석과 그녀를 태운 플라잉카가 주차장 상공으로 떠오르더니 멀리 북서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차 창밖으로 구름이 빠르게 스치는 정경을 힐끗 바라본 범석이 전자수첩을 꺼내 통신을 연결했다. 그리고 에스더라고 기재된 전화번호를 클릭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피스의 이적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몇 번의 통신음이 흐른 후 에스더의 얼굴이 나타났다.
“에스더. 이피스의 이적은 잘 되어가?”
화면 속의 그녀가 앞에 앉아 있는 30대 후반의 사내에게 양해를 구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응접실을 빠져나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쪽은 이피스에 대한 기대감을 아직 접지 않은 상태인 듯 보여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의향인 것 같아요.
범석이 난감한 듯 미간을 그림자를 드리웠다. 헤르세의 능력을 확실히 끌어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이피스가 필요했다. 둘 중 하나만 영입한다면 안 하니만 못했다.
“으음 그래?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 아니 왜요?
“헤르세를 보고 왔는데. 지금의 슬럼프가 두 쌍둥이 자매의 이별에서 비롯된 사실을 알아냈어. 그래서 반드시 두 명 모두를 영입해야 해.”
– 그럼 어떻게 하죠? 전혀 팔 의향이 없는 것은 아닌데, 제법 고가를 부르고 있어요.
“얼마나?”
– 3억 7,000만 크랑요.
어이가 없는 듯 범석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피스라면 충분히 그 정도 가치를 하리라 생각되지만, 공시가로 2억 4,000만을 올려놓고, 찾아가자마자 1억 3,000만을 더 덤터기를 씌우다니 좀 치사해 보였다.
“이거 너무하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완전히 와이드리거급 검투사에 불과한데 말이야.”
– 그러게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테이블 접고, 일주일 후에 우리 팀 사무실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해. 그리고 내가 2억 크랑 이상을 제시할 생각이면 오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해줘.”
– 아니 괜찮으시겠어요? 이피스를 영입하지 않으면 헤르세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면서요.
“상관없어. 오늘 헤르세를 봐서 아는데, 이피스의 슬럼프는 한두 해로는 쉽게 고쳐질 수 없어. 아니 영원히 이어질 수도 있고.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똥값에 구매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가 무리할 필요는 없지.”
– 그래요? 어째서죠?
“걔들은 자신들도 인지 못 하는 본능에 가까운 버릇이 있어. 함께 플레이할 때는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떨어져 있으면 아주 심각한 단점으로 다가와. 이 사실만 다른 팀에서 알게 된다면 이피스는 에어리어리그급 검투사들에게도 번번이 당한다. 잠시 버티다가 버릇이 튀어나올 때, 타격하면 바로 행동불능 상태에 빠지니까.”
곰곰이 그의 말을 되씹어본 에스더가 입을 열었다.
– 그럼 그 사실을 토대로 조금만 더 영입협상을 벌이면 안 될까요? 잘만 한다면 그쪽을 설득할 수도 있을 듯 보이는데요.
“그건 안 돼. 그 팀이 사실을 알고 헤르세를 노리면 골치 아파져.”
–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로 자매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게요.
그녀를 보며 범석이 잠시 고민했다. 이번 이적 건은 에스더에게 있어 처음 겪는 단독협상이었다. 경험도 쌓을 겸, 한 번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일단 헤르세만 영입한다면 이피스는 언젠가 자신의 손에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
“좋아. 그럼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그 팀 2군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검투사와 이피스 간의 대련을 주선시켜 봐.”
– 대련이요?
“그래. 너의 간단한 조언 하나로 이피스가 처참하게 깨지는 꼴을 보게 되면 트레이드 담당자도 다시 생각해 볼 테니까.”
– 나쁜 생각은 아니신데요. 제가 무슨 조언을 해야 하나요?
“별말 하지 말고 방어만 집중적으로 하다가 이피스가 무리한 동작을 펼치면 바로 타격해 쓰러뜨리라고 해.”
– 네. 알겠어요. 이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 그럼 수고하고 있다가 훈련캠프에서 보자.”
– 네. 들어가세요.
통신을 종료한 범석이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헤르세와 이피스가 함께 활약한 경기 영상을 찾아 화면을 띄웠다. 합격술의 존재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 참 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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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가 춥네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요.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그럼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