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71
273화
‘저 능력치와 특성이 4억이라…….’
렌카의 몸값 4억은 특성으로 말미암아 아주 저렴한 가격이 되어 버렸다. 다른 휘하 엘프들의 뛰어난 특성을 접목한다면 수준급의 검투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석도 사기급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도플갱어의 여왕’을 배워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되었다.
단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역시나 돈이었다. 4억이 싸기는 했지만, 카젤라를 영입하기로 한 그로서는 렌카의 몸값을 장만한 길이 막막했다.
“범석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렌카가 물끄러미 범석을 쳐다보다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의 행동이 약간 이상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으로 단추를 누르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자판기 아래에는 네 개의 콜라가 뽑힌 상태였다.
범석이 화급히 정보창을 닫았다.
“아, 아니다. 그냥 네가 예뻐서…….”
렌카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의 찬사를 받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그녀는 벌써 갓즈나이츠에서 뛰는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낼 수 없었다. TV에서 본 바로는 범석은 관심 있는 검투사에게 절대 먼저 제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런 일이 발생해 상대 팀에게 피해가 간다면, 즉각 철회한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모른 척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 아. 네. 칭찬 고마워요.”
“후후. 뭐 그럴 걸 가지고 고마워하긴.”
음료수를 꺼내던 범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를 살피다가 뽑은 네 개의 콜라를 어찌 처리해야 몰랐던 탓이다. 지금 다이아나와 휘하 엘프들이 사온 간식거리로 냉장고가 넘쳐날 지경이었다.
그는 결국 세 개의 콜라를 렌카에게 던져주었다.
“야. 이거 네가 다 먹어라.”
품 안에 잔뜩 콜라를 받아든 그녀가 범석을 쳐다봤다.
“이걸 지금 전부 다요?”
“누가 지금 다 먹으라고 했냐? 남으면 그냥 가져가라는 얘기지.”
렌카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캔 뚜껑을 땄다. 그녀의 병실 냉장고에는 빈자리가 많은 데다가 입도 여럿이나 됐다. 아마 내일이면 순식간에 비어버릴 터였다.
살짝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렌카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범석님은 어쩌시다가 다치신 거예요?”
“펄 속에 떨어져 있던 검에 찔렸다. 한 마디로 재수 더럽게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아니? 검에 찔려요? 슈트가 불량품이었나요?”
“불량품은 아니다. 그저 그 검이 우연히도 슈즈와 발목 커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찌른 거다.”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발목 커버는 슈즈와 같이 연동되어서 움직이기에 검이 그 틈 사이로 파고들 가능성이 무척 낮았다. 렌카는 15년 동안 검투사 생활을 해오며 이런 부상을 처음 봤다.
“그런데 제조사가 어디에요?”
“으음. 채플린스포츠.”
“호호호. 하여간 그 회사 지금쯤 난리 났겠네요.”
범석이 뜬금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채플린 스포츠가 왜 난리 나는데?”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범석님이 당한 부상은 정말 어처구니 경우라고요. 슈트를 입은 사람이 그냥 바닥에 떨어진 검에 상처를 입은 장면을 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뭔가 슈트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여기지 않겠어요?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전 그런 부상을 당한 검투사를 한 번도 들어본 역사가 없었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영상 자료를 보니까 검이 펄에 빠진데다가 상대 검투사가 손잡이 부분을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검끝이 위로 치솟아올라 왔다고. 그러다가 검끝이 슈즈의 등을 타고 틈새로 끼어들어 왔고 말이야. 한마디로 사고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프로검투팀 관계자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가뜩이나 검투사부상이라면 학을 띠는 양반들인데, 그런 사소한 일에 부상을 당하는 슈트를 꺼림칙하게 여길 것이에요. 특히나 이번에는 대상자가 범석님이니 더욱 그러해요. 월드리그팀은 물론 세계가 주목하는 초거대 유망주니까요.”
범석이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수긍했다. 확실히 자신도 모르는 상태라면 다른 팀 관계자처럼 불안한 시선을 보냈을 터였다. 강한 타격에 의해 슈트가 부서진 것도 아니고, 단지 떨어진 검에 부상당하다니, 이건 떨어지는 낙엽에 맞아 뇌진탕에 걸렸다는 소리와 진배없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흔하지 않은 부상이니까.”
“네. 하여간 이번 일로 채플린 스포츠는 고생 좀 할 거예요.”
범석이 입맛을 다시더니 렌카의 오른쪽 무릎부위를 바라봤다. 깁스하지 않고 테이핑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큰 부상 같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네 무릎은 무슨 부상이냐?”
“별것 아니에요.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근육이 놀랐는지 심한 경련이 왔어요.”
“그래? 그런 부상이면 굳이 입원할 필요는 없잖아?”
물론 그랬다. 의사가 근육안정제만 투여하고 퇴원을 허락할 정도로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범석이 입원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엄살을 심하게 부려 하루간 병원에 머물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기는 한데요. 혹시 몰라서요.”
콜라를 쭉 들이켠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상을 당했으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좋지. 아픈데 경기에 나가봐야 경기력도 저하되고,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특히나 너 같은 경우는 몸값도 제법 나가니, 더욱 조심해야지.”
“네. 그렇죠.”
그때 휴게실 안으로 2명의 남녀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깔끔한 정장차림이었는데, 범석의 곁에 있는 렌카를 보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만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렌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한 참이나 찾았잖아!”
범석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니 렌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시냐?”
렌카가 짜증 나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휴~ 제 매니저들이에요. 항시 저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죠.”
“아! 매니저!”
단박에 알아듣는 범석이었다. 하긴 그녀에게 매니저가 없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프로스포츠팀들은 팀의 재산인 주인 없는 엘프에게 항시 매니저를 붙이며, 행동을 감시했다. 사기도박 등의 갖은 유혹을 막고자 함과 적절한 건강관리를 위해서였다. 특히나 렌카 같은 고가의 엘프 같은 경우, 대여섯 이상의 매니저를 붙여 24시간 감시 체재를 유지했다. 당연히 병원이라고 자유롭게 풀어줄 리가 없었다.
남자 매니저가 다가오더니 범석을 노려봤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렌카에게 다른 인간 남성이 접근하는 일은 매니저로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봐야 할 사항이었다.
“누구십니까? 렌카에게는 무슨 일로 접근하신 겁니다.”
범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영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탓이다. 자신이 렌카와 만난 사실을 파이어 호크즈팀 관계자가 알아서 하등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의심한다면 그녀의 영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얼굴을 봤으니, 거짓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얘기였다. 검투관계자가 자신의 얼굴을 모를 수는 없었다.
“오 범석 검투사라고 합니다. 렌카와는 우연히 휴게실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의 얼굴을 본 남성 매니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범석은 아주 위험군에 속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부상으로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당연지사 우연일 가능성이 많으니,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다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TV나 거래한 여러 많은 팀의 평판에 의하면 그는 검투사를 영입할 때 상당히 신사적으로 접근한다고 했다. 이를 볼 때 렌카에게 접근해 모종의 수작을 피지는 않으리라 생각됐다.
“아. 범석님이셨군요. 어이없는 사건으로 부상당했다는 소식은 TV를 통해 봤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 바입니다.”
“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남성 매니저가 여성매니저에게 렌카를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범석을 바라봤다.
“그럼. 저는 이만 렌카를 데려나가겠습니다. 양해 부탁하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범석이 뒤돌아서려 남성 매니저를 다시 불러세웠다.
“아. 그런데 파이어 호크즈팀도 승격 토너먼트에 참가하시죠?”
“네.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 이겼습니까?”
“네. 운이 좋게도 승리했습니다.”
범석이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새겼다. 이거 잘만 하면 3차전 상대인 이스트 윈드즈팀에게 힘든 경기를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됐다. 파이어 호크즈팀은 2차전에 올랐다면 분명히 이스트 윈드즈팀과 결전을 짓게 되었다. 이들 팀도 그리 만만치 않은 팀이니, 이스트 윈드즈팀에게 상당한 무리를 줄 수 있었다. 파이어 호크즈에는 센트럴 리거급 검투사가 9명이나 존재했다.
“아. 그럼 다음에 이스트 윈드즈팀과 만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멀어져가는 렌카를 향해 소리쳤다.
“렌카! 다음 경기 잘해라! 팀 동료에게도 내가 TV를 보며 응원할 테니, 분전하라고 하고. 꼭 서로 준결승전에서 만나자!”
그녀가 환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반드시 이길게요!”
렌카가 사라진 휴게실 입구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자신의 부탁대로 렌카와 파이어 호크즈팀원들이 사력을 다해 이스트 윈드즈와 붙는다면, 다음 경기에서 누가 오르든지 간에 많이 지친 상태가 될 것이 빤했다. 그럼 갓즈나이츠는 보다 용이한 조건에서 3차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가 곧 휠체어를 이동시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빠른 상처치료를 위해서는 일찌감치 수면에 들 필요가 있었다.
“범석 환자님. 주사 맞을 시간에요.”
다음 날 아침 무렵. 어김없이 간호사가 찾아와 엉덩이를 까라고 성화였다. 이불 위로 빼꼼 시야를 내민 범석이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상당히 미인형의 인간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약간 많은 점이 흠이지만,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과 꽉 끼는 간호사 복장에 드러난 마른 몸매. 그리고 이지적인 미모의 얼굴은 흔히 볼 수 없는 외모가 아니었다.
그가 간호사의 가슴에 부착된 이름표를 바라봤다. 이젤라. 이름도 참 예뻤다.
“아 주사요? 무서운데 안 맞으면 안 됩니까?”
범석의 귀여운 투정에 이젤라가 피식하고 미소 지었다. 간호사생활 12년 만에 자신에게 이런 장난을 거는 남성환자는 처음이었다. 이 시대의 주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통이라 아픔을 느낄 리가 없었다.
“맞아야 해요. 그래야 부상이 빨리 낫죠.”
“빨리 안 나아도 되는데요.”
“휴~ 정 이러시면 바늘 있는 주사로 놓을 거예요. 그거는 꽤 아프거든요.”
그가 슬그머니 이불을 걷더니 엎드린 자세에서 엉덩이를 깠다. 솔직히 바늘 있는 주사는 조금 무서웠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누누이 병원에 간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물론 맞으려 한다면 못 맞을 것도 없지만, 굳이 자처할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젤라가 범석의 엉덩이에 권총형 주사를 대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제법 탄탄한 것이 육질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연 명성을 널리 알리는 세계적인 검투사다웠다. 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방아쇠를 당겨 주사액을 주입한 이후, 환자복을 올렸다.
“이제 됐어요.”
범석이 다시 똑바로 눕더니 이젤라를 쳐다봤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 말에 이젤라가 곤란한지 얼버무렸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되지만, 자랑할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여자의 나이를 묻는 건 실례에요.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다른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말씀 주세요.”
“혹시 아이는 있습니까? 그걸 몰라서 약간 불편한데요.”
“범석 환자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기서 제 아이 얘기가 왜 나오는데요!”
범석이 눈을 도르르 굴렀다. 말하는 투로 보아하니 아이 하나 정도는 있는 것으로 사료되었다.
“그럼 하나에요? 둘이에요?”
“그걸 알아서 도대체 뭐하시게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부글부글 끓는 얼굴을 한 이젤라가 손가락 하나를 폈다. 이 병원은 진료비 또한 무척 비싼데다가 모토가 친절 봉사 성심이었다. 쓸데없는 질문이었지만, 병원 방침을 따를 겸. 또 이 귀찮은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 말해줘도 좋을 듯싶었다. 게다가 그녀는 3층을 총 책임지는 수간호사였다. 괜히 환자와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하나에요. 이제 됐죠? 그럼 다른 불편한 사항이나 말씀 주세요.”
“그래요? 혹시 두 번째 아이 낳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번 답례로 제가 아이 낳는 주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이젤라가 금세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들고 있던 쟁반으로 그의 얼굴을 힘껏 후려졌다.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콧김을 씩씩 품으며 바로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성깔이 보통이 아니야.’
범석이 자신의 얼굴 형태가 선명하게 새겨진 쟁반을 치우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홀로 사는 유부녀라 혹시나 했는데,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병원에서의 섬씽은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끼이익.
다시금 들려오는 문소리. 이젤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던 범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꽤 의외의 여인이 문병용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채플린 위스퍼팀의 레베카였다.
============================ 작품 후기 ============================
이거 일요일만 되면 늦네요. 아무래도 다음 주부터는 일요일 분량은 미리 써놓고 예약해야 되겠습니다.
그럼 모도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