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48
250화
레인보우 호텔의 회장실에는 글로리아가 잔뜩 긴장감이 감도는 눈빛으로 앞에 놓인 서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운명의 시간. 평생을 레인보우그룹을 일구는 일에 힘써온 그녀에게는 오늘만큼 중요한 날도 없었다.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될 대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옆에 보좌하듯 서 있던 제이드부장이 허리를 공손히 숙이며 말했다.
“회장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시계의 눈빛을 바라본 글로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은 9시, 1시간만 지나면 레인보우그룹의 소유권이 결정되는 임시주주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미리 가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요. 이제 가시죠.”
글로리아가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가자 레이드부장이 뒤를 바짝 따랐다. 그는 오늘 임시주총에서 사회를 봐야 하기에, 꼭 참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복도를 걸어 총회의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서 꼴도 보기 인사들을 마주해야 했다. 바로 루카스회장를 비롯한 몇몇의 흑사회 멤버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임시주주총회의 개최를 요청한 자들이니, 회의 내내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여어. 이게 누구십니까? 글로리아회장님이 아니십니까?”
“네. 오랜만이네.”
루카스의 인사에 글로리아가 냉랭한 투로 대답했다. 굳이 적에게 예의를 갖출 이유는 없었다.
루카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군요.”
“그럼 설마 이 상황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시겠죠?”
“후후. 하긴 그렇지만, 너무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차후에 다시 저희 흑사회와 손을 잡고 그룹회장으로 복귀할지 누가 압니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저희는 흑사회와 함께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글로리아를 곁눈질로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번 레인보우그룹의 임시주총을 시작으로 흑사회는 계속 범석을 압박해 들어갈 터였다. 그럼 언젠가는 머리를 숙이며 항복해 올 터, 그때도 글로리아가 이리 자신들에게 뻣뻣이 나올지가 궁금했다.
루카스가 그녀의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아. 그런데 범석군은 오지 않았습니까? 먼저 와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요.”
“안 왔어요.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찾아오지도 않을 거예요.”
루카스가 흐뭇한지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하긴 범석이 지금 여기를 찾아올 정신이 아닐 터였다.
렉스터의 전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루카스는 나탈리를 찾아가 주식 매매를 종용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버티는 것 같았지만, 돈에는 어쩔 수 없는 법. 결국에는 마지못해 모든 주식을 자신들에게 팔았다. 이후 또다시 LHN그룹을 찾아가 회장인 발바르와 담판을 짓고, 아울라가 가진 모든 주식을 구매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에 흑사회가 가진 레인보우그룹의 주식은 총 33%로 여기에 유니크 은행지분 11%까지 총 44%에 이르렀다. 아마 지금쯤 범석은 패배감과 배신감에 휩싸여 몸져누워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오늘같이 중요한 날 참석을 하지 않다니,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겁니까?”
“전혀요. 그저 할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할 뿐이에요. 당신들 덕분에 범석씨가 근래에 제법 바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전 혹 문병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바삐 움직일 정도로 건강하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글쎄요. 당신들에게도 다행이길 빌겠어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글로리아가 먼저 임시주주총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더는 그와 말을 섞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잠시 바라본 루카스가 연이어 들어오는 증권사 인사들을 손수 맞이하며 지분관리에 들어갔다. 이미 승리는 확정적이지만, 흑사회의 지지비중이 높을수록 범석이 느낄 좌절감은 깊었다.
얼마 후 루카스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바로 나탈리와 렉스터였다. 다만 눈에 거슬리는 점은 그들 뒤로 상당한 수의 촬영팀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누구 신가? 렉스턴경감과 나탈리양이 아니신가? 정말 이리 다시 만나서 반갑네.”
“반갑습니다. 오늘 다시 뵙게 되네요.”
렉스터가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나탈리는 동행한 촬영진들을 재촉하며 회의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 모습을 유심히 살핀 루카스가 당혹스러운 얼굴빛을 지었다. 버드카메라를 꺼내고 PD들이 촬영스텝을 배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번 회의를 녹화하려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주주총회 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로서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흑사회라는 거대단체가 작고 힘없는 레인보우그룹을 강합적으로 빼앗는 주주총회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오늘 벌어질 사건이 방송을 타고 외부로 흘러나가 봐야 흑사회로서 하등 좋을 일은 없었다.
루카스가 나탈리에게 다가가 난감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나탈리양. 이게 무슨 난리인가? 설마 지금 총회장면을 촬영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나탈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촬영해야죠. 사실 저희 LKS에서는 레인보우호텔의 생활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요. 당연히 오늘같이 중요한 사건을 빠뜨릴 수는 없죠.”
“그야 그렇지만, 지금 누구 허락을 받고 촬영하는 건가?”
“그야 글로리아회장님이죠?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당연히 없었다. 오늘 흑사회는 단지 주주총회 소집 요청자일 뿐, 이 총회를 진행하는 측은 현재 레인보우그룹의 회장직을 맡은 글로리아였다. 그녀가 허락했다면 절차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아, 아니 정말 글로리아회장이 허락했다는 말인가?”
“네. 왜요?”
“하지만 자네는 내게 주식을 팔지 않았나?”
“그야 물론이죠. 그런데요?”
워낙 뻔뻔스럽게 바라보는 터라, 루카스는 딱히 답변할 내용이 없었다. 돈 때문에 배신한 조직원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글로리아나,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녀나 전혀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알겠네. 그만 들어가 보게.”
“네. 그럼 수고하세요.”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나탈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촬영진을 진두지휘했다. 루카스가 급히 렉스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렉스터경감. 나탈리가 왜 저러나? 뭐 잘못 먹었나?”
“하하하.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저 방송일이 천직이니, 온 정성을 쏟는 것뿐이겠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살다 보면 예의라는 있지 않나? 글로리아회장의 뒤통수를 치고 나서, 뻔뻔이 촬영허락까지 받다니 말일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지.”
렉스터가 뜬금없다는 눈빛으로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게 소리입니까? 에이 설마요. 나탈리가 얼마나 글로리아회장님을 존경하는데, 뒤통수를 치겠습니까? 아마 잘못 아신 것일 겁니다.”
“하지만 전에 그녀는 우리 흑사회에게 레인보우그룹의 주식을 팔았네. 그런데도 아니라고?”
“글쎄요. 주식을 팔았다고 해도 굳이 배신이라고 할 수는 없죠.”
“배신이 아니라니, 그게 소리인가?”
렉스터가 난처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마구 쳐댔다.
“아이 설명하기 복잡하니,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그럼 글로리아회장님께서 혼자 계신 듯 보이니,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눌 얘기가 아주 많아서요. 그럼 이만 수고하십시오.”
이 말을 하고 회의장 안으로 떠나가는 그로 말미암아 루카스가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특히나 렉스터가 글로리아의 옆에 바짝 앉아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자,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걱정을 털어버렸다. 33%의 주식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이상, 이번 싸움은 흑사회의 승리였다.
그가 마침 들어서는 증권사 직원의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했다.
“자. 그럼 이제 53년도 임시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주주 여러분과 내빈객께서는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이드부장의 사회로 시작된 임시주주총회는 간단한 의례의식이 끝나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교체뿐, 다른 안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단상에 오른 인물은 흑사회 측의 대표인 루카스였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방문한 주주들을 쭉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레인보우그룹 주식의 33%인 3,957만 주를 지닌 윈드하우사의 루카스회장입니다. 다들 저에 대해서 아실 것이라고 예상하니, 일단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인사말을 건넨 루카스는 이번 임시주주총회를 요청한 목적과 당위성을 주주들을 향해 말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윈드하우스사가 기존의 요식업을 넘어 부동산 업계로 진출해 시너지효과를 노린다는 얘기였다. 실상 범석을 치기 위해서였지만, 대중들을 향해 이 사실을 솔직히 말할 수 없으니, 이런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착석한 증권사 직원과 주주들에게는 제법 먹혀들어가는 눈치였다.
요식업의 기반은 예나 지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공간인 건물이었다. 여기에 막대한 임대료가 들어가는바, 부동산사업을 통해 이 비용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당연지사 내부사정을 모르는 타인들에게는 제법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다.
“그럼 오늘 여기 계신 주주분들의 성원을 부탁하며, 이만 여기서 말을 끝마치겠습니다.”
루카스가 단에서 내려오자 총회에 참석한 상당수의 주주가 일어나 우레와 같은 손뼉을 쳐댔다. 몇몇은 증권사 직원이나 일반 주주였지만, 대다수 흑사회의 사주를 받은 선동꾼이었다.
사회자인 제이드부장이 크게 소리치며 자중을 촉구했다.
“자자!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다음 순서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동꾼들은 사회자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난동을 부려댔다. 이에 제이드부장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글로리아를 바라봤다. 이래서는 총회를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없다며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흑사회에게 불리해지게 되었다. 루카스의 발언이 주주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히게 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범석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다.
이즈음 범석은 세리에시티의 한 거대 빌딩 입구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뒤를 따라오는 두 노친네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재촉했다.
“회장님들 빨리 좀 오십시오. 지금 꾸물거릴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윌킨스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급할 필요가 뭐가 있나? 어차피 그놈만 설득하면 시간이 흘러도 만사 오케이야. 늦으면 주총을 다시 열면 되지 않겠나?”
“아니 찝찝하니까 그렇죠. 일단 이기려면 완전무결하게 깨부숴야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옆을 따르는 발바르회장이 동조하듯 말했다.
“나도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서두르는 편이 낫겠지.”
윌킨스가 친우인 발바르를 보며 혀를 끌끌 차댔다.
“에잉. 자네도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그러기에, 진작에 눌러놨어야지. 쯧쯧.”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내가 자네처럼 독재자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 내가 왜 독재자야? 홀로 처음부터 기업을 일구다보니, 회장의 힘이 강해졌을 뿐이지. 밑에 직원 놈들이 알아서 기는 것이 어째서 내 책임인가?”
“휴. 됐네. 그냥 가세나. 지금 나는 한 시가 급하이.”
급히 범석을 뒤쫓는 발바르의 뒷모습에 윌킨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저리 서두르며 해결하고 싶은 일을, 왜 아직까지 꿍하니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는지 윌킨스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 이쪽입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범석과 노인 둘을 모시는 안내직원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금융계 대부 둘을 모시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잘해봐야 본전이었고, 실수하면 바로 모가지였다.
먼저 VIP 에르베이터에 탑승한 발바르가 범석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자네. 정말 그 노괴를 설득할 수 있을까? 워낙 조심스러운 작자라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걸세.”
“글쎄요. 회장님들이 나서 주신다면 뜻밖에 쉬이 해결될 듯도 보입니다. 지금 제일 골치를 싸매고 있을 분이 그분이니까요.”
이해가 간다는 듯 발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은 직접 들은 적 없었지만, 돌아가는 사정상 가장 골머리를 싸고 있을 작자가 바로 지금 만나러 가는 노친네였다.
“그렇겠군. 하여간 실수하지 말고 잘하게. 내가 옆에서 팍팍 밀어줄 테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이들은 건물 68층에 있는 회장실에 도착했다. 범석은 긴 심호흡으로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싸움에서 다 이겨놓기는 했지만, 저 안에 있을 노인을 설득해야 더욱 완벽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흑사회는 뼈저린 아픔을 맛봐야 했다.
“회장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자. 다들 드시지요.”
먼저 회장실 안으로 들어간 발바르가 응접용 소파에 앉아 지팡이로 턱을 괴고 있는 노인을 향해 손짓했다.
“이거. 오랜만이오. 디클레어회장.”
디클레어는 하얀 턱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풍채 좋은 노인이었다. 마치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서 나온 주인공 어부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중후한 스타일의 정장을 착용하고 있어,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고급스러운 점이 다를 뿐이었다.
디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발바르와 윌킨스를 마중했다. 아무리 그라도 이 둘은 앉은 자리에서 맞이할 상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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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