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4
24화
– 자. 모두들 망설이지 말고 입찰 해주십시오. 자 없습니까?
여전히 경매참가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경매진행자가 손을 휘저으며 다음 플라잉 카를 내려 보내라고 말했다. 그리고 ARON101이 하늘로 치솟으며 장내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정장을 차림의 한 젊은 사내가 경매대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더니, 나중에는 멀리 사라져가던 ARON101을 향해 마구 손짓하며 불러 내렸다.
– 음음. ARON101에 대한 입찰을 다시 하겠습니다.
그 말에 참가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웅성 떠들어댔다. 이미 유찰된 물건을 바로 당일 경매에 재입찰하는 경우가 지금껏 한 번도 없었고, 가령 그러하더라도 과연 팔리지가 의문이었다.
– 자 다들 조용해 주시고요. 이번 입찰은 소유주의 요청에 따라 지금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입찰을 하겠습니다. 바로 구매가를 여러분이 써주시는 겁니다. 그럼 소유주께서 그 가격을 보고 판매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입찰자에게 불리한 제의였다. 소유주가 언제든 퇴짜를 놓을 권리를 가지게 되므로 구입을 원하는 입찰자는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불러야했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찰자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를 볼 때 지금의 제스처는 제시금액이 웬만하다면 극구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해.’
어차피 제시하는 일에는 돈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장난 반 혹시나 하는 마음 반으로 전자수첩에 숫자를 기입해 나갔다. 그리고 입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진행자의 고성 소리가 들려왔다.
– 오범석씨! 장난하지 마십시오. 고작 200만 크랑이라니요!
그러나 그 장난이, 장난이 아니게 됐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다른 입찰자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들고 있던 전자수첩을 소리가 날정도로 접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나름 사용처가 있을 일반 중고 플라잉 버스를 100만 크랑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부담이 되어 계속 유찰이 되는데, 하등 쓸모도 없는 최고급 플라잉버스를 구입하기 위해 그 두 배의 가격을 지를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었다.
이 모습에 진행자가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으며, 소유자인 그레이트하이에나즈팀의 관계자를 바라봤다. 그들도 범석이 제시한 금액에 당혹스러웠는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 어딘가로 전화를 한참 하던 소유주가 진행자를 향해 어렵사리 고개를 주억였다.
– 자. 그럼 결과를 발표해드리겠습니다. 이번 ARON101의 입찰 건은 오 범석씨로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범석씨 나와 주셔서 대금을 지불하시고 물건을 받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거의 포기 상태에 있던 범석은 지금의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 자그마치 최저 입찰가의 1/3가격뿐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사치품이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의 여인들을 태우고 푸르른 대기권을 내려다보며 여행을 할 생각에 사로잡히며 경매대 쪽으로 걸어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범석씨 되십니까?”
그의 앞에 선 자는 갈색 머리톤의 정장을 착용한 사내였다. 보아하니 아까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던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의 관계자 같았다. 환한 미소를 지은 범석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네. 그렇습니다.”
“바, 반갑습니다. 그럼 거래를 시작하시죠. 200만 크랑을 전송해주시면 됩니다.”
사내는 소개조차 하지 않고 바로 거래를 신청하고 있었다. 그 만큼 현재의 상황이 당혹스러운 탓이다. 이 ARON101은 3년 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GA컵에 참가하는 하이에나그룹 하위리그 소속의 검투사 팀원의 컨디션을 대비해, 자신이 팀이 대표로 구입한 장비였다. 물론 그룹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다지만 클럽에서도 구입에 막대한 출혈을 감수했었다. 그런데 이런 고가의 장비를 200만 크랑이라는 똥값에 팔게 됐으니, 가슴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범석은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바로 송금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그의 전자수첩 화면에 ARON101에 대한 소유권 이전 서류가 날라 왔다.
“이제 된 겁니까?”
“아직 아닙니다. ARON101에 입력되어 있는 소유자 데이터를 지우고 범석님께서 새로 기입하셔야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가시죠.”
한쪽 빈터로 걸어간 정장의 사내가 ARON101을 호출해 근처 뜰에 내리게 했다. 그리고 측면 하단에 달린 자동문이 열리자 올라서더니 범석을 불렀다.
“따라 들어오시죠.”
아무 말 없이 따라 들어간 범석이 널찍한 내부 공간과 세련된 내부디자인에 크게 감탄을 했다. 침대를 연상케 하는 큼지막한 좌석하며 각각에 비치된 소형 컴퓨터와 3D 영상기. 그리고 하나하나 장인의 손길이 닿은 듯 보이는 실내장식등. 무엇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었다.
“햐. 좋군요. 사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정장의 사내가 큰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아론!”
그러자 실내 중앙에 인간 남성모습을 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매부리코에 쫙 찢어진 두 눈. 등이 약간 구부정한 것까지 참으로 간사하게 생기기 이를 데가 없었다.
–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아론. 이제부터 너에 대한 소유권 이전에 대한 시스템 작업을 할 것이다. 준비하도록.”
아론이 바로 비명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 주인님. 말도 안 됩니다. 제게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이 얘기해 주십시오.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하라면 빨리 해! 지금 새로운 주인이 되실 분이 기다리신다. 시간이 없다.”
힐끔 범석을 쳐다본 키드가 쪼르르 정장의 사내에게 달려와 귀에다 속삭이듯 말했다.
– 설마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제 새로운 주인은 아니겠죠?
“맞다.”
순간 날아갈 듯한 범석의 기분이 바로 휴지통에 처박혀버렸다. 귓속말처럼 보이지만, 아론의 질문은 실내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말이라 그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바로 해체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들어간 200만 크랑이 아까워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 주인님. 제발 절 저딴 작자에게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사실 제가 소속팀 엘프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습니까? 그러니 팀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제발…….
“이미 끝난 얘기다.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상태라 절대 되돌릴 수 없다.”
– 그, 그게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이미 판매대금을 지불 받았고, 소유권 서류도 양도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미 저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만가지 인상을 쓴 아론이 갑자기 홀로그램 가래침을 만들더니 정장의 사내 발 앞에 내뱉었다.
– ?. 그럼 진즉에 말해야 할 것 아니야! 하마타면 주인님께 실례를 범할 뻔했잖아. 하여간 눈치는 없어서가지고……. 쯧쯧. 그러니 팀이 그 모양 그 꼴이 났지.
“뭐야!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노기에 찬 정장의 사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론이 범석에게서 달려가 손을 박박 비벼댔다.
– 아이고. 주인님! 주인님 같은 훌륭한 분을 뵙기를 정말 학수고대했습니다. 앞으로 성심성의껏 모실 테니, 어여삐 봐주십시오.
키드의 행동변화에 범석이 당혹스러웠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거 화를 내야 될지 앞으로 잘해보자고 말해야할 지 분간이 안 갔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잔말 말고 소유권 이전 시스템작업이나 시작해.”
– 어이구. 저를 일반 핫바지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미 벌써 끝내놓은 상태이고, 외부에 전자페인트로 칠해진 고양인가 갠가 하는 이상한 그림까지도 완벽히 지워놨습니다.
그 말과 함께 천장에서 기계 팔이 내려오더니 전 주인인 정장의 사내의 뒷덜미를 사정없이 움켜잡았다. 그리고 컨베이 벨트를 따라 출입문 쪽으로 이동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휙 하고 던져버렸다. 창밖을 통해 우당탕탕 흙바닥을 구르는 사내를 보던 범석이 아론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너 설마 나중에 나한테도 저러는 건 아니겠지?”
–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제가 어떻게 주인님께 저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그저 주인님이 계시는 이 실내 공간 안이 저 더러운 자식의 호흡으로 오염될까봐 잠시 손을 본 것뿐입니다. 하하하.
아론의 간사한 아부에 범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같은 꼴이 날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추궁할 수는 없는 법, 그가 길게 호흡을 하며 노기를 가라앉혔다.
“조, 좋아. 일단 믿어주지. 그런데 네 모습 좀 바꾸면 안 되겠냐? 영 보기에 거슬린다.”
– 네 원하시면 바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아론의 홀로그램 영상이 뭉치고 흩어지기 반복하며 모습을 바꿔갔다. 헌앙한 젊은 사내, 지팡이를 짚은 나이든 노인. 그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와 잘 빠진 몸매를 한 엘프의 모습 등등. 이중 범석이 선택은 당연히 맨 후자였다.
“좋아. 엘프로 해.”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서비스 샷도 보여드릴까요?
“무슨 서비스 샷?”
– 다 아시면서…….
자신의 모습을 금발의 엘프로 완전히 변모시킨 아론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하의를 슬그머니 벗어 내렸다. 곧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금색의 음모가 모습을 드러내자, 범석이 손을 뻗어 제지시켰다.
“멈춰!”
– 아뇨 왜요? 다들 좋아하시던데요.
물론 범석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론은 홀로그램으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라 공략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가면 자신을 위해 옷을 벗어줄 엘프들이 있는데, 이런데서 정심을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난 필요 없다. 그냥 그 모습을 하고 조신하게 행동하면 만족한다.”
– 네. 알겠어요. 주인님 뜻대로 하겠어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론의 표정과 행동이 몰라볼 정도로 조심해졌다. 지금껏 범석이 지닌 기우 한꺼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정말 지금의 아론이 방금 전까지의 그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에 범석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 명령을 내렸다.
“자. 아론 이제 집으로 가야하니까 준비하도록 해.”
– 네. 그럼 주인님의 집의 위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근처 아무 자리에 앉은 그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리마시티 남부 그린바이오 오피스텔 7224호실이다.”
– 확인했어요. 지금 중앙교통관제센터와 통신을 해 이동루트를 설정 중에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론의 눈이 순간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관제센터와 연결을 해 가장 빠르고 안정한 루트를 확보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업을 마쳤는지 이제 그녀가 된 아론이 몸체를 지면에서 떼고 서서히 상승시키고 있었다.
– 이제 출발할 것에요. 잊으신 일이나 물건이 없는 지 확인해 주세요.
“없……. 멈춰!”
그의 외침에 아론이 다시 몸체를 지면으로 내렸다. 그녀의 홀로그램 영상이 범석의 옆으 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 무슨 일이세요. 주인님.
“조용히 잠시만 기다려봐.”
범석은 두터운 외부창문으로 보이는 두 남녀를 보며 의문에 가득 찬 눈빛을 짓고 있었다. 금발의 젊은 청년과 푸른색 머릿결의 엘프여인인데,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제임스와 에르피나처럼 보였다.
– 주인님.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너 혹시 저기 걸어가는 저 사람들 모습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어?”
범석의 손가락 끝을 바라본 그녀가 고개를 주억였다.
– 네. 저에게는 주차 시 차체 주변의 외부환경정보를 얻기 위한 작은 버드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요. 이를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래? 그럼 저 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 시켜줘.”
– 쉬운 일이에요. 맡겨만 주세요.
곧이어 아론의 천장 전면부에 달린 작은 출입문에서 벌새크기의 작은 버드카메라가 날갯짓을 하며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리고 범석이 가리킨 두 남녀의 주변을 돌며 그 모습을 촬영해 아론에게로 보냈다. 이내 범석이 앉은 좌석에 설치된 개인컴퓨터에서 영상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한 바와 같이 제임스와 에르피나로 그들의 손에는 3개의 편의점 도시락이 담긴 흰 봉투가 들려있었다.
“음. 역시 제임스와 에르피나야. 그런데 아직까지 여기서 뭐하고 있지?”
지금 시간은 정오가 약간 넘은 시각. 아까 에르피나의 경매가 완료가 된 시간이 10시가 조금 넘은 시점이었으니까, 충분히 소유이전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어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아직까지 이 경매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설마 갑작스런 불황기를 맞아. 에르피나의 구입이 망설여졌나?’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됐지만 아까 제임스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전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에르피나가 연인이 친구라며 700만 크랑도 포기했는데, 경제위기를 맞이했다고 구매를 취소할 리가 없었다.
범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금 전까진 에르피나를 포기한 상태였지만, 이리 눈에 밟히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녀를 잃은 일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단 다시 한 번 부딪혀 본다고 해 될 일이 하등 없었다.
그는 아론을 잠시 대기시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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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또 갑니다.
하하하 21편을 쏙 빼먹고 올렸습니다. 21편 다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