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51
253화
짙은 구름으로 대낮임에도 불과하고 하늘은 무척 어두웠다. 한눈에 봐도 굵직한 소나기가 쏟아지며 도심을 적시고 있었다. 복잡한 도로변을 거니는 줄리앙은 흠뻑 젖은 시궁쥐의 꼴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미 옷이 다 젖었지만, 주변에서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서 일단 자리를 벗어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줄리앙은 마침 옆으로 난 좁지만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비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칙칙한 골목길을 지나다가 한 처마를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그러나 선객이 하나 있었다. 검은 점박이와 하얀 털이 분간이 가지 않는 떠돌이 달마시안 개 한 마리였다. 놈은 말똥거리는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슬며시 자리 한쪽을 비켜주었다.
‘뭐야 이 개새끼는?’
하지만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자, 처마 밑이라는 장소가 그리 아쉬울 수가 없었다. 줄리앙은 그 옆에 멀뚱히 서서 비를 피하고는 옷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었다. 순간 날카로운 눈매를 쏘아 보내는 달마시안. 마치 물기가 자기에게 튀어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줄리앙은 어이가 없었지만, 무시한 채 텅 빈 지갑을 꺼내 들었다.
“젠장. 집까지 어떻게 가냐?”
데레사에게 나머지 돈을 몽땅 털어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의 수중에는 한 푼도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통장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 땡전 한 푼도 들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버스를 무임승차하지 않는 한, 집으로 돌아갈 길이 요원했다. 물론 걸어갈 수도 있지만, 메이런시티까지는 거의 지구 반 바퀴다.
그가 옆에 있는 달마시안을 슬며시 쳐다봤다. 버려진 떠돌이 개 같지만, 순종 같았다. 잡아다가 팔면 버스비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대자 포기했다. 물리면 꽤 아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돈을 꿀 수도 없는 얘기고.’
줄리앙의 친구란 아까 헤어진 청년기업연합회 회원들뿐이었다. 그들을 피해 달아났는데, 인제 와서 돈을 꿔 달다고 전화한다? 그건 철저히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놈들에게 손을 벌리느니 차라리 철천지원수인 범석에게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나았다. 아마 놈들은 이 일로 평생 자신을 조롱하고 다닐 것이 빤했다.
처마 밖으로 손을 내민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좀 그치기를 바랐는데, 이젠 아예 우박까지 쏟아졌다.
“아이. 젠장 할 오늘 되는 일이 이렇게 없냐?”
종아리가 따뜻해져 왔다. 늦가을의 소나기에 몸이 얼어있는 터라, 줄리앙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온기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 좋던 인상이 팍 구겨져 갔다. 저 똥개 자식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는 쉬야를 갈기고 있는 것이다. 처절한 응징이 필요한 순간, 뜻하지 않는 조롱이 곁에서 들려왔다.
“이 거지새끼들은 쌍으로 노는군. 개나 주인이나 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쯧쯧.”
그의 불같은 분노가 앞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향했다. 거지 취급을 한 때문인지, 아니면 저 똥개와 동격으로 취급하는 시선이 기분 나빴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가슴 깊이 솟아나오는 울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줄리앙이 두 명의 엘프를 대동하고 지나는 금발의 젊은 사내를 쏘아봤다. 놈이 자신을 우롱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너 이 자식. 뭐라고 했냐? 거지새끼라고?”
사내가 비웃음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꼴에 귀는 밝네. 그렇다 어쩔래?”
“너 이 새끼가!”
“왜 돈이 한 푼 주랴?”
순간 사내의 손에 던져진 5크랑 동전 하나가 완만한 곡선을 타고 날아오더니 옆에 서 있던 달마시안의 머리를 두드렸다. 코 울음을 울려대며 몸을 일으키는 달마시안이 서서히 사내 쪽으로 걸어갔다. 감히 잠자는 떠돌이 개의 코털을 건드리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놈은 주인을 보호하려는 두 엘프의 위협에도 불가하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우둑. 깨개개갱.
푸른 색 머리칼 엘프의 발길질에 힘껏 차인 달마시안이 처참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파골음 소리가 난 것으로 보아 어딘가 뼈가 부러진 듯도 보였다.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강인한 신체를 지닌 엘프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놈은 고통 속에서도 몸을 일으키며 또다시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시라는 밀림 속을 살아온 달마시안은 적자생존의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꼬리를 내리는 순간, 바로 영역을 빼앗기고 기나긴 굶주림 속에 살아가게 되었다. 이 근방은 식당가라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와 배를 채우기 그만이었다. 물론 저 금발의 사내가 쓰레기를 노리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달마시안에게는 그리 인식되었다. 멀쩡히 서 있던 자신을 동전으로 공격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놈은 엘프들에게 맞아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져도 계속해서 사내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처절함은 금발의 사내가 겁을 집어먹게 할 정도로 매서웠다.
“야! 뭐해! 빨리 저 똥개를 죽여!”
“넷. 주인님!”
적발의 엘프 하나가 근처 쓰레기통 옆에 서 있던 마포 자루를 부러트리더니 손에 쥐었다. 암만 봐도 명줄을 끊으려는 의도가 확실했다. 그 모습에 줄리앙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검술을 익히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하이에나그룹 산하의 검투팀에서 단장직을 맡아왔다. 저 엘프가 상당한 검술사라는 사실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워커옥션마켓에서 판매된 프로출신의 검투사로 예상되었다. 저런 떠돌이 개 따위는 일격에 죽게 되었다.
‘병신 같은 놈. 그러게 왜 덤벼.’
처참히 몰골로 몸을 휘청거리는 달마시안. 놈을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내던 줄리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낱 똥개도 저리 처절하게 쓰러지고 부상을 당하며 싸우는데, 자신은 뭐 하는지 몰랐다. 정작 저 자식과 싸워야 할 자는 조롱을 받은 줄리앙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마포 자루를 휘두르던 적발 엘프의 손목을 꽉 붙들었다.
“이제. 그만하지.”
순간 놀란 눈을 한 적발의 엘프가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노화현상을 겪어 체력이 떨어져 있다지만, 자신의 일격을 막았다는 사실은 개조인간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싸움에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개조인간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 좋았다. 그들 대다수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거부였다.
그녀는 주인이 금발의 사내에게 걸어가 슬며시 말했다.
“주인님. 저자 개조인간이에요.”
하지만 흥분한 주인은 그 뜻을 알아들 수가 없었다. 그저 삿대질하며 소리칠 뿐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장 반쯤 죽여놔! 저 개는 죽이고!”
“넷. 알겠어요!”
동시에 적발의 엘프가 동료와 함께 줄리앙에게 뛰어갔다. 주인의 명령은 그 어떤 경우라도 우선해야 지상과제였다.
기세 좋게 나서기는 했지만, 줄리앙은 은퇴 프로검투사가 포함된 엘프 두 명을 당해낼 수 없었다. 곁눈질로 익힌 회피동작으로 몸을 피했지만, 계속해서 난타당하며 서서히 온몸에 피멍이 들어갔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불끈 쥔 주먹의 힘을 풀지 않았다. 한낱 미물인 개도 거의 죽을 지경까지 싸우는데, 개조인간인 자신이 꼬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줄리앙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며 엘프들을 대적해 나갔다.
“야! 이! 쌍년들아!”
옷이 찢기고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온통 상처투성이인 줄리앙의 몸에서 지금 멀쩡한 곳은 두 손뿐이었다. 한 번도 엘프들을 가격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싸움에 문외한이었다.
그때 명치로 날아온 강한 일격에 줄리앙이 상체와 두 무릎을 굽혔다. 숨이 턱턱 막히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푸른색 머릿결의 엘프가 팔뚝으로 뒷목을 힘차게 타격하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이어지는 발길질. 줄리앙은 웅크리며 피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축구공처럼 둥글게 말려있던 터라, 걷어차기 그만이었다.
퍽퍽. 퍽! 퍽!
한참을 얻어맞던 줄리앙은 주변으로 검은 음영이 드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비구름이 더욱 짙어지나 생각했는데,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으로 보아 아닌 듯싶었다.
이윽고 엘프들 뒤에서 묵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그만들 해라.”
넌지시 고개를 젖힌 적발의 엘프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는 양쪽 팔이 뜯어져 나간 무복을 입은 털북숭이 거한의 사내가 있었는데, 한쪽 팔뚝에 주인이 입이 막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적발의 엘프가 최대한 고개를 위로 젖힌 상태에서 뾰족한 외침을 내질렀다. 그녀의 머리끝은 겨우 상대의 가슴팍에 이를 뿐이었다.
“주인님을 놓지 못해요!”
줄리앙의 처참한 몰골을 본 거한의 사내가 검지와 고개를 동시에 흔들며 말했다.
“그건 안되지.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대가를 받아야겠지.”
순간 적발의 엘프가 몸을 공중으로 띄우더니, 그의 안면에 발차기를 먹였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또 아무리 몸집이 커도, 엘프를 상대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정통으로 턱을 가격당했음에도 거한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멱살을 잡더니 바로 담벼락에 패대기까지 쳐버렸다.
“당신 뭐에요!”
동료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장면을 본 푸른 머리칼의 엘프가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철벽과도 같은 거한의 손바닥에 막혀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녀도 하늘을 날더니 옆 담벼락과 충돌을 빚었다. 이때 적발의 엘프가 몸을 급히 일으키더니 그를 향해 막대를 휘둘렀다. 전직 프로검투사였기에 날카롭기 그지없는 공세였지만, 거한은 손쉽게 회피하더니 그녀의 목에 손칼을 찔러넣었다.
그가 목을 잡고 바닥에 쓰러지는 적발의 엘프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제법 실력은 있는 여아구나. 하지만 내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 최강의 검사거든.”
광오한 말을 던진 거한이 금발의 사내의 복부에 주먹을 한 대 먹였다. 들고 다니기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쓰러진 사내를 바닥에 던지듯 눕히고는 널브러져 있던 줄리앙에게 다가갔다.
“여어. 괜찮나?”
아직 정신이 있던 줄리앙이 상체를 일으키며 그를 쳐다봤다.
“넌. 또 뭐야.”
겁을 상실한 그였다. 그러나 화가 나지 않았는지 거한이 싱긋 미소 지었다.
“말하는 투를 보니 아직 멀쩡한 모양이군.”
“당연하지 이 정도에 쓰러질 나 줄리앙이 아니다.”
거한의 사내가 이번에는 달마시안에게 다가갔다. 기력이 다했는지 놈은 낑낑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개는 아닌 모양이군. 자네 개인가?”
“아니다. 떠돌이 개일 뿐이다.”
“오호? 그럼 한낱 떠돌이 개를 구하기 위해 이토록 얻어터지도록 싸웠던 건가? 너 제법 좋은 놈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
줄리앙이 상처입은 달마시안에게 걸어가 상태를 살폈다. 같이 싸웠던 인연 탓에 놈에게 정이 붙은 것이다.
“괜찮은 것 같냐?”
“글쎄.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잘은 모르겠다.”
줄리앙이 지갑을 매만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군. 지금 돈이 없는데. 혹시 너 돈 가진 것 있냐? 꿔주면 나중에 몇 배로 갚아준다.”
“나도 돈이 없는데.”
“보아하니 너도 개조인간인데. 돈 없을 리가 없잖아!”
“하긴 그렇지만, 너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긴 줄리앙의 입장에서도 그를 타박할 수 없었다. 돈이 없기는 그도 매한가지였다.
“그럼 어떻게 하지?”
“뭐 지금 쓰러져 있는 저 작자에게 깽 값으로 받으면 되겠지.”
뒤를 돌아본 줄리앙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금발의 사내는 푸른색 엘프의 어깨에 매달린 채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적발의 엘프도 같이 업혀 있으니 돈을 받아낼 구석이 없었다.
“젠장 할. 도망갔잖아! 잘 좀 잡고 있지!”
거한의 사내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미안한걸. 어떻게 하지?”
자신을 처연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달마시안을 바라본 줄리앙이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어쩔 수 누군가에게 돈을 꿔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면 평생 기억이 남을 듯 보였다. 그만큼 오늘 일진은 좋지 못했다.
일단 처음으로 손길이 간 전화번호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지금 돈을 꿔달라고 한다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며 대노할 것이 분명해 꺼려졌다. 자칫 당장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는 회사 직원들인데, 전부 아버지의 딸랑이들이라 포기했다.
줄리앙 다음인 은퇴한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는 그냥 건너띄웠다. 냉혹한 성격의 할아버지는 무능하다며 아예 자신을 가문에서 쫓아내라고 아버지를 겁박하기까지 했다.
‘젠장 할. 그럼 청년기업연합회 애들밖에 없잖아.’
하지만 지금 그 꼴을 당했는데, 전화를 걸 수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신은 평생 굴욕에서 살아야 했다. 그는 빈 공란을 쭉 내리더니 죽을 4자가 네 번이나 겹친 4444번에 등록한 전화번호를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주저했다. 정말 전화 걸기 싫은 자식이지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정말 이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처참할 정도로 구겨지지만, 자신이 돈을 꿨다는 사실이 주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일은 없었다.
달마시안의 거친 호흡을 들은 줄리앙이 질끈 눈을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이게. 누구야? 줄리앙 아니신가? 네가 내게 어쩐 일이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줄리앙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돈 좀. 꿔줘.”
화면 속의 흑발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귀를 마구 후볐다.
– 야? 내가 설마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네가 내게 돈을 꿔?
“그래. 딱 10만 크랑만 보내라.”
– 허허허. 그것도 10만 크랑씩이나? 너 어디 아프냐? 네가 10만 크랑 따위를 꿀 놈이 아니잖아. 그것도 내게 말이야?
“그렇게 됐어! 꿔 줄 거야! 말 거야!”
사내가 잠시 고민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에게 있어 10만 크랑은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 뜬금없어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뭐. 악연도 인연이니, 일단 꿔주긴 하지. 곧 보낼 테니 계좌번호나 불러라.
이를 바르르 떠는 줄리앙이 곧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그럼 빨리 보내라. 치료비라 급하다.”
– 그러지 뭐. 그럼 잘 있어라.
화면이 끊어지자 줄리앙이 부상당한 달마시안을 안아 들었다. 돈을 구했으니 근처 동물병원에 가려는 것이다. 이런 그를 거구의 사내가 따라붙으며 말을 걸어왔다.
“햐! 너 참 대단하구나. 10만 크랑이라는 거금을 선뜻 꿔주는 친구도 있고 말이다.”
“친구 아니야!”
“친구도 아닌데 돈을 꿔줘? 꽤 부자인가 보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제법 돈이 많을 거다.”
“오. 그래? 혹시 너도 부자냐?”
“당분간은 아니지만, 일단은…….”
표정을 밝게 한 거구의 사내가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야. 그럼 잠시 빌 좀 붙자. 사실 내가 돈이 지금 딱 떨어졌거든.”
“됐다. 지금은 내 코도 석자다.”
“무슨 소리야. 10만 크랑이나 있는 놈이. 그러지 말고 잠시만 신세 지자. 이래 보여도 아마 꽤 쓸모가 있을 거다. 난 세계 최강의 검사거든. 아까처럼 맞고 다닐 일은 없을 거다.”
“너 검투사야?”
“아직 검투사는 아니다. 하지만 스승님이 내가 세계 최강이라고 하셨다. 그럼 최강인 거다.”
줄리앙의 그를 위아래로 살폈다.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까 적발의 엘프를 단번에 쓰러뜨린 장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실력이면 프로 검투계에서 밥 벌어 먹고살 수는 있었다.
“마음대로 해라. 대신 당분간은 식당에서 허드렛일만 해야 할 거다.”
“크크크. 상관없다. 그냥 신세를 지는 것보다야 밥값을 하는 편이 나으니까.”
“알았다. 그럼 나를 따라다녀라. 언제고 아버지가 부르는 날. 너를 검투사로 만들어 주겠다.”
거구의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스승님이 자신을 내려보낸 이유는 검투사가 되어 최강의 검사임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날 검투사로 만들어 줄 수 있냐?”
“그래. 우리 하이에나 그룹에는 좀 하위에 속하지만, 월드리그 팀도 있다. 너 하나 정도는 검투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다.”
“하하하. 고맙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문뜩 발길을 멈춰선 줄리앙이 거구의 사내를 바라봤다.
“아 깜빡했군. 그런데 네 이름이 뭐지?”
“자키드. 월광검문의 일원이자, 렘란트님의 수제자다.”
고개를 주억거린 줄리앙이 멀리 보이는 동물병원을 확인하고는 급히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달마시안을 빨리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별로 안늦었네요. 그냥 도망쳤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