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56
258화
범석은 야콥과 리프턴을 사무 건물 내 한 응접실로 안내했다. 협소하기는 하지만, 네 명이 대화하기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다과와 차를 먹으며,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
“자. 그럼 협상을 계속해 볼까요.”
야콥이 바로 자신의 의사를 개진했다.
“누누이 말했지만, 우리는 5억 1,000만 크랑이 아니면 니키타를 팔 마음이 없다. 솔직히 이 정도 몸값으로 월드리그 검투사를 구매하는 일은 쉽지 않아.”
그건 범석도 같은 생각이었다. 좀 더 몸값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 정도 가격으로 니키타를 구매한다는 것은 공짜로 줍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저희도 그 금액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즈음에서 니키타의 몸값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럼 대화가 편해지겠군.”
흡족해하는 야콥을 막아서며 리프턴이 난데없이 입을 열었다.
“범석군. 자네는 왜 니키타를 구매하려고 하지? 와이드리그팀이 월드리그 검투사를 영입하려면 큰 무리가 따를 텐데 말이야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기는 있습니다.”
“뭔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굳이 말 못할 일도 아니었기에, 범석이 대답했다.
“일단 저희 팀은 검투사의 수가 적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임대해온 검투사 둘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후미와 선봉 자원이 부족해진 상태고요. 니키타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니키타를 살 필요가 있을까? 5억 크랑이 넘는 몸값이라면 쓸만한 검투사 둘 이상을 구매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텐데. 그럼 자네팀 입장에 굳이 멀티플레이어능력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네. 물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팀 사정으로 월드리그 검투사를 한 명을 구매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이에 몸값도 적당하고 멀티플레이어의 능력이 있는 니키타를 구매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사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뭐. 별것은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 팀 자금을 다른 곳에 유용했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서포터즈에서 알고 불만을 불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월드리그 검투사를 영입해 이를 해소 하려는 겁니다.”
납득이 갈 만한 내용이었다. 월드리그 검투사를 영입해오면, 응원하는 팬들로서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와이드리그팀이 월드리그 팀 검투사를 영입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지만, 갓즈나이츠라면 가능했다. 대게는 자존심이 상한다며 해당 검투사 이적을 거절하겠지만, 갓즈나이츠라면 얘기가 달랐다. 주인을 얻는데, 엘프가 자존심을 내세우며 거절할 리가 만무했다.
리프턴이 범석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렇군. 그런데 그 이유가 다인가?”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녀를 데려옴으로써 팀 엠블럼 제품 판매의 호조도 보일 테고, 감독인 다이아나가 극구 원하기에 영입을 결정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계속되는 그의 질문에 범석이 짜증스러운 낯빛을 지었다. 그냥 판매하면 되지 뭘 이리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지 참 피곤할 지경이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으음. 있을 터인데. 혹시 자네 니키타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보지 못했나?”
확실히 봤다. 하지만 리프턴감독은 트레이너 담당자인 야콥과 달리 니키타를 갓즈나이츠에 판매하기를 꺼리는 듯 보였다. 솔직히 대답하면 몸값을 올리거나 취소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범석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노련한 플레이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글쎄요. 그녀의 최근 경기를 봤지만, 특별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짐작 가시는 부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영입 후 그녀의 훈련 스케쥴을 작성할 때 감독님의 조언을 참고하겠습니다.”
“아, 아니네. 별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리프턴감독이 손사래를 치며 대화를 얼버무렸다. 니키타의 카멜레온 같은 플레이의 변화는 5년 전에나 볼 수 있었다. 최근 경기를 봐서는 전혀 그 특징을 알 길이 없으니, 범석이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괜히 가르쳐줘서 갓즈나이츠의 전력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는 없었다.
범석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니키타를 저희 갓즈나이츠에 넘기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뭐. 굳이 반대는 하지 않겠지만, 지금의 몸값은 적당치 않다고 생각되네. 솔직히 니키타의 여러 능력은 우리 메넥스 오딘즈팀에 다소 도움이 되거든. 특히 무승부 작전을 펼쳐야 하는 경기에서 아주 빛을 발하지. 확실히 5억 1,000만 크랑은 너무 싸다고 볼 수 있어.”
힐끔 야콥을 바라본 범석이 바로 리프턴감독에 향해 무거운 시선을 안겨주었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미 5억 1,000만 크랑 즈음에서 거래를 마치자고 구두 합의를 한 상태에서 계속 가격을 올리자고 하신다면 거래를 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름없습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데 니키타의 몸값이 낮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격대의 월드리그 검투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리시겠다면 저희는 물망에 오른 다른 월드리그 검투사를 구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야콥이 리프턴의 허리를 꾹 눌렀다. 지금 메넥스 오딘즈는 율리아라는 검투사를 영입할 계획이 있었다. 비록 센트럴리그팀에 소속되어 있고, 얼마 전까지 유망주 취급받던 검투사에 불과했지만, 최근 3년간 크게 성장하며 많은 월드리그 팀들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일 정도로 리그 내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메넥스 오딘즈가 율리아의 영입을 위해서는 다소 자금이 더 필요했다. 경쟁이 심해 몸값이 점차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갓즈나이츠에서 니키타를 구매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팀 경영진들은 은행권 대출과 니키타의 판매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후자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현재 팀 재정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던 탓이다. 게다가 갓즈나이츠는 경쟁 상대도 아닌데다가, 원하는 검투사는 다른 팀에서 전혀 눈독을 들이지 않아 판로가 막막했던 니키타였다. 그녀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율리아를 들임으로 얻어질 전력 강화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배제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검투사층이 두터운 메넥스 오딘즈팀은 니키타를 대신할 만한 멀티플레이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감독님. 이번에 니키타를 팔지 못하면, 율리아의 영입이 물 건너갈 수도 있습니다.”
“으음. 뭐. 그렇기야 하지만, 뭔가 께름칙해서 말이야. 왠지 팔면 큰 손해를 입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럼 율리아를 포기하고 니키타를 계속 보유하시겠습니까?”
그건 좀 곤란했다. 감독의 측면에서 볼 때 율리아의 쓸모는 니키타 보다 훨씬 높았다. 율리아는 월드리그에 적응하면 핵심급 검투사로 자리매김할 테지만, 니키타는 앞으로 계속 교체요원이나 무승전에만 활용될 공산이 컸다.
여전히 고민스러웠던 리프턴이 야콥을 슬며시 바라봤다.
“자네가 보기에는 니키타와 율리아 둘 중 누가 나은 듯 보이는가?”
범석의 눈치를 살핀 야콥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리프턴감독을 쳐다봤다. 가히 답변하기 곤란할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율리아가 훨씬 낫기는 하지만, 범석이란 구매자의 앞에서 판매할 상품을 흠집 낼 필요는 없었다.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저희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렇겠지. 내가 보기에도 율리아가 훨씬 낫지.”
“그럼 빨리 결정하시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프턴 감독이 범석에게 시선을 던졌다.
“자네는 율리아가 나은 것 같나? 아니면 니키타가 나은 것 같나?”
범석이 순간 당황했다. 리프턴이 방심한 순간에 날카로운 비수를 찔러왔기 때문이다. 분위기상 이들은 니키타의 판매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이 여우 같은 영감탱이가……! 마지막까지 내 속을 살피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그가 시치미를 뚝 떼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답변할 타이밍을 놓쳐 의심받을 만했지만, 모면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율리아가 대체 누구입니까?”
“율리아를 몰라? 라포니 센트럴리그에서 2년 연속 최고 검투사의 영예를 안은 아이인데. 정말 모르나?”
“글쎄요. 라포니 센트럴리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요. 솔직히 제가 검투경기에 관심을 가진지는 채 4년도 안 됩니다. 수십만이나 되는 모든 프로검투사를 알 수는 없는 법이지요.”
꿍한 표정을 지은 범석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율리아를 모르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그녀는 최근 월드리그팀에서 영입 1순위로 손꼽는 유능한 검투사로, 많은 언론에서 활약상을 세세히 다루고 있었다. 검투계 종사자나 팬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인사였다.
“으음. 희한하군. 딴에는 검투팀 이사장인 자네가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니 말일세.”
“하하하.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율리아가 그렇게 괜찮은 아이입니까?”
“당연하지. 걔는 아직 13살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W2급으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의 천재네. 경험만 쌓는다면 충분히 S급까지 이를 가능성도 많지.”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인 없는 엘프검투사가 13살에 W2등급에 랭크될 정도라면, 상당한 천재라는 뜻이었다. 그녀들은 주인 있는 엘프검투사들 달리, 적극적인 자세로 훈련에 임하지 않았다.
“그래요? 몸값이 얼마나 되는데요?”
“현재는 9억 크랑 정도 하지만, 경쟁이 이리 붙었으니 15~20억 크랑 정도는 될걸세.”
고민 어린 표정을 지은 범석이 읊조리듯 말했다.
“으음. 율리아라……. 괜찮다면 우리 갓즈나이츠에서도 한 번 나서봐야겠는데요. 왠지 말씀을 들어보니 니키타보다 나을 듯싶은데요.”
그 말에 리프턴이 버럭 소리쳤다.
“자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어떻게 와이드리그팀이 그 비싼 몸값의 율리아를 산다는 건가?”
“네.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니키타를 포기하면 못 살 것도 없을 듯 보이데요. 제가 가진 주식을 담보 잡으면 10~15억쯤은 충분히 빌릴 수 있습니다.”
이거 혹을 떼려다 혹을 더 붙인 꼴이 되었다. 갓즈나이츠가 율리아의 영입 전에 나선다면 경쟁팀 하나가 더 추가됐다는 차원이 넘어, 아주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한 검투사에 여러 검투팀이 구매경쟁이 붙으면 판매하는 팀은 일단 여러모로 살핀 후, 흡족한 조건을 제시한 팀 몇 곳을 고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해당 검투사에게 보여 최종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그 이름 속에 갓즈나이츠가 포함된다면 다음 일은 보지 않아도 빤했다. 주인 없는 율리아가 갓즈나이츠를 두고 메넥스 오딘즈를 비롯한 다른 월드리그에 가고자 할 리가 없었다. 물론 최종 명단에 갓즈나이츠가 남는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방금 그가 말했다시피 갓즈나이츠에서 20억 크랑을 때리면 그 가능성은 아주 농후했다. 그 어느 팀도 아직 W2급인 율리아에게 20억 크랑이 훨씬 넘어가는 몸값을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 자네. 지금 농담하는 거지?”
“농담이라뇨. 절대 아닙니다. 감독님께서 계속 칭찬하시니, 율리아라는 아이가 무척 관심이 갑니다. 비록 센트럴리그 검투사이기는 하지만, 꽤 유명한 아이인듯싶으니 팬들에게도 잘 먹혀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 야콥이 리프턴에게 눈총을 주며 대화의 전면에 나섰다. 왜 쓸데없는 행동을 해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느냐는 것이다. 이대로 범석이 나서면 율리아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갓즈나이츠가 율리아가 무슨 소용이 있냐? 그리고 너 팬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월드리거를 노린 거라며? 왜 쓸데없이 돈을 더 써가며 율리아를 노리는데?”
“으음. 그게 리프턴감독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귀가 솔깃해져서요. 왠지 율리아에게 관심이 가네요.”
전혀 틀리지 않은 얘기지만, 범석은 율리아를 영입할 마음은 없었다. 리프턴감독의 말대로 S급에 올라설 아이라면 대단한 일이지만, 설령 맞는다고 할지라도 니키타보다는 다소 가치가 떨어졌다. 바로 엽기적인 특성과 멀티플레이능력이 그 이유였다. 니키타는 잠재능력이 950대밖에 안 되고 플레이 자체가 극히 방어일변도라 S급에 올라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지만, 그 어떤 검투사보다 팀에 도움이 되었다.
이를 모르는 야콥이 다급히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지금은 여러모로 보나 갓즈나이츠에 니키타를 떠넘기는 편이 좋았다.
“에이. 괜히 충동구매로 돈 낭비하지 말고 니키타를 사. 그녀만 해도 갓즈나이츠에 과분해. 내가 500만 크랑 더 깎아주지. 어때 괜찮지?”
그럼 5억 500만 크랑이 되었다. 보아하니 더 깎을 수도 있다고 생각됐지만, 범석은 이쯤에서 결론을 짓기로 했다. 계속 수작을 부리다가 니키타의 거래가 무산되면 자신만 손해였다.
“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여기 있는 에스더와 계약을 끝내주십시오. 검투사 영입의 최종 결정권자가 바로 단장인 그녀거든요.”
이 말을 하고 범석이 자리를 떠나가자 야콥이 득달같이 에스더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율리아의 대한 정보를 파악하려 빠져나갔다고 착각한 탓이다. 어떻게든 범석이 돌아오기 전에 이번 거래를 끝마쳐야 했다. 결국, 이날 거래는 4억 7,100크랑 선에서 끝마쳤다. 에스더의 특성을 참작해도 근 1,000만 크랑이나 더 다운된 금액이었다. 그만큼 니키타를 팔고자 하는 메넥스 오딘즈팀의 의지가 강했다는 뜻이었다.
며칠 후, 에이번드 스포츠언론계에는 갓즈나이츠의 니키타의 트레이드에 대한 뉴스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에이번드 검투계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현역 월드리그 검투사의 영입은 지역 검투팬들에게 큰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범석도 11억 크랑의 자금유용사건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제이콥의 말에 반신반의했던 서포터즈가 이제 믿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