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61
263화
잘 가꿔진 갓즈나이츠 훈련캠프의 정원. 범석이 봄날의 밝은 햇살을 받으며 벤치의 앉아 전자서류를 읽고 있었다. A4지 20여 장 정도의 문서였는데, 다름 아닌 질리엄의 행적이 간략히 간추려진 보고서였다. 루이스회장에게 어제 받은 문서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사태를 파악하는데 유용했다.
‘이 자식. 확실히 의심스러워.’
질리엄은 샤일라를 만나기 이전 사기 전적이 있었다. 혼인빙자사기였는데, 근래에 재판과정 중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를 했는지 서로 오해가 있었다며 사건이 무마되었다. 또 연예계나 친구에게 평판이 좋지 못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를 가는 인사가 상당수가 있다고 했고, 안면 있는 PD나 방송 관계자들 대부분이 무책임하고 착실치 못한 그의 행동에 비난을 서슴지 않고 늘어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씀씀이가 헤프고 도박을 자제를 못 해 친인들과 사채를 통해 막대한 빚을 지었지만, 샤일라를 만나기 얼마 전 모조리 갚은 정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량한 인간이 되어, 애인의 돈까지 알뜰하게 관리해주는 착한 면모를 보이고 있단다. 갑작스럽게 신의 계시를 받아 개과천선을 하지 않았다면 연기가 분명했다.
‘그래도 이거 쉽겠군. 줄거리가 너무 빤하게 그려져. 분명히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야.’
원고에 의한 사기 재판 취하. 벌이도 신통치 않으면서 막대한 씀씀이에서 비롯된 빚을 뚜렷한 수입처 없이 샤일라와 만나기 얼마 전에 갚은 점. 지방 언론사 PD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한 무명의 연예인이 TNGL이라는 메이져급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주요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 일. 항시 따라다니며 경호를 하는 가드맨의 존재. 이거 배후가 없다고 우기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뒤에 똬리 틀고 있는 존재가 누구냐는 점이었다.
‘일단 경제인단체가 제일 의심스러우니, 그쪽부터 파야겠지.’
범석이 바로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사건 해결을 하는 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범인의 자백을 듣는 일이었다. 아주 멍청한 인사가 아니고서야 실토할 리가 만무하겠지만, 세상에는 별의 별놈이 다 있었다. 자신은 숨긴다고 숨겼는데, 단순한 유도질문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작자들이 제법 존재했다. 그리고 경제인단체 쪽에 그런 등신 같은 자가 하나 있었다.
몇 번의 호출음이 울린 직후, 화면 속에 쟁반을 손에 든 한 웨이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범석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급히 쟁반을 옆으로 치우고 황급히 옷맵시를 정리했다.
– 왜 전화했지? 우리가 서로 볼 일은 없을 텐데.
범석이 간신히 나오는 웃음을 참았지만, 볼이 실룩거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줄리앙은 요주의 인물로 항시 정보력을 동원해 감시하기에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 줄 잘 알고 있었다. 뭐 근래에는 감시의 눈을 철회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말이다.
“줄리앙 오랜만이다. 그간 뭐하고 지냈냐?”
–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
“으음. 근래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길래 말이야. 네가 허름한 식당에서 잡일을 한다나 뭐라나? 하이에나그룹이 망했다면 모를까, 네가 그런 꼬라지를 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황급히 손사래를 친 줄리앙이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 쌍! 누가 그딴 소리를 해!
“청년기업연합회 애들이 온통 소문내고 다니더라. 설마 아니지?”
– 당연히 아니지! 내가 그딴 일을 할 인사로 보여! 나 줄리앙 아직 죽지 않았다.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단 말이다!
피식 웃은 범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지. 어쩐지 이상하더라. 하이에나그룹이 아직 건재한데, 네가 식당일을 할 리가 없지.”
거칠게 헛기침을 내뱉은 줄리앙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크흠. 그래 잘못 와전된 거다. 아버지 친구분이 경영하시는 프랜차이즈 식당사업이 어려움이 있어 잠시 경영지원을 나왔는데, 청년기업연합회 놈들이 이를 빌미로 모함하는 거다. 귀담아들을 것이 못 되니, 무시해버려!
“뭐. 그러지 뭐.”
– 그런데. 너 그걸 물으러 전화한 거냐?
“겸사겸사. 다른 용건도 있고.”
줄리앙이 콧대를 바짝 세웠다.
– 훗. 네가 내게 용건이 있다고? 뭐. 급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그러기에 평소에 처신 좀 잘하지.
범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꼴에 질책하는 모습이 가히 우습지도 않았다. 아무리 목마른 자가 우물 속에 오물을 쳐넣을 수는 없는 일이라지만, 잠시 혼쭐을 내줄 필요가 있을 듯 보였다.
“아니 내 처신 문제는 아니고, 전에 꿔준 10만 크랑을 언제 갚느냐고 물어보려고. 꽤 된 것으로 아는데 말이야.”
대번 얼굴빛이 새하얘지는 줄리앙이었다. 그의 주머니 사정으로 10만 크랑이라는 거금을 갚을 길이 없었다. 줄리앙에게는 지금 식충이 둘이 달라붙은 상태인데, 어찌나 잘 처먹는지 월급봉투를 받기가 무섭게 공중분해 되어가고 있었다.
– 아. 그건 말이지. 내가 깜빡했다. 워낙 푼돈이라서 미처 신경 못썼다.
“그래? 그럼 오늘 갚을 수 있겠네.”
– 그, 그건 안 돼. 지금 내 전자수첩이 통신 기능 외에는 다 고장 났어. 그래서 지금 온라인 송금을 못하는 상태야.
“으음. 그렇다면 은행에 직접 가서 부치면 되잖아. 안 그래?”
– 그것도 안 돼. 근래에 사업상으로 너무 바쁜 일이 많아서, 밖으로 나갈 틈이 없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당혹해하는 그의 모습에, 범석이 고소를 품었다. 이거 제법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계속 장난치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쯤이면 됐다 싶은 그가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돈 받아서 내가 뭐에 쓰겠냐? 너도 송금하려면 귀찮잖아. 그치?”
– 그, 그러엄. 솔직히 말해서 10만 크랑이 돈이냐? 우리한테는 한 끼 식비도 안되는 금액이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말이야, 한 가지 질문으로 퉁치려고 하는데. 괜찮겠냐?”
죽다 살아난 얼굴을 한 줄리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마디만 말로 10만 크랑 빚을 갚을 수 있다니, 그만한 다행도 없었다.
그가 표정을 가다듬고 차분히 말했다.
– 좋아. 내가 좀 손해 보는 듯 느껴지지만, 말해 주지. 뭐야 질문이?
“근래에 내 친구 한 명에게 제비 한 마디가 알짱거린다. 그런데 배후가 있는 듯 보이는데, 아무래도 경제인단체 쪽 같다. 혹시 동냥질로도 들은 내용 없냐?”
줄리앙이 바로 콧방귀를 꼈다.
– 그걸 왜 너에게 설명해줘야 하는데? 설마 내가 우리 조직을 배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네가 잘못 판단한 거다.
“그래?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오늘 당장 10만 크랑 부쳐라.”
잠시 멍하니 있던 그가 티가 날 정도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
– 하하하. 농담이다. 농담. 그 정도야 당연히 얘기해 줄 수 있지. 아니 어느 빌어먹을 자식이 체통 없이 조직일에 제비를 써. 조직을 위해서 그런 비열하고 치졸한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내가 막아야겠지.
“좋아. 그럼 대답해봐. 생각나는 것 없어?”
줄리앙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 경제인단체에 관여한 일이 없어 그 어떤 일도 들은 적이 없었다.
– 글쎄. 알면 말해주고 싶은데, 내가 근래에 프랜차이즈사업에 바빠서 조직 일에 손을 끊은 상태다. 그래서 잘은 모르겠다.
“채프린가 별장 사건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때라면 네가 조직 일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었을 텐데?”
잠시 골몰히 생각하던 줄리앙이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그도 들은 바가 없었다.
– 으음. 그래도 모르겠다. 나라고 경제인단체의 일을 모두 다 알 수는 없거든.
“그래? 그럼 혹시 짐작 가는 내용이라도 없어? 분명히 경제인단체가 관여된 것 같던데?”
줄리앙이 입을 달싹거리며 주저하는 행동을 보였다.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아 있지만 확실치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 으음. 하나 있기는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상관없다. 대답해라.”
– 아마도 일의 성격상 데레사가 벌인 짓 같다.
“데레사? 걔가 누군데?
– 프로검투협회 안젤라계파의 수장인 안젤라여사의 딸이자 청년기업연합회의 총무다. 한 마디로 제멋에 사는 아이인데, 자기에게 유전인자를 전해준 아버지가 세계에서 몇 안가는 천재라고 조직 내에서 콧대를 세우고 다니고 있지. 또 싸가지는 얼마나 개차반인지 걔를 좋아하는 청년기업연합회 회원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에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하지. 게다가 좋은 유전자를 얻겠다고 괜찮은 회원들만 보면 다리를 벌리는 통에, 다들 꺼리고 있는 화냥년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걔가 아직 숫처녀라는 거야! 주구장창 씨를 얻으러 다니는데, 다들 싫다고 한 거지. 크크크. 한 마디로 똘아이에 미친 년이다.
범석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정보를 달라고 했더니, 원독에 찬 표정으로 한 여인의 뒷다마만 까고 있었다. 무슨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남의 푸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줄리앙 나 시간 없다. 데레사라는 아이 얘기는 그만하고 이번 일을 벌일만한 작자나 대라.”
– 말했잖아. 데레사가 의심스럽다고. 걔가 가능성이 제일 많아.
“그래? 그럼 어째서 그녀인지 말해봐.”
– 제비를 썼으니까. 데레사가 일 처리를 하는 방식이 사람을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고 한 인간의 마음을 희롱하다가 종래에는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리지. 왜냐하면, 그 얘는 그걸 즐기거든. 나도 당해본 적이 그 애의 잔인함은 잘 안다.
줄리앙 부득 이를 갈았다. 전에 청년기업연합회 모임에 찾아갔다가, 데레사에게 당한 생각을 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는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회비문제로 엿을 먹인 적이 있었다.
이 모습에 범석이 넌지시 물음을 표시했다.
“네가 당했다니 무슨 말이냐?”
– 그런 것이 있어. 너는 몰라도 된다.
“뭐.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하여간 데레사가 확실하다는 얘기지?”
– 확실하지는 않아. 네가 준 정보가 너무 빈약해서 지레짐작만 말해줬을 뿐이다.
“그럼 정확한 정보를 준다면 그녀의 관련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지?”
– 대강은 그렇지.
범석이 유심히 줄리앙을 바라봤다. 이거 말해줘도 될지 고민이 든 것이다. 그는 적인데다가 경제인단체의 하수인이자 청년기업연합회의 조직원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진 정보는 약간만 캐보면 대번 나올 정황이었기에, 설명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아마도 놈들이 똑똑한 자라면 이미 이 정보가 자신들에게 새어나갔으리라 판단했을 터였다. 그리고 줄리앙은 현재 조직에서 철저히 버려진 상태였다.
범석이 이내 루이스에게 들은 내용을 줄리앙에게 비교적 상세히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대충 이런 얘기다. 어때?”
– 으음. 그렇다면 데레사가 아닌 듯 보이는데.
“아니 어째서? 네가 네 입으로 그 아이일 가능성이 많다고 했잖아.”
– 그래. 수법은 딱 그년의 방식인데 일 처리가 너무 허술해. 데라사는 천재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다니는데, 얄밉게도 정말 똑똑하고 빈틈이 없는 성격이야. 이런 식으로 배후가 있다는 사실을 흘릴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할 애가 아니라는 얘기야. 암만 봐도 좀 덜 떨어지는 조직원의 소행이거나, 아니면 우리 쪽이 벌인 일이 아닐 거다.
“그래? 덜 떨어지는 애들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지?”
– 그야 아주 많지. 나를 포함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그럴 거다. 걔들은 돈과 권이면 다 되는 줄 알거든.
범석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다수에 줄리앙 하나 추가라고 친다면 대상이 너무 많았다. 즉 경제인단체와 청년기업연합회 조직원을 다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니 배후를 찾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들 터였다.
‘미치겠네. 이거 배후를 어떻게 캐지. 놈들은 일 처리를 허술하게 하지만, 꼬리는 철저히 숨기던데.’
그때 화면으로 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는 유니폼이 없는지 평상복을 입고 마포질을 하고 있었는데, 통화내용이 궁금했는지 다가와 기웃거리고 있었다.
– 여어. 이게 누구 신가? 줄리앙 친구 맞지?
– 아니야!
“아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범석과 줄리아의 일갈에 거구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귀를 후벼 파더니 투덜거리듯 말했다.
–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그렇지! 너는 빨리 청소나 해!
줄리앙이 떠밀리는 거구의 사내가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 너. 오범석 검투사 맞지? 나중에 꼭 한 번 볼 테니, 기다리라고. 아마 재미난 만남이 될 거다.
– 뭔 잡소리야! 빨리 가!
거구의 사내를 화면에서 사라지자, 범석이 질문을 던졌다.
“누구냐?”
– 있어 식충이2라고.
“식충이2? 그럼 식충이1도 있냐?”
– 그래. 달마라는 똥개 한 마리가 있다. 주인인 내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다고 여기는 싸가지 없는 놈이지.
어이가 없는 듯 범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그럼 정신 차리게 몽둥이 찜질을 해야 할 것 아니야.”
– 그랬다가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 자식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독종이다. 전에 누가 머리에 동전 하나 던졌다고 죽기 전까지 싸우더라.
“거참. 별 희한한 애완동물도 다 기른다.”
– 뭐 어쩔 수 없지. 내 편은 그놈 하나뿐이니까.
범석이 한심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오죽 나락까지 떨어졌으면, 개 한 마리에 의지해서 사는지 아주 처량하게 보일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줄리앙에 대한 염려는 꺼도 하등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이제 더 캐물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범석이 작별을 고했다.
“알았다. 정보 고맙다. 그럼 이만 끊지.”
– 잠깐!
통신을 끊으려던 그가 물끄러미 줄리앙을 쳐다봤다.
“또 뭐? 생각나는 배후라도 있어?”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돈 좀 꿔줘라. 나중에 꼭 갚는다.
‘아. 참나. 줄리앙 이거 완전히 거지 다 됐네. 감히 내게 돈을 꿀 생각도 다 하고 말이야.’
멋쩍은지 입맛을 다신 범석이 말했다.
“얼마나?”
– 이번에도 한 10만 크랑만.
“알았다. 오늘 내로 보내주지.”
– 그래 고맙다. 그럼 나중에 보자.
화면을 내린 범석이 자리에 앉아서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이 어떤 성격의 사건인지 정말 분간이 가지 않았던 탓이다. 배후라는 작자가 생각처럼 정말 멍청하다면 금세 해결되겠지만, 아니라면 자신이 큰코다칠 수가 있었다. 암만 봐도 세세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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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