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62
264화
며칠 후 갓즈나이츠 훈련캠프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금발의 사내였는데, 다름 아닌 샤일라의 소꿉친구인 루빈이었다. 루이스회장이 보낸 지원군으로 사건의 경위를 처음 밝혀낸 인물이니, 많은 도움이 될 듯싶었다.
범석이 그를 이사장실로 데려가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자. 이리로 앉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응접용 소파에 자리한 루빈이 앉자, 범석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샤일라의 소꿉친구라면 제법 나이가 들었을 텐데, 20대 초반의 외모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엽기적인 동안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일 가능성도 있었다.
루빈의 앞에 자리한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빈님도 개조인간인가 보시죠?”
“네. 그렇습니다.”
“오호. 대단하시네요. 신체개조시술 비용은 장난이 아닌데요.”
“하하하. 뭘요. 다 부모님을 잘 만난 덕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부모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네. 조그마한 프로 검투팀 몇 군데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다만 아버님께서는 10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 어머니가 이사장직에 계십니다.”
범석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현실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그 사업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쪽 세상에서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이 독신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군요. 아버지의 사업을 어머니가 이어받는 예도 있습니까?”
“하하하. 네. 그렇습니다. 두 분이 결혼을 하셨거든요.”
“오. 그래요? 아버지께서 이성애자셨나 보죠?”
“네. 그렇습니다.”
신기하기는 했지만, 범석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세상에 이런저런 사람도 있고, 결혼은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했다. 같은 이성애자인 그가 굳이 따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군요.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이번 사건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루이스부회장님께 듣기는 했지만, 원활한 일 처리를 위해서 좀 더 세세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질리엄이라는 놈에게 흥신소 직원을 보냈다는 얘기도 들으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자 이 내용을 보십시오. 최근에 새로운 정보를 얻었는데, 사건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는 중대한 정황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며 루빈이 전자문서를 펼쳐 공중으로 화면을 띄웠다. 그 안에는 한 엘프가 은밀한 장소에서 어떤 중년의 사내와 마주하는 사진이 있었는데, 분위기로 보아 긴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엘프 사진을 콕 집어 크게 확장시켰다. 은발의 여인이었는데, 오드아이인 것으로 보아, 아직 주인을 얻지 못한 듯싶었다.
“이 엘프 보이십니까?”
바로 면전 앞에서 화면이 저리 확대되었는데,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네. 그런데 이 엘프가 어쨌다는 겁니까?”
“이 아이가 바로 저희가 질리엄에게 보낸 흥신소직원들을 해치운 정체불명의 엘프입니다.”
“아. 그럼 이 아이가 그 가드맨이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근래에 조사한 바로는 안젤라여사가 경영하고 있는 한 에어리어리그 프로 검투팀의 검투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검투사등록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배후를 밝히는데, 좀 애로 사항이 있었습니다.”
안젤라여사라면 연방프로검투협회의 7개 계파 중 한 개 계파의 수장으로 그제 줄리앙이 말한 데레사의 어미였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번 사건에 경제인 단체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럼 안젤라여사가 배후였단 말입니까?”
고개를 살며시 갸우뚱거린 루빈이 이번에는 상대인 중년 사내의 얼굴을 확대했다.
“글쎄요. 그건 확실치가 않습니다. 일단 이 자를 주목해 주십시오.”
“이 자가 누군데요?”
“토마스라는 사람입니다. 화약제품가공업체인 버밀리언사의 이사급 직원인데, 지금은 비밀리에 청년기업연합회의 고문으로 있습니다.”
루빈이 서류를 한 장을 넘기더니, 적발의 한 청년의 사진을 선보였다. 범석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자로, 줄리앙이 몰락한 이후, 새롭게 청년기업연합회의 회장이 된 파일러였다. 그리고 버밀리언사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럼 배후가 청년기업연합회라는 뜻입니까?”
“네. 자세히 알아보니 토마스는 뿌리까지 파일러의 심복이었습니다. 즉. 이 일에는 최소한 청년기업연합회가 관여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긴 조직의 회장이 움직였으니,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범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이 샤일라를 노리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프로검투계의 세력 재편입니다.”
“그래요? 어떤 방식으로요?”
“지금 검투계의 세력은 크게 7계파로 나누어지는데, 이브라힘, 루이스, 쿠퍼계파의 3강과 안젤라계파가 포함된 4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경제인단체는 루이스계파, 안젤라 계파, 하이에나그룹을 한데 묶어 이브라힘계파를 넘어설 새로운 계파를 탄생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범석이 피식 웃었다.
“후후.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이브라힘계파의 뒤통수를 치고, 프로검투계 전체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겠다. 이겁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로서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습니다. 거대세력인 루이스계파를 건드리는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과실이 있어야 하니까요.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작태를 벌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군요.”
범석이 전자서류를 집어들고 세세히 살폈다. 내용을 보건대, 확실히 이번 사건은 경제인단체와 청년기업연합회에서 비롯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관련자들이 모두 그들 계열에서 파생되었으니,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장을 계속 넘기던 범석이 루빈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암만 봐도 경제인단체의 수작으로 보이는군요. 그런데 이 정보를 언제 파악했습니까? 제가 며칠 전 루이스부회장님을 만났을 때도 이런 말씀이 없으셨는데요.”
“네. 사실 저희가 배후를 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가드맨인 엘프가 워낙 조심스럽게 행동해, 미행이 번번이 실패했거든요. 하지만 루이스부회장님께서 범석님을 만나 경제인단체에 대한 의심을 굳힌 직후 얘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그간의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해 본격적으로 나설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심쩍은 경제인단체 인사들 모두에게 꼬리를 붙였고, 거기서 잡아내게 되었습니다.”
“아. 그럼 가드맨을 추적한 것이 아니라, 경제인단체 회원들을 살피다가 찾아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범석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경제계 거물급 인사들에게 대대적으로 꼬리를 붙인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을 텐데요. 이거 루이스부회장님께서 무리한 도박을 하셨군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딸과 조직의 미래가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전자서류를 테이블 위로 툭 던진 범석이 찹찹한 표정을 지었다. 배후를 루이스부회장이 밝혀냈으니, 자신이 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카젤라의 영입도 물 건너가게 됐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거 그럼 사건 종료군요.”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가장 어려운 샤일라의 설득작업이 남았습니다.”
“아니 그건 이 서류를 보여주면 해결될 일이 아닙니까?”
루빈이 어두운 낯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정보는 가드맨이라는 존재와 경제인단체의 연결성만 나타낼 뿐, 가드맨과 질리엄 그자의 연결성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질리엄이 그 엘프를 모른다고 시치미를 뚝 떼거나, 우연히 만난 낯선 타인이라고 우긴다면 저희가 딱히 반박할 내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샤일라 그 애. 제가 어려서부터 봐와서 알고 있지만, 대책 없는 고집통머리입니다. 그리고 한 번 남자에게 빠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만큼 순진하고 외골수적인 측면이 있어, 정확한 증좌가 있어도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지 의문일 지경입니다. 지금 루이스 부회장님께서 범석님에게 진정으로 부탁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아직은 카젤라의 영입할 기회가 남아있었다.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면 루이스 부회장이 기꺼이 약속을 지킬 터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애를 써보겠습니다. 남녀 간의 애정을 끊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지만, 까짓 것 못할 것도 없지요. 사실 제 전공이 남녀 사이를 갈라놓는 일입니다. 하하하.”
환한 표정을 지은 루빈이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90도 굽혔다.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도 이 은혜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범석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샤일라와 질리엄을 헤어지게 하는데, 그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소꿉친구로서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평생 은혜를 품을 정도는 아니었다.
“루빈씨. 혹시 샤일라에게 마음이 있습니까?”
얼굴을 붉힌 루빈이 손사래를 마구 쳐댔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언감생심 어떻게 루이스부회장님의 따님을…….”
“하하하. 남녀 간의 애정에 그런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죠. 왜 루빈씨도 다른 남자들처럼 엘프만 좋습니까?”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성애자성향이 있습니다. 항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봐왔고, 부러워했으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꼭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할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럼 샤일라를 아내로 맞이하면 되겠군요.”
루빈이 다시 한 번 겸양을 표시했다.
“그, 그건 안됩니다. 제가 어찌……. 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그래 왔고, 그게 편합니다.”
“아니 왜요. 솔직히 루빈씨의 어머니도 프로검투팀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하면 괜찮은 집안에 해당하는데, 왜 그런 답답한 생각을 하십니까?”
루빈이 난처한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달싹거렸다. 사실 죽은 그의 아버지는 루이스부회장의 비서였다가 관리자로 승격된 자였다. 본디 충성심이 강하고 착실해 부회장에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데, 그룹의 확장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그마한 에어리어리그 팀의 이사장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해당 팀의 주식 중 상당수가 루이스 부회장에게 있어, 명목 상만 이사장일 뿐 팀의 진정한 소유자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보유한 나머지 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이사장이 된 것도, 루이스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아니었다면 팀을 내놓아야 했을 터였다.
“아. 그럼 어머니께서는 단순한 관리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꾸준히 팀에 투자했고,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루이스부회장님의 은혜가 없다면, 어머니께서 지금의 이사장직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범석이 한심한 시선으로 루빈을 응시했다.
“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사내가 매가리 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주저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아마 제가 루빈씨였다면, 질리엄 같은 빈대들이 붙기 이전에 샤일라를 내 여인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하여간 이번에는 샤일라와 잘 좀 해보십시오. 제가 기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안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남녀 간의 관계를 무리 없이 깨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애정의 끈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소꿉친구만 한 아이템도 없지요.”
“그, 그렇지만…….”
“아니 그럼 계속 샤일라의 곁에 질리엄 같은 자가 똬리 틀기를 바라는 겁니까? 이번 일은 루이스부회장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아니 더 나아가, 좋은 후계자감을 얻었다며 속으로 무척 흡족해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 말대로 해보십시오.”
루빈이 난감한 표정으로 장고의 고심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략 십 수분이 흘렀을 무렵, 결심을 굳힌 듯 범석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하기야 질리엄. 그 제비 같은 작자에게 샤일라를 넘겨줄 수야 없지요. 범석씨 말대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안심하시고 저에게 모두 일을 맡기십시오. 확실히 처리해 샤일라와 좋은 결과를 맺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글쎄요. 별로 할 일은 없습니다. 그저 시간을 내서 샤일라와 자주 만나기만 해주십시오. 그럼 며칠 내로 상황이 종료될 겁니다.”
“며, 며칠 내로요?”
범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깟 일을 처리하는데, 금수강산이 변하도록 시간을 질질 끌 줄 아셨습니까?”
“아니 서두르시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떻게 합니까? 질리엄 그자 겉으로는 그래 보여도 만만치 않은 작자입니다.”
유심히 루빈의 얼굴을 살핀 범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입니다. 잔머리를 쓰는 작자들 하는 수작이 빤합니다. 절대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죠. 놈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벼랑 위에 탐스러운 미끼가 아른거리게 하고 똥줄에다가는 불을 붙이는 겁니다. 그럼 똥오줌 가리지 못하고 덥석 물었다가 대번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마치 붕어새끼처럼 말입니다. 아마 이번에도 그리될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조, 좋습니다. 그럼 범석님만 믿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실수하시면 안 됩니다.”
“염려 마십시오. 루빈씨는 돌아가셔서 루이스부회장님께 저만 믿으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일단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루빈이 그와 악수를 하고는 이사장실 문을 나섰다. 배웅한 범석은 마가렛에게 연락을 넣어, 이번 일에 필요한 제반 사항과 정보를 알아보라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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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십시오.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