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46
248화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북쪽의 VIP룸에 도착한 범석이 투덜거리며 문을 열었다. 뒤를 따라온 렉스터 때문이었다. 아무 서로 짰지만, 아까 기자들 앞에서 떠벌린 그의 언사는 너무 심했다.
“경감님. 조금 전 일은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다. 이쯤은 해줘야 더비전 분위기가 사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빤히 우리 리마시티 스포츠팬들의 과격성을 아시면서 그 정도까지 발언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칸막이 창가로 다가선 렉스터가 난간을 두 손으로 짚은 채, 관중석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방금 기자회견 내용이 홀로그램 전광판 화면으로 여과 없이 방송된 터라, 팬들의 분위기는 자못 거칠다 못해 흉흉했다. 자칫 누군가가 흥분을 못 참고 소동이라도 일으키는 날이면, 관중석 전체가 들끓어 오를 것 같았다.
“뭐. 그렇지만,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리마시티 팬들은 과격해 위험군에 속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큰 사고를 저지른 예는 없어. 기껏해야 전에 그레이트하이에나즈가 강등한 경기에서 벌어진 소요사태인데, 주범은 바로 너였고. 위험분자가 여기 VIP룸에 있으니,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크크크.”
게임 시작 첫날의 일을 떠올린 범석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아. 그때는 그 서퍼터즈회장이라는 놈이 저를 툭 치고 가서 벌어진 일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렇다고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작자는 또 뭔데?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눈 한번 흘기고 마는 단순한 사고로 말이야. 덕분에 사소한 대치사태가 대규모 폭력사태로 번질 뻔했잖아.”
범석이 입을 삐쭉 내밀며 관람석에 앉았다.
“아이. 경감님 모르셔서 그러는데, 놈이 얼마나 짜증 나게 굴었는 줄 아십니까?”
렉스터가 그의 옆에 착석하고는 실실 쪼갰다.
“내가 뭘 몰라? 그때 조서를 꾸민 경관이 설마 나라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직접 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휴~ 됐습니다. 그만하시죠.”
피식 웃은 렉스터가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범석아? 근래에 레인보우그룹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 잘 알지?”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5월 후반에 220크랑 이었던 것이, 자신들이 매집한 시작한 이후로 318크랑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매집을 멈춘 후 약간 떨어졌는데, 근래에 들어와서 천정부지로 치솟더니 어제 종가가 자그마치 513크랑에 이르고 있었다. 어떤 미친 작자가 장난치고 있지 않는다면 흑사회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이 확실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흑사회가 나서고 있는 모양이죠.”
“게다가 글로리아님의 말을 빌려보면 유니크은행은 물론 일부 은행들의 채권도 쏟아지고 있다는데?”
“뭐. 저희 자금을 뽑아 가고 싶은 모양이겠죠.”
여유로운 범석의 답변에 렉스터가 피식 웃었다. 그만큼 그의 심기도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전략에 의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흑사회에게 패하지 않았다. 지금의 일심회는 과거 경제인단체에 휘둘려 전전긍긍하는 힘없는 조직이 아니었다. 바로 나탈리의 LKS방송 때문이다.
‘후후. LKS방송 덕분에 우리의 지갑도 두툼해졌지.’
LKS방송의 원래 총주식은 30만 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대로 상장했다가는 거래량 극히 적어 주가에 상당한 불이익이 생겼다. 이에 무상증자를 통해 6,000만 주로 뻥튀기했고, 주당 100크랑으로 에이번드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그런데 이때 시장에 푼 주식 수는 절반인 3,000만 주가량이었다. 대다수 주관사인 윌킨스투자증권와 다른 기관 등에 넘어갔지만, 어쨌든 일심회 회원들은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경영자인 나탈리는 15억 3,000만 크랑의 수입을 얻었고, 범석과 글로리아, 렉스터는 4억 8,000만 크랑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카렌도 3,000만 크랑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 돈 상당수는 레인보우 주식매입에 들어갔다. 평균 주당 가격 284크랑으로 구매하는 바람에, 대략 전체주식의 9%가량만 매집했을 뿐이지만, 글로리아의 주식 12%와 LHN의 보유주식 20%. 나머지 우호 주식 7%까지 합친다면 총 48%였다. 비록 완벽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50% 이상을 모아야 했지만, 이 정도만 돼도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흑사회가 기관들을 모두 설득하고, 시장의 주식을 쓸어모아도, 48%의 주식을 보유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권은 어떻게 해결할 거냐? 우리들의 대부분 자금이 주식에 들어가 있잖아?”
“뭐. 윌킨스은행에서 빌려 메꾸면 되겠죠.”
“으음. 안 꿔주면?”
“왜 안 꿔주겠어요. 레인보우그룹은 지금도 괜찮은 기업이고, 흑사회가 경영권을 가져가면 더더욱 안정적인 기업이 되니, 꽤 남는 채권 장사가 될 텐데요.”
“하지만 흑사회가 그들을 설득할 수도 있잖아?”
“그럼 레인보우그룹이 가진 레인보우호텔 주식을 팔면 됩니다. 아무리 못해도 5%는 팔 수 있으니, 두 여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LKS방송에서 나오는 수입분으로 메우면 되고요.”
수긍이 간 렉스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레인보우호텔 주식은 레인보우그룹의 주가 폭등 사태에 동승해, 442크랑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지분율이 55%나 되어 여유분 175만주를 시장에 팔 수 있었다. 그럼 총합 7억 7,000만 크랑 정도 자금이 생기니, 당분간은 문제가 없었고, 모자라는 금액은 LKS방송의 수입으로 메우면 되었다.
“후후. 그렇겠어. 이제 레인보우그룹의 안전은 보장됐다고 해도 무방하겠군.”
“네. 맞습니다. 단 일심회 회원들 일부가 흑사회에 붙는 일이 벌어지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요.”
의미심장한 범석의 발언에 렉스터가 넌지시 쳐다봤다.
“하긴 그럼 확실히 얘기가 달라지겠지.”
자리에서 일어선 범석이 창문을 통해 경기장 정경을 바라봤다. 양 팀의 검투사들이 입장하는 것을 보아 곧 시합이 시작될 듯 보였던 것이다.
삐이익!
경기장 안을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와 함께 양 팀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일단 우세는 갓즈나이츠였다. 선봉인 라피네와 오스칼, 이모리가 블루 버드의 방진을 두드리며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델로이 와이드리그에서는 힘에서만큼은 갓즈나이츠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범석이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렉스터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1라운드는 저희가 가져갈 것 같습니다.”
“글쎄. 그게 쉽지만은 않을걸.”
그 말과 동시에 블루 버드팀의 중앙이 뻥 뚫렸다. 너무도 손쉽게 양단된 터라 미심쩍어 보였지만, 갓즈나이츠팀의 검투사들은 일제히 우측에 모인 블루 버드 검투사들에게 달려들며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저런 멍청이들! 보나 마나 유인작전이잖아!”
화가 난 범석이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유리 칸막이가 앞에 가로막혀있어 소리가 경기장 안까지 전달될 리가 만무했던 탓이다. 그리고 설령 이 외침이 VIP룸 밖을 빠져나간다손 치더라도 관중의 함성에 묻히게 되었다.
갓즈나이츠의 공격이 일부에게 집중되는 사이. 나머지 블루버드 검투사들이 작은 추행진을 짜고 빠르게 돌진해갔다. 코끝의 방향을 보니, 목표는 대장인 아겔리아였다. 아무래도 블루버드는 이번 1라운드 작전으로 대장암살카드를 꺼내 들은 듯싶었다.
자팀 암살조가 거의 아겔리아에게 다다를 무렵. 렉스터가 흥에 겨운 듯 두 주먹을 꽉 움켜잡고 소리쳤다.
“좋았어! 가라! 확실히 발라버려!”
하지만 그의 밝은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겔리아의 앞까지 도착해 검을 내뻗는 8번 검투사를 향해 두 개의 창끝이 동시에 날아가 있었던 것이다. 둘 다 아겔리아의 듀얼실드에 모습이 감춰져 있다가 기습적으로 날아간 터라,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곧 8번 검투사는 머리와 가슴을 가격당하고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좋아! 저들이 우리 꾐에 빠졌다. 모두 쓸어버려!”
에르피나의 지휘로 레이메이, 엠마, 이피스, 헤르세가 암살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노련한 에르피나가 상대 팀의 진의를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것이다. 그녀들은 작전에 실패하고 우왕좌왕하는 블루버드팀을 압박하며,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범석이 콧대를 높이 세우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 팀에 에르피나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군요. 아시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전 소속팀인 캡틴 베어즈팀에서 전설로 남을 정도로 출중한 검투사였습니다. 여타 다른 와이드리거급 검투사와 동급으로 생각하시면 안 되죠.”
철저히 허물어져 가는 블루버드 팀을 바라보며 렉스터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쳇. 우리 팀을 이기니 그렇게 좋으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비경기에서 이기면 승리의 기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죠. 하하하.”
“그래 너 잘났다. 흥.”
삐쳤는지 렉스터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범석이 사소한 말장난을 걸며 비위를 맞췄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1라운드는 물론 2, 3라운드까지 갓즈나이츠가 내리 승리를 따가는 바람에, 그의 안색은 더욱 굳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와와! 역시 갓즈나이츠가 최고다! 오늘 참새 통구이 제대로 만들어 줬다!”
“하하하. 하긴 저 짝퉁 검투팀에게 어느 팀이 지겠냐!”
스텐드를 가득 메운 비아냥거림에 어두운 낯빛을 한 렉스터가 자리를 벌떡 일어섰다. 거느리고 있는 팀이 졸전을 펼치다가 결국 패했으니, 기분 좋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오늘 상대는 더비 팀인 갓즈나이츠였다. 전력 차가 워낙 커 패배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지만, 3대 0의 처참한 성적은 감수하기 어려웠다.
렉스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냉랭한 소리로 말했다.
“범석아. 나 지금 간다.”
범석이 그의 뒤를 따라붙으며 아부를 떨었다.
“아이. 참 경기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나중에 제가 유망주 검투사 몇몇 더 소개해 드릴 테니, 이만 화 푸십시오.”
“야! 누가 유망주 검투사 얻자고 이러냐? 됐으니까 그만 따라와라. 나 그냥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련다.”
그의 손길을 뿌리친 렉스터가 홀로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갔다. 승부 욕에 강했던 그로서는 오늘 패배가 그렇게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이내 근처 주차장에 세워놓았던 플라잉 카로 도착한 렉스터가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지금 쌓인 스트레스를 연기에 실어 날려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 모금을 들이키고 내쉬려는 순간, 품 안에 전자수첩에서 요란한 호출음이 들려왔다.
따르릉.
“누구지?”
간이 화면을 바라본 렉스터가 신원불명의 전화번호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교성이 높은 그는 사람과 대면하면 항시 그 번호를 주소록에 입력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스펨전화일 수도 있으니, 이름이 뜨지 않는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었다.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그가 플라잉 카 안에 탑승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렉스터 단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화면에 뜬 인물은 다름 아닌 정장 차림의 한 젊은 사내인데, 루카스도 대충 얼굴을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바로 작년까지 함께 리그에서 경쟁했던 그로우 울프즈팀의 단장인 이작이었다. 교류는 하지 않았지만, 몇몇 행사를 통해 스치듯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가 흑사회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차가운 눈빛을 한 렉스터가 그를 지그시 노려봤다. 지금 일심회와 흑사회는 전쟁 중이었다.
“이런 이작 단장님이 아니십니까?”
– 하하하. 절 기억하고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영광은요. 같은 리그에서 함께 활동했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요.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을 주셨습니까? 저희는 그다지 교류가 없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화면 속의 이작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 하하하. 그래서 이리 연락을 드린 것 아니겠습니까? 렉스터님의 블루 버드팀이 와이드리그로 승격을 축하할 겸 오늘 뵙고 친분이라도 나눠보자고 연락 드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여간 축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사실 오늘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아 집에 들어가 쉬려는 중입니다.”
– 그러지 마시고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야, 좋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담소를 나누다 보면 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렉스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수작을 부리려는 느낌을 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흑사회는 자신이 일심회 멤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였고, 이작의 갑작스러운 연락은 너무도 공교로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즐거운 담소라니요?”
– 별 뜻 아닙니다. 잠시 사교의 장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사실 서로 같은 리그에 있으면서도 너무 소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야 하지요. 하지만 굳이 오늘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 용건 좀 급해서 그럽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플라잉카의 컨트롤박스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 렉스터가 난처한 눈빛을 지었다.
“도대체 용건이 뭐데 이러시는 겁니까?”
– 검투팀 단장끼리 다른 얘기할 것이 있겠습니까? 전 그저 검투사 영입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아. 그럼 트레이드 제의를 하시러 연락 주신 겁니까?”
– 겸사겸사지만, 네 맞습니다.
긴 한숨을 내쉰 렉스터가 어렵사리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런 일이라면 한 번 뵙지요. 자. 그럼 제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 아. 감사합니다. 그럼 리마시티콜로세움 앞에 있는 마스터커피숍으로 오십시오. 전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렉스터가 전자수첩을 닫고는 플라잉 카를 공중에 띄웠다. 이작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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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전 내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